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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F/IVP

궁금함과 불편함, 그것은 사랑의 과정(내겐 여전히 불편한 하나님 ) - 전성민



내겐 여전히 불편한 하나님 

God behaving badly 

데이비드 램 지음 | 최정숙 옮김 | 145*216 256면 | 12,000원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어 온 사람들은 성경, 특히 구약 성경에 나오는 적지 않은 이야기들이“19금 성인물”또는 최소한“15세 관람가”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유치원 때 읽었던 어린이 성경에는 곱고 예쁜 은혜로운 이야기들만 담겨 있지 야엘이 자기 집에 도망쳐 온 시스라가 잠들었을 때 그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인 이야기는 없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집트 왕자”에서 본 출애굽 이야기에는 이스라엘의 갓난 남자 아기들이 나일 강에 던져지고 애굽 군인들이 바다에 빠져 죽어 나가지만 이것 

은 옛날 동화 같은 사건일 뿐, 그들의 처절한 죽음은 좀처럼 실감나지 않는다. 




이런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사건들이 사람 때문이면 그나마 설명이 된다. 이집트 군대가 바닷속에 빠져 죽은 것은 그들의 악함 때문이니 마땅한 죽음이 아니던가? 그러나 잔혹한 폭력을 성경이 칭찬하거나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면 왠지 모를 불편함이 마음속에 꿈틀거린다. 아무리 적군의 대장이라지만 잠들었을 때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인 것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삿 5:24-27)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스라엘을 위한 싸움은 정말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가? 명령하신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죽이신 경우도 있다. 하나님의 궤가 수레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가 죽은 웃사(또는 웃사를“죽임”)가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삼하 6:8).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무례하게 놀리긴 했지만 암곰 두 마리에게 찢겨 죽은 마흔두 명의 어린이들은 어떤가?(왕하2:23-25) 여자들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남자를 구하기 위해 딸을 내어주려 하다가 결국 손님의 여자를 집단 성폭행당하도록 내어주다니!(삿 19:23-26) 또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과 결혼하라는 율법 즉,하나님의 명령은 어떤가?(신 22:28-29) 남편이 죽은 후 남편 집안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미망인에게 남편의 동생과 결혼하라는 명령(신 25:5-6)을 내린 하나님은 여성차별주의자 아닌가? 자기 백성이 아니라고 노인이건, 여자건, 젖먹이건 모두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난폭한 것이 아니면 뭐가 난폭한 것인가?(삼상 15:3; 신 7:1 참고) 



이런 질문들은 원하는 구절만 골라 읽지 않고 성경을 통독할 때면 자연스레, 아니 마땅히 떠올려야 하는 질문이다. 구약 성경을 읽을 때 이런 당혹스런 질문, 혹은 저자가 제기하는 질문들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경을 대충 읽었거나, 동화처럼 읽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교회 공동체의 반지성적 분위기에 위축되어 어떤 질문도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구약 성경을 읽으며 생기는“불편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역시 구약 성경을 통해 잘 해소해 줄 뿐 아니라, 구약의 하나님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좀더 근본적인 깨달음을 주는 데 있다. 사실 우리의 문제는 많은 경우“불편한 하나님”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산타 할아버지 또는 KFC 할아버지같이 좋은 분으로만 생각하려는 잘못 때문이 아닌가! 



연애를 할 때, 처음에는 상대방의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예뻐 보이고 멋있어 보인다. 하나님도 처음 만나면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왜 연애하고 하나님을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보이면서 불편해진다. 그래서 가능하면 결혼 전에 사계절은 함께 보내 보라고 하지 않는가(필자는 연애 선언 6개월만에 결혼했지만). 서로를 알아가면서 불편함이 생기고 그때 관계는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거기서 관계가 발전하느냐, 잠시 멈추느냐, 혹은 깨지느냐 하는 문제는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생기는 위기를어떻게 다루는지에 달려 있다. 불편함을 회피하고 마냥 달콤함을 찾다가 더 큰 위기가 오기도 하며, 그것을 끝내 회피하고 결혼했다가 더 위험해지기도 하다. 불편함을 다루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질문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앞뒤 상황과 자라 온 배경을 묻고 경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질문은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실 사랑하지 않으면 궁금할 이유도 없다. 사랑하지 않으면 불편할 이유도 없다. 하나님 사랑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혹은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가 진노의 하나님이건 사랑의 하나님이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러니 성경을 읽으며 질문을 억압할 이유는 없다. 하나님이 성차별주의자이며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냐는 도발적인 질문 혹은 하나님은 율법주의자이며 완고하신 분이 아니냐는 좀 더 전통적인 질문까지도 진솔하게 던져도 된다는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다. 




하나님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는가? 너무 걱정하거나 그 불편함에 겁먹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한 단계 더 깊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하나님이 불편한 이유는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것, 아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불편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불편함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 책은 하나님에게로 더 깊게 인도할 좋은 상담자가 될 것이다. 불편하고 당혹스런 질문들에 대한 데이비드의 설명을 따라 구약 성경을 다시 면밀히 살피다 보면 아무리 발칙하고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질문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하나님을 더 알아 가는 데, 그리고 결국 더 사랑하는 데 필요한 질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은 후에도 하나님의 어떤 부분은“여전히”불편할 수도 있다(사실 저자의 안내와 답변들이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덕스러운 폭력”(virtuous violence)에 대한 저자의 변호는 여러모로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데이비드 특유의 재기발랄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 책을 읽고 나면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는 분명 한 차원 더 진솔한 관계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불량스런 하나님”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21세기 런던에 사는 것을 배경으로 한 원작 소설을 각색해서 만든 영화“불량스런 신들”(Gods Behaving Badly)이 올해 개봉할 것이라 한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원조“불량스런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 보는 것은 어떨까. 





전성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존 바턴 교수의 지도 아래 구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세계관 및 구약학 교수로 일할 준비를 하고 있다. 






IVP BOOK NEWS 2013년 9-10호



내겐 여전히 불편한 하나님

저자
데이비드 램 지음
출판사
IVP | 2013-07-1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구약 속 하나님은 진실일까? 실제로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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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하나님을 구약 성경의 심술궂은 하나님과 신약 성경의 선한 하나님으로 구분해서 묘사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기독교 초기에 마르시온(Marcion, 주후 80-160년경)은 서로 다른 두 신이 있다고 가르쳤다. 신약 성경의 하나님은 자비와 구원을 베푸는 자비로운 신인 반면, 구약 성경의 하나님은 율법과 정의를 강조하는 냉혹한 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시온은 구약 성경을 기독교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마르시온의 관점에 끌리는 점이 있을 수 있으며(구약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2세기에 마르시온의 교회는 크게 부흥했다. 

구약 성경을 사랑하는 우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교회는 2세기 중반에 마르시온의 견해를 이단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마르시온의 반(反)구약적 관점을 따르는 여러 종류의 이단은 오늘날에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는 구약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에 그 진가를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르시온의 잔재를 극복하려면 구약 성경을 더욱 주의 깊게 살펴야 하며, 신약 성경과 함께 구약 성경을 읽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쓴 목적이다. 

_1. 평판이 좋지 않은 하나님 중에서 


구약 성경의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인가? 그렇다. 구약 성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가? 그렇다. 신약 성경의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인가? 그렇다. 신약 성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가? 그렇다. 진노와 사랑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깨어진 관계를 보고 분노할 수 있다.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또한 불의를 보고 분노할 수 있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하나님은 사랑하기를 속히 하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약 1:19). 그리고 우리도 그래야 한다. 

_2. 진노의 하나님 중에서 


야웨와 예수님은 공통적으로 위기와 어려움과 두려움의 상황에 평강을 주시지만, 검도 휘두르신다. 그렇다면 언제 검을 휘두르는 자가 되고 언제 평강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먼저 야웨와 예수님 두 분 다 폭력보다 평강을 좋아하셨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야웨는 사악한 자들을 벌하시거나 약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셨을 뿐,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 안에서와 이스라엘과 이웃 나라 사이에 평강을 돈독히 하셨다. 예수님은 한 곳에서만 자신이 평강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을 뿐, 그 밖의 모든 곳에서는 평강의 복을 주셨으며, 화목을 꾀하셨고, 폭력에 희생되심으로써 평강을 회복하셨다.

 _5. 폭력적인 하나님 중에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한 이유는 그가 율법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며,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름으로써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했다. 하나님이 탐내지 말라(출 20:17)고 명령하신 것은 이스라엘 자손을 소유에 대한 불안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더욱 의존하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복을 주시려는 의도에서였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과 의무로 부담을 주려 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시편 119편 기자는 하나님의 율법이 은혜의 수단이었으며 축복의 방편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_6. 율법주의자 하나님 중에서 


이 책에서 구약 성경의 하나님을 주목한 이유는 구약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에 마음 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구약 성경의 “심술궂은” 하나님을 신약 성경의 “선량한” 하나님과 비교한다. 그러나 우리는 신구약 성경의 많은 구절을 살피면서 실제로 야웨(구약 성경의 하나님 이름)와 예수님(신약 성경의 하나님 이름)께 공통점이 있음을 보았다. 신학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을 상세하게 비교하진 않겠지만, 중요한 것은 야웨와 예수님이 뚜렷이 다른 위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본질상 한 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야웨와 예수님 모두 사랑으로 특징지어진다는 사실이다.

_에필로그 중에서 




■ 차례 


1. 평판이 좋지 않은 하나님 

2. 진노의 하나님 

3. 성차별주의자 하나님 

4. 인종차별주의자 하나님 

5. 폭력적인 하나님 

6. 율법주의자 하나님 

7. 완고한 하나님 

8. 멀리 있는 하나님 


에필로그 

토론을 위한 질문 

주 

감사의 글 

참고문헌 

성구 찾아보기 


 

■ 저자 


데이비드 램(David T. Lamb)


펜실베이니아 주 하트필드에 위치한 비블리컬 신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산업공학을 공부하고, 풀러 신학교(M. Div.)와 옥스퍼드 대학교(D. Phil., 구약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미국 IVF의 캠퍼스 사역자와 지역 책임자로 섬겼으며, 나이지리아, 멕시코,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쳤다. 

저서로는 「의로운 예후와 그의 악한 후계자들」(Righteous Jehu and His Evil Heirs, Oxford)이 있고, 「베이커 성경 사전」(Baker Illustrated Bible Dictionary)에 열두 편의 글을 기고했으며, 현재 「열왕기 주석」(Zondervan)을 집필 중이다. 


■ 역자 

최정숙


최정숙은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이화여자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총신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한영신학대학교 조교수 재임 중 도미하여, 현재는 ESL 강사와 통역, 번역 일에 종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