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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F/IVP

순례, 은유에서 실재로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 정모세

순례, 은유에서 실재로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찰스 포스터 | 윤종석 옮김 | 4쪹6 양장 336면 | 14,000원



이 책은 예상보다 낯설다. 삶이 순례라는 식으로 은유로서의 순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실제 순례를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이 말하는 순례는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수련회나 퇴수회, 그리고 개인적인 여행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성지란 없다고 믿는(최소한 성지라는 단어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개신교인 중에서 실제 순례를 떠나거나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다. 

이 책은 ‘IVP 영성의 보화 시리즈’의 목적대로 숨겨지고 잊어버린 오래된 영성의 보화 중 가장 접하기 희소한 것 중 하나를 꺼내어 우리 앞에 내놓는다. 



순례가 이렇게 낯설어진 이유는 우리에게 성지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모든 시간이 거룩하지만 우리는 따로 하루를 주일로 떼어놓고 또 절기를 따라 살고 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지만 또 따로 시간을 정해 기도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은 헌금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모든 식탁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지만, 우리는 성만찬에서 특별하고도 분명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절감한다. 

그래서 우리가 알듯이 세상의 모든 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만, 저자의 말대로 하늘과 땅을,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을 가르고 있는 막이 “샐 듯이 아주 얇은” 그런 곳이 있을 수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인 찰스 포스터는 한 친구의 주장을 예로 들어 말한다.

 “런던의 히드로 공항도 예루살렘만큼이나 거룩하다. 둘 중 어디서나 똑같이 쉽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이 발언 중에서 “똑같이 쉽게”라는 말만 빼놓고는 동의한다고 말한다. 

어쨌든 “성지”가 없다는 생각이 너무도 쉽게 “순례”마저도 없애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순례는 그 본성상 낯선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의 시리즈 서문을 쓴 필리스 티클이 밝히듯이 “순례는 분명 오래된 일곱 가지 훈련 중에서 그동안 익숙해지고 타성에 젖어든 삶을 가장 크게 위협한다. …어느 경우든 일단 순례를 경험하고 나면 아무것도 이전과 똑같을 수 없으니 조심하라.” 

순례는 영성의 보화 시리즈가 재발견해 내는 오래된 여러 영성 훈련 중에서, 어쨌든 오늘 우리에게 가장 낯설고, 일상과의 단절이라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고, 실제로 위험하기 십상이다. 정주하여 안전을 확보하려는 우리 가인의 후손에게 순례는 삶의 외곽에 있는 주변부를 가리키고 불확실 속의 기묘한 화음을 믿음으로 누려 보라고 도전하는 다소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저자에게서 순례를 “배운다.” 

아주 좋은 여행 가이드북이 그러하듯이, 이 책은 매우 아름다운 문체로 쓰인 아주 간단한 책이면서도 순례와 관련하여 매우 폭넓게 일별하며 가늠해 볼 수 있게 돕는다. 

이 책은 순례의 역사에서 시작에서, 기독교의 복음과 신구약 성경의 등장인물이 얼마나 “걸어 다닌 사람들”이었는지를 살피고(순례의 신학), 이어서 왜 순례를 떠나고 어디로 순례를 떠날지, 순례를 어떻게 준비할지, 실제 여정에서 어떤 것을 얻고 잃는지, 도착과 귀환에서는 어떤 일을 겪는지 다룬다. 

물론 순례에 대한 반대들도 간과하지 않고 하나하나 짚어 보면서,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본질적으로 순례자임을 밝힌다. 

그러나 끝까지 순례는 신앙에 대한 은유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순례자가 맞다. 

하지만 물리적인 순례가 필시 우리에게 해줄 일을 은유적인 순례도 똑같이 해줄지는 미지수”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순례를 권한다. 




그러고 보니 여행을 좋아하는 나도 성지라고도 불리는 여러 곳에 갔었다.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그 두 곳을 다 가 보았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로마와 에베소와 시내 산과 그리심 산을 가보았다.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했던가. 나는 여행을 떠났고 그곳의 흙과 공기 냄새를 맡으며 그곳의 역사를 떠올렸다. 가 보는 것은 그 순간의 체험으로서도 매우 좋지만 이후에 여러 기회로 그곳을 추억할 때도 유익을 주는 것을 느낀다. 이 책은 그것이 순례였다고도 하고 아니라고도 한다. 우리 삶은 순례라고도 하고, 순례라는 것이 또 따로 있다고도 말한다. 오늘날 만나기 힘든 순례의 고수가 나의 과거의 순례에 대해서와 앞으로의 순례에 대해서 정리하도록 도와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이 책은 순례에 대한 책이지만, 동시에 삶 전체를 순례로 보게 하고,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우리가 겪는 수많은 순간을 성찰하도록 돕는다. 

표지가 아름다운데다가 주제에도 관심이 가서 책이 출간되자마자 읽고 싶었는데, 결국 책을 읽고서 그러한 유익을 얻을 수 있었다. 

순례를 계획하든 그렇지 않든(물론 이 책 때문에 순례를 한번 떠나 보면 좋겠지만) 이 책을 읽어 보는 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본향에 이르는 순례객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고 순례의 자세를 잡아 줄 것이다. 

정주의 욕망 속에 있는 우리에게 주변을 향해서 나아가기를 권하고 지금 걷는 오늘의 길을 여행이나 순례로 다시 환기해 보면서 주변을 돌아보도록 자극한다. 

이번 여름휴가 때 들고 가거나, 아니면 여러 이유로 떠나지 못한 여행을 아쉬워하면서 꼭 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종교개혁자들은 순례를 막으려고 혼신을 다했고, 국경을 넘나들기가 점점 힘들어지던 추세에 힘입어 개신교 국가들에서는 한동안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들은 순례의 언어가 지닌 마력을 알았고, 그래서 그것을 개신교 신앙을 추지하는 엔진에 장착하려 했다. 

존 번연의 명작 「천로역정」이 대표적인 예다.…이 긴 호흡의 은유가 압권인 것은 번연이 은유에 대비되는 실체의 위력을 내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뭔가 문제를 발견했기 때문에 순례를 그토록 금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당신이 하늘나라 본향을 향한 순례자라고 하면서, “순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정모세 새물결플러스 편집장이자 분당두레교회 중고등부 교육목사. 이스라엘과 그 주변지역에서 약 9개월 머문 적이 있으며 예루살렘 뒷골목도 제법 알고 있는 편이지만, 이 책을 읽고서 순례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한다.


IVP Book News 2013년 7-8월호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저자
찰스 포스터 지음
출판사
IVP | 2013-04-15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인간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은 집 없는 떠돌이셨다. 그분은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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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인간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은 집 없는 떠돌이셨다. 그분은 신비로운 나라가 임했다고 선포하시며 팔레스타인을 걸어 다니셨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곧 걷는다는 뜻이었다. 그분의 흙 묻은 발을 중심으로 돋아난 나라는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되고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되는 신기한 나라였다. 사람이 되신 여호와는 패배자나 외톨이 등 세상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을 특히 매료시키셨는데, 이는 그분이 뜨내기여서도 그랬고 하나님 나라가 본래 그런 곳이어서도 그랬다. 그분은 도시의 지배층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서문 중에서 


순례란 하나님을 따라 유랑하는 것이며, 행선지가 정해져 있다 해서 유랑이 아닌 것은 아니다.…예수님의 샌들을 중심으로 그 나라가 발현되었듯 순례자들의 신발을 중심으로 그 나라의 꽃들이 피어날 수 있다. 

-서문 중에서 


길을 걷노라면 많은 거짓말들이 떨어져 나간다. 당신의 몸과 직장 동료들은 당신이 하루에 40킬로미터씩 걸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며 당신은 걸을 수 있다. 당신의 몸은 당신이 평소처럼 11시에 스타벅스의 라테를 마시지 않고는 지낼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며 당신은 잘 지낼 수 있다. 당신이 자라온 배경은 당신이 피레네 산지에서 성모 마리아상을 앞세우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정성스런 행렬에 절대로 감동할 수도 없고, 땅바닥에서 잠을 잘 수도 없고, 합숙소에서 수십 명의 다른 순례자들 앞에서 옷을 벗을 수도 없고, 숫양의 고환을 먹을 수도 없다고 말하지만 당신은 전부 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길을 가다 거창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해도 당신의 삶에는 진실이 이전보다 훨씬 많아진다. 

-5장 중에서 


순례를 통하여 우리는 내 존재의 밑바닥에나 내가 정말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모든 것의 핵심에 하나님이 계셨고 지금도 계심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이 오색찬란한 세상에 처음으로 경이의 눈을 떠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고치 속에 있던 그때, 그 색깔과 사랑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셨음을 우리는 순례를 통해서 알게 된다. 순례는 아주 근본적인 차원의 구속이며, 과거로 소급해 올라가는 유아 세례 같은 것이다. 순례는 우리의 유년기에 세례를 주고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망가진 관계를 치유해 준다. 이런 의미에서 순례란 일종의 거듭남이라 할 수 있다. 

-9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