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나그네의 삶, 이민

나그네의 삶, 이민




시작하면서


이민(Immigrant)이라는 영어단어를 고등학교 때 처음 접하고 외워놓았던 것 같다. 영주를 목적으로 조국을 떠나 타국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현상이나 사람들을 이민(자)라고 배웠다. 그때만 해도 이민자라는 단어가 내게 해당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게 될 줄이야. 그런데 지금 나는 조국 대한민국의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이 되어 있다.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님이 아시면 크게 역정을 내실 일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미국에 영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영주권자로서 미국에서의 법적 신분은 “영원히 거주할 수 있는 외국인(permanent resident alien)"이었다. 학생 신분과 종교인 신분이었을 때는 그나마도 ”임시로 거주하는 외국인(temporary resident alien)“이었으니 미국에서의 신분은 말 그대로 임시로 체류하는 나그네였다. 맨 뒤에 붙은 단어, ‘alien’이 ‘외계인’으로 들릴 때는 기분이 묘했다. 영주권자가 된 후 5년이 지난 작년 초에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렇게 나와 우리 가족은 듣기에도 생소했던 ‘재미 교포’가 되었다. 게다가 벌써 9년째 이민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


미국은 말 그대로 이민자의 나라이다. 미국 본토에 오래전부터 원주민들(native americans)이 살고 있었지만, 실제로 오늘날의 미국을 세운 사람들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다. 그 이후로 세계각지에서 이민자의 대열이 줄을 이었고 매년 백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영주권을 취득하고, 슬며시 미국에 들어와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천만 명 이상에 이른다. 오바마 행정부는 매년 막대한 예산을 배정해서 이민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인들의 이민역사는 1903년 1월, 102명의 한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한인들의 숫자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미국에 온 청교도들의 숫자가 똑같다. 한인들의 경우 일종의 취업이민이었다. 이들이 하와이에 정착한 후, 한국에서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서 중매쟁이가 보내준 사진만 보고 결혼했다고 해서 ‘사진신부’라는 말도 생겼다. 하와이를 벗어난 한인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서 미국 본토로 이주했고,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한인사회를 형성해 나갔다. 


초기 한인들의 이민유형은 가족초청과 국제결혼이었다. 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가족이민이 주춤했다. 배우자와 자녀 또는 부모와 같은 직계 가족이 아니면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대기기간이 문제였다. 그 이후로 취업과 투자이민이 증가했다. 미국에서 직업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영주권과 시민권을 얻는 경우로, 결혼이나 직계가족 초청과 더불어 가장 확실한 이민경로가 되었다. 물론 미국에 영주할 목적이 아니어도 학업 또는 단기간의 투자나 취업을 위해서 미국에 체류하는 경우도 꽤 늘어났다. 


미국 이민을 위해서는 스폰서로 불리는 가족 또는 후원 직장이나 단체가 있어야 한다. 가족의 경우 초청의 형식을 띠고, 취업이나 투자의 경우 미국의 기업이나 단체가 미국 국익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보증 하에 영주권을 신청하게 된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는 해외 우수 인력 가운데 특별한 업적이나 유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 인재들에게 영주권 취득의 문이 열려 있어서, 한인 젊은이들이 자력으로 영주권을 취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 살려는 뜻을 가지고 차근차근 이민을 준비하면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반면에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거나 미국 이민 허용기준에 맞출 수 없는 경우는 체류 자체가 쉽지 않아서 마음고생은 물론 몸까지 망가진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공부하러 왔다가 눌러 앉다


나는 1998년에 가족과 함께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왔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30대 중반에 목회의 길에 접어들었기에 3년간의 신학공부를 하고 목회현장으로 가기보다 유학을 통해서 조금 더 목회를 준비하고 싶었다. 거기에 신학교 은사님의 추천으로 유학길에 올랐는데 큰아이가 여덟 살, 둘째가 여섯 살이었다. 한국에 노부모님이 계셔서 서둘러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7년 정도의 기간을 정해서 유학길에 올랐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처럼(잠16:9), 박사과정 중에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지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기면서 애초에 세웠던 계획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학업은 늦어지고 첫째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미국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목회지로의 부르심과 아이들을 위해서 미국에 체류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안수 받은 목사에게 영주권 문호가 항상 열려 있어서 교회의 후원으로 큰 어려움 없이 그린카드라고 불리는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우리집 살림을 쭉 둘러본다. 침대와 가구 등은 10년도 넘은 것들이다. 유학생 시절 학업을 끝낸 교인들이 귀국하면서 주고 간 것을 샌프란시스코까지 가져와서 그대로 쓰고 있다. 제대로 된 식탁도 없어 예전에 책상으로 쓰던 테이블을 식탁 대신 쓰고 있다. 신발장이며 책꽂이도 다 중고장터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일찌감치 폐품 처리했을 법한 것을 애지중지 아끼며 사용하고 있다. 이민교회 목회자의 삶이 넉넉지 않은 탓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 처음부터 이민을 생각하고 미국에 오지 않아서인지 마음 깊은 곳에 ‘귀국’이라는 단어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 전무한데도 마음은 물론 집안 살림까지 공중에 붕 뜬 상태에서 지내는 것이 이민자의 삶임을, 집안을 둘러보며 다시금 실감한다.



한국 방송이 너무 재미있다


9년 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미국에 이민 온 지 30여년 넘은 분들이 미국방송을 마다하고 한국방송을 시청하며, 한국신문을 구독하고, 미국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한국정치를 주르륵 꿰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유학생이야 귀국을 꿈꾸고 있으니 한국에 대한 관심도 컸고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며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한다지만, 오래전에 이민 오신 분들의 애틋한 한국사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요즘은 나도 집에 들어오면 한국방송을 먼저 튼다. 조국에서 연거푸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개그콘서트>는 빼놓지 않고 보는 인터넷 방송이다. 아내도 틈틈이 한국드라마를 챙겨 본다. <러브인 아시아>라는 방송을 가끔 보게 되는데 한국에 시집온 며느리들이 한국사회에서 겪는 애환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한국인 남편과 함께 고향을 찾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목회하면서 만났던 할머니 권사님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1960년대에 미국인 남편을 따라서 미국 중서부 한가운데로 시집오신 분들이 들려주신 이야기와 어찌 그리도 똑같은지! 


종종 한인들이 주최하는 음악회에 갈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이태리어나 독일어, 영어로 부르는 가곡들은 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음악회 말미에는 꼭 <그리운 금강산>, <가고파>와 같은 가곡을 부른다. 그때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소위 은혜를 받는다. 박수와 앙코르가 쏟아진다. 수구초심이라고, 수십 년 이민자로 살아도 영락없는 한국사람이다.



나그네 설움, 그래도 걷는다



이민자들은 말 그대로 낯선 타국에서 나그네로 살아간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나그네 삶은 매우 성경적이다. 구약성경에서 나그네를 히브리어로 “게르”라고 부르고 영어로 sojourner라고 옮기는데,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모두 나그네였다.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 살 때도 아버지가 우상을 만들면서 가족을 부양했고, 하나님이 지시한 땅 가나안 역시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온 것이지 그곳이 자신의 땅은 아니었다. 가뭄이 들자 아내 사라를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갔을 때도 아브라함은 나그네였다. 타민족들 가운데 섞여 살다보니 두려운 마음에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을 것이다. 


이국땅에 여러 민족과 함께 살다보면 아브라함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주류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을(乙), 즉 소수자로 살게 마련이다. 영어구사 능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거주기간에 비례해서 퇴보하니,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는 이민자들에게 아킬레스건이다. 그러다보니 이민 1세로서 떨치기 어려운 외로움과 서러움을 안고 살아간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태평양을 건너왔다가 몸과 마음은 물론 가정까지 부서진 경우도 자주 본다. 한번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 모여서일까? 이민사회는 물론 이민교회도 쉽게 등지고 소위 격을 지고 떠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이민자의 삶이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민자로서 느끼는 감사와 기쁨도 있다. 나그네의 삶을 살다보니 넘어지고 얻어맞고 몸과 마음에 멍이 들어서 욱신욱신 쑤시는 곳이 많이 있지만, 아브라함이 실수를 거듭하면서도 결국에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경험하였듯이 이민자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만나곤 한다. 넓은 미국 땅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 거주지가 해결되었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던 광야의 하나님을 똑같이 경험한다. 고달픈 타향살이지만 작고 소중한 감사들이 이곳저곳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나그네 길에서 동고동락할 좋은 신앙공동체, 친지들, 믿을 만한 이웃을 만나면 형제자매처럼 서로 의지하면서 함께 걷는 순례자가 된다. 그렇기에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오늘도 종종걸음을 치면서 걷고 또 걷는다.



마치면서 - 이민을 생각하는 분들께


정든 고향과 조국을 떠나서 타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또한 이민생활의 범위와 경험이 제각각이어서 어느 한 가지 제안이나 경험담에 의존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민이나 이주를 생각하시는 분들께 내가 경험하고 지켜보았던 것을 근거로 몇 가지 주의할 사항을 말씀드리고 싶다.




무엇보다 이민이 한국 생활이나 현재의 삶에 대한 도피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앞에서 몇 가지 예들을 들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정도로 나그네의 설움이 많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땅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피난처가 되신 하나님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을 피난처삼고 사는 것이 하나님나라 백성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둘째로 이민을 생각할 때 자녀교육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한국의 교육환경은 말 그대로 지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미국에서의 교육이 아이들 위주이고 경쟁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조건 미국에 온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샐 수 있다. 미국 중고등학교에는 마약과 폭력이 만연한다. 한국사람 넓게는 동양인으로서 겪는 차별도 만만치 않다. 종종 언론에 나오는 소위 성공한 인물들은 굳이 미국에 오지 않았어도 그만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일 수 있다. 무엇보다 자녀를 위해서 부모의 삶을 희생하는 것을 두고 조심스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미국 이민이나 이주를 고려할 때 타국에서의 생계수단인 직업을 놓고 현실적으로 깊이 생각해야 한다. 평생 살 돈을 짊어지고 태평양을 건너는 경우가 아니라면, 당장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칠 것이다. 미국의 주거형태는 자기 소유가 아니라면 사글세 임대주택이다. 지역마다 큰 차이가 있지만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방 두 개를 가진 임대주택의 월세가 250만 원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민을 생각하면서 미국에서의 생계유지 수단을 놓고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실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것은 영주권 취득여부와 직결되기에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넷째로 가족과의 합의도 중요하다. 나의 경우 팔순이 넘으신 부모님을 한국에 두고 유학길에 올랐다. 귀국이 늦어지고 영주권 절차를 밟으면서 부모님 모두 소천하셨고 장례식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이민자들 대부분은 한국에 계신 가족들 특히 병약하신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아니 죄책감을 갖고 산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민을 앞두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이민이야말로 상황의 인도하심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이민을 놓고 말씀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상황의 인도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미국으로 보내신다는 분들과 가끔 상담을 하거나 이메일을 주고받기도 하는데, 얘기하다 보면 믿음은 가히 산을 옮길 만하지만 산을 옮길 삽 한 자루도 손에 쥐고 있지 않은 안타까운 경우를 본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민이야말로 상황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중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길이 열리고 미국에서의 체류신분이 확보되어야 이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환상을 갖고 이민을 선택하는 것은 금물이다. 뿌리를 옮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앞길을 모두 알 수 없다. 한국에 살든 타국에 살든, 믿음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길을 걸어갈 뿐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도 틀림없는 은혜요 축복이다. 이민을 통해서 나그네의 설움과 기쁨에 참여할 수 있고, 나그네 길을 가면서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하시용│연세대81

16년전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왔고,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조그만 이민교회를 섬기고 있다. 인디애나 대학 종교학과에서 구약학을 전공했으며, 기회있을 때마다 학부 때 익힌 PBS를 젊은이들에게 강의하는 것을 즐긴다. 보냄 받은 곳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묵묵히 하나님나라 운동에 동참하면서 50대를 보내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소리] no.215=2014.08+19

인생은 나그네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