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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체험, 삶의 현장Ⅴ] 모호함 속에서 자족을 배우다

[소리] 2018 여섯 번째 소리 - 1201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체험, 삶의 현장Ⅴ : 충남 지방회]



▷ 체험, 삶의 현장Ⅴ(1) - 나그네를 섬기는 나그네, 충남IVF!_최정상

▷ 체험, 삶의 현장Ⅴ(2) -  ‘re:member’, 기억하고 다시 멤버가 되다_임선영

▷ 체험, 삶의 현장Ⅴ(3) - 육지여자, 제주어멍이 되다_정나영

▶ 체험, 삶의 현장Ⅴ(4) - 모호함 속에서 자족을 배우다_손소영







모호함 속에서 자족을 배우다






◆ 손소영(백석대08)

캠퍼스에서 학생인지 간사인지 학사인지 혼재되어있는 육두품 학사였으나, 곧 성골 학사가 될 충남지방회 4년차 간사





충남IVF는 천안, 아산에 위치한 11개의 캠퍼스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천안, 아산은 고속버스, 기차뿐 아니라 무려 지하철로도 서울을 오갈 수 있습니다(지하철로 서울역에서 천안역까지 2시간 걸리는 건 함정!). 그래서인지 서울과 충남 사이에 경기도가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서울이 옆 동네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충남IVF는 수도권인 듯 수도권 아닌 수도권 같은 오묘한 지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좋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주로 타 지역 출신 학생들입니다. 충남IVF 학생들만 보아도 90% 정도가 타 지역에서 왔습니다. 천안아산에 본가가 있는 학생을 만나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러고 보니 현재 충남지방회 간사들도 천안아산 지역 출신이 한 명도 없네요. 대학생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보니 학기 중에는 도시가 북적북적하다가도 방학이 되면 여유로워지고 심지어 학교 앞은 휑하기까지 합니다.


충남지역 학생들은 입학부터 졸업까지만 학교에 머물다가 졸업 후에는 대부분 각자 살고 있던 지역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미 지방대생이라는 좌절을 가진 채 위축되어 있는, 혹은 세상의 기준에 편승하기를 애쓰며 살아가고, 자연스럽게 학교에 대한 혹은 지역에 대한 애정이 없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나그네같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캠퍼스 사역에 있어서 위기 요소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이 땅의 나그네가 아니던가요! 나그네 된 우리가 충남지역의 나그네 같은 친구들을 사랑하고 환대하는 그곳이 하나님 나라임을 믿습니다. 충남 IVF는 ‘나그네를 섬기는 나그네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충남IVF 연합리더모임의 모습



충남IVF 사역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데요. 캠퍼스 사역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으셨겠지요. 지부 규모도 점차 줄어들고 그에 따라 역동도 줄어가고 있습니다. 충남IVF는 학생들의 역동에 소소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 지방회 차원의 정기적인 연합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경회나 수련회 같은 일반적인 지방회 사역 이외에도 매년 봄 혹은 가을에 열리는 체육대회, 멤버들 없이(!) 오직 리더들만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연합 리더모임, 한 학기에 한 번 사경회를 방불케 하는 연합 LGM이 있습니다. 특별히 천안 안서동이라는 동네에는 단국대, 백석대, 백석문화대, 상명대, 호서대. 무려 5개의 캠퍼스가 밀집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의 특성을 살려서 안서동 연합 LGM을 하기도 합니다. 현재 한 달에 두 번 정도 모이고 있는데요. 장기적으로는 안서동 연합 LGM을 매주 가져볼까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연합모임을 가지게 되면서 얻는 유익이 있습니다. 간사들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각 캠퍼스의 상황을 서로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과, 다양하게 교제를 나누고 서로 격려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 말씀 속에서 하나가 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 눈에 띄는 변화는 연합모임이 많이 생긴 후로, 학기 중에 이미 얼굴을 봐 두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수련회에 와서 다른 지부 사람을 만나도 서로 어색해하지 않고 되레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좋은 변화인 것 같네요.


충남IVF에는 균형 잡힌 영성생활을 강조하기 위한 ‘For(Four) Your Holiness(줄여서 포유홀)’ 캠페인이 있습니다. 말씀, 기도, 운동(건강관리), 독서, 이 네 가지 영역을 두고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분량을 정합니다. 예를 들어 말씀에는 매일 큐티나 통독, 기도는 30분 이상, 운동은 야식 안 먹기 혹은 줄넘기 1000회, 독서는 30분 이상 등입니다. 이런 영성생활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시간인데 바쁜 학생들에게 시간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고독으로 초대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는 개인마다 지속 가능한, 그리고 현실성 있는(?) 분량을 스스로 정해 매일 실천하도록 합니다. 영성에 있어서 자칫 학생들에게 말씀 묵상과 기도만 강조할 수 있는데, 제자 됨을 살아낼 수 있게 하는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일도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학생들은 과제 폭탄에 낮과 밤이 구별되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불규칙한 생활 습관과 과도한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면서 건강을 방치하기 십상입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픈 것이 인간이니 몸과 마음을 함께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포유홀 운동의 지속성을 위해 매 학기마다 돌아가면서 말씀, 기도, 운동, 독서 중에 한 영역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지부에서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어 내거나, 신앙 강좌와 연합 LGM에서 강의를 듣는 방식으로 강조합니다. 균형 잡힌 영성생활을 위한 기준점을 세워 두니 스스로를 건강하게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학생들을 만나서 “포유홀 잘하고 있니?”라는 한마디로 학생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물론 저의 삶도요!



충남IVF 체육대회의 모습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곧 학생들이 졸업하겠죠? 캠퍼스 사역에서 아쉬운 것은 학생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학생들이 학사가 된 후에는 천안, 아산이 아닌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캠퍼스에서만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에 얼굴 보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최근 5년 동안은 천안, 아산에 정착하는 학사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영적 고향이라고 여기는 이곳에서 터를 잡고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공동체 하우스로 모여 살아가는 학사들, 결혼하고 자리 잡는 학사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런 학사들은 캠퍼스 학생들에게 가까이 있는 좋은 동역자, 인생의 선배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현재 대표간사인 김익환 간사님이 전북에서 충남으로 오신 후, 종종 자신이 “캠퍼스를 넘어 이 지역으로 부름 받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학생, 학사들에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아마 그 이야기가 다들 도전이 되었나 봅니다. 천안에 정착하는 좋은 문화가 생겨나고 있어서 앞으로 천안, 아산에서 그려지게 될 하나님나라가 기대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며 충남지방회를 돌아보고, 또 지방회에서 간사로 살아온 저의 삶을 돌아봅니다. 제일 먼저 쉽지만은 않았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첫 번째는 정답이 없는 사역에서의 끊이지 않는 고군분투였습니다. 답이 있고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캠퍼스 사역은 모호한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부족해서,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역은 원래 모호한 것이구나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재정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제가 <소리>에 글을 쓰기 전에 간사님들에게 ‘충남 IVF의 특징은 뭘까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한 간사님이 우스갯소리로 ‘재정의 열악함’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뭐냐면서 웃었지만 왜 제 눈에는 눈물이 고이는 건지. 혹시나 이 글을 보는 학사님들 중에 마음에 심히 감동이 오는 분들은 국민은행 473601…. 자세한 문의는 충남IVF 사무간사님께로(찡긋). 재정의 어려움은 때로 낙심과 위축을 가져다주었지만, 부족함 속에서 자족하는 방법을 배우고 때에 따라 돕는 손길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최근에 생긴 어려움인데, 사임을 앞두고 당장 백수의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현실의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지금까지 간사로 있을 수 있었던 궁극적인 기쁨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질문에 바로 떠올랐던 대답은 ‘충남IVF에서의 만남’입니다. 대학 2학년 때 IVF를 통한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만남,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 와서 이제는 정말 가족 같은 간사회와의 만남. 울고 웃으며 서로의 삶을 깊이 공유했던 많은 학생, 학사들과의 만남. 이 만남들은 앞으로도 제가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붙들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소중한 만남을 선물해 주었던 하나님나라 운동. 저에게만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학사님들에게도 그러하겠지요. 받았던 선물을 다시 고이 꺼내어봅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이 캠퍼스에서는 후배들을 통해, 세상 속에서는 학사님들을 통해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