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삶의 현장Ⅴ] 육지여자, 제주어멍이 되다

Posted by GCF IVF GCF
2019. 2. 15. 16:23 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소리] 2018 여섯 번째 소리 - 1201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체험, 삶의 현장Ⅴ : 충남 지방회]





▷ 체험, 삶의 현장Ⅴ(1) - 나그네를 섬기는 나그네, 충남IVF!_최정상

▷ 체험, 삶의 현장Ⅴ(2) -  ‘re:member’, 기억하고 다시 멤버가 되다_임선영

▶ 체험, 삶의 현장Ⅴ(3) - 육지여자, 제주어멍이 되다_정나영

▷ 체험, 삶의 현장Ⅴ(4) - 모호함 속에서 자족을 배우다_손소영







육지여자, 제주어멍이 되다





◆ 정나영(백석대04)

제주도 애월의 작은 동네에서 다섯 식구(초등 교사인 남편과 32개월 쌍둥이 딸, 16개월 아들)를 이루어 살고 있는 육지사람 ‘제주어멍’입니다. 올해는 파트타임으로 정신병원에서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 육지여자, 제주남자를 만나다


저는 2008년에 졸업을 하고 4년간 활동학사로 캠퍼스를 섬기다가 조금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았는데 ‘연애와 결혼’이 ‘일’ 다음으로, 아니 최대의 관심사였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며 열심히 문을 두드리고 있던 어느 날, 지방회 대표간사님으로부터 “제주도에 사는 사람을 만나 보라”며 연락이 왔습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평일 낮 직장에 있는 시간에 연락이 온데다가 어느 정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시니 ‘간사님이 무언가 좋은 감이 왔나?’하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소개로 만난 남편에게 콩깍지가 씌었고, 우리는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연애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남편에게 방학이 있었기에 방학과 주말은 거의 빠지지 않고 1년간 연애했습니다. 남편은 뒤늦게 교대에 들어갔고 저도 사역을 마치고 막 일을 시작하던 시기라 서로 바쁘고 분주했지만, 열정적인 사랑의 시기에는 먼 거리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랬죠.(허허) 결혼이야기가 오가며 구체적으로 결정할 시기가 왔을 때 지체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급하게 진행되었다기보다는 무언가 길이 순탄하게 열리는 느낌을 받았는데,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도 은혜가 있었습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저희에게는 두 가지 큰 이슈가 있었습니다. 제주와 육지,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하는 거취 결정과 제 직장을 구하는 문제였습니다. 살 곳을 정하면서 ‘제주도에 살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육지로 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신혼 때는 제주도에 살아도 좋지 않겠나’ 하며 남편과 저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했습니다. 다만 제가 직장생활을 서울에서 시작했는데, 서울은 제가 일하는 분야의 기회가 많지만 제주도는 한정되어 있고 늘 티오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고민스러웠습니다.


다행히 신속하게 연결이 되어 제주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결혼 전에 취직이 결정된 터라 두 달 동안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갑자기 홀로 제주 살이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결혼 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일찍 부모님 곁을 떠나게 된 것이지요. 


정신없이 일을 하며 결혼준비도 하고, 두 달 동안 꿈같은 제주도 생활을 한 뒤 결혼했습니다. “제주도에 살면 제주의 삶을 누리며 바다나 오름도 자주 다니고 무언가 늘 평화롭게 살지 않냐”며 주변 분들이 묻지만, 사실 제주도에 내려온 동시에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육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직장인 신혼부부로 살았습니다.





# 2+1, 삼남매 엄마가 되다


결혼생활이 1년쯤 되자, 임신과 출산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 명만 낳아 잘 기르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남편은 제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둘, 셋까지 생각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첫 임신 소식을 알았을 때는 아기집이 하나만 보였는데 두 번째 진료를 갔을 때 의사선생님이 “어? 아기집이 두 개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다급하게 남편을 불렀고, 진료실에서 나온 뒤에도 우리는 너무 당황해서 멍하게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쌍둥이 임신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못했고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없었기에 더 놀랐죠. 소식을 들으신 양가 부모님은 너무 기뻐하셨고, 쌍둥이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조금 시간은 걸렸지만 저 또한 하나님의 축복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입덧이 끝나자 쌍둥이라 그런지 배가 급속히 불러왔습니다.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어 계획보다 빨리 휴직을 했습니다. 친정에서 몸을 풀 예정이어서 거취도 육지로 옮겼습니다. 일단 쌍둥이를 잘 품었다가 건강하게 출산하는 것이 가장 큰 기도제목이었죠. 되도록 걷지 말고 누워 있으라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의무적으로 누워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너무 힘겨운 과정이었습니다.


29주가 되던 때 조산의 위험으로 급히 입원했습니다. 쌍둥이 출산은 37주를 만삭으로 보는데, 저는 한 달 동안 입원하면서 버티고 견디다 35주에 자연분만으로 출산했습니다. 쌍둥이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출산이라 생각하여 자연분만을 고집했는데, 감사하게도 아가들의 위치가 좋았습니다. 남자는 군대이야기, 여자는 출산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할 이야기는 많지만 이정도만 하겠습니다. 


출산의 고통은 쌍둥이 육아의 실전을 거치며 모두 잊혔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쌍둥이들의 호출에 밤낮 구분 없이, 잠을 잊어가며 육아를 했습니다. 남편은 학기 중이었지만 주말이면 육지로 와서 함께 아가들을 돌보았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감사하게도 6개월 동안 친정의 도움을 받으며 쌍둥이 육아를 할 수 있었고 여름 무렵 제주도로 내려와 제주에서의 육아를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두 아가를 돌보려니 저도 그렇고 아가들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가들보다 제가 조금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주로 내려오니 제주가 낯설게 느껴졌고 친정엄마 도움 없이 아가들을 보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관계의 폭도 넓지 않았습니다. 제주도에 내려와 바로 일을 시작하는 바람에 다양한 관계를 맺을 기회가 많지 않았고, 특히 또래 엄마들을 사귀거나 남편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육아의 고충을 터놓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말하기를 “아기를 키울 때 누구보다도 의지가 되었던 건 옆집언니, 앞집엄마였다”라는 말이 그제야 이해되었습니다. 


정신없이 육아를 하며 지내던 쌍둥이 8개월 무렵. 두둥! 셋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아직 너무나도 어린 쌍둥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셋째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일주일 동안은 울기도 많이 울고 무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도 연년생으로 자라온 터라 익숙하긴 했지만 쌍둥이에 연년생이라니…. 당시에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지 않을까’라는 염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 달은 정신없이 지나갔고, 신생아 울음소리가 지나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다시 갓난아기를 만났습니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능숙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까이 사시던 시어머님은 사정이 생겨서 1년 동안 미국에 계셨고 친정엄마는 육지에 계시고. 너무나도 그리운 어머님들의 부재로 인해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시간도 많았지만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면서 함께 버텨준 남편이 있어 고맙고 든든했습니다. 때로는 남편과 집에서 24시간 붙어있으며 육아를 해야 했는데, 서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갈등도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필요를 이해하기보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앞서 부딪힘도 있었지만, 저희는 이 시간 동안 서로를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냥 덮어두거나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이런 지혜를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제주라이프를 여유롭게 누리기도 전에 결혼과 출산, 육아로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주변 분들의 말씀에 따르면 “앞으로 10년은 더 고생해야 한다”고 하시던데, 롤러코스터 타는 재미에 뒤늦게 맛 들린 사람처럼 이제 조금씩 삶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 다섯 식구가 함께하기에 특별한 제주의 삶


저는 올해 직장으로 복귀했습니다. 재정적인 이유도 있지만 24시간 내내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몸은 힘들어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얻는 에너지를 통해 육아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요즘입니다. 저는 제가 이렇게 제 직업을 좋아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직장생활의 활력 중 하나는 아이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점심식사 시간입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여행을 다닌다거나 하는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되도록 무조건 외출을 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집에서 고생하느니 나가서 고생하는 게 더 낫다”는 철학을 갖고 삽니다. 이제 쌍둥이들이 기저귀를 떼서 외출을 하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오전시간엔 쌍둥이들과 화장실을 다녀온 기억밖에 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외출을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저를 보며, “휴, 엄마가 힘들겠다.”고 하십니다. “쌍둥이인데 또 있어요?”라고 ‘팩트폭격’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이제는 시선이 느껴져도 나름 누릴(?) 줄도 알고, 이야기를 건네면 여유 있는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 정말 멋진 제주의 풍경을 마음껏 누리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함께하기에 제주가 특별한 곳임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곳에서의 경험이 인생의 자양분이 되길 기대합니다. 


아직 초보엄마이지만 육아 현장에도 공동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함께할 공동체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요즘 제주도에는 육지에서 와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커뮤니티가 잘 되어 있는 시대이고 자신이 선택해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도 많습니다. 하지만 워킹맘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젊은 세대들이 사는 동네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연결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정말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공동체를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그러한 공동체가 되게 해달라고 말이죠. 


힘든 시기에는 제주에서의 삶이 너무 고립되어 있는 것 같고 내 터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육지를 그리워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곳에서 작은 움직임일지라도 버티고 살아내는 것이 사명이며, 장소와 환경은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의 기질 상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요, 하나님은 많은 변화를 겪게 하시면서 제가 그간 고수해왔던 삶과 사고의 패턴들을 바꾸길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육아는 늘 예외가 있고 예상할 수도 없으며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행동과 감정에 마주치고, 익숙하지 않은 판단을 해야 될 때도 많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고 오늘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학사님들 중에는 저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살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의 작은 이야기를 함께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이러한 기회를 통해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과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5:8).”  


아이들을 키우며 말씀과 기도생활을 꾸준히 하지는 못하지만 늘 붙잡고 사는 말씀입니다. 학사님들도 이 말씀으로 격려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육아의 전쟁터에서 견디며, 오늘도 수고했다고 격려 받고 격려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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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유엄마
    • 2020.02.14 14:50
    ^^ 남편 학사님이 제가 아는 학사님이에요~ 저는 반대로 제주에 있다 육지로 시집와서 여러가지 힘든일들을 겪고 있는데, 제주에서 좋은 인연들 믿음의 경주 함께 달릴 좋은 분들 많이 만나면서 힘내길 기도하겠습니다^^ 제주 IVF 공동체도 매우 좋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