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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IVF와 걸어온 길, 아직도 가야할 길] 이 땅에서 IVF 리더로 설 수 있을까?_유태식

[소리] 2016년 여섯 번째 소리- 1112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이 땅에서 IVF 리더로 설 수 있을까?

 


 

  20141학기. 개강이 코앞인 추운 아침에 우리는 포스터와 테이프를 챙겨 들고 캠퍼스 구석구석을 누볐다. LTC를 마치고 이제 막 리더 생활을 시작 하게 된 나는 신입생을 맞이한다는 들뜬 마음으로 IVF를 홍보하는 데 열심이었다. 멤버로서 지난 2년간 선배 리더들로부터 사랑받으며 지냈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이제 나도 리더가 되어 같은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 왠지 뿌듯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내 마음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있었다. 멤버 시절 공동체의 규모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고, 나는 이 공동체와 우리 운동이 곧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신입생이 얼마나 들어오든 그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캠퍼스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함께 헌신하기로 약속한 공동체가 있었기에, 속으로는 걱정하면서도 패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리더 첫해에 나는 실패감을 실컷 맛보았다. 신입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적게 들어왔다. 그나마 새롭게 들어온 멤버들 중에는 IVF 에 잘 정착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특히 내소그룹 멤버들이 공동체를 많이 떠나기도 해서 자책은 더 심해졌다. 1년간 쉬지 않고 계속되었던 노방전도에 열매라고 할 게 딱히 없어서 과연 지금 시대에 캠퍼스 전도가 가능한지 회의감에 부딪혔다.

 

캠퍼스 리더의 환멸과 회의

 

  과거에 비해서 지금의 노력이 결코 적어진 것은 아니었다. 리더의 수가 줄어든 탓에 한 사람당 하는 일이 오히려 많아진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양한 부분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규모에서만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모임이나 수련회를 참석하는 인원의 비율 역시 많이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멤버십의 감소와 모임의 위축은 그만큼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였다. 물론 규모만으로 IVF 운동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같은 지방회의 다른 지부에서 LTC를 받는 멤버가 나오지 않는 곳이 생겨났기에 그것이 더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그때 당시 난 참 절박한 마음이었다. 사실 우리는 이런 변화의 원인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회와 캠퍼스가 선교단체 활동을 하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환경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 명확한 인과관계가 나에게는 큰 무기력감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원인을 이미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지는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나는 2년간 리더로 활동하며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가 참 많았다. IVF와 학교의 기독학 생연합회 그리고 교회까지, 세 개의 공동체에 속해 있었는데 많은 모임과 예배에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지나치게 종교적인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특히 IVF가 작은 공동체로 변하면서 나는 자연스 럽게 더 큰 책임감을 지게 되었는데 캠퍼스 사역이라는 말이 참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때때로 공동체의 일을 나의 일보다 우선순위로 두었던 행동은 헌신이라는 가치를 앞세워서 나 개인의 삶을 스스로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불행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을

 

  이 운동이 캠퍼스에서 언제까지나 이어졌으면 좋겠고 나 자신도 후배들에게 이 운동을 권하고 싶은데 솔직히 권하기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신앙하는 삶을 살아가기도 벅찬 세상에서 선교단체를 한다는 것은 고통을 주는 것 아닐까, 사명과 가치를 앞세워서 정작 중요한 개인의 삶의 문제를 놓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이 내 안에 떠올랐다.

 

  이 운동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은 나 자신부터 실패감에서 벗어나고 규모로 공동체를 평가하는 편견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1인칭으로 IVF를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고 하나님의 말씀과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실패자로 바라보시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물론 가시적인 변화가 우리를 당장은 힘들게 하겠지만, 대신 하나님은 IVF를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동역하고 있던 선배는 IVF 운동의 외관보다도 본질을 바라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항상 우리들이 IVF를 설명할 때 LGM, DPM, 소그룹이라는 구조와 틀로 설명한다는 게 불만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운동의 지속을 위해 구조의 변화에 집중하기에 앞서 IVF 운동의 본질이 정말 무엇 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내가 IVF를 하면서 겪은 변화들을 규모의 변화를 중심으로만 해석 하지 않고 운동의 본질과 관련지어 고민할 수 있음이 신선했다. 나는 곧 애초에 왜 이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 운동은 도대체 무엇일까 라는 질문으로 향하게 되었다.

 


 

진리를 살아내는 공동체

 

  지금도 IVF라는 세 글자를 되새길 때마다 마음속 깊이 감사하게 된다. 처음 만난 공동체의 인상은 나에게 천국과도 같았다. 어디서도 받아보지 못한 환대에 당황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긴장이 풀렸다. 경쟁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캠퍼스 속에 서도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느끼며 자존감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공동체의 사랑에 마음을 열고 그동안 교회에서는 털어놓지 못했던 삶과 신앙의 문제들을 마음껏 털어놓았다. 가난이 너무 고통스럽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지 예수님이 부활하셨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등, 어려운 문제들을 함께 듣고 고민해주는 리더들과 간사님이 있었기에 나는 성장해갈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IVF에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에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들을 만났다. 개인의 인격과 영성의 깊이를 추구하면서도 신앙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균형 잡힌 복음주의자 선배들이 그들이었다. 그들을 통해 신앙이 성경 공부와 기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구석구석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깨닫고, 신앙을 삶과 분리했던 이전의 모습을 회개할 수 있었다. 또한 자본주의라는 강력한 시대정신 앞에 대안을 추구하며 경제적,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기를 고백 하고 실제로 살아내고 있는 학사들의 삶을 볼 때 깊게 감명 받았다. 기복주의, 극단적인 내세관, 성속 이원론 그리고 비이성적인 신앙관을 비롯해 교회의 도덕적 타락이 극단에 달한 한국 기독교 생태계 속에서 건강한 복음주의 신앙을 이어가는 이 공동체와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문득 나 역시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나아가 이 운동에 계속해서 동참하기를 결단했다. 될 수 있으면 이 운동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올라서 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IVF를 통해 하나님나라가 속히 임하기를 바란다.

 

역사 속에서 찾은 정체성

 

  나는 이렇게 내가 경험한 IVF 운동을 정리하면서 IVF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앞으로도 계속되기 위해선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IVF가 무엇을 위한 운동인지 기억하고그 본질을 시대와 상황에 맞는 구조에 담아낼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가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IVF가 스스로 설정한 (Living Stone이나 비전 2020 과 같은) 정체성을 보며 다소 일반적이고 포괄적 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보다 구체적인 공동체 특유의 정체성은 그 공동체의 역사로부터 찾을 수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역사 속에 존재했던 IVF 의 전통을 붙잡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는 쉽사리 공허해지고 위태해질 것이다. 한국 IVF의 역사와 내가 경험한 IVF의 짧은 역사 가운데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IVF 운동의 특징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IVF의 두드러진 정체성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60년 전의 선배 IVF 학사님들부터 2016년의 1년 차 멤버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를 기독교적 지성공동체라고 결론 내렸다. IVF는 과거부터 성경 말씀의 해석과 적용에 천착하는 그룹으로 유명했다. IVP의 문서운동 사역과 질문하고 토론하는 문화는 지금의 IVF 활동에도 굉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함석헌 선생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말했던 것처럼 지성이 생명의 근원적 요소라면, 기독교적 지성은 IVF 운동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동력임이 분명하다. 또한 공동체는 언제나 IVF 운동의 기본적인 가치였다. 지금도 수많은 IVFer 들이 공동체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고백하는 데서 우리 운동에서 공동체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학생자발성의 새로운 회복을 위해

 

  두 가지 핵심가치는 IVF의 전통적 가치이면서도 동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기독교적 지성은 근본주의 기독교 외의 선택지를 찾지 못해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 혹은 종교적 배경이 없거나 기독교를 혐오하는 비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가 이 세상과 개인에게 소망이 되는 이유를 설명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윤리적으로는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정의를 실천하는 근거가 되는 철학과 담론을 발전시키고 소통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는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고 돕는 것을 귀찮게 여기는 시대에 이웃사랑이라는 진정한 기쁨과 생명의 계명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횡포 속에서 공동체는 그 자체로 대안이 되어 새로운 경제체제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IVF가 하나님나라 운동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구호를 이 두 가지 핵심가치인 기독교적 지성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재편하기를 제안하고 싶다. 그렇다면 IVF의 핵심적인 목표는 기독교적 지성을 통해 (500년 전 루터가 바랐던 그대로) 성경을 주체 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개인을 키워내고, 그 개인들이 연합하여 시대의 우상에 저항하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캠퍼스 속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연관시킬 수 있는 단어가 우리가 이미 익히 들어 알 고 있는 학생자발성일 것이다. IVF 운동이 캠퍼스 속에서 학생들이 주체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양육 하는 환경과 구조를 조성할 때 학생들의 감춰졌던 자발성이 수면 위로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멤버들을 포함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 하는 공동회의는 공동의 의사를 나누고 결정권을 행사하는 과정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공동체의 주인의식을 함양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LGM과 소그룹 성경공부에 있어서도 누군가가 떠먹여 주는 방식을 최대한 지양하면서 학생 스스로가 말씀과 지식에 대면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방법론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학자 엄기호 교수는 사회와 교회가 공통으로 청년들을 무기력한 존재로 간주하고 일종의 서비스를 제공해서 활력을 되찾게 하려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는 청년들이 공적인 노동의 과정에서 배제된 것일 뿐이지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제공받아야 할 객체가 아님을 지적했다. 즉 학생들에게 기독교의 진리와 세계관을 가르치는 데만 중점을 두지 말고 학생 스스로 고민하고 질문하여 주체적으로 답을 찾도록 돕는 IVF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IVF 운동의 주체로서의 학생의 가능성을 최대한 신뢰하고 그들이 리더로 성장하도록 돕는 IVF의 구조가 고안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변화의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존 스토트가 이야기한 대로 성경의 기독교는 안정을 지향하는 우리의 감춰진 본성을 깊이 뒤흔드는 역동성을 가졌다. 캠퍼스 선교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IVF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선교라는 부르심을 위해 자신의 모습을 개혁하고 갱신해나가기를 기대한다. 60년간 우리와 이미 함께하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언제 어디 서나 우리를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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