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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체험, 삶의 현장] 춘천학사회의 과거, 현재, 미래_박용한

[소리] 2016년 다섯 번째 소리- 0910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춘천학사회의 과거, 현재, 미래

 


 

과거: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노는 거야

 

동주야, 아이들 좀 봐주렴. 아빠는 교회 삼촌, 이모들과 뭐 좀 해야 하니까.”

, 알겠어요.”

 

  별로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지만, 동주는 그래도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모임을 마친 후 아이들이 조용하기에 애들을 잘 데리고 놀아 주고 있나 보다 생각하고 방에 들어가 보았다. 역시 아이들은 해맑은 얼굴로 놀이에 집중하고 있다. 옆에 있는 동주의 얼굴을 보니 우려와는 달리 아이들을 억지로 돌봐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열심히 놀고 있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놀고 있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동주야, 네가 더 재밌어 보인다.”

 

  동주가 환하게 웃는다. 돌아보는 동주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기가 가득 차있었다. 집에 돌아와 그 순간을 생각하니 흐뭇하면서도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춘천에서 살아온 지 어언 15, 다양한 사역을 경험했다. 학사회 전임간사, 사무간사, 캠퍼스간 사, 대표간사, 학사회 협동간사 등. 이제는 학사이자 목회자로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면서 춘천의 학사모임을 섬기고 있다. 아니 섬긴다는 것보다 재밌게 놀고 있다. 춘천학사회에 대해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에 지난 15년을 잠시 돌아보면서 추억에 빠져 본다.

 

  10여 년 전,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다. 춘천학사회를 섬기고 있던 이석미 학사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학교와 시향에서 일하고 있었고, 한림대에서 강의하던 이민수 학사는 심리학을 전공하였고, 신학을 전공한 나까지, 셋은 동기이기도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우리끼리 비공식적이면서도 지극히 사적인) 번외학사모임을 가졌다. 민수 형제의 제안으로 강자와 약자를 비롯한 폴투르니에의 책을 같이 읽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서로 다른 관점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간을 가졌다. 모임의 묘미는 누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 하고 즐기는 점이었다. 음악, 심리학, 신학의 서로 다른 전공을 가지고 텍스트를 읽고 나누는 것이 흥미로웠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자기의 입장에서 보기에 셋이 펼쳐놓았을 때 그 속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받았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가지다 직장을 옮겨야 해서 아쉬움과 즐거운 추억을 간직한 채 모임을 마무리했다. 많은 학사모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모임이 유독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아련한 추억을 남겼을까? 그 친구들과 모임을 다시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 걸까?

 

  학사모임이라고 하면 약간 무게감을 주는데 아마도 이 모임은 그렇지 않아서였을 거다. 놀고 싶은 친구들이 함께 모여 일주일에 한 번 신명나게 노는 시간이었기 때문일 거다. 모임을 만들고 멤버를 모으는 형식이 아닌, 서로가 원해서 만들어진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텍스트를 가지고 나누는 시간이 서로에게 의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멤버수가 많지 않고 소수의 모임이 기에 심적으로도 한결 가벼웠던 것 같다.

 

  이런 저런 모양으로 모임을 만들고 인도하고 섬기는 역할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기쁨과 보람도 있지만 모임을 만드는 긴장감과 연락하고 오라고 하는 데 들어가는 피로감도 겹겹이 쌓여간다. 그래서 모임을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마음이 가볍고 편하고 마치 어깨에 진 짐을 내려놓는듯한 후련함도 들었다. 노는 것이 아니라 놀아주는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할머니들이 손주들이 오면 너무 반갑지만 갈 때는 더욱 더 반갑다는 우스갯소리가 웃프게들린다. 아마도 놀아주기는 하지만 같이 놀지는 않기에 함께 하는 그 시간이 결코 즐겁지만은 않고 불편한 마음도 있었으리라 본다. 어쩌면 많은 IVF 모임들에는 이처럼 미묘한 긴장감이 있는 것 같다.

 


 

현재: 우리는 반드시 이겨요! 이길 때까지 싸우기 때문이죠

 

  한 달 전, 설악산 케이블카 저지를 위한 모임에 참석했다. 그 모임에서 강연하시는 분이 나와서 이번 모임이 90여 번째라고 하셨다. 참석자들을 돌아보니 기껏해야 9명 정도밖에 없었다. 속으로 이 정도 숫자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모임이 시작되자 내 예상과는 달리 모임의 밀도가 매우 강력함을 느꼈다. 도청을 향하도록 스피커를 설치하고 시작된 모임에서 이분들의 주장은 매우 강력했고, 숫자로 판단한 내가 죄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끝날 때쯤에 모임의 리더 격인 분이 나오셔서 다음과 같이 외치셨다.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 왜냐고요? 이길 때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이 외침은 모임에 참석한 9명의 하찮은 숫자가 아닌 거대한 권력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확신에 찬 거인들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전율을 느꼈다.

 

  춘천 학사모임은 산티아고를 걷는 순례의 여정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막상 시작하려고 할 때 할 것이 엄청 많아 보였다. 학교별 모임, 동기 모임, 직능모임, 관심별 모임, 지역모임 등등, 학사모임을 조직하려고 해보니 모임 수만 일주일에 10여개가 훌쩍 넘기도 했다. 이것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연락하는 수고는 마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던 자매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녀가 산티아고를 가려고 준비할 때 가져가야할 것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길을 걷는 동안 하나둘 배낭에서 버려야 했고, 가장 기본적인 것만이 남았다고 한다. 그래야 그 순례길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고 했다.

 

  학사회 간사를 시작하면서 마음에 수많은 모임을 조직했고, 만들었고, 준비를 했다. 아마도 미쳤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산타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그녀처럼 너무 버거운 것들은 하나둘씩 버려야 했다. 학사모임이야 3, 4년간 끌고 갈 수 있지만, 학사모임이 정말 중요한 모임이고 소중한 것이라면 일평생 완주해야 할 순례의 여정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지치기를 했고, 혹은 스스로 잘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 내가 하는 것은 독서모임 하나이다.

 

  지금과 같은 학사모임을 시작한 지 3년이 넘어 간다. 교회 개척을 하면서 학사모임을 새롭게 시작했다. 모임을 철저하게 세팅하기보다는 반대로 대충 하고 싶었다. 중요한 모임보다는 저녁에 친구 집에 모여 함께 먹고 마시고 노는, 그런 모임을 만들고 싶었고 거기에 참여한 학사 들도 동의했다. 같이 먹으러 다니거나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아님 두세 시간 수다만 떨다가 헤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책들을 같이 돌아가며 읽으면서, 같이 말씀을 보고 기도하면 서, 조금씩 어느덧 성큼 이 순례의 여정을 걸어왔다. 산둥수용소를 읽으면서 신앙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생존기술만이 우대받던 그곳에서 궁극적으로 신앙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샴고로드의 심판을 읽으면서는 피고인석에 하나님을 불러내서 우리 삶에 고통과 슬픔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고, 고백 록을 통해 그들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음에 공감했다. 이렇게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신앙의 풍성함뿐만 아니라 내 삶의 문제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모임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찮은 건 결코 아니다. 나의 삶을 드러내고 고민하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의 휴식처를 가지고 있다는 게 마치 든든한 집 밥을 먹는 느낌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성과 사랑이 묻어 있고, 자유로운 바람과 격한 공감의 폭풍도 느낄 수 있는 사람 들이 함께 한다. 어른이 되는 순간부터 성장이 멈춘 사람이 너무 많다. 그렇기에 제발 책을 읽고 사람을 읽고 마음을 읽었으면 좋겠다. 책도 읽지 않고 사람도 모르고 자기 마음도 모르는 어른들로 인해서 다음 세대가 힘들다. 그래서 우리 모임은 책을 읽고 사람을 읽고 마음을 읽는다. 우리 모임의 목적은 하나다. 끝까지 갈 거다. 좋은 친구와 평생 같이 할 수 있다면 주안에서 형제가 연합함이 얼마나 아름다 운지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걸으면 생각이 올라와요. 글 쓰면 마음이 보여요

 

, 걸으세요. 발끝을 보면서 가급적 천천히 걸어보세요. 뭐가 생각이 나죠?”

 

  드라마치료 워크숍을 하면서 디렉터의 말을 따라 아주 천천히 걷는다. 한 번도 이렇게 천천히 걸어본 적 없는데, 발끝을 보면서 천천히 걷다 보니 다양한 생각이 올라온다. 과거의 어떤 장면도 생각나고 사건도 선명하게 보인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행동을 통해 자신의 아픔도 기쁨도 고통도 나눈다. 단지 걸었을 뿐인데... 드라마치료를 공부했을 때 선생님이 인도하신 워크숍에서 걷는 행위가 완전 새롭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평범한 일상 속에 특별함이 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학사모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모임이나 예배가 부족해서 우리의 삶과 영성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모임이 사건이 되고 공감의 시간이 되고 노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그 안의 주체가 되고 내 안으로 사건이 되어 들어온다. 나는 학사모임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싶었다. 그래서 먹고 나누고 놀고 읽었다.

 

  이제는 글을 쓴다. 책을 읽고 독후감이나 감상문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을 쓰고 내 고통을 쓰고 궁극적으로 내 삶을 쓴다. 펜을 잡고 쓰는 순간 고구마 줄기처럼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들이 함께 땅위로 올라온다. 거기에는 아픔도 즐거움도 고통도 환희도 있다. 글쓰기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천천히 걷기가 생각을 길어 올리는 수단이라면 글쓰기는 그 생각을 지금의 자리에서 재구성하는 것이 다. 노는 것과 읽는 것, 그리고 글쓰기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중요한 종교적인 행위다. 지친 학사들의 삶과 신앙의 여정 속에서 마음껏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의 광장, 이것이 춘천학사회의 모습이었으면 한다. 비록 많은 학사들이 춘천을 떠나 대부분 수도권으로 내려가지만, 조만간 연어와 같이 춘천으로 회귀하는 학사들이 많아지리라 본다. 흙이 좋아지면 생명은 자연스럽게 자라나기에 우리의 모임이 그런 토양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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