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체험, 삶의 현장] 나는 엄마다 그리고 엄마들을 만났다_박지승

[소리] 2016년 다섯 번째 소리- 0910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나는 엄마다 그리고 엄마들을 만났다

 


 

나는 엄마다

 

엄마라는 이름은 제 내면에 숨겨온 가장 밑바닥을 보게 합니다. 엄마이기 전의 저는 늘 포장되어 있었고 심지어 포장되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대학생 시절, 늘 바빴습니다. 열정적이고 하나님과 가깝다고 생각했었죠. DPM을 시작으로 1시간도 분 단위로 쪼개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각종 모임을 하고 숙제를 했습니다. 공강시간에는 학교식당 설거지 알바에, 토요일 야간 호스피스 봉사를 했고, 한 학기동안 과순이도 하고 3학년 때는 부학회장을 했습니다. 같이 살던 IVF 언니가 저를 우주에서 제일 바쁜 아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였습니다. 굳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좋았고 어떻게든 맡겨진 일이라면 끝까지 책임을 지고 열심히 하려 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마냥 사람 좋은 불타는 IVFer였습니다. 선배들은 열심히 하는 저를 칭찬했고, 후배들에겐 제가 뭔가 해내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졸업식 한 달 전에 회사에 들어갔는데 바쁜 삶은 이어졌습니다. 학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저는 매일 똑같은 시간표의 삶을 살았습니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아주 단순해진 삶이지만 바쁘고 정신없긴 마찬가지였습니다. QT 외에 일밖에 안했는데도 하루는 너무 짧았습니다. 게다가 전공인 지반조사 분야는 건설업계에 속해서, 국가에서 건설하는 도로나 다리 등을 TK(턴키)라는 형식으로 대기업들이 경쟁하여 입찰하도록 해서, 합사(각 분야 회사들이 일시적으로 차린 합동사무소)를 열어 수개월 동안 함께 조사하고 연구하여 보고서를 씁니다. 이 프로젝트에 투입되면 그냥 좀비로 살게 되죠. 잠도 못자고 집에 못 갈 때가 더 많고,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한때 제가 맡은 프로젝트는 그랬습니다. 마감이 가까우면 상사에게 허락받고 교회 가서 예배만 드리던 것도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마냥 바빴고 그런 바쁜 삶에 지쳐만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집은 경기도 안산인데 회사는 서울이어서 출퇴근 시간이 너무 고단해 회사 앞에서 친오빠와 자취를 했습니다. 자취집 근처에 있는 작은 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만난 하나님을 나누고 함께 성경공부하며 더 깊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내면의 갈급함이 있어서 IVF 선배들을 따라 YGM을 갔고 학사모임의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학사모임 에서 사실 깊은 삶 나눔이 어려웠습니다. 재경학사로서 더 깊숙이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 나의 연약함에다가 바쁜 회사일도 이유였습니다. 그 후 대학시절 춘천에서 섬기던 교회 청년부 회장오빠와 결혼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주일에만 교회에서 보던 사람이었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서울에서 자취하며 회사생활을 하던 때라 삶 나눔을 시작으로 자주 연락 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학사모임에서 느낀 시원한 대화가 이어지면서 결국 결혼에 이르렀습니다. 남편과 저는 혈액형부터 스타일이 너무 다르지만 둘 다 분쟁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 성향이 강합니다. 단순히 서로 상한 감정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상할 것이 없이 서로 맞춰가는 안정형이기에 현재 결혼 9년차 이지만 크게 싸우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 결혼을 통해 제 인생 가장 안정기를 누렸지만 결혼은 둘만의 만남이 아니라 다른 삶을 살아온 완전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것이기에, 우리 둘 외의 다른 것들이 얽히고설켜 누구나 그렇듯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 후 이제껏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고난의 시절을 맞았습니다. 바로 육아입니다. ‘캠퍼스에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던 그 시절과는 달리, 우리 가정에 하나님나라를 맛보기만 해도 좋겠다는 게 제 소명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준비도, 이렇다 할 예고도 없이, 그 어떤 좋은 본을 보지도 못한 채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계획에는 전혀 없던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것입니다. 특히 17개월 차이 나는 첫째와 둘째를 키울 때, 제 인격의 실상과 내면의 쓴 뿌리를 발견했습니다. 혼자 울기도 많이 울고, 화도 많이 냈습니다. 저는 좋은 엄마가 아닙니다. 그저 은혜로 하루를 겨우 감당해내는 안타까운 엄마입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이런 방식이 아니었다면 언제 제 내면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엄마는 준비가 되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되어버리고 준비하며 만들어져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 속에 있는 엄마입니다.

 


 

그리고 엄마들을 만났다

 

딸들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친정엄마의 사랑을 가슴 깊이 깨닫고 감사한다고 합니다. 저는 엄마가 되고 나서 친정엄마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날 키운 엄마, 어떤 다른 위대한 인물보다 더더욱 상 받아야 할 분입니다.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를 이해할 수 있듯이 나이가 다르고 고향이 다르고 살아온 곳이 다르더라도 엄마라면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엄마라서 느끼는 것들이 있고, 엄마의 이름으로 감당하고 견딘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공유할 수 있는 것도 많고 금세 끈끈한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동네 엄마들과 친합니다. 큰아이의 친구들, 다른 학부모들과도 친합니다. 둘째, 셋째아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같이 보내는 엄마들과도 친합니다. 그냥 친합니다. 함께 웃고 떠들고 시월드욕하며, 서로 위로하고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만나고 또 헤어집니다. 이건 그냥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만난 엄마들 모임 중 하나는 하나님이 저희 가운데 계십니다. 바로 아이야 모임(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전하는 모임)”입니다. 이것은 춘천 IVF 아줌마 학사모임입니다. 함께 육아라는 소명을 감당하며 이를 이루어 가는 핵심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다른 엄마들을 만나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엄마들을 만나다 보면 대학 때와 직장생활 할 때와는 다른, 정말 현실적이고 어찌 보면 아이 같은 삶 나눔을 합니다.

다른 공동체와 달리 끈끈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아이야 모임은 단순히 서로 그렇구나 하고 공감만으로 끝나는 가벼운 만남이 아니라 엄마인 제가 조금씩 변할 수 있는 놀라운 만남 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엄청나게 말씀을 나누거나 오래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어떤 예배보다도 짧게 기도하고 집중하기도 어려운 만남입니다. 돌아다니는 아이에 우는 아이, 내 이야기를 막 시작하려 할 때 꼭 엄마를 찾는 아이, 아이들 밥도 먹여야 하고, 어린이집에 보낸 아이들 돌아올 시간도 임박하고... 문자 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학사모임입니다. 성경책보다 기저귀를 가득 넣어온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섭니다. 나누기로 한 책은 바로 전날, 그것도 아이들이 다 잠든 후에야 부랴부랴 읽죠. 약속시간도 못 지키고 고양이 세수에다가 목이 다 늘어난 티를 입은 채로 만나는 그런 모임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모임하며 이야기를 할 때나 들을 때나 눈물이 나고, 또 보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신기한 모임입니다. 엄마이기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지만, 예수님을 믿는 엄마이고 아이를 향한 소명을 품은 엄마들이기에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더 남 같지 않고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나눔이 있습니다.

 

아이야 모임은 아이를 키우며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대로 키우려는 엄마들의 동일한 마음이 모여서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출산이나 복직으로 멤버들이 바뀌기도 하고, 예상치 않게 아이들이 아프거나 갑자기 일이 생겨 집으로 초대한 엄마만 만나는 경우도 있답니다. 하지만 엄마이기에 그런 상황을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엄마이기에 더 만나고 나누고픈 마음이 간절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라는 책을 모임에서 나누며 엄마인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엄마로서의 내 모습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많이 생각하며 기도하고 소망하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고 제가 변화된 시간은 마더와이즈 교재 중 <지혜>를 했을 때입니다. 써야 할 숙제가 많았지만, 실질적으로 실천해야하는 팁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며 정말 시도해 보게 해주었고, 이를 나눔으로 더 깊이 있는 모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기도를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우리 모임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엄마인 학사님들께 권면합니다. 엄마로서 마냥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단순히 엄마이기에 공감되는 만남도 좋겠지만 점점 더 악해지는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자녀를 키우는 소명을 가진 엄마들을 만나 하나님을 의지한 육아를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엄마로서 답을 모르겠고 고민될 때 세상이 주는 답은 돈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답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의 기도문 중 일부를 남깁니다.

 

, 주여. 19명의 아이들을 낳고 돌보는 매일이 분주하고 지치지만, 부엌에서 하루 1시간 주 앞에 기도하는 이 시간이 우리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20171월 다섯째주 IVF학사회 소리지 업데이트 계획]

131(화요일) - [체험, 삶의 현장] 건축 현장에서 선교적 교회를 꿈꾸다

201(수요일) - [체험, 삶의 현장] “홈그로운_로컬뮤직재배소를 열기까지

202(목요일) - [체험, 삶의 현장] 나는 엄마다 그리고 엄마들을 만났다

203(금요일) - [체험, 삶의 현장] 춘천학사회의 과거, 현재,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