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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체험, 삶의 현장] “홈그로운_로컬뮤직재배소”를 열기까지_박수희

 [소리] 2016년 다섯 번째 소리- 0910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홈그로운_로컬뮤직재배소를 열기까지

 


 

  대학 2학년 때쯤이었나, 어느 설교를 듣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소원하는 자가 되자.”는 마음을 먹었고 그것은 제 소명이 되었습니다. 유년시절부터 다른 사람의 인정과 바람대로 움직이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싶은 과가 아닌, 점수에 맞춰 국립대의 진학 가능한 과에 들어갔죠. 결국 대학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사람들에 의해 방향 없이 흔들거리고 꺾이는, 제 인생 최대의 암흑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과 공동체가 조금씩 회복시켜 주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소원하는 자라는 삶의 방향을 정하자 제 삶의 파도는 조금씩 잠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결정할 때 저의 믿음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물론 과정 속에서 고민도 하지만, 졸업 후 사무간사 제의가 들어왔을 때 저는 하나님이 저를 원하신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 3년 동안 간사로 일하면서 간사공동체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누렸습니다. 그리고 선교에 대해 알아가면서 선교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춘천 에서 받을 수 있는 선교훈련들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춘천에서 유일한 선교훈련 파송 단체가 GBT여서 내게 허락하신 기회들을 이용하자라는 생각으로 별 고민 없이 GBT 에 들어갔습니다. 나중에서야 어떤 단체를 결정하는 것이 배우자를 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임을 배우게 되었지만요. 그 후 단체 지부 사무장으로 사역했고, 지금까지도 춘천에서 GBT 모임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이런 경험들을 돌아보면서 나의 소망이나 의지가 아닌 공동체와 외부의 필요에 의한 것은 아니었는지, 혹시 외부에 의해 흔들렸던 옛날 모습과 비슷하진 않은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제 기질적인 습성이 있기도 하겠지만, 두 번의 결정 모두 제게 주신 소명에 의해 제가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교회에서 기타를 잘 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는 모태신앙인이었지만 당시 회의론자 같았어요. 하지만 그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두고 말씀 앞에 겸손한 모습에서 이 남자의 가능성(?)을 보았고 그와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두 명의 딸을 낳는 동안 남편과 저는 우리 가정의 방향과 개인의 꿈에 대해서 꾸준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GBT 사무장을 할 때 육아에 당연히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남편도 GBT 훈련을 받고 선교에 대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열어갔습니다. 그러다 GBT종족음악이라는 사역을 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 사역을 접하자마자 이거다 싶었죠. 한 나라 안에도 많은 종족이 있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다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울리는 그들만의 멜로디와 리듬이 있다고 합니다. 종족음악은 서구화된 음악이 아닌 그 종족만의 찬양으로 다가가 하나님을 알리고 교제하는 사역입니다. 이거라면 남편에게 주신 달란트로 즐겁게 사역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남편은 기타를 꽤 잘 친다고 합니다.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 위해 곡 작업도 해보고, 서울에서 활동하는 자신의 음악색깔과 맞는 팀을 찾아 오디션을 보려고도 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실용음악학원 강사를 하면 서 가사일과 육아를 도와주었고, GBT 행사나 모임이 있을 때도 함께 해주는 백점 남편이었습니다. 우여곡절 속에 남편의 음악에 대한 갈망과 좌절이 충돌하면서 부르심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씨름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둘째아이를 낳고 남편과 저는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선교를 위한 첫발을 내딛자! 그래서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당시 4살과 6개월인 두 아이를 데리고 GMTC에 입학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재정비되고 배움의 기쁨과 성장하는 즐거움이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치열했습니다. 물론 교수님들의 사랑과 가르침, 삶의 훈련, 동기들과의 사랑과 우정은 잊지 못할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치열한 삶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결국 저희의 부족함 때문이었죠. 육아와 과제와 집안일이 매일 엉키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니 잠자고 있던 내면의 문제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외면하고 살았던 상처와 어려움을 발견하게 되면서 저희는 뒤늦게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GMTC 훈련을 받기 전부터 우울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저희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나머지의 삶을 무시하고 너무 아이들과 가정에 올인하며 애썼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를 통해 얻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지만, 우리 개인의 즐거움과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놓쳤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바닥을 직면하면서, 우리가 아직 선교를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선교지로 떠나면 새로운 장소와 환경이 주는 전환이 있겠지만 그 효과는 잠시, 일상을 잘 살아내지 못하면 어디를 가도 똑같을 것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내게 되면 그때 다시 도전하리라 다짐하고 다시 춘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저희는 부모님의 양해 하에 친정에서 1년간 살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생계를 위해 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목재소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재단하고 옮기고 배달하는, 위험하고도 힘겨운 일을 남편은 묵묵히 감당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분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얼마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지내는 동안 우리가 하고 싶은 것, 그동안 꿈으로만 그려오던 것을 한 번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광야의 삶으로 발을 내딛는 것 같아 두려웠으나, 그렇기에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리로 나아가자고 결단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음악작업을 할 수 있는 개인 작업실을 구상하다가 그곳에서 기타 레슨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은 공연장까지 그려보니 점점 그림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방 소도시에 살면서 음악작업을 하는 분들을 보면 처음에는 뭔가 열심히 활동하지만 점차 시들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지방에서 음악 활동하는 것을 체념하고 음악을 접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남편도 음악 활동의 좌절을 경험하고 다른 직장을 구해 일하면서도 한편 으로는 로컬 씬(Local Scene, 지역 밴드)의 꿈을 접지 않고 있었습니다.

 

  뮤지션으로 성공(?)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서울로 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홍대로 진출해야 한다는 게 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의 보편적인 상식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뮤지션들은 서울로, 홍대로 몰리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음악공연을 보러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서까지 홍대로 갑니다. 그런 현실 앞에서 저희는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한번 만들어 보자. 우리 지역, 우리 동네에서 공연 하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차 한 잔 값으로 부담 없이 음악으로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보자.”

 

  남편과 저는 저렴한 상가를 임대하여 둘이서 끙끙대며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둘이서 함께 작업장으로 출근해서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열심히 작업을 했습니다. 바닥공사, 벽과 천장 페인트, 외부 유리창에 목공작업, 간판, 전등 설치 및 싱크대와 책상까지... 전문가가 아니니 힘도 들고 서툰 것 투성 이였지만,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저희는 뭐든 스스로 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전에 남편이 일하던 목재소에서 저렴하게 나무를 구하고 공구도 빌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남편에게 돈은 주시지 않았지만 다양한 재능은 주셨다면서 웃으며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남편은 우리가 함께 그린 그림대로 척척 만들어냈습니다.

 


 

  그렇게 홈그로운_로컬뮤직재배소가 완성되었습니다. 저희는 이 공간을 우리 동네 텃밭에서 재배되는 유기농 로컬음악 상점이라고 말합니다. 85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주 공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8월 동안에는 매주 금요일 한 번이었지만, 9월부터는 화, 2번의 공연을 진행합니다. 그저 오픈만 하면 된다는 심정으로 앞만 보고 달려오다 막상 시작을 하니 저희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개인의 이익만이 아닌 표현이 거창하지만 지역의 공연문화를 위한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하고 외롭기도 했습니다.

 

홍대, 신촌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뮤지션 입니다.”

강원도 춘천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뮤지션 입니다.”

오늘 홍대 가서 공연 보고 왔어.”

오늘 춘천 공지천 가서 공연 보고 왔어.”

 

  어떤 사람과 어떤 음악이 그 자리를 채웠는지를 말하기 전에 이미 두 문장이 주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보이지 않는 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울의 공연에 비해 훨씬 저렴한 비용임에도 대중은 쉽게 시간과 돈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뮤지션 섭외도 생각 보다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된 수입원이 되어야 할 기타레슨은 현재까지 단 한 과정도 생기지 않았고요. 이 공간을 준비하고 만드는 동안 수입은 전혀 없었는데 네 식구 먹고 살 것에 대출금까지, 걱정이 한 가득입니다. 그래도 저희는 오늘도 뮤지션을 섭외하고, 공연포스터를 만들며, 아이들을 돌보고, 다행히 밥도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제 삶이 만약 영화라면 지금쯤 확 대박을 쳐주어야 주인공들도 힘을 얻고, 그동안의 고생도 보상받고, 우리가 그린 꿈을 실현하고 성공시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전을 주는 그런 그림이 펼쳐질 텐데, 현실은 역시 녹록치 않네요.

 

  저희 공간 한 쪽 벽에 이런 글귀를 써서 붙여 놓았습니다. “지금, 이순간의 음악사람들은 멋진 공간에 가서 감각적인 사진을 찍어 올리며, 남들에게 자신이 그런 멋지고 느낌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공감 받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SNS를 하다 보면 저 또한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중심부의 문화가 아닌 비주류로서 그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음악하며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길 원한다며 시작했지만, 사실 제 마음 깊은 곳에는 주류를 동경하며 우리 또한 그런 감각적인 공간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의 욕망과 씨름하면서, 저희의 공간이 화려하고 유명하지 않은 동네의 작은 공연장이 되도록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 위로와 쉼이 되는 그러한 음악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 홈그로운_로컬뮤직재배소 페이스북주소 - https://www.facebook.com/pg/homegrown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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