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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이제 교회인 우리부터 죽음을 이야기하자_문춘근

[소리] 2016년 세 번째 소리- 0506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이제 교회인 우리부터 죽음을 이야기하자

 

달라스에 있는 처제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아들의 졸업을 축하하러 왔거든요. 쓰라는 원고는 안 쓰고 곽혜원 교수의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기독교 생사학의 의미와 과제라는 책만 읽고 있습니다. 시험기간이 되면 더 일반서적을 읽고 싶어 했던 대학시절 생각이 나는군요.

대체 언제부터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더라? 어쩌다가 죽음학싸나톨로지를 공부하게 되었지?’ 이런 생각을 정리하려니 제 성격마냥 뒤죽박죽입니다. 아무래도 최근 일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국제 싸나톨로지스트가 되다

 

  작년 여름, 아내의 지도교수님의 소개와 권유로 한국싸나톨로지협회에서 주최하는 부산지역 싸나톨로지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싸나톨로지 (Thanatology)’싸나톨로지스트(Thanatologist)’니 하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이 단어들은 흔히 죽음학죽음교육 전문가라고 번역하여 사용 하고 있습니다. 무슨 공부인지, 무엇을 위한 과정인지,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혀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시작했습니다. 그 지도교수님은 우리 부부와 가정을 잘 아시는 분이고 여러 모로 저희 부부를 아껴주시는 귀한 분입니다. 특히 작은 교회 목회자 부부의 미래를 무척 걱정(?)해 주시는 바람에 좀 엉뚱하게 죽음에 대한 공부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목회 은퇴 후에 싸나톨로지/ 죽음학이란 주제와 연관한 강의를 통해 사회에 이바지하고 수입(?)도 좀 챙기기를 바라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3개월간의 이 과정은 죽음교육 전문가 양성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죽음교육과 상담 협회 (Association for Death Education and Counseling: ADEC; 1977년에 미국에서 설립된 죽음학 및 죽음교육 전문 단체)’의 국제 싸나톨로지스트 과정이었습니다. 과정을 마친 후 저는 11월 초에 국제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고 운이 좋게 합격하여 공식적으로는 죽음교육전문가(Certified in Thanatology)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권해 주신 분만을 믿고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싸나톨로지 강의를 들으면서 비로소 죽음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과 교회에서의 경험을 반추하고 성찰하면서,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공부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공부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함께 공부했던 분들과 어떻게 이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우왕좌왕했던 장례 경험과 이후에 인식하게 된 쓰라린 후회로 인해 죽음에 대해 좀 알고 대비하고 다른 사람들도 대비하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하신 분, 자살한 교인으로 인해 본인은 물론 교회가 휘청거렸던 경험과 그런 와중에 목회자로서의 무력감에 시달려 공부를 시작하셨다는 목회자, 늙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70세가 되면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공부하게 되었다는 76세 남성, 은퇴를 몇 년 앞두고 미래를 위해 무언가 새롭고 유망한 직업이 없을까 싶어서 등록 했다가 죽음학 공부 자체에 매료되신 여성 등, 사람들이 이 분야에 들어오게 된 배경은 아주 다양했습니다.

 


 

맞이하지 못하고 당한아버지의 죽음

 

  저는 싸나톨로지 공부를 하면서 비로소 죽음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특히 한가지 아픈 기억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 기억은 죽음이란 주제를 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18년 전에 너무나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안색이 누렇게 변해서 병원에 가셨습니다. 황달이라고 다들 짐작했고 입원해서 며칠 치료를 받으면 곧 퇴원하실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간경화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가족들은 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전문적인 치료를 받으면 곧 나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간호하기로 하고 어머니도, 동생들과 저도 평상시처럼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의 상태가 악화되더니 어느 날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퇴원을 기대했던 우리 가족은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렇게 당황스럽게 며칠을 보내다가 저희는 작별인사도 한 마디 못한 채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엉겁결에 장례를 치렀고, 어머니는 홀로 지내는 생활에 적응하시는 듯 보였고 다른 가족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싸나톨로지를 통해 맞이하는존엄한 죽음과 당하는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러자 제 안에서 물밀 듯이 후회가 몰려왔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가족의 죽음 경험은 맞이하는죽음이 아니라 속수무책으로 당하는죽음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평소에 몸 관리를 얼마나 소홀하게 하셨는지 병상에 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또 우리 가족은 의학을 너무 과신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안 했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별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전혀 나누지 못한 점이었습니다.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못() 하다 보니 타이밍을 놓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도 자신의 죽음을 조금 이라도 예상하셨더라면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마디라도 남기고 떠나셨을 텐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또한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사별하신 경험이 얼마나 큰 상실과 고통이 되는지 자식으로서 알지 못했다는 점을 뼈아프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아픔을 겪으면서 제일 고통이 크셨을 어머니의 마음과 상황을 제대로 챙겨드리질 못했습니다.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고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했고,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의 고통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무정한 생각과 아울러 이런 경험을 통과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어머니의 비탄과 애도의 과정을 전혀 배려해 드리지 못한 것이 가장 죄송하고 후회스럽습니다. 미리 죽음에 대해 공부를 해놓았더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그 중요한 순간을 보내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까

 

  목회자이다 보니 특히 장례의식은 오롯이 목회자의 몫이었습니다. 엄숙한 순간은 제쳐두고서라도 난감한 죽음 앞에서는 아찔할 정도의 압박감과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무력감에 흔들릴 때가 많았습니다. 목회 연륜이 얼마 안 되어서, 장례의식을 집도해 본 적이 별로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죽음 전후에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서 목회자로서 교인들을 향해 얘기해줄 지혜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은혜로운 여름 수련회에서 청년이 익사하는 사고가 벌어졌을 때, 사태수습은 물론 장례예배나 장례의 식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설교 시간에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나름대로 이해하고 섬기던 부모님과 어느 날 심한 말다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부모님이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셨습니다. 자기 때문에 부모님이 그렇게 되었다고 심하게 자책하는 성도에게 저는 목사로서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요? 자살하면 신자일지라도 지옥에 간다고 믿고 있는, 주변의 성도들마저 쉬쉬하며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 그 지체에게 뭐라고 얘기해줘야 할까요? 요양병원에서 의료기기에 의한 연명치료로 목숨만 붙어있는 상태를 몇 달째 유지하는 부모님을 둔 권사님이 묻습니다. 신자로서 자식으로서 어떻게 해주는 것이 성경적이냐고요. 저는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요? 임종을 앞둔 말기암환자 부모를 둔 사람에게는 어떻게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조언할 수 있을까요?


  장남은 불교, 차남은 유교, 셋째는 기독교, 막내는 무교인 집안의 부모님의 장례식은 어떤 의식으로 거행해야 할까요? 장례의식이 전문적인 업체의 손에 완전히 맡겨진 오늘날, 장례절차가 기독교의식이라 할지라도 너무 천편일률적이고 심지어 무의미하게 느껴져 아쉬움이 크다면 교회는 앞으로 어떤 식의 장례의식 절차를 구성해서 슬픔을 당한 유가족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 소망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처럼 황망한 슬픔과 끊임없는 분노에 시달리는 그런 처지의 이웃들에게 교회는 어떻게 슬픔을 나누고 이들의 편에서 힘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저부터 이런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할 준비가 너무나도 되어 있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죽음교육 전문가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죽음과 생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먼저 죽음 이야기를 시작하자

 

  교회는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입장에서 죽음교육을 꾸준히 실행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우리나라 정규교육의 커리큘럼 속에도 연령대별 죽음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에 현실은 너무 요원합니다. 한때 교회가 문화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세상을 이끌어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나서서 사회적으로 희망을 제시하던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혹시 죽음교육이라는 분야가 교회가 다시 사회적으로 공헌하고 신임을 되찾을 수 있는 그런 주제는 아닐까요?


  수많은 이웃들이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당하는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왜 죽는지 아는 우리가, 왜 죽음이 끝이 아닌지 아는 우리가 사랑의 지식으로 그들을 섬길 수 있도록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이 보다 더 존엄하게, 하나님의 형상답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통해 우리도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아름다운지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려면 교회가 자연스럽게 죽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죽음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공부할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합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교회는 보다 더 세상을 잘 섬길 수 있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저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교회인 우리가, 우리부터 죽음을 잘 배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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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월 셋째주 IVF학사회 소리지 업데이트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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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수요일) - [죽음을 배우다] 이제 교회인 우리부터 죽음을 이야기하자

119(목요일) - [죽음을 배우다]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장례의식과 절차에 관한 조언

120(금요일) - [죽음을 배우다] 죽음을 기억하고 배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