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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장례의식과 절차에 관한 조언_최원아

[소리] 2016년 세 번째 소리- 0506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장례의식과 절차에 관한 조언



 

  지난 3, 친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24년 동안 뇌졸중 후유증과 합병증으로 고생하신 터라, 할머니에 관한 제 기억과 경험의 대부분은 건강한 모습보다는 아픈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다가올 할머니의 죽음이 그리 어색하고 놀랄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편찮으신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저 또한 힘들었다는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슬프지 않을 거라 예상했었죠.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함에도 무엇을 위하여 죽음은 그리도 더디게 오는지, 시간은 고통과는 무관하게 흘렀고 할머니는 이제야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떠나신 할머니를 마주하는 마음은 제 예상과 많이 달랐습니다. ‘이제야가 아니라 왜 이리도 빨리였습니다. 할머니는 우리의 시간보다 빨리 가셨습니다.

 

  작년 10월에 할머니가 위암말기 판정을 받으셨을 때, 주치의는 1년 미만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습니다. 꽉 채운 1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3개월, 6개월과 같이 더 짧을 수도 있다는 부연설명을 했습니다. 떠나시던 당일, 할머니의 숨이 가빠져서 응급실로 모셨습니다. 의료진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서 가족들을 부르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 했습니다. 질병에게 온몸을 뺏긴 할머니는 초점 없는 눈으로 숨만 겨우 내쉬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런 할머니를 어루만지며 하늘나라로 가시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할머니는 눈을 스르르 감았고 의료기기가 숨이 멈췄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간호사는 정확한 시간을 말하며 사망선고를 했습니다.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몸은 아직 따뜻했고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 주변이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의미 없는 움직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울면서 할머니의 팔다리를 곧게 펴드리고 얼굴을 가지런히 쓰다듬었습니다. 이윽고 의료진이 들어와 할머니를 하얀 천에 싸서 안치실로 모셔갔습니다. 이마에 뽀뽀라도 해드리고 보낼 것을, 그게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누군가 계속 그 시점을 말해주었지만, 정작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로 느껴졌습니다. 아직은 떠나보낼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었습니다. 오랜 시간 죽음을 염두하며 지내왔는데도 말이죠. 그땐 왜 그렇게 할머니께 못 해드린 것만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의 장례는 삼일장으로 성남시 소재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이 진정되지도 않았는데 가족들은 바빠졌습니다. 장지가 있는 고향과 기존에 가입한 상조회사에 연락하였고, 집에 들러 영정사진과 필요한 물품을 챙겨오고, 가족관계서를 떼어와 사망진단서를 받았습니다. 빈소에 모여 장례절차와 일정을 논의하고, 교회에 연락하여 장례예식(위로·입관·발인·하관)을 부탁하였습니다. 장례식장과 우리의 일정에 맞춰 입관과 발인시간이 정해졌습니다. 아버지는 상조회사와 계약사항을 확인했습니다. 제단장식 및 빈소용품, 고인용품(수의··입관용품), 상복, 배웅인력(장례지 도사·접객도우미), 장지(장소·장의차량·장지에서의 식사) 등의 내용들이었습니다.

 


 

  부고를 알렸습니다. 상복을 입고 조문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조문객들이 오시기 시작하자 가족들은 확인해야 할 게 너무나 많았습니다. 손님들께 대접할 음식은 모자라지 않은지, 앞으로 어느 정도의 조문객이 방문할 예정인지, 주문한 물건은 잘 도착했는지, 사용할 것과 환불할 용품들은 무엇인지, 여기 계신 조문객은 누구의 연락을 받고 왔는지 등, 이런 저런 것들을 확인하다 보니 정작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제 마음을 들여다보며 슬퍼하고 떠나보낼 겨를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오셔서 위로예배를 함께 드렸습니다. 그 예배를 통해 할머니를 생각하며 헤어진 슬픔을 꺼낼 수 있었던 동시에, 소망을 붙잡을 수 있도록 마음에 안정을 찾았습니다. 죽음이 삶과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앞으로 살아 있는 가족들을 아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할머니를 잘 보내드려야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한걸음에 와주신 목사님과 교인들께 참 고마웠습니다.

 

  반가운 얼굴들의 조문은 장례 중에 잠시나마 전환이 되어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조문객이 뜸한 시간에는 할머니께 못 다해 아쉬웠던 것보다는 잘해드리고 함께해서 좋았던 기억들을 가족 친지들과 되새기니 도움이 되었습니다. 둘째 날 입관 직후 빈소에서 입관예배를 드렸고, 입관 후 완장과 하얀 리본을 달았습니다. 둘째 날에는 여러 번의 위로예배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발인예식은 장례식장을 떠나기 직전 빈소에서 시작하여 장의차로 이동한 뒤 기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곧장 장례식장을 출발하여 고향에 있는 장지에 도착하여 하관예배를 드렸습니다. 하관예배는 고향 교회에서 맡아 주셨습니다. 하관예배를 마치고 조문객은 내려갔습니다. 분묘작업을 마치고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이 할머니 묘소 앞에 모여서 아버지가 대표로 기도하였습니다. 자손을 향한 할머니의 수고, 고생스러운 삶과 질병으로 자녀들의 효도를 편히 누리지 못한 안타까움, 오랜 간병으로 인해 때때로 불효하였던 괴로움, 시어머니·할머니를 간병하며 수고한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 질환 중에도 새벽기도에 가고자 했던 할머니와 우리 가정에 들어온 복음의 축복, 선산으로 이장하여 52년 만에 나란히 뉘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바라보며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부활주일을 앞두고 장례를 마쳤습니다. 그후 삼일 째에 다시 묘소를 찾아가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죽음은 매듭을 묶기도 하며 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의 무게는 다른 인생사의 어떤 희로애락과는 남달라서 저절로 한 사람의 인생과 그 가족과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일곱 살 꼬마였던 제게 할머니는 돌보는 방향이 바뀌어 버린 아픈 관계였습니다. 어린 저는 많이 속상했고 힘들었습니다. 어렸던 저는 내가 받은 사랑보다 내가 한 수고가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 저는 제가 자녀로서 누린 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기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지금의 제 나이보다 어린 나이에 배우자를 잃고 네 명의 자녀를 키워야 했던 한 여성의 일생을 애도하게 됩니다. 게다가 훗날엔 아이들을 천 기저귀로 키워낸 수고와 사랑을 떠올릴 것도 같습니다. 지금이 아니었다면 아픈 할머니와 함께여서 힘들었던 것과는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무언가가 있었다는 걸 몰랐겠지요. 우리 가족 중에 가장 연약한 사람이었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갑작스런 죽음이 아니라면 당사자의 의식이 있을 때 임종예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임종을 꼭 병원에서 맞이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이 준비가 되었다면 집에서 조용하게 맞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장례식장을 사용하는 경우, 빈소 사용료부터 접대음식, 매점물품 등, 장례식장마다 비용이 다릅니다. 재정적인 부분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저렴한 장례식장을 미리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시에서 운영하는 곳이 저렴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용한 장례식장은 필요한 기본적인 모든 물품을 결제한 뒤, 상조회사나 기타 상조회에서 보내는 물품들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장례식장에서 구입한 물품 중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환불처리 했습니다. 다른 곳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상조회사도 회사별로 비용 및 구성에 차이가 납니다. 당일가입이나 후불제 가능하니 필요하 다면 적절히 이용하나, 집안 내 장례 경험과 정보가 있으면 상조회사 없이도 장례를 치르기도 합니다. 부의를 하실 때는 결혼과 달리 다양한 가족관계로 오는 경우가 있으므로 소속과 이름을 정확히 쓰는 것이 좋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와 애도하는 기간을 가지게 됩니다.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그 시간을 가지는지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깊은 애도에 있는 가족이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기운을 내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른 가족들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장례식장에서든 집으로 돌아와서든 소화가 되는 한에서는 식사를 거르지 말고 꼬박꼬박 하는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영정사진은 미리 준비해 둡니다.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 사진으로 말이죠.

 

  이렇게 해서 할머니의 임종부터 장례까지, 제가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을 적었습니다. 저의 경우와는 달리 예상 가능한 죽음이 아니거나 다른 가족구성원이 떠났을 때라면 마음이나 상황이 저와는 많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의 죽음이더라도 임종 후 장례를 치르기에 몇 가지 적어보았습니다. 어느 시점 갑작스레 마주하거나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분들께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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