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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죽음을 기억하고 배우라_김경아

 

 

[소리] 2016년 세 번째 소리- 0506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죽음을 기억하고 배우라



 

내가 기억하는 첫 죽음은 친할아버지의 죽음이었다. 그후 조부모님이 시간차를 두고 돌아가 셨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남편이 지방회 대표간사였을 때 IVF 학생이 사고사한 것이다. 죽음에는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그 아이의 죽음을 통해 살아 있는 동안 좀 더 의미 있게 살겠다는 열망이 내 안에서 솟아났다. 격하게 아끼던 후배가 암 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일도 있었다. 나처럼 세 딸을 둔 엄마였고 선교사로 훈련을 받던 친구였다. 존경해 마지않았던 후배라 그의 고통은 내게도 아픔이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살고자 했던 그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결국 그를 데려가셨다. 시간이 흘러 우리 시부모님도 병과 노환으로 돌아가셨고, 작년에는 친정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2년 전 4 16일에는 다른 집 귀한 자식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처참한 광경도 지켜보았다.

 

어떤 죽음은 남은 이들에게 아쉬움과 함께 기쁨을 남겼다. 또 어떤 이의 죽음은 각종 질문을 불러일으켰고, 빨리 잊어버리고만 싶은 씁쓸한 죽음도 있었다. 의학의 발달로 각종 기기와 약물에 의존하여 생을 연장()하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잘 죽기 위해 준비하기보다는 살려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의미 없는 치료에 매달려 있는 환자와 가족들도 제법 많이 만났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조언하는 책과 TV프로그램은 차고 넘치고, 거기에 우리는 기꺼이 돈과 시간을 들인다. 그런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겪는 죽음.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고 다른 이를 평화롭게 떠나보내고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단 나를 포함한 기독교인 들은 죽음에 대해 잘 모른다. 또 그 주제는 이미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진 후의 일이니까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죽으면 천국 간다는 다소 두루뭉술한 문구만 붙들고,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애매한 구절에 의지해서 죽음을 소홀히 하고 그에 대해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죽음에 대해 또 가장 많은 말을 내뱉는 게 기독교인들인 것 같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흔히 말하는 호상이었다. 신앙이 없었던 친가는 아주 전통적인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그때 참 인상 깊었던 것이 이었다. 가족은 을 하며 맘껏 슬픔을 표현했고 찾아온 이웃과 친척들도 으로 그들의 슬픔을 받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신앙인이라는 사람들은 좋은 데로 가셨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통곡하고 슬퍼하는 게 믿음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또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죽음으로서의 자연사와 세월호 참사 같은 사고사를 구분하지 못한다. 원인을 알고 싶다고 부르짖는 유가족들에게 그만 하라고 악담을 쏟아 놓는 기독교인들도 많았다. 심지어 자살하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자살한 교인의 장례식을 거부하는 교회도 보았다.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잘 아는 척하는 이들의 말이 비수가 되어 유가족 마음에 꽂혔다.

 

개인적인 관심으로 죽음에 관해 이것저것 책을 찾아 읽었다. 결국 좋은 죽음은 좋은 삶과 불가분의 관계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잘 살고자 하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었다. 또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다루느냐 하는 문제는 그 사회, 그 공동체의 성숙도와 무척 관계가 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좋은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지, 또 다른 이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들을 잘 애도하고 떠나보낼 수 있는지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함께 죽음을 기억하고 배우자.

 


 

한나의 선물우리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죽음이 있다면 그건 내 아이가 나보다 먼저 죽는 일일 게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은 가슴 한복판이 결코 치유될 수 없는 통증을 안고 산다는 의미일 것 같다. 이 책의 지은이는 딸 한나가 네 살도 되기 전에 소아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었다. 보통 이런 종류의 투병기나 간병기는 주로 감성에 호소해서 눈물을 뽑아내는 데 집중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책 표지에 놓여있는 빨간 구두를 모티브로 하여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아이가 보여준 사랑과 기쁨, 일상의 아름다움을 서술한다. 저자와 번역자의 뛰어난 표현력과 깊은 통찰력 덕분에 어린 한나의 죽음에 절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가 내 남은 생을 잘 살아가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저자인 한나의 엄마는 한나의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삶의 기준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충만한 삶' 을 살았는가, 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런 깨달음이, 한나가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마지막 선물일 것이다.

 


 

죽음 가장 큰 선물지은이는 예수회 신부 헨리 나우웬이다. 예일과 하버드의 똑똑한 수재들을 가르쳤던 교수이자, 19969월에 심장마비로 소천하기까지 캐나다의 발달장애인 공동체인 라 르쉬에서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몸소 보인 목회자였다. 그가 남긴 저작들을 통해 그는 살아있을 때보다 죽음 이후에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영적인 스승이 되었다. "죽음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을 만큼 그렇게 끔찍하고 불합리한 것인가? 죽음은, 그것이 마치 실재가 아닌 양 행동하는 것이 나을 만큼 우리 존재에 있어서 그토록 불쾌한 부분인가? 죽음은 우리가 단순하게 직면할 수 없을 만큼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동의 완전한 결말인가?" 사고로 인해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던 그의 경험을 통해 헨리는 이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특히 죽음은 대하기 어렵고 불편한 진실만이 아니라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며 우리의 죽음이 남은 자들의 삶에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가르침을 남겼다. 죽음을 외면하고 거리끼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죽음을 배우다기독교인들에게 죽음을 가르친다면 교과서로 꼽을 만한 책이다. 전문 작가답게 호스피스 종사자와 의사, 간호사, 생명윤리학자, 유가족과 간병인, 영성 지도자를 대상으로 직접 취재 하고 인터뷰를 해서 죽음과 그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보다는 죽음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전투적인 자세를 갖게 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정작 죽음에 가까이 갔을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작별의 인사 없이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저자의 말에 따르면 원래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신성한 순간을 오랫동안 준비했다고 한다. 그는 기독교 전통에서 좋은 죽음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설명하면서 현재 우리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지, 죽음을 앞둔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깨달음을 주고 있다.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지은이는 아직도 가야 할 길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스캇 펙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이 죽음을 택하는 거의 모든 방식, 살인, 자살, 안락사, 자연사 등을 낱낱이 들여다본다. 그 중 특히 안락사에 초점을 맞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내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나는 통증이 심한 만성질병을 오랫동안 앓으면서, 더 이상 고통스러운 삶을 살기보다는 안락사를 택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으로서 당연히 겪는 생존적 고통과 직면하기보다는 쉬운 길을 택하려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게다가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도 인간은 성장하며 우리 영혼이 고양될 수 있다는 관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끔 신앙인 중에서 안락사를 찬성한다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건 존엄사안락사를 우리가 혼동하기 때문이다. 스캇 펙은 이책에서 의사로서 자신이 경험한 숱한 사례들을 통해 죽어가는 것으로부터의 배움의 문제를 일깨우 고, 인생의 역경에 맞서는 법을 배우는 용기를 불러일으키기를 희망한다.

 



애도하는 사람이번에 소개하는 책 중에 유일한 소설이다. 지은이는 텐도 아라타라는 일본 작가 이다. 이 책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굉장히 많은 논쟁거리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다. 소설은 '애도하는 사람'인 주인공 시즈토의 모습을, 그와 관련이 있는 세 사람의 시점에서 옴니버스식으로 그려나간다. 주인공이 전국을 떠돌며 애도하는 대상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다. 사건이나 사고가 난 현장을 찾아가 고인은 누구를 사랑했는가, 누구에게 사랑받았는가, 어떤 사람이 그 고인에게 감사했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하고 그 대답으로 고인의 존재를 애도하고 마음에 새긴다. 지은이는 시즈토의 행동을 통해 진정한 애도란 그저 죽음을 슬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인을 자신의 삶에 기억하는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누군가 죽으면 유족을 향해 빨리 잊으라고 강요하는 우리 사회가 저자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애도를 사건의 원인 규명과는 철저히 분리시키는 저자의 방식에 대해서 나는 반론을 제기한다. 진정한 애도는 진실의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도하지 않는 우리에 대해 돌아볼 만한 좋은 소설이다.

 


 

좋은 이별저자인 작가 김형경은 주로 상실과 애도를 주제로 정신분석적 심리 치료 에세이를 써왔 다. 그는 개인적·사회적 병리의 모든 원인은 사랑을 잃거나 소중한 대상을 상실한 후 그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만큼 잘 이별하기역시 삶의 중요한 화두다. 저자는 애도하지 못한 채 꼭꼭 숨겨두었던 슬픔의 감정들이 어떻게 한 사람의 생에 영향을 주는지 소설 속 주인공들이나 유명인들의 일화를 통해 일러준다. 사실 이 책은 읽어나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간 내가 이별했던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후유증을 내가 지금 겪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별의 아픔쯤은 거뜬히 극복해야 신앙인인 것처럼 강요하는 교회의 문화 속에서 한번은 새겨들을 조언인 것 같다.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지은이 윤영호 박사는 대한민국에서 죽음을 가장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는 의사로 명성이 자자하다. 웰다잉 문화를 확산시키려 애쓴 그의 업적이 EBS 다큐 <명의> 에 방영되기도 했다. 한국호스피스, 완화의료학회의 설립위원이기도 하다. 저자는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누나의 죽음을 계기로,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이라는 것과 우리에게 주어진 삶과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외국 저자가 많은 이 분야에 윤영호 박사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상황과 민족성을 기반으로 우리가 추구할 좋은 죽음은 무엇인지 실제적으로 조언한다. 이 책 한 권이면 죽음을 준비하는 데 충분할 정도로 깊이와 넓이가 있는 책이다.

 


 

인생수업죽음에 관한 최고 전문가를 꼽으라면 당연히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이다. 이 책은 그와 그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죽음 직전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후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 을 전한다. 이 책의 메시지를 소개하기 위해 엘리자베스의 한마디로 대신한다. “누구나 죽음을 마주 하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배움은 삶을 더 의미 있게 해줍니다. 그 배움을 얻기 위해 꼭 삶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까요? 지금 이 순간 그 배움을 얻을 수는 없을까요?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배움들은 무엇일까요? 그것들은 두려움, 자기 비난, , 용서에 대한 배움입니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입니다. 놀이와 행복에 대한 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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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수요일) - [죽음을 배우다] 이제 교회인 우리부터 죽음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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