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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더불어, 함께살기] 용기있는 선택, “그루터기 공동체”_박근호

[소리] 2016년 네 번째 소리- 0708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용기있는 선택, “그루터기 공동체”



 

  알람소리에 잠을 깬다. 아침이다.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이고 첫째 건우는 학교로, 둘째 은우는 유치원으로 보낸다. 그런 다음 나도 아침밥을 먹고 공동체하우스로 내려가 커피를 내려 마신다. 잠시 마당을 둘러본다. 개똥을 치우고 개밥을 챙겨주고, 집 앞을 치우고 잡초를 뽑는다. 그동안 잠에서 깬 셋째 시우는 아내와 놀고 있다. 아이와 놀고 책을 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잡일을 하고 나면, 어느새 아이들을 데려와야 할 시간이 된다. 둘째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면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기회를 틈타 아빠 차를 타고 같이 집에 온다. 오후에는 주로 사람들과 부대낀다. 어떤 이는 약속을 하고 찾아오지만 불쑥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저녁은 각종 만남이 이어지는 공적활동의 시간이다. 밤이 되면 다시 아이들과 보내야 한다. 아이들이 잠을 자야 나의 하루가 마감된다. 개인 기도를 하고 책을 조금 읽으면 잠이 든다. 이렇게라도 책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요즘 내 생활은 거의 한 장소에서 이루어지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주일에는 하루 종일 공동체가 북적인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환대의 공간을 창출해낸다. 이렇게 거의 매일 한 장소에서 세끼 집밥을 먹으며 살고 있다. 별로 대수로 울 것 없는 공동체에서의 일상이다. 그러나 이런 일상을 얻기 위한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때는 그랬다. 사역을 하고 있었지만 사역에 재미가 없어지던 차였다. 부목사로서 교회에 필요한 부속품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일상의 삶에서 제자가 되는 것과 하나님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관점이 생겨나고 있었지만, 현실은 너무도 명백하게 그와 달랐다.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아이들과 부대끼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이대로 흘러가기만 하는 내 삶이 안타까웠다. 내가 그동안 노력해왔던 삶의 결론도 보지 못한 채, 현실과 입장만을 이야기하는 그저 그런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내를 설득했다. 공동체적 교회를 세우자고 했다. 이도 저도 결정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오랫동안 설득했다. 함께 하는 청년들에게도 자주 꿈을 이야기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나는 무언가 시작할 거라고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함께 살자고 했고, 함께 집을 짓자고 이야기했다. 공동육아를 하고 대안적 교육을 실천하자고도 했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이를 위한 모임도 만들었다. 무언가 이루어지는가 싶었지만 결국 현실 적인 실천의 자리는 외롭고 왜소했다. 결국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 어쩔 수 없노라고 항복을 한다 해도 누가 뭐랄 수 없었다.


  그러나 한번 내딛은 발걸음을 다시 되돌리기는 싫었다. 두렵고 떨리는 발걸음이지만 앞으로 나아가자고 마음먹었다. 공동체하우스를 짓기로 했다. 오랜 기간 집짓기를 공부했다. 설계업체를 선정하고 업체와 함께 땅을 살폈다. 공부하며 준비한 시간이 1 , 설계업체를 선정하고 땅을 보러 다니고 설계를 고쳐갔던 시간이 1, 무려 2년 동안 집짓기를 준비했다. 다음에는 시공업체를 선정했다. 사비를 털고 대출까지 받아서 마침내 나무집을 지었다. 친환경적이며 생태적인 집을 짓고 싶어서 최대한 시멘트를 쓰지 않았다. 유해한 자재는 사용하지 않고, MDF가 거의 없는 집을 지었다. 아내는 집을 짓는 내내 선택에 선택을 거듭했다. 선택을 하기위해 밤을 지새우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짓는 현장에 가서 일꾼들을 격려하고 모든 과정을 기록했다.

 


 

  3개월 만에 집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기까지 2개월 가까이 걸렸다. 집 하나가 지어져서 사람이 살게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웃과의 관계도, 행정적인 절차도 쉽지 않았다. 변수가 생길 때마다 돈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빚을 져야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럼에도 집이 완성되었고 이제는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한동안은 우리 가족과 용기 있게 나를 따른 지체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럴듯한 간판도 없었고 홍보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나둘씩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어느 날은 모임공간이 부족했다. 그때 당황스러움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나 그런 흥분에 휘둘리기보다는 내 자리를 꾸준하게 지키며 찾아오는 이들을 환대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누군가 공동체를 찾아오면 몇 주간은 그저 지켜본다. 그러다 공동체와 함께할 의지가 보이면 그때 물어본다.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이 모였다. 몇 개월 함께하다 보면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함께 살아가는 건 비교할 수 없이 힘들었다.

 

  청년들의 자활을 돕고자 공간을 열고 적은 비용으로 살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살기 좋은 공간이 사람 사는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청년들이 들어오자마자 관계가 삐걱거렸다. 서로 생각도 달랐고 기대치도 달랐다. 아이 셋을 키우는 우리 가정과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청년들의 삶의 방식도 참 달랐다. 이렇게 다른 상황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큐티 나눔과 기도회, 식사시간을 만들었으나 이내 우리가 겉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좀 더 자연스럽게 관계가 쌓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다시 세워나가려고 한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보면서 공동체적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나의 진심이 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도 나름대로 답답함 마음에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답답함이 바로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길고 지루한 설득의 과정이 필수적임을 결국 인정하게 되었다.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공동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최근에 오랫동안 함께한 형제 하나를 내 손으로 내보냈다. 나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결정이었다. 사람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걸 사역의 원칙으로 삼았던 내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 데도 내가 왜 그러한 일을 감행했을까? 서서히 공동체를 보는 전체적인 시각이 생겨남과 동시에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력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보이자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결정을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속이 쓰리다.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추억이 떠오르고, 그 친구와 함께 있던 사진에 눈길이 머문다. 꿈에도 여러 번나왔다. 공동체적 교회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게다.

 

  꼬박꼬박 월급을 주던 직장에서 뛰쳐 나온지 1년이 넘었다. 지금도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다. 카드명세서가 날아오고 월말이 되면 긴장이 된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예상치 못한 돈이 들어온다. 이렇게 은혜로 산다. 지난 1 년간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 새로운 현장에 과연 잘 들어선 것일까 스스로 묻는다. 이제는 적어도 매일 아침 오늘도 의미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헛된 생각과 싸우지는 않는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거나 있기 싫은 곳에 있어야 하는 일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본질에 걸맞게 살 수 있는 자유를 얻어 행복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래저래 하게 된 일도 많다. 지방에서는 정착하기 힘들다는 아카데미 운동을 꽤 활발하게 하고 있다. IVF학사회의 GLC+도 광주에서 런칭해 사역을 구체화하고 있다. 4년 만에 성서광주 수련회도 시도하고 있다.

 

  지금은 고통의 이유와 내용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전에는 마냥 답답하고 헛 사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면, 지금은 여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는 게 힘들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생각보다 먼 길인 듯하다. 쉽게 완성되거나 단시간에 결과를 보지도 못한다. 본질적인 일을 시도하되 결과는 아직 미미하다. 또한 상황과 현실이 지나치게 거대해 보인다. 이렇게 해서 이 일이 완성되는 것을 내가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계속 힘을 내야 한다. 계속해서 희망적인 전망을 일구어내며 독려하며 설득해야 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그러다가 힘들고 지칠 때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 그럴 때마다 숨어서 기도를 한다. 가만히 기도하는 자리에 앉아 나의 삶을 되돌아보노라면 제자리에 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자리는 바로 이곳이며 내가 받아야 할 고난은 바로 이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부르신 그 자리였지만, 한치 앞도 내 다볼 수 없는 길이긴 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1년 전에 공동체를 여는 예배를 준비하며 만든 공동체 기획안을 살펴보았다. 불과 1년 전의 구상인데도 지금의 내 생각과는 다르다. 지난 1년의 삶의 궤적이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이런 삶을 앞으로 5, 10년 살게 된다면 나는 어떠한 생각을 하며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될까. 그게 내가 이렇게 살며 기대하는 바이다.

 

  누군가가 내게 1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나는 동일한 선택을 할 것이다. 우리에게 삶이 주어진 것은 고난 없이 애매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을 따르는 삶이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게 우리가 배워온 것 아니겠나.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결국 가야할 길 아닐 까. 결국은 용기가 관건이다. 말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는 거다. 누가 용기 있게 본질적인 것을 선택하며 살아내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한 용자들을 많이 보고 싶다. 그래야 나도 용기를 더 낼 테니 말이다.


그루터기 공동체 블로그 - http://skyroadtoworl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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