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살기] 아직 허락되지 않은 공동체를 찾아_하현용

[소리] 2016년 네 번째 소리- 0708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아직 허락되지 않은 공동체를 찾아

 

 

어릴 때부터 교회는 내 인생의 큰 부분이었다. 교회는 놀림 받던 내가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고 주눅 들어 구석에 있는 나에게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곳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교회였기 때문에 기대도 많았다. 하지만 점점 그 기대는 실망으로 변해 갔다.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교회들과 관련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고향 교회에서 느꼈던 모순이 이후에 속했던 교회에서마저 반복 되는 걸 보며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도달했다. “성도의 삶에 토대가 되어야 할 교회가 왜 삶의 일부분이 되었는가?”

이런 질문 앞에서 갈증이 깊어가던 때에 ‘공동체’라는, 오래되었지만 새롭게 느껴진 단어는 시원한 샘물처럼 느껴졌다. IVF 학생 시절, "이레하우스"와 "아름다운 마을공동체" 등을 방문하며 생활공동체에 관심을 갖다가 협동간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동체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사를 사임하면서 고민만 하던 것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간사를 사임하면서 당시 교회 목사님의 권유로 전임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교회 안에서 근거리에 모여 살면서 육아나 신앙생활을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를 이루는 것에 대해 자주 언급했고 이에 공감하는 분들과 모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교회사역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기도 어렵고 주말에 교회일이 있다 보니 그 모임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 모임 역시 주로 삶을 나누고 공동체 관련 스터디를 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리고 교회 멤버로 구성하다 보니 외부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과 연대하기가 어려웠다.

 

결정적으로 공동체를 통해 원하는 바가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다. 육아, 거주환경, 예배, 교육, 재정 등 많은 부분에서 우선순위와 기준에 차이가 있었다. 나 또한 원하는 바가 있었기에 이런 시기를 보내며 몇 가지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내가 공동체를 바라는 것은 단지 기존교회에 대한 반발심으로 실체가 없는 것을 좇았던 것일까? 내가 원하는 모습의 공동체는 내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나?’ 다시 시작점에 선 것 같았다. 교회 안에서 생활공동체를 시작해 보려고 했던 나의 시도는 이런 질문들만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교회 전임사역을 할 때 서울시에 ‘마을 만들기’, ‘협동조합’ 등 지역시민들이 연대할 수 있는 정책이 많았다.

 

나는 지역신문사 기자, 마을공동체 만들기 관계자, 협동조합 관계자, 공동육아 어린이집 관계자 등 생활공동체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이런 만남을 통해 ‘공동체’에 대해 교회 밖의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이분들은 이미 오랫동안 갈등을 조율하고 의견이 나뉘면 토론하고 새로운 이들을 교육하는 일을 해왔다. 물론 교회도 이런 일들을 해왔지만, ‘권위’에 기대지 않으면서 갈등을 해결하고 ‘사실상 결론이 난 사항’이 아닌 것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해서 접점을 찾아가는 모습을 교회 안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그들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을 교회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많은 이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의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나는 이미 교회 생활을 포함해 생활의 틀이 잡혀 있는 이들이 새롭게 생활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교회를 사임하고 생활공동체를 이루거나 그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들과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사임을 할 즈음 나처럼 간사로 있던 한 가정을 만나게 되었고, 그 가정도 우리와 비슷하게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우리는 1년 정도 같은 동네에 살면서 자주 만나며 아이도 함께 키웠다. 동시에 우리가 연대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는지, 다른 공동체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지내는지 여러 곳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안면이 있던 제주의 한 간사도 공동체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몇 가정이 모여서 함께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생활공동체로 살아가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제주로 이사를 가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결정이었다. 우리 두 가정의 네 사람은 각자 또 부부끼리 먼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와 다른 부부는 제주로 가기로 결심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제주로 가는 것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었다. 가서 어떤 일을 할지 준비된 것도 없고, 이미 모여 있는 가정들도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데 제주로 가는 것은 너무 큰 모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아내가 염려한 부분은 모두 사실이었기에 딱히 아내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 사람의 결심이 확고한데다 결정적으로 제주에서 올라온 친구와의 대화로 마음이 열려 우리 두 가정은 제주에 있는 가정들과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에서 제주로 가기로 결정하고 실행하기 까지는 1년이 걸렸다. 다른 가정은 먼저 제주에 내려갔는데 우리는 집이 빠지지 않아 기다린다는 것이 그만 기간이 길어져 버렸다.

 

그런데 그 사이 큰 사건이 터졌다. 먼저 내려간 가정이 건축업자에게 정착자금을 사기당한 것이다. 이 일은 이제 막 공동체를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아직 어떻게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지워진 짐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당사자 부부의 상심이 너무 컸고, 그 시기를 다른 이들이 함께 하기에는 아직 서로를 잘 알지도 못했고 각자의 삶도 아직 제주에 적응 중이었다. 이 일을 겪은 부부는 오랫동안 교제하고 돌봐준 이들과 함께 있었더라도 이 시기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서로 잘 알지도 못하고 아직 친하지도 않은 이들과 함께 버티는 게 너무 큰 어려움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은 쉽지 않았다.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속 깊은 이야기도 한번 나누어 보지 못한 우리들이 견디기에는 어려운 시간 이었고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 바랄 뿐이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공동체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공동체를 시작하는 이들이 빈번하게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처음 시작하는 이들이 경험해서는 안 될 경험을 하며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그 깊은 수렁에서 나오는 데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했다. 당사자인 부부가 회복하는 시간,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서운함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시간, 그냥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사로운 시간도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마저 우리에 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제주에서 정착 하는 일 자체가 공동체를 이루는 일 못지않게 힘들었다. 나는 장사를 시작하면서 시간에 쪼들리고, 한 친구는 직업을 찾아 몇 군데 직장을 옮겨 다니고, 간사를 마친 친구는 새로운 직업에 몰두했다. 세 가정의 아내들이한 해에 모두 아이를 낳게 되어 육아에 지쳤는데 도움을 받을 곳도 위로를 해줄 사람도 찾기 어려웠다. 집을 짓는 일을 하는 형은 팀원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있었고, 두 딸과 함께 사는 누나는 집안의 여러 가지 사정이 겹치고, 우리는 각자 자신을 챙기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우리는 목회적인 부분을 감당하는 사람을 따로 세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서로에게 목회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서운했다. 무엇인가 줄 것이 있는 사람도, 그 옆에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사람도, 받아야 할 사람도 받지 않아도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도 모두 부담스럽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어떤 실수를 한 것일까? 우리는 어떤 잘못을 했기에 이런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까? 누구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준 것일까? 우리 모두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진실하게 나누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서먹해지는 관계도 어쩌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후회스러웠다. 특히 많은 이들이 경험한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보니 조언을 듣기도 어려웠고, 먼저 공동체를 경험한 이들도 우리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 주기가 힘들었다. 가끔 선배들의 조언은 깊이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였지만 우리의 상황을 정확히 대변해 주지는 못했다.

 

우리가 이런 시간을 보내며 의연하게 대처해 왔다고 생각하지만 각자 말없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서로를 더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각자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 이상을 짊어지고 왔다. 이제야 조금씩 안정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는 방향을 잃었고 한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서로 편안한 일상을 가질 수 없었고 지역 사회와 연계하지도 못했고 함께 육아를 하거나 공동식탁을 갖는 일도 어려웠다. 그동안 깜깜한 터널을 사력을 다해 헤쳐 왔고 이제 그 끝을 보며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우린 여전히 서로를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 된 것은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주체가 우리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던 이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고, 서로를 받아 주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며 결국 하나님께 우리가 이루려고 했던 바를 올려드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에게 왜 이런 시간을 보내게 하시는지 묻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우리가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게 생활공동체든 사역공동체든 예배공동체든, 어떠한 모습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어가고 해야 할 공동체의 모습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고 또 부단히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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