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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의존의 역전 현상, 자녀에서 부모로

[소리] 2016년 두 번째 소리- 0304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의존의 역전 현상, 자녀에서 부모로

 


 니가 전화를 안 해주니 하루 이틀이면 나을 걸 일주일 내내 아팠다이가.”

우리끼리 웃을 일이 없네...”

  반짝반짝 빛나던 20대는 학업에다 직장생활, 그리고 결혼으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어 출산과 육아, 새로운 진로를 찾느라 빡빡했던 30대도 어느새 훅 지나가 버렸다. 아장아장 걷던 아이들은 훌쩍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다. 부모가 챙길 것이 많은 때인지라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고 분주하다. 아이들은 자랐고, 나는 딱 그만큼 나이가 들어 내년이면 마흔이 된다.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 좀 당혹스럽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요즈음이다.

 

  문득 나보다 더 긴 세월을 보내고 여러 가지 변화를 마주한 이들을 보게 되었다. 바로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이다. 지금까지 내 관심사라 하면 집과 부모를 떠나 만난 모든 것들이었다. 공부, , 사람, 교회, 사회, 정치, 또 연애, 결혼, 자식, 살림 등이었다면 요즈음 새로 관심을 갖게 된 이는 여전히 그곳에 계신 내 고향, 바로 부모님이다. 그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얼마 전 친정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긴 겨울방학에 이은 봄방학이었고, 애들 챙기고 일하느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어쩌다 보니 아버지와 십여 일만에 통화를 하게 된 것이다. 기운 없는 목소리로 콜록거리시더니 지난 일주일 간 지독한 독감을 앓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니가 전화를 안해주니 하루 이틀이면 나을 게 일주일 내내 아팠다이가.”라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씀하시는데, ‘에쿠, 전화 한 통 할 걸...’하는 자책이 스쳤다.

 

  친정아버지는 작년 여름 평생 몸담았던 직장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하셨다. 어릴 적부터 봐온 아버지는 건강하셨고, 언제나 열정과 자신감이 넘치셨다. 참으로 열심히 사셨는데 그런 모습은 퇴직 전까지도 마찬 가지였다. 퇴직 후의 삶에 고민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곧 새로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셨고, 하루 종일 책만 보고 있어도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며 너무 즐거워하셨다. 자식들이 보기에도 아버지께 몰입할 거리가 있으니 어느 정도 허탈감을 덜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발목을 잡은 것은 건강이었다. 규칙적인 직장생활에 적응되어 있던 신체리듬이 깨지면서 갑자기 혈압이 크게 오른 것이다. 결국 공부를 중단하시게 되었다.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건강 때문에 안 되겠다. 십 년만 젊었어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고 하시는 아버지께, “괜찮아~ 아빠 나이가 어때 서. 그 나이면 아직 청년이지~!”라고 했지만, 사실 나도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명치끝이 쿡쿡 쑤시듯 아팠다. 슬펐다. 나도 아버지도 그런 변화 앞에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지난 일 년 간 아버지가 많이 힘드셨다는 것을 안다. 크게 티를 내지 않고 태연한 척 애쓰셨지만, 몇십년 간 이어졌던 일상이 삶에서 사라진 그 허탈감은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걸 시작해야 하는데... 일을 좀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계속 갖고 계셨다. 하지만 퇴직한 60대 노인에게 사회는 호의적이지 않았고, 번번이 나이 때문에 안 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하셨다. 일 년 동안 아버지는 그런 변화를 몸으로 실감하셨다. 이제는 이런 생활에 적응한 것 같다고 하시며, 친정 엄마와 운동도 다니시고 교회 일에 신경을 쏟으며 빈 공간을 채워가신다. 그러나 아버지의 변화 중 가장 확실한 건 전보다 우리를 많이 찾으신다는 것이다.

 


 

우리끼리 웃을 일이 없네...”

  시어머니는 방에 편안히 앉아 TV를 보신 적이 없을 정도로 자식을 위해 바쁘게 살아오신 분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아버님과 함께 <붕어빵>, <무한도전>, <런닝맨> 등과 같은 예능프로그램을 챙겨보시면서 많이 웃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한번은 우리끼리 있으면 웃을 일이 없어 이거라도 보면서 웃곤 한다.” 하시는 거다. 어쩌다 서울에 올라오셔서 자식들, 손주들과 함께 계시면 그렇게나 웃음이 많고 즐거우실 수가 없다. “내가 너희들을 보니 이렇게 웃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서울과 지방이라는 거리 때문에 일 년에 몇 번 되지도 않는다.

 

  웃음... 자식을 낳고 키우는 초반 몇 년, 아이가 너무 예뻐 평생 부모에게 할 효도를 그 때 다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그 시기에 자식이 웃음을 많이 주었다는 얘기인 것 같다. 내가 부모님들께 웃음이 되어 드린 건 언제였을까? 정말 어릴 때 반짝, 잠깐 웃음을 드리고 끝이었을까?

 

  칠순을 넘기신 시부모님은 체력적으로 부쩍 약해지신 것 같다. 특히 강인하셨던 어머님은 칠순을 앞두고 여러 번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나 응급실에 가셔야만 했다. 부모님 건강이 확실히 예전 같지 않아 우리 부부는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고, 우리와 부모님과의 먼 거리 또한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당장 한분이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서울에 사는 남편의 동기(同氣)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리하여 부모님의 건강문제로 자식들 모두가 긴장하고 있으며, 두 분의 거취문제가 큰 화두가 되었다. 몇 십 년을 사신 집, 교회, 사람들을 떠나는 것이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기에 서로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얘기는 하고 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체력이 가능하실 때, 한두 달씩이라도 자식 곁에서 적응하며 사는 연습을 하시자고 적극적으로 설득하며 구체적인 얘기들을 나누는 중이다. 시부모님도 자식들의 얘기에 어느 정도 동의하시고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시는 것 같다. 시부모님이 친정 부모님보다 십여 년 연배가 높으시니 남편 동기간에는 부모님의 거취문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논의된다. 그들은 실제로 부모님이 함께 사실 공간을 마련하려고 고민하는 중이다.

 

  이런 남편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친정에서 장녀인 나도 동일한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되었다. 친정 부모님도 우리 곁에 계셔야 하는데... 이제는 아이들 자라는 모습도 보시고, 같이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데... 아직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우리의 처지가 죄송해지기도 한다.

되돌아보면, 지난 이십여 년은 정말 나, 그리고 내가 이룬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 수능점수 몇 점까지 따져가며 진학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뒷바라지를 해주셨던 부모님은, 대학입학 이후 내가 선택한 공부, IVF 활동, 직장생활로 인한 독립, 그리고 연애와 결혼, 그 모든 과정을 인정해 주시고 지원을 아끼시지 않았다. 나는 집을 떠나 참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내 나름의 인생을 살았다. 내가 필요하고 아쉬울 때 손만 뻗으면 부모님은 후방의 지원군처럼 내 필요를 들어주고 채워주는 존재였다.

 


 

  결혼하고 아등바등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더더욱 내 인생이 중요해진 느낌이 커져서 부모님께 기본적인 도리만 했을 뿐, 그저 잘 지내시겠거니 했다. 우리가 부모님께 필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여태 심각하게 하지 않고 살아온 셈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멈추어서 보니, 나는 아직 젊고 여전히 내 인생 살기 바쁘며 늘 그 자리에 계셨던 부모님도 그대로인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부모님은 뭔가 변하셨다. 아니, 확실히 많이 변하셨다.

 

  그게 이제야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곧 마흔이 될 내 눈에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너희들이 보고 싶다, 너희들 목소리가 듣고 싶다, 너희들과 대화하고 싶다, 너희들이 필요하다, 내게도 관심을 좀 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부모님께 필요한 존재가 되었음을, 내가 좀 더 어른이 되었음을 인식하게 된 중요한 기점이었다.

 

  여태 부모를 떠나 우리의 인생을 열심히 개척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조금씩 방향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해온 것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연락하고 대화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연로하신 분들은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 그것이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우울감으로 이어지고, 의기소침해지면서 사회적으로도 조금씩 고립이 될 수 있다고 들었다. 그 상황을 알고 얘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한데, 그저 두 분에게만 맡기지 말고 자식들이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다. 만난다, 대화한다, 이게 말이 쉽지 어디 그게 갑자기 되는 일이던가. 우리의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은 여전히 빠듯하고, 챙겨야 될 일은 너무너무 많다. 게다가 부모님과의 대화는 또 어떤가. 신앙의 색깔이나 정치적인 입장, 세대 차이로 인해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면 짜증이 나기 일쑤다. 의도하지 않게 서로의 감정을 다치게도 하고,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단절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도 적극적인 노력을 시작할 때인 것 같다. 교회에서도 낯선 지체들과, 동네에서도 이웃들과 나누고 이해하고 소통하려 애쓰며 살아가는데, 부모님께 그런 노력 못할 건 뭔가. 내가 부모님께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크게 인식한 때부터, 모르긴 몰라도 아주 조금씩 그 역할에 할당된 공간이 내 안에 생겨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당장 뭘 어떻게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안부전화를 드리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 진정한 관심과 마음을 담은 일상의 대화를 자주 나눠야겠다.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나마 자주 보여드리고, 용돈으로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필요한 부분을 세심하게 살펴서 채워드리는 그런 것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하는 말이다. 지금 부모님이 처한 상황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주어진 환경 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늘여가 보자. 마땅히 이런 관심을 받을 만 한 분들 아니던가. 그리고 어느새 훌쩍 자라 조금씩 내 품을 떠나려는 우리 아기 새들, 우리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그렇게 우리를 떠나보내셨던 부모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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