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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잘 떠나고, 잘 떠나보내자_문선민

[소리] 2016년 두 번째 소리- 0304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잘 떠나고, 잘 떠나보내자



 

  나는 교회 또래모임에서 만난 남편과 3년 반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연애를 하는 동안 경험한 남편은 조용하고 무던하지만 언제나 처음보다 현재가 더 좋은, 꾸준히 변화하고 성장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집에서 나와 살았다. 이후에도 대전으로 취학을 하면서 대학과 대학원 기간을 집이 아닌 기숙사에서 보냈고, 취업한 후에도 계속 사택에서 지냈다. 남편은 흔히들 말하는 공돌이이기에 좋게 보자면 점잖지만 나쁘게 보자면 살갑지 못하다. 그런 남편은 부모님과의 관계에 서도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그 중에 내가 보기에 의아한 모습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가끔씩 집에 갔을 때 안방 침대에서 어머니와 함께 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매달 어머니께 꽤 많은 액수의 용돈을 드리는 것이었다. 다 큰 아들이 아버지 대신 엄마와 한 침대에서 자는 게 너무 이상해서 왜 그러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오랜만에 아들이 왔는데 내 방이 없으니 집에서 제일 좋은 안방 침대에서 자라고 하는 게 아닐까? 몰라, 그냥 엄마가 거기서 자라니까 자는 건데?”


  매달 용돈은 어떻게 드리는지 물었을 때, “엄마가 달라고 해서 드렸다.”라고 이야기했다. 부모님과 깊이 소통해본 적도, 생각을 나눠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같이 살지 않으니 전화해서 하는 잔소리는 대충 무시하며,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해서는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며 그렇게 살아온 듯했다. 연애할 때는 그런 부분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어머님은 일류대학원까지 나온 자랑스러운 아들의 짝으로 나를 만족스러워 하시지 않았고, 오랜 반대 끝에 가까스로 결혼을 허락해 주셨다.

결혼. 꿈같고 달콤하기만 할 것 같은 그 이름 앞에서 남편과 부모님 사이의 방치된 문제들은 수면 위로 떠 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우리 신혼집... 월세도 괜찮아?”

나는 크게 상관없는데? 갑자기 왜?”

결혼할 때 부모님한테 돈 받기 싫어서... 많이 줄 돈 없어서 어차피 조금밖에 못 보태줄 텐데 조금 보태주고 간섭할 거 같아. 그냥 안 받고 간섭 안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하나도 안 받고 대출 받아서 시작해도 돼?”

! 정말 좋은 생각인거 같아!! 나는 좋아!!”


  어머님의 성향을 아는 나는 남편의 의견에 적극 찬성했다. 물론 지금은 매달 알뜰히 살아서 빚 갚느라 바쁜 게 고달프게 여겨질 때도 가끔 있지만, 우리 힘으로 결혼한 것에 대한 뿌듯함은 고달픔을 뛰어넘는다. 결혼하면서 우리는 양가에서 재정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지원받지 않는 만큼 우리의 자율적인 결정권이 보장될 줄 알았는데, 그건 우리의 착각이었다. 친정 부모님은 너희 힘으로 하기로 했으니 너희가 알아서 하고 결정되면 이야기해 달라.” 라고 하셨기에 시댁도 그럴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모아둔 돈이 많지 않은 우리는 보증금 부담이 적은 월세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십여 군데 둘러본 후 작은 교회 근처에 자리한 꽤 마음에 드는 집을 결정했다. 그런데 시어머님이 와서 집을 보시고는 월세가 얼마냐 물어 보시더니, 이 집에 매달 그만한 돈 주기에는 비싸다며 안 된다고 하셨다. 월세는 매달 우리가 낼 거고 우리가 살집인데 어머니로 인해 계약 직전에 엎어진 것이 너무 속상했다. 남편은 엄마가 저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하니까 그냥 다른 집을 알아보자고 했다. 우리는 다른 집을 알아봤다. 예단은 받고 싶다고 하셔서 해드렸고, 예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지만 안 된다고 하셔서 하는 수 없이 받았다. 남편 앞으로 들어온 축의금도 전부 가지고 싶다고 하셔서 드리기로 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속상하고 납득되지 않는 게 정말 많았다. 재정지원을 받지 않으면서까지 독립적이길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부모님과 별로 소통하지 않고 지내왔던 습관대로 갈등이나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는 쪽으로 정리하는 바람에 나는 힘들어서 많이 울었고, 서운해서 많이 다투기도 했다.


  나는 남편에게 결혼 전에 어머님과 용돈 문제를 정리하길 권했다. 이제 매달 월세며 대출 이자도 내야 하는 현실 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매달 드리는 용돈이 그저 돈이 아니라 아들에게 정서적으로 재정적으로 의존하시는 고리로 보이는 점이 제일 불편했다. 여자로서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프리랜서이신 아버님의 수입이 일정치 않으셨기에 잘 키워놓은 아들에게 매달 안정적인 돈을 받는 것이 얼마나 재미도 있고 위로도 되셨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어머님이 아버님과 회복하셔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고 남편도 거기에 동의했다.


  하지만 운을 띄워봤지만 엄마가 반발이 심하다며, 남편은 지금 결혼 준비로 분주하니 결혼 후에 중단하면 그때는 엄마가 받아들일 것이라며 용돈문제 정리를 결혼 후로 미루었다. 결혼 전에 이 문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결혼 후에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는 내 예감은 적중했다.


  남편이 결혼 후 첫 월급날을 앞두고 어머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그때 내가 전에 얘기했지? 이번 달부터 용돈 안 들어갈 거야.” 라고 말씀드리자 어머님은 노하셨다. 어머님은 홧김에 아내가 시켰냐며, 결혼하고 이렇게 돌변할 줄 알았으면 결혼시키지 말 걸 그랬다며, 엄마한테 이렇게 하면 지금이라도 결혼 없던 걸로 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을 하신 게 남편을 자극했다. 남편은 하나님 앞에 엄숙히 예배드리고 서약한 결혼인데, 용돈 몇 푼에 그 결혼과 하나님 앞에서 부부가 된 우리를 본인 뜻대로 하려고 하시는 어머니에게 깊이 분노했다.

남편 마음속에는, 인내하며 어머니가 원하는 걸 채워주고 따라주면 자신도 존중받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기대가 꺾이고, 본래 부모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이 아내의 영향을 받아 돌변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남편은 마음을 닫았다. 이렇게 할 거면 호적에서 파겠다는 감정적인 부모님 앞에서, 파버리라고 똑같이 감정적으로 말해버리고는 부모님과 연락을 끊었다. 그 후 반 년 동안 우리는 시부모님과 연락을 주고받지도, 교류하지도 않았다.


  부모님과 큰 갈등과 단절을 겪고 있었지만 우리 둘은 오히려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고 편안했다. 수시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전화나 요청을 받을 일도 없었고, 도리 때문에 해야 하는 일들도 없었다. 부모님과 화평하지 않은 게 하나님 앞에서 많이 불편하고 맘이 무거워서 남편에게 관계를 회복해야 하지 않겠냐는 요청을 하거나 부모님에 관한 얘기를 꺼내면 남편은 불편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다. 신혼 때 언젠가는 온몸에 새빨갛게 열꽃이 피었다. 병원에 가니 피부에 걸리는 감기 같은 거라고 했다. 의사도 논문을 쓸 때 이외에는 거의 본 적이 없다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기는 거라고 했다. 마음이 많이 상한, 아직은 회복하고 싶지 않은 남편을 그대로 존중하기로 했다. 그럴 때 남편은 더 편안해 했다.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우리는 절반의 독립을 했다. 남에게 영향력을 끼치길 좋아하시고 만나고 전화하는 것이 누구보다 중요한 분들에게 반년 넘게 소식을 끊었으니, '우리 아들은 착하다'는 기대를 처참히 짓밟은 셈이다. 그렇게 아들에 대해 철저히 실망시켜 드린 것이 부모님 안에 쌓여있는 수많은 요구를 봉인하게 했다. 그러나 부모님 뜻이 옳아서 그대로 따르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 봉인은 순식간에 해제되어 본인 뜻대로 하길 요구하신다. 하지만 격정적인(?) 시간을 통해서 우리도 조금은 강해졌고 부모님의 요구에 덜 눌리고 덜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많은 결혼 서적에 보면, “부모를 떠나 배우자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룸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첫 번째 해야 할 일로 떠남을 꼽는다. 자식은 잘 떠나야 하고, 부모는 잘 떠나보내야 한다. 우리에게는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부모가 있었고 잘 떠날 줄 모르는 우리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겪은 시간은 부끄러운 차선이다. 결혼 전에 목사님과의 대화에서 가정의 최고 결정권자는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남편과 아내, 셋째는 부모님이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이 셋이 같은 뜻이면 최선이지만 다를 때는 우선순위에 따라 다음 순위권자의 의견이 배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차선이다. 우리는 결혼 전에 독립에 대해 미리 깊이 고민하지도, 준비 하지도 않아서 부끄러운 갈등을 겪었다. 그런 시간을 지내고도 여전히 부모님으로부터의 완벽한 독립을 성공하지는 못했다. 아기를 낳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를 독립된 가정으로 존중해 주시도록, 의견을 주시는 것은 언제나 반갑지만 결정하는 것은 우리라는 것을 인정해 주시도록, 거듭거듭 요청하고 부탁드리고 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 배우자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그동안 늘 함께였던 부모님으로부터 잘 떠나와야 앞으로 늘 함께할 새로운 동반자와 잘 연합할 수 있고 그래야 진정한 한 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독립은 결혼의 첫 번째 스텝이다. 잘 떠나와야 행복하게 결혼할 수 있다. 떠나라! 반드시 결혼 전에! 미리! 건강하게! 그것이 나의 짝꿍이 될 배우자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선물이기도 하며, 좋은 가정을 세우는 건강한 토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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