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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독립 후 부모님께 재의존하는 맞벌이부부의 사례_김현진

[소리] 2016년 두 번째 소리- 0304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독립 후 부모님께 재의존하는 맞벌이부부의 사례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는 말이 있다. 부모님의 사랑과 수고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아무리 학교에서 배우고 책이나 영화를 통해 접한다 해도, 직접 부모가 되어보기 전까지는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나역시 아이를 낳고 육아의 세계에 들어선 후에야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의 첫 소절이 비로소 절절하게 와 닿았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닳도록 고생하시네.” 나흘 동안 진통을 하고도 결국 수술로 첫째를 낳았을 때의 괴로움, 그 길고 긴 고통도 어느덧 다 잊고서 둘째까지 낳았다. 그러고는 매일 졸린 눈과 무거운 몸을 견디며 밤낮으로 젖을 먹이고, 혹시 추울까 아니면 더울까 노심초사 애쓰며 지냈다. 옛날보다 여러모로 편해진 세상 이지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손발이 닳도록 고생한다는 노랫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 생명을 잘 기른다는 것이 이렇게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일일 줄이야! 그리고 하나의 인격체로 잘 성장하게 하려면 가르쳐야 할 것도 많고 보듬어줘야 할 것도 많고,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게다가 한두 해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는, 최소 이삼십년은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이 부모 노릇이구나 싶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나는 내가 스스로 큰 줄 알았다.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적어도 나는 공부를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며 부모님,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착한 딸이었다. 게다가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특별히 부모님 신경 쓰시게 할 것 없이 제 갈 길을 알아서 찾아갔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인 면에서까지 독립하진 못했지만 다른 학교에 비해 등록금이 적은 편이었으니, 이정도면 효도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게 아닌가 자부했었다.

그랬던 나는 지금 4년째 친정 윗집에 살면서 아침에는 부모님께 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며 저녁에는 엄마가 만들어주신 반찬들로 식사를 하고, 심지어 출근길에 종종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주십사 부탁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라면 누가 아이를 돌봐줄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아이가 자라는 데는 엄마든, 아빠든,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나 베이비시터든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과 헌신이 필요하다. 누구나 사랑과 정성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겠지만, 솔직히 아이엄마 입장에서 어느 누가 내 가족만큼 신뢰할 수 있으며 내 가족만큼 내 아이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1순위로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친정 엄마였다. 당시에 시어머님은 이미 시누이의 아이를 봐주고 계신 상황이라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웠다. 게다가 아무래도 내 입장에서는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애 봐준 공은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여간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아니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더욱 늙게 만드는 일이 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나 어찌하랴. 그래도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사람이 엄마인 것을. 엄마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엄마 역할을 가장 잘 해주실 분이므로. 친정 부모님도 나의 이러저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계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지만) 흔쾌히 아이를 맡아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때 우리 신혼집과 친정은 차로 30~40분 정도의 거리가 있었는데, 운 좋게도 복직 직전에 친정 윗집으로 이사를 할 수가 있었다.

 

주변에 있는 맞벌이부부의 경우, 양가 부모님이 멀리 사시거나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타인이나 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급기야 부부 중 한 명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거리가 멀어 주말에만 아이를 데려와야 해서 친정 부모님이 지치시거나 아이도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적어 애착 관계가 덜 형성되는 경우도 종종 봤다. 그런데 나는 친정 부모님이 직접 아이들을 봐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데려와 우리가 볼 수 있고 그러면서도 수시로 크고 작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빠가 퇴직하시는 덕분(?)에 친정 엄마 혼자 아이를 돌보셔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부담이 좀 덜어졌다. 당시 엄마 건강이 안 좋았다가 막 회복되신 후라 사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든든한 지원군이 한 명 더 생겨서 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먹이고 씻기는 등의 일은 주로 엄마가 하셨고, 함께 놀아주고 재우는 건 아빠의 몫이었다. 딸만 둘을 키우셨던 아빠는 뒤늦게 아들을 키우는 재미가 생기신 것 같았다. 지금 다섯 살인 첫째 아이에게는 할아버지가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재미있는 선생님이다.

 

첫째가 두 돌이 지나니까 한결 편해지고 세 돌이 지나니까 다 키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친정 부모님께도 약간이나마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직접 키우지도 못하는 주제에 염치도 없이 하나는 외로우니 둘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와 남편에게, 친정 엄마는 너희가 둘째 생각이 있다면 내가 체력이 돼서 봐줄 수 있을 때 얼른 낳아라.”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 하여 작년 가을 우리 집엔 예쁜 딸이 태어났고, 두 배의 행복과 두 배의 즐거움과 두 배의 고단함과 두배의 염려가 시작되었다.

 

첫째 때는 7개월 정도를 쉬고 복직했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오래 쉴 수가 없었다. 백일이 갓 지난 아기를 놔두고 출근하는 마음이 어찌나 무겁고 착잡했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자아실현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그 때문에 자기 아이를 자기 손으로 키우는 것을 포기하는 엄마가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 이러저러한 경제적인 이유로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이리라. 정말 우리나라의 모든 워킹맘을 위로하고 응원하고픈 심정이다.

 


 

친정 부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시는 것에 대해 가장 감사한 점은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물리 적인 양육뿐만 아니라, 인성적인 면에서도 사랑으로 잘 돌보아주시고 가르쳐주시며 신앙의 유산도 자연스럽게 물려주신다는 점이다. 아이가 커가는 과정, 그 안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함께 나누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점들이 더 풍성해진다는 것도 감사하며, 또한 이것이 부모님 당신들께도 기쁨과 즐거 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다만 우리 부부가 육아에 지쳐 늙을 분량을 부모님께 미룬 것 같아서 죄송하다. 부모님의 예전 사진들을 보다 보면, 두 손주를 돌보는 사이 더 많이 늙으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쩌다 감기라도 걸리시거나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실 때는 가슴이 철렁한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건강하시기만을 기도하며 병원에 보내드리고 맛있고 좋은 것을 사드리는 게 최선이라는 사실 역시 죄송할 따름이다.

 

지난 3년을 뒤돌아보면 하나님은 나에게, 그동안 가족과 떨어져 산 탓에 부모님과 동생에게 살갑게 굴지 못하고 덜 친밀했던, 어쩌면 다소 이기적이기도 했던 나에게, 이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가끔 잔소리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신 것 같다. 부모님께 감사해 하고 미안해하며 지혜를 배워가고 허물을 덮어주며 성장하는 시간을 갖게 하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직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언제나 한결 같은 부모님의 사랑과 수고에 감사하고 나의 아이들과 나의 부모님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서로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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