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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지금, 사랑으로 행복하길_김재환

[소리] 2016년 세 번째 소리- 0506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지금, 사랑으로 행복하길




 

  저는 총신대학교 08학번 김재환이라고 합니다. 아직 젊은 제가 다른 주제가 아닌 말기암환자 로서의 제 이야기를 하게 되어 쑥스럽네요. 저는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기에 학교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때 간암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201212월에 간암절제술을 받았습니다. 8개월 후 암이 양쪽 폐로 전이되어서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더 이상 의학적으로 방법이 없어서 지금은 말기암환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25살에 수술 받고 지금 29살이니, 4년 가까이 암 투병을 해왔네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말기암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후, 사랑이 그대를 부르는 순간이라는 수필집을 냈고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러면서 지난 제 삶을 돌아볼 수 있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알아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IVF에서 배운 가장 기본적인 묵상 훈련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살아간다면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도 마음을 지키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잘 것 없는 말기암환자가 쓴 이 글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죽음에 관해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인데 제 직업은 말기암환자입니다. 직업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요즘 가장 주된 일은 암환자로 사는 것입니다. 돈을 번다든지 뭔가를 만들어 내거나 고치거나 교육하는 일은 아니지만, 암환자로 버텨내야 하고 살아야 하는 게 지금의 제 일입니다. 환자라서 도움만 받는다고 너무 괴로워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줄어들고 홀로 버티는 시간이 많아도 너무 외로워하지 않으려고요.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선에서 하루를 버텨내고 살아내는 게 오늘 제게 주어진 소임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합니다. 밥 챙겨먹기, 운동하기, 오일 바르기, 쉬기, 너무 내 안에만 갇혀 있지 말기, 그리고 내가 살아온 삶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에게 전달하기 등등. 내일을 꿈꾸기 전에 오늘 제가 해야 할 일을 찾아보니 할 게 많더라고요. 세상이 넌 할 수 없어!’라고 포기해도, 제 인생에는 아직 오늘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서부터 암과 함께 자랐습니다. 엄마는 임신 중에 암 발병 사실을 아셨고 제가 엄마라고 부르기도 전에 항암치료를 하다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제게도 암이 찾아왔을 때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복부를 20cm나 째고 간을 잘라내는 수술과 회복의 과정이 너무 아팠거든 요. 운명을 원망하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엄마까지 원망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았을 텐데 왜 낳았느냐고 말이죠. 그러다가 눈물이 나더라고요. 임신 중에 생긴 암때문에 자신을 죽여서까지 제게 삶을 주신 엄마를 원망하다니, 너무 염치가 없어 보였어요. 그 이후로는 아파서 짜증을 내더라도 하늘에 원망하는 건 차마 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 항암치료를 받기 전에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면 3개월도 살기 힘들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암이 전이되자 의사는 내게 임상항암치료를 권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임상과정은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병원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그 말대로 따랐다면 어쩌면 임상항암치료를 받다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암 치료에 관해서는 100프로 확실한 방법이 없기에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의사와 환자와 보호자가 서로 긴밀히 협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함께 알고 간다면 결과가 어떠하든지 환자가 선택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후회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받으며 버텨왔는데 나아지는 게 없다는 걸 알면, 점차 인간관계가 단절됩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게 불편해지고, 지나가는 말이라도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무기력해집니다.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콱 죽어버릴까, 어차피 나아지지도 않는데 남은 인생 막 살아 볼까, 세상을 향한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 막연한 현실과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답답함에 모든걸 다 놓아버리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듭니다. 그럴 때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입니다. 사실 암은 정신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에 몸의 문제만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암으로 고통 받는 제 자신보다 사실은 우리 아빠가 더 아픕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요. 아빠는 아빠의 어머니와 아내를 모두 암으로 떠나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들이 암환자가 되어버렸죠. 그렇게 아빠는 평생 사랑하는 사람들을 암으로 떠나보내는 보호자입니다. 제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신 아빠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아빠 때문에 살아보겠노라고, 다시 힘을 내려고 애쓴 적이 많아요. 저 자신보다 아빠를 위해서 제가 안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말기암환자는 죽기를 각오하고 배수진을 칠 것인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그 선택 앞에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기로 했습니다. 순간에 진실 할 수 있기를, 현실을 잘 알 되, 다가오는 현실을 마주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살아남기보다는 살아 내기를 선택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원은 어떻게든 제가 낫는 것이겠지만, 현실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습니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남은 시간을 살 것인가 아니면 살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인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죽음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은 이 순간을 진지하게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이라는 시간 앞에서 잘 살아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도 이렇게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냈으면 좋겠습니다. 더 오래 사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으로 만족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제가 배운 건 얼마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건데, 남은 시간이 아무리 촉박하다고 해도 어떻게 사느냐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게는 얼마나 사느냐보다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렸거든요.

 

  제가 기침 때문에 잠을 설치는 것을 알게 된 친구 녀석이 난방텐트를 사서 보냈답니다. 기침은 멈추지 않았지만 제 마음은 이미 기침이 멈춘 것처럼 기뻤어요. 난방텐트를 사줘서가 아니라 제 아픔에 관심을 가져줘서, 제 고통을 같이 나눠주어 정말 좋았어요.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건 어떤 무언가가 아닙니다. 아픔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아픔이 많은 시대입니다. 몸도 마음도 아픈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기술은 발달했는데 사람들 살기가 더 힘들고, 병원은 많아졌는데 아픈 사람들은 넘쳐나죠. 어쩌면 자신이 아픈 줄도 모르는 시대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무관심해져 갑니다. 이런 시대에 제 아픔을 함께 나눠지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제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요!

 

  생각과 몸이 다르다는 걸 정말 많이 느낍니다. 봄이 오면 기침이 멈추지 않을까, 열심히 운동을 하면 건강을 되찾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기침에 피가 섞여 나오고, 운동을 하고 있지만 가슴은 여전히 아프고, 봄이 왔지만 제 몸은 따뜻하지가 않습니다. 생각과 몸이 다를 때, 이상과 현실이 다를 때, 그렸던 그림이 달라질 때 저는 묻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고요. 현실 앞에서 결국 제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무력감. 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진 단어입니다. 무력감을 인정하면 죽을 거 같이 괴로울 것 같았는데 그냥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울기 시작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없고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자리가 원래 제 모습입니다. 그러니 저를 좀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러고 나니 현실과 이상 어느 것 하나 달라진 게 없지만, 그 자리에 서있는 저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묻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가 주어졌기에 오늘을 살 뿐입니다. 이젠 너무 많은 것을 해야 할 의무도, 너무 대단한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할 책임도 없습니다. 주어진 오늘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일이 제가 할 일입니다.

 


 

“...너는 언제 내게서 떠나줄 거니. 내가 먼저 떠나야 그때야 사라져줄 거니. 같이 살자는 말을 하기엔 내가 너무 아프다. 떠나달란 말을 하기엔 그건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내가 먼저 사라지기엔 그건 너무 슬픈 이야기 네. 그러니까 부탁할게. 나랑 같이 있어도 되니까, 날 너무 힘들게 하진 말아줬으면 해...- 암에게 쓰는 편지

 

가슴 통증이 심합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울 거면 빨리 데려가 달라는 울부짖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 깊숙이에서 올라옵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솔직히 하루를 견디는 게 너무나도 버겁습니다. 그래도 의지가 닿는 한 버텨보려고 합니다.

 

학자금 대출과 사망 보험금을 어떻게 할지 제 의견을 남겨두려고 합니다. 장례 절차에 대해서도 써놓으려 고요. 아직 유서를 작성하진 못했는데 이건 마음의 준비가 좀 더 필요한 거 같아요. 마음의 준비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삶의 마지막을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게 한편으로는 축복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고 있다는데, 저는 삶을 포기한 느낌이 아니라 뭐랄까, 표현하기 힘든 복접하고도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나보면 찰나뿐인 인생이라는 여정, 지금 저는 그걸 온몸으로 받아들여가는 느낌이 들어요. 삶의 여행에서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두렵기도 하면서 한편 으로는 설레기도 합니다. 저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믿거든요. 죽음이란 이 세상에서 끝일지는 몰라도 죽음 이후의 세상과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이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살아온 제게 이런 말을 전합니다. “그 동안 정말 잘 버텼어. 수고했다, 재환아. 우리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도 잘 살아내 보자.” 여러분께도 인사말을 남기고 싶어요. “그대의 오늘이 그리고 지금이, 사랑으로 인해 행복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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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월 셋째주 IVF학사회 소리지 업데이트 계획]

116(월요일) - [죽음을 배우다] 지금, 사랑으로 행복하길

117(화요일) - [죽음을 배우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118(수요일) - [죽음을 배우다] 이제 교회인 우리부터 죽음을 이야기하자

119(목요일) - [죽음을 배우다]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장례의식과 절차에 관한 조언

120(금요일) - [죽음을 배우다] 죽음을 기억하고 배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