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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노조,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_이상엽

[소리] 2016년 첫 번째 소리- 0203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노조,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래, xxx씨가 서기를 하면 되겠네!”

가만히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던 계획은 틀어져 버렸다. 2007년 가을에 시작된 우리 회사의 노조에서 내가 서기를 맡게 된 것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30여 명 정도의 직원으로 구성된 외국계 회사의 지사였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본사에서는 영업 실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압력을 넣어서 사람들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게 하려는 인원 감축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이 지사 사람들에게 발각되었고, 몇몇 사람들이 산업별노조에 접촉하여 노조가입 지원서를 들고 왔다.

비슷한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을 산업별노조라고 한다. 산업별노조는 직종과 기업을 넘어 전국적인 규모로 조직된 노조이기 때문에, 단위사업장의 직원 수가 많지 않을 경우 산업별노조에 가입하게 되면 노조에 가입하는 즉시 전국단위의 노조의 힘을 사업장에 끼칠 수 있게 된다. 흔히 들어서 알고 있는 금속노조, 사무노조, 운수노조 등이 산업별노조이다. 이렇게 산업별노조에 가입하게 되면, 산업별노조의 위원장이 우리 회사의 노조위원장이 되어서 우리 회사의 사측과 협상에 임하게 된다. 때로는 TV에 자주 나오는 그런 사람이 우리 입장을 대변해서 사측과 마주해 앉게 되는 것이다.

 

사실 외국계 회사의 분위기는 약간 개인주의적이 라서 많은 사람이 노조활동에 동참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본사의 인원 감축 계획이 알려진 덕분 (?)에 대부분의 직원이 노조에 가입하였고 하나가 되어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 노조를 세웠어도 큰 변화는 없었다. 크게 투쟁이라는 것을 바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고 처음 에는 단지 조끼만을 입을 뿐이다. (이 조끼를 입는 것의 의미는 <송곳>이라는 만화에서 잘 다룬 것 같다.) 가끔은 회사 현관 앞에서 출근 전과 점심때 모여서 노래를 부르거나, 가끔은 회사 건물 1층에서 노래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 정도였다.

 

노조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시기는 단체협약의 시기이다. ‘단체협약은 노조와 회사가 체결하는 근로 계약 문서이며, ‘단체협약근로기준법보다 우선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조차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이 많기 때문에 적어도 최소한 이것만은 지키자는 의미에서 근로기준법이 많이 강조 되고 있다. 하지만 더 광범위하게, 더 좋은 내용으로 단체협약을 만들게 되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범위보다 훨씬 더 좋은 복지 혜택을 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만약 단체협약상에서 주4일 근무를 한다고 합의가 되면(합의가 될 리가 거의 없지만), 그 사업장은 주4일 근무를 할 수 있 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단체협약의 시기가 되면 여기저기에서 노조의 활동(?)을 볼 수 있게 된다.

 

노조를 처음 설립하고서 중요한 것은 회사가 새롭게 설립된 노조를 인정하는 것인데, 일단 노조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노조는 단체협약권을 가지게 된다. , 회사를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회사와 노조가 마주하여 단체협약을 논의 하는 순서는 거의 정해진 수순을 밟는 것 같다. 먼저 노조 측에서 준비한 단체협약안을 제시하면 회사가 그것을 반대하고, 노조가 수정하여 제안하면 회사가 반대하고, 준법 투쟁을 시작하여 다시 제안 하면 회사가 다시 반대하고, 회사가 괴로울 만한 내용들을 기사로 뿌리고 다시 회사에 제안하고 회사가 이를 반대하고, 하다하다 안되면 결국 파업에 들어가고... 지루한 반복이 이어진다. 노조의 한 사이클을 한번 경험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뉴스에서 나오는 단어 몇 가지만 들으면 , 이제 이거 하겠네”, “다음에는 이런 수순으로 뉴스가 나오겠네”, “에고고, 저렇게 되면 파업까지 가는데...”라고 어느 정도 순서를 예측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우리 회사의 경우는 본사의 인원 감축 계획이 드러난 상태였기 때문에 먼저 단체협약을 만드는 쪽으로 진행되었는데, 단체협약이 시작되면 모든 노조원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인원만 참석하도록 되어 있다. 노조위원장 및 지부의 임원단,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회사 측도 정해진 사람만 참석을 하고, 여기에 발언권이 없는 서기가 노사 각 한명씩 들어와서 회의록을 기록하게 된다. 서기의 역할은 단체협약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노조원들에게 단체협약테이블 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한편, 노사 간에 합의한 내용이 서로 간에 맞게 이해를 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회의록을 남기는 일이다.

 

이렇게 나는 발언권 없는 서기로서 단체협약이 이루어지는 테이블의 시작과 끝을 모두 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노조 측에, 때로는 회사 측에 답답해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주간의 회의 끝에 우리는 회사 측과 합의에 이를 수 있었고 파업 같은 강경책은 사용하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본사의 인원 감축 계획에 대해서는 명예퇴직제를 만들어서 원하는 사람들이 보상을 받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 수가 있었다. (지나서 생각해 보면, 사측의 몇몇 분들은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이 잘 풀렸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만들어진 명예 퇴직제는 회사의 원래 제안보다도 더 좋은 내용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사실 단체협약이 이루어지는 동안에 회사를 압박하기 위하여 이런 저런 전단을 인터넷에 올리고 언론에 흘리고 했던 부분과, 회사 측이 노조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이런 저런 달콤한 제안을 내어 놓은 것들을 여기서 다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짧은 기간이나마 노조활동을 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 너무나 다른 양측의 모습에 혼란을 겪은 부분도 있었다. 처음에 노조활동에 동의를 한 것은 본사가 명백히 너무나 부조리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압박 하여 퇴직을 시키려는 모습이 으로 보였기 때문이고, 노조의 활동으로 그러한 대상자가 된 사람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에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갈등했다. 노조와 회사 측 모두 너무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서로 밀고 당기고 헐뜯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과연 이 길이 옳은 길인가 의심스러웠다. 협상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과연 이루어지는가 고민했다.

 

그 고민을 해결하고 싶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 다녔다. 진보적인 활동을 하는 형에게도, 그리고 당시 같이 활동을 했던 산업별노조의 임원들에게도 물어보았다. 노조활동이 대승적 차원의 활동이 아니라 생각했던 것보다는 시시한 개인의 이익만을 놓고서 밀고 당기고 하는 것 같다고, 더 큰 이상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때 그들에게서 얻지 못한 대답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아마도 <송곳>에 서는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노조는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라고 말이다.

 

<미생>을 보면서 나의 신입사원 시절이 떠올랐다 면, <송곳>을 보면서는 그때 노조원으로서 활동했던 것이 하나하나 자세히 떠올랐다. 고민하였지만 답을 얻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그때 배웠던 것들까지 전부 다 기억이 났다.

 

역사가 발전되어 온 것을 보게 되면, 개인들의 사소한 이익을 위해서 싸움이나 전쟁이 일어나고 그 결과 예상치 못한 진보가 이루어진 적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시기에 어떤 사람은 이쪽의 이익을 대변 하고, 어떤 사람은 저쪽의 이익을 대변하며, 그 사이에서 자기의 이익에는 상관없이 자기를 희생하여 한쪽의 이익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또한 변화를 만들 수 있었고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를 만들어 오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될 것 인지 판단해야 한다. 90년대 중반에 방송에서 하종강 교수를 처음 보았을 때가 기억이 난다. 대단히 깔끔하게 생긴 사람이 대단히 논리적으로 노조의 필요성을 기자들 앞에서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생활하고 계시면 모두 노동자입니다.”였다. 그렇다. 내 정체성은 월급쟁이에 사무노동자이다. 요즘 회사원에게 본인의 정체성을 물어보면 노비니 종이니 하는 자조적인 답변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노비와 종에게 필요한 것은 해방이었지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회사원인 우리를 현대판 노비요 종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우리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다. 이제까지 나는 직장인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많은 조언을 하고 살았다. 내가 그들에게 조언해 주는 내용이 혹시 회사 측의 입장만을 대변해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노조를 만들면 회사가 망한다고 말하는 모 기업이 있다. 극단적인 사례가 될 수 있지만 (그리고 현대 자동차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현대자동차 노조는 노조가 있어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노조의 활동으로 급여의 인상률이 결정되고, 일주일의 하루는 가족의 날로 지정 하여 무조건 일찍 퇴근한다. 노조원들의 근무환경이 보장이 되면서 회장 일가에게 큰 이익도 만들어 주고 있으니 노조 때문에 회사에 손해가 난다는 그 기업과는 반대 지점에 서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 다. 하지만 그 이익이 회사 안으로만 흘러들어간다는 점과, 회사에 있는 비정규직을 같은 우산 안으로 포함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비판받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노조와 회사가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지 노조나 회사가 없어져야 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직장인멘토링모임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몇 번받았다. “직장에 들어가면 노조에 가입을 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본인에게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가입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가입하지 마세요.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송곳>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자기의 싸움이 아니라면 왜 개입하려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송 곳>의 이수인은 멈추지 않고 본인이 송곳이 된다. 현실세계에서 이수인의 모델이었던 김경욱 노조위 원장은 결국 복직이 되지 못했다. 각자의 삶에서 본인이 송곳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부르심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회사도 합리적으로 대응하고, 노조도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그런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좋은교사운동처럼 좋은노동자운동이랄까. 지금 아주 작은 걸음으로 시작하고 있는 직장멘토링모임이 나중에 이런 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꾸어 본다.

 

한번쯤 크리스천 기업가들에게 여쭤보고 싶다.

"운영하시는 사업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직원이 노조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하면 어떤 느낌이 들 거 같아요?"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솔직한 느낌이 현재의 노조에 대한 정직한 반응일 것이다. 언젠가는 이 느낌이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어쩌면 크리스천 기업가라면 솔선수범하여 사업장에 노조를 만드는 그런 날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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