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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사랑하기 그리고 사랑하지 않기

[소리] 2016년 첫 번째 소리- 0203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사랑하기 그리고 사랑하지 않기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기 전, 교회에서 성도들이 모여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신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한 집사님이 본인의 이야기를 하시고는 아직 사람들을 잘 모르신다며 저를 지목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성도들 앞에서 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담임 목사님이 저를 소개하시길, 참 뚝심 있는 친구라 고, 한 회사를 15년이나 다니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소개 말씀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참 어려웠습니다. 사실 그 즈음 정말이지 출근하기 싫은 마음이 머리끝까지 차 있었고, 그날도 2015년 마지막 업무를 겨우겨우 힘겹게 끝내고 교회에 갔던 거였거든요.


  사는 얘기를 하다 보니 속에 잘 다독여 두었던 힘들었던 마음이 툭 건드려졌습니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와 민망함을 어쩌지 못하고 서둘러 대충 마무리하고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한 직장에서 15년을 일할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내심 15년 근속이 뭔가 대단한 훈장인 것처럼 뿌듯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거의 매일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겨우겨우 출근을 하는 처지에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할 수는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저 한사람의 경험을 일반화하기에는 각자 부딪히는 상황이 그 사람들 숫자만큼이나 다양할 텐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조언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인가요.

 

  그저 힘들었던 것은 힘들었던 대로 그 상황을 버티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던 것이 무엇이 있었나 돌아보면서 제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이라면 그럴 수 있겠구나 공감하는 정도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저는 20015월에 지금 다니고 있는 기독교 출판사에 입사해 거의 만15년을 일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한결같이 씩씩하고 행복하게 회사생활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었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상황에 대한 분노로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와 사표를 던지고 싶은 마음과 씨름하며 보낸 시간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를 정하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꾸준히 하는 성격 덕분에, 혹은 확정되고 안전하다 여겨지지 않는 한 섣불리 새로 시도하기를 두려워하는 기질 탓에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 면도 있을 겁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일의 성과가 눈앞에 바로 보이지 않는다고 단칼에 해고해 버리는 아주 나쁜 회사도 아니고, 불의한 일을 지시하는 악한 상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입사하고 초기에는 한동안 업무 자체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처음 입사해서 맡았던 업무는 도서 회원을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일들은 할 만했는데 회원 관리는 전화 통화를 많이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허걱, 전화 울렁증이 있는 저에게 그런 일이 맡겨지다니요! 저는 가까운 사람하고도 5분 통화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랍니다. 그런데 생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분들에게 전화를 걸어 다정하게 이런저런 안부도 묻고 불편하게 돈을 보내란 말도 해야 한다니, 정말 아찔했습니다. 전화를 걸 때마다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서도 속으로 얼마나 받지 마라 받지 마라 주문을 외웠는지 모릅니다.

 


 

  어쩌다 여기에 있게 되었을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내 기질과 동떨어진 이런 일에 나를 보내셨을까... 게다가 편집이나 디자인처럼 일을 마쳤을 때 어떤 결과물이 눈앞에 딱 보이는 일도 아니다 보니 열심히 한들 티도 안 났습니다. 오늘이고 내일이고 같은 일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데, 그 일이란 것이 뭔가 비전문적이고 조금은 하찮은 일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고민 했습니다. 누가 내 일에 가치부여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일에 어떤 가치를 둘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회사 안에서 부여 받은 업무나 역할이 아니라 내가 여기에 어떤 사람으로 설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선 나랑 어울리지 않는 이 자리가 나를 성숙해갈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겠구나, 내 인격의 부족한 부분이 조금 다듬어지지 않을까, 그러니 견뎌보자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부여한 역할이 아닌 스스로 어떤 역할을 부여하자 생각했지요. 그리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이 회사에서 화목하게 하는 사람으로 서고 싶습니다, 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매일 부딪히는 일들을 감당해 가다 보니 하찮게 여겼던 일들이 귀하게 여겨지고 힘겹게 통화하던 회원님들과 오랜 우정을 쌓게 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화목케 하는 사람으로 서고 싶다고 했던 기도는물론, 감당하기 힘든 육체 적, 정서적 소모로 내가 괜히 그런 기도를 했다고 후회하기도 하지만-회사의 전반적인 일의 흐름과 사람들을 살피는 역할로 업무가 확장되어 응답받고 있습니다.

 


 

  그만두고 싶었던 또 다른 경우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여겨질 때였던 것 같습니다. 일한 것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특히 다른 사람과 비교해 내가 덜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이 될 때는 억울하고 속상하지요. 저는 경쟁심이 유별나서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거나 빨리 승진을 하고 싶다거나 하는 욕심을 부렸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덜 하지는 말자, 하는 다짐으로 꽤 열심히 일을 해온 것 같습니다.


  회사에선 누구의 일이라고 못 박기 애매한 일들이 종종 생기지요. 대부분 그 일을 맡지 않으려고 치열 하게 밀어냅니다. 그럴 때도 제 일정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은 한 맡아서 처리하곤 했습니다. 회사 전체의 업무가 흘러가게 하고자 구멍 난 부분들을 메우느라 힘에 지나도록 일한 시간도 상당하지요. 고맙다는 공치사는 듣지만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은 있었을까요? 글쎄요.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간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 경우, 과장에서 차장이 되기까지 6년 정도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은 같이 과장으로 있던 사람이 차장이 되고 부장까지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공평치 않다는 것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만 두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이 맞는 거였는지 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비교를 제쳐두면 여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 저를 또 눌러 앉히곤 했습니다. 어느 순간 제 일을 사랑 하게 된 건가 싶습니다.


  같이 일하는 후배 동료들이 가끔 그런 질문은 합니다. 15년을 어떻게 견뎠냐고. 그럴 때 농담처럼 그러나 진심을 담아 이렇게 답을 하곤 합니다. “회사를 너무 사랑하지 말라. 일을 대충대충 해라, 혹은 동료들과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라, 뭐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먼저 회사에 대한 기대를 조금 덜 하자는 것입니다.


  기독교 서적을 출간하는 회사로, 직원들이 그 실체는 어찌되었든 공식적으로는 기독교인인 회사다 보니 설립 동기도 좋고 그에 맞는 운영 철학을 갖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회사를 기대하고 입사지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회사도 세상이라는 악한 구조 가운데 있고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경쟁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도 무능한 사람, 얌체 같은 사람, 게으른 사람, 이상한 사람들이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만큼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합리적이지 않은 의사 결정이 수도 없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처음 갖고 있던 기대가 무너지고 실망하게 되고 결국 퇴사를 하는 직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다 거기서 거기니 밥벌이 하자면 악한 것에도 눈 감고 귀 막고 그저 사는 거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서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안에서 어떻게 선한 열매를 맺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루어진 천국이 아니라 힘써 경작해야 겨우 소출이 있는 척박한 곳에 있기 때문에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개인의 삶과 직장에서의 삶을 분리하기, 혹은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한 말입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을 강요하는 악한 회사도 많이 있겠지만, 일에 매몰되어 스스로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연차가 높아지면서 감당해야 하는 일의 영역도 넓어지고 살펴야할 사람도 많아지다 보니, 저야말로 계속되는 야근에 신경을 온통 회사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밴드니 라인이니 하는 모바일 커뮤니티들에 회사 계정들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습니다. 알림을 꺼두지 않으면 밤이고 주말이고 업무와 관련한 사안들이 툭툭 튀어나와 일을 멈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정말 열심히 애써야 겨우 가능한 것 같습니다.


  좀 억지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든 일에서 빠져나오겠다는 노력으로 사무실과 물리적인 거리두기를 합니다. 집은 사무실과 30분은 떨어져야 한다, 주말에 회사 근처에서는 약속도 잡지 않는다, 이런 선언적 말들을 합니다. (물론 사무실 근처 집값이 제 월급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높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지금의 왕복 두 시간 출퇴근을 하게 한 주요 이유이긴 합니다만.) 휴일에 사장님이 보내신 문자를 무시하는 객기도 부려봅니다. (물론 다음 날 사장님의 야단, 잔소리, 질책은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배짱이 있어야 하지요.) 드로잉, 베이킹, 댄스,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취미활동에 빠지기도 합니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확실하게 일에서 벗어나겠다고 큰 비용을 들여 아예 외국으로 여행을 갑니다.


  회사 일과 그 안에서 생기는 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눌린 마음과 영혼에는 환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사람마다 방법은 다를 수 있겠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이라는 고된 삶의 현장을 그래도 덜 힘들게 견뎌가려면 말이지요.


  그리고 저의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15년을 버티게 해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주일에 만나는 교회 식구들 앞에서 그 무능하고, 게으르고, 얌체 같고, 이상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풀어놓고 억울한 일을 토로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같이 욕해 주기도 하고, 수고했다 위로해 주기도 하고, 더 견뎌보자 격려를 해주기도 합니다. (제 경우, 같이 일하는 동료들 가운데에도 이런 나눔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있어 참 다행입니다. 지금은 잘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몰래 뒷담화 하는 것을 넘어 함께 기도하는 동지들이 되어주기도 했거든요.)

모르겠습니다. 이 사랑하기와 사랑하지 않기를 얼마나 계속할 수 있을지... 꾸역꾸역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일도 지겨운 밥벌이의 현장으로 가야겠지요. 얼마나 전쟁 같은 상황이 많이 벌어질까요. 매달 받는 월급을 수액삼아 견디는 것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다른 그림과 힘을 기대하며 오늘도 기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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