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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갈림길 앞에 선 어느 직장인의 고민

[소리] 2016년 첫 번째 소리- 0203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갈림길 앞에 선 어느 직장인의 고민

 


 

뭔가 잘못 된 것이 틀림없다.

 

  어릴 적, 대학시절에 생각했던 직장인의 삶은 이런 게 아니었 다. 물론 돈이나 받으며 월급도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절대 아니다. 시간제 알바도 많이 해봤고 군대에서도 행정병을 했기 때문에 사무직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처럼 엉망진창이 되어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고 당장이라도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어야만 할 것 같다.

 

  오늘 하루 또 어떤 즐거운 일이 일어날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었는데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 자체로 이미 고통스럽다. ‘... 다시 시작한 하루... 오늘은 또 어떻게 보내야 하지... 아직 수요일이라니 주말은 대체 왜 이렇게 먼 거야...’ 기상 시간이 대학생 때에 비해 2시간가량이나 빠른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회사에서 보내야 할 하루가 너무 걱정되기 때문이다. 통근버스를 타고 1시간이 넘게 달려 도착한 회사, 그곳에서의 생활은 아침 8시에 체조와 함께 시작되어 저녁 8시 정도가 되어야 끝이 난다. 식사시간 2시간을 빼도 10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셈이다.

 

  아침부터 전화벨은 시끄럽게 울린다. 바쁠 때는 보통 10~15 분 당 한 통씩은 오거나 걸어야 한다. 가장 통화가 많았던 어느 날은 세어 보니 40통을 기록한 적도 있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 이다가 1시간의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이 그나마 쉴 수 있는 시간 인데, 종종 이 시간마저도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몇 단계 위의 보고가 있다거나 당장 투입되어야 할 부품이 분실되거나 누락 되거나 고장이 발생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업무에 착수해야 한다. 단지 내가 맡은 업무만 하느라 이렇게 바쁜 것만도 아니다. 내가 배우고 알고 있는 R&R(Role and Responsibility)에 정해진 것뿐만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다양한 업무가 내 앞에 떨어진 다. 다행히 이전 직장과 다르게 개인적인 심부름까지 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챙겨야 하는 잡무는 언제나 존재한다.


 




 

  팀의 막내였을 때는 각종 보급품(?)의 분배 및 물건 옮기기 등의 잡일을, 총무일 때는 회식장소 선정, 참석자 확인 등의 업무를 해야 하고, 지금은 업무와 연관 있지만 돌아가면서 맡는 자잘한 잡무 등을 떠맡고 있다. 이제 조금 더 경력이 쌓인다면, 인턴이나 신입사원의 교육 멘토로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업무들뿐 아니라 수시로 다양한 요구를 하는 전화가 걸려온 다. 업무와 연관된 질문, 예결산에 대한 질문,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질문,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질문, 가끔은 개인적인 질문까 지... ... 그러는 중에도 내가 원래 맡은 업무는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물론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자신의 업무가 누락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언제나 본인의 몫이다. 다른 업무로 인한 지연은 핑계일 뿐이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자. 어떤 면에서 바쁘게 일하는 것 자체가 지금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분노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아닌 것 같다. 바쁜 업무는 때로 아드레날린을 불러일으 키기도 한다. 바쁜 업무를 마치고 사무실 불을 끄고 마지막으로 나올 때는 오히려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지금의 불편함은 무언가 다른 곳에서 오는 것 같다. 그것은 기대감의 부재이다. 직장은 더 이상 무언가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배우기에는 부족한 곳이다. 아니 전무하다고 해야 하겠다. 이곳에서 새로운 것을 배운 다는 것은 현재 맡고 있는 업무의 공백을 초래한다는 뜻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중 잠시 시간을 내어 창의성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나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배운다면 필연적으로 실적에서 차질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퇴근 이후나 주말에 뭔가를 한다는 것도 사실 휴식시간을 포기하는 것이 므로 결과적으로 자신의 업무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개인의 발전이 회사 내외부적으로 미래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당장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현재 자신의 능력에 머무를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퇴보 하고 있을 것이다. 발전하지 않는 삶은 결국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삶이라는 뜻이 된다. 답답하게 굳어 가는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한 실망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지금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분노로 나타 나는 건 아닐까 싶다.


  현재 나는 이 회사에 기대하는 것이 돈뿐이다. 다른 회사보다는 비교적 높은 연봉과 복지, 이것만이 유일하게 기대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쉽게 말한다. 회사에 다니는 처음과 마지막 이유는 월급이라는 고정적인 수입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회사도 다른 많은 집단처럼 돈보다 높은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어떤 영상을 하나 보았다.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 었다. 그 영상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의욕적이거나 창의적이 되지 않으며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기본적인 소득은 필요하지만, 그 이상은 돈보다 다른 방식으로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고 한다. 바로 스스로가 대 단한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일을 통해서 성장한다는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스스로를 고양시키게 되고, 결과적으로 더 높은 업무적 성과로 이끌 수가 있다. 어쩌면 한국은 이미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졌는 지도 모르겠다. 급여가 과도하게 적었던 70~80년 대에 사용했던 방식을 아직도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점에 온 것 같다. 정기적인 월급만을 기대하며 현 직장에 눌러앉을 것인지, 아니면 더높은 이상이나 꿈을 위해서 다른 도전에 나서야 할지 고민스럽다. 하지만 앞으로의 경제상황은 비교적 부정적이다. 그러한 부정적인 상황이라면 현재 직장에 머무르는 것이 폭풍을 피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것은 현재 직장이 모든 것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시점에 현재의 직장이 안전한 울타리가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으며, 먼 미래에 이 직장은 나에게 퇴사를 종용할 수도 있다. 최근에 어떤 기업에서 신입사원의 목을 졸랐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갈림길을 앞에 두고 서 있다. 얼핏 보면 탄탄해 보이는 포장도로와 어두운 숲으로 이어진 작은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길이 아니라 그 길 끝에 있는 목적지일 텐데, 과연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20171월 첫주 IVF학사회 소리지 업데이트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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