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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다다익책] 책에 관한 책

[다다익책]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 목록


에 관한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14년 한 해에 발간된 책은 정기간행물과 교과서를 제외하고 4만 7,589종에 9,416만 5,930부라고 한다. 책이 너무 많이 출간되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더 많이 출간되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가 책의 바닷속을 헤엄치며 살고 있다는 비유를 충분히 적용할 만한 시대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그 바닷속을 유영하다가 일부 책들과 마주치고 또 그중에서도 일부 책들을 읽으며 살아간다.


처음에는 책에 담긴 온갖 이야기와 지식에 폭 빠져 지내다가, 어떤 사람들은 책을 쓰기도 하고 책을 만들기도 하고 책을 팔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책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반추해 보기도 한다. 그냥 책을 읽으면 되기도 하겠지만, 책이라는 대상과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고 또 예상보다 큰 결실을 얻을 수도 있다. 독서는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책과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새 자신의 인생관을 반추하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짚어 보는 일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언급하려는 책들이 바로 그런 주제를 다룬다. 


먼저 책의 역사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을 한 권 소개하고 싶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마티)는 책에 관한 모든 역사를 들려주지는 않지만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알려지지 않은 시대일 수 있는 유럽 중세 시대의 출판과 독서 문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12-14세기의 유럽의 가장 유명한 수도원 도서관의 장서는 200-400권 정도였고,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관 중 하나였던 파리 콜레주의 장서는 1290년에 1,017권이었고 1338년에는 1,722권에 이르렀다는 것과, 당시 성경책 한 권을 필사하는 데 도시 집 한 채 값의 5분의 1이 들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와 전혀 다른 시대 속의 책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당시 수작업으로 책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에 대한 꽤 많은 화보가 담겨 있는 이 책은 자체가 참 아름답게 꾸며 있어서 소장의 만족을 느끼게 한다. 책의 어제를 이야기해 주는 아주 멋진 책으로 추천한다.


독서 행위에 대한 전형적인 성찰을 넘어서 현상학적이고도 비판적인 성찰을 하고 있는 재미있는 책이 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피에르 바야르 지음, 여름언덕)이다.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저자는 책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전반을 돌아보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할 거리들을 제공한다. ‘독서’라는 행위에 얼마나 다른 여러 층위들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심지어 ‘비(非)독서’라는 행위가 얼마나 창조적인 일일 수 있는지도 말해 준다. 그로써 우리가 독서라는 행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당연한 개념, 전제,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어떤 창조적 행위를 즐길 자유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독서 꽤나 한다는 사람이라면 읽고서 큰 도움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나처럼 기억력이 나빠서 읽은 책의 내용을 곧장 망각하는 사람에게는 꼭 일독을 하고 위로를 얻기를 권한다.


《천천히 읽기를 권함》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샨티)은 근래에 가장 높은 독서 만족도를 선사해준 책이다. 저자는 다독과 속독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시대 속에서 천천히 읽기를 권하면서, 실은 우리의 독서가 삶의 한 순간일 뿐 아니라 삶을 사는 자세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설명하고 설득해 내려는 것을 아주 멋진 글쓰기 방식을 통하여 오묘하고 은근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즐거웠고, 기술적인 독서법을 넘어서 독서를 매개로 우리의 생활 방식을 돌아보게 해 주어서 고마웠다.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 독서 방식은 분명 바뀌었고(좀더 천천히 읽게 되었고, 실은 좀더 많이 읽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인생관도 어느 정도 바뀐 것을 느낄 정도로 유익한 독서 경험을 제공했다. 독서에 관한 다른 유명한 책(예를 들면, 애들러와 도렌의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이나 다치바나 다케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같은)과 함께, 특히 그 다른 책들의 해독을 위해 꼭 읽을 만한 책이다.


그렇다면 책 중의 책이라고 할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책이 있지만, 유진 피터슨의 《이 책을 먹으라》는 그 목록에서 꼭 빠지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될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피터슨은 1부에서 성경이란 어떤 책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기술적이고 정보적인 책이나 신학적인 책에서는 쉽게 잡아내지 못했을 지점들을 ‘영성’의 측면에서, 그리고 실제 한 명의 신자의 자리에서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렉치오 디비나’라는 영적 독서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여기서도 기술적인 방법이 아니라 각 단계(독서-묵상-기도-관상)의 참된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개성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모든 흐름 속에서 현 세상 속의 일상 영성을 일관성 있게 강조하여 이 책 역시 독서법 자체가 아닌 신자로서 우리의 삶과 지향점을 재고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한 권의 책으로 주어질 수 없었던 성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흔하디흔한 책들 중 한 권으로 주어진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해결의 실마리를 준 고마운 책이다.


책의 종말이라는 유령이 골목을 배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실제로 거리에서 서점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과연 책이 사라질 것인가?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될 것인가? 한편으로는, 책의 종말에 관한 담론은 곧 책의 시작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책이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묻게 한다는 점에서 반갑기도 하다. 이런 질문들은 우리네 일상과 인생을 아우르는 중요한 답변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내가 위에 열거한 책들은 그런 역할을 아주 잘 감당해 낼 것임이 분명하다. 마감에 쫓기는 상황에서 심한 두통에 시달리며 쓴 이 글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왔는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위에 언급한 책들을 한데 담은 목록을 제시해 낸 것만으로도 이 글은 성공적일 듯.





정모세연세대92

책을 읽다가 눈이 나빠졌고 책을 만들다가 눈이 더 나빠졌다고 믿고 있다. 실제 읽은 책은 그리 많지 않지만, 책을 즐기고 책에게 감사해하면서 책을 보드 삼아 인생 서핑을 누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 보인다. 첫째 래안이 초등 1학년일 때 시작한 잠들기 전의 《나니아 연대기》 독서는, 4학년인 이제야 겨우 제5권 <새벽 출정호의 항해>, 10장을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