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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다다익책]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는 한 가지 방법에 관해

[다다익책]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 목록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는 한 가지 방법에 관해




왜 갑자기 《고백록》을 이야기하느냐고 묻느냐면, 이렇게 답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백록》은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와 함께, 그리스도인이 꼭 읽어야 할 책 목록들 거의 모두에 포함될 뿐 아니라(목록에 10권이 담겨 있든 100권이 담겨 있든 간에, 그리고 ‘20세기에 나온’ 식으로 시대를 한정하지만 않는다면), 상위권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매우 드문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리스도인에게 언제라도 권하기에 가장 좋은 책이라고 제법 당당하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겠다.


단순하지만 더 직접적인 다른 이유는, 실은 내가 요즘 한창 《고백록》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주는 감동이 명성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음을 확인해 가고 있다. 그래서 무려 약 1,600년 전(주후 397년경)에 쓰인 책을 소개하는 글이 어떤 사람에게는 “톨레, 레게”, 즉 아우구스티누스가 결정적으로 회심할 때에 들었던 “집어라, 읽어라”라는 한 아이의 음성으로 혹 사용될까 기대해 본다.


물론 깊이 있는 책일수록, 아무 때나 읽어서는 안 되기도 하고 언제나 두고두고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아무 때나 읽을 수 없다는 말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테스》가 주었던 충격, 즉 최초로 완독 자체만을 목표로 삼았던 독서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획일적인 고전 독서의 문제를 보여 주는 한 예인데, 더 쓰지는 않겠다). 대부분의 책은 어떤 한 사람의 삶의 어떤 단계에 이르러서야 이해할 수 있고, 어떤 깊이 있는 책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언제나 두고두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이런 불후의 명작은 어느 단계의 사람이 읽더라도 나름의 유익을 주기 때문이다.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인내하며 읽어갈 때 얻는 교훈이 있고(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드는 어떤 단초들을 얻는다), 반복해서 읽게 하는 힘이 있으며, 삶과 지식의 성숙도에 따라 때마다 새로운 지평들을 열어 준다.


하여간 《고백록》을 이제야 읽는다. 읽을 기회가 이전에 몇 차례나 있었지만 그때마다 결국 불발되었다. 당시 내 신앙과 지성이 거쳐 가던 단계에서 이런 고백적 경건 문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러다 고전이 갖고 있는 매력과 힘에 대해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고 이 책

에 대한 칭송을 여기저기서 듣던 차에, 마침 포이에마 출판사에서 《고백록》(김성웅 옮김, 2014, 축약판)이 출간되었고 일단 소장해 두었다. 얼마 후에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다른 《고백록》(바오로딸, 최민순 옮김, 1965, 완역판)이 새 옷을 입고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호평이 자자한 피터 브라운의 전기 《아우구스티누스》(새물결, 정기문 옮김, 2012년)를 판매하겠다고 한 페친이 페이

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보았다. 그때마다 당장 지갑을 열고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관련된 책들을 쌓아가다가 때가 무르익었는지(어디선가 “톨레, 레게”라는 음성이 들렸는지), 나는 드디어 《고백록》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축약판 《고백록》과 완역판 《고백록》을 번갈아 비교해 가면서 보조를 맞춰 읽다가, 결국 축약판을 먼저 완독하고 완역판은 손 뻗으면 닿는 곳에 두고 때마다 천천히 조금씩 읽어가고 있다. 전기 《아우구스티누스》도 그 옆에 두고 한 번에 한 장씩 읽어 가고 있다. 


《고백록》 독서를 시작하던 즈음에 마침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바오로딸, 정진석 옮김, 1976)을 서가에서 꺼내서 함께 읽게 되었다(누군가 한 시절 어떤 책들을 주로 읽는지는 아마도 삶의 어떤 단계 혹은 양상을 설명해주는 증상일 수 있다). 이 《칠층산》은 글줄이 세로로 깔려 있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 가게 되어 있는 오래된 책인데 언제 구했는지도 기억할 수 없다. 그런데 책머리에 있는 역자가 쓴 글을 보니 《칠층산》은 “20세기의 고백록”이라는 평을 받는다고 해서 우연치고는 참 재미있네 하고 생각했다. 《칠층산》도 그리스도인의 필독서 리스트에 곧잘 포함되는 책이다.


포이에마의 《고백록》은 독자들의 쉽게 접근하도록 축약한 판본이고, 근사한 장정에 일러스트가 들어 있을뿐더러 편집자, 송태근 목사, 김용규 선생의 해설까지 들어 있다. 곳곳에 독자를 위한 편집적 배려가 들어 있는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번 《고백록》 독서의 즐거움은 분명 반감됐을 것이다. 바오로딸에서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시리즈(추천하고 싶은 시리즈다!)로 개정되어 나온 《고백록》은 애초에 1965년에 나온 최초의 완역판인 듯 보인다. 수려해서 도리어 낯선 표현들 때문에 읽기가 다소 힘들지만, 축약판과 비교하여 읽으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을 좀더 포괄적으로 전망하며 전체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현재 만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전기로서 《고백록》을 읽는 데 필수적인 해설을 얻을 수 있다(사실 자연스레 《고백록》의 증언에 상당히 많이 기대고 있어서 앞부분은 거의 고백록의 요약 같기도 하다). 또 위대한 사상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체 생애와 삶의 정황, 그리고 그가 한 기여를 파악하게 도와준다.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 할 《칠층산》은 토마스 머튼이 33살에 쓴 영적 자서전으로 생애를 놀랍도록 꼼꼼하게 기억하고 짚어가면서 자신의 인생 경로를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해 고백한다. 어린 시절 지나가면서 본 간판 이야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질릴 정도이지만, 한편으로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 지점인지 생각하게 한다. 《고백록》과 함께 읽어 가니, 제3의 삶으로서 나를 돌아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하며 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다. 이 책의 제1독자이자 유일한 독자는 하나님이라고 할 독특한 책이다. 그의 정직한 자기 성찰, 탁월한 철학적 통찰, 깊은 신학적 분별력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투명하게 대면하면서 말을, 기도와 찬양을 하고 있다는 점이 큰 유익을 준다. 신 앞에 선 한 인간의 고백의 울림이 크다. 하나님을 인격적 대상으로 앞에 두고 하는 그의 생생한 고백을 읽는 것 자체가 독특한 경험이 된다. 읽는 동시에 나도 신 앞에 서고, 그 문장을 빌어서 고백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 죄인인지 잘 알고 있으며, 진리와 지혜에 대한 갈급한 추구 속에서도 보편적인 삶의 곡절을 그대로 거친, 나와 같은 또 한 사람으로서 자기 삶을 풀어가는 그의 이야기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을 충분히 아우르며 휘감는다. 


43세에 일종의 생애의 큰 전환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을 쓰고 남은 생애를 이 책의 후편으로 하나님께 바쳤다. 거의 비슷한 연배에 서 있는 내게 이 책이 불쑥 들어온 것에서 어떤 섭리를 느낀다. 그처럼 지난 생애를 돌아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내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이든 하나님께 더욱더 맡겨드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톨레, 레게.”




정모세연세대92
연말에 넷째가 태어난 것으로 일단락된 격동의 2014년을 보냈다. 올해가 향후 20년의 방향이 뚜렷해지는 출발선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래안·지안·다안·요안 네 명의 아이를 잘 키우는 게 그 20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라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10년 전에 일했던 IVP에 작년에 편집장으로 복귀했고, 혁명기도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분당두레교회 협동목사이기도 하다. 《회심》, 《복음주의 신앙선언》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