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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따뜻한 말 한마디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직장에서 겪는 하루하루의 분투


따뜻한 말 한마디





며칠 전, 졸업생 모임에서 후배 학사를 만났다. 여행사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어떤지 물었더니 과장님 이야기가 나왔다. 근무환경이나 업무 자체는 좋은데 과장님이 불편하단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놈의 ‘말’이 문제였다. 


“사무실에 여자 대리님이 계신데 좀 몸집이 있는 편이거든. 근데 과장님이 대리님 앞에서 슬램덩크 만화의 뚱뚱한 감독을 닮았다면서 푸하하하! 하고 웃는 거야. 순간 대리님 표정이 굳어지는데 난감하더라니까.”


그 과장님은 농담이랍시고 장난스럽게 던진 한마디였겠지만, 아래 직원에게는 농담으로 받을 수 없는 무거운 한마디였을 것이다. 우리 회사 과장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업무 실수를 한 동료 언니에게 “너 이대 나온 여자 맞아? 이대 나온 여자가 뭐 이래?”라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막말을 해댔다. 저 짧은 문장 속에 반말, 내리까는 말, 성적으로 차별하는 말,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한 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니 어떤 의미로는 굉장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비하하는 농담이나 욕설, 남을 폄하하는 비난의 말은 상하관계가 뚜렷한 곳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직장이라는 곳은 누군가에게 막말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인지도 모르겠다.

  

언어라는 건 사실 참 신비로운 영역이다. 약속된 단어를 통해 섬세한 의미를 구성할 수 있고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며 누군가의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관계에 있어서 ‘말’이란 가장 핵심요소가 아닐까 싶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깊어지기도 하고 오해가 쌓이기도 하며, 사랑을 만들거나 분노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구성하는 근간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깊이를 더해주는 요소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인 ‘언어’를 얼마나 아름답게 사용하고 있을까?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는 언어의 중요성도 그만큼 높다. 말을 가려서 잘 해야 한다는 것은 어린 아이들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실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 같다. 단순하게 <슬램덩크>의 감독을 닮았다거나, 뚱뚱하다거나 못생겼다거나 하는 ‘남을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대를 배려하는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년까지의 팀장님은 비난의 아이콘이었다. “야, 이 계집애야”부터 시작해서 “저 사람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을 뽑으면 된다”든가, “책 좀 읽게 다른 일은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하라”든가, 이런 식으로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막말킹’ 팀장님은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겼고 새로운 팀장님이 오셨다. 이분은 표현도 부드럽고 말투에도 배려심이 넘쳐서 팀원들이 상처를 받는 일도 사라졌고 분위기도 한결 좋아졌다. 

  

하지만 나는 이번 팀장님의 ‘말’에 작년보다도 더 시달리고 있다. 팀장님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점심밥을 먹자마자, 일이 한가해지기만 하면 수시로 옆자리에 찾아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나는 쌓인 업무가 많고 일이 늦춰지면 약속된 기일에 맞출 수 없거나 야근으로 이어지기에 마음이 조급한데, 한번 시작된 팀장님의 이야기는 한두 시간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가장 어린 내가 팀장님의 말을 무시하고 업무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지난 일주일간 팀장님의 과거사만 다섯 번은 들은 것 같다. 팀장님의 형제가 몇인지, 그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그분들의 어린 시절은 어땠고 어떤 불행이 있었는지를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상황인지 어떤 마음인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이야기만 끝없이 늘어놓는 것도 배려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이런 경우는 어떨까. 내 친구는 지난 해 팀장으로 승진을 했다. 중간관리자인 친구의 역할은 위에서 내려온 업무를 적절히 분배하여 아랫사람들에게 분담해주는 것이었는데 현장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는 편이었기에 아랫사람들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유독 말이 없는 신입사원이 있었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것은 자신의 성향이니 이해할 수 있지만, 일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물어보는 질문에도 한참을 침묵하다가 어물어물 “대충….”하고 끝이었다. 몇 번을 물어봐도 대답이 비슷해 그냥 넘어가면, 나중에 일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 다른 사람들이 업무를 다시 해야 하는 수고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입사원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 역시 배려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배려하는 말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말을 내뱉고 그 말에 대해 후회한다. 학생 때 학교에서 배운 ‘언어 영역’은 지문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기에 배려하는 말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어에는 인격이 묻어나고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배워야 할 ‘언어 영역’은 배려와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말일 것이다. 




  

직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 다양한 대화와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고 가장 많은 말을 하는 곳이다. 때문에 그 사이에서 오가는 작은 말 한두 마디가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고 갉아먹기도 하는 것 같다. 남들보다 십분 먼저 퇴근할 때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표현하면 남아있는 사람들의 야근을 위로할 수 있고, 이름을 기억해서 불러드리면 관심을 표현할 수 있다. 야단치기 이전에 칭찬 한마디를 먼저 시작하면 듣는 아랫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더 귀 기울여 받아들일 수 있고, 아부가 아니라 존중하는 말을 하면 상사와 동료의 마음을 모두 얻을 수 있다. 

  

새해가 되면 여러 가지 변화가 찾아온다. 사무실 사람들이 바뀌기도 하고 자리나 맡은 업무가 달라진다. 그 역동 속에서 올 한해 내가 이루고 싶은 변화는,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언어’로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오늘도 직장동료들에게 웃으며 한마디를 건네고 있다. 이 한마디가 우리의 일터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김작가J대06

하나님나라를 청소년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은 청소년 활동가. (필자와의 합의에 따라 필명을 사용합니다.)


















VOL.2182015.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