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이직(移職)의 계절,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직장에서 겪는 하루하루의 분투


이직(移職)의 계절,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어느덧 낙엽이 떨어지고 추위가 찾아들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이맘때가 되면 친구들과 연결된 단체대화방이 부산스러워지곤 한다. 몇 백 개에 가깝게 쌓여가는 대화는 대부분 직장생활에 관한 것이다. 상사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거나 업무체계를 비판하고 자신에게 닥친 불합리한 상황과 피로를 호소하기도 하지만, ‘내년의 직장에 대한 고민’은 이 시즌이면 내 또래 사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주요한 화제이다.


2년 전 이맘때도 친구 한 명이 덜컥 회사를 그만두었다. 대우가 나쁜 편도 아니었고 일도 잘하는 편인데다가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했지만, 그 친구는 월급이 끊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백수가 되기를 선택했다. 주변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잔소리가 쏟아졌다. 부모님의 압박과 동생의 눈빛은 부담스러워졌고 친구들의 시선도 곱지 못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수많은 불안요소들을 짊어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긴 시간의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벌써 내년에 직장을 옮기겠다고 결정한 친구가 세 명,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한 친구가 한 명 등장했다. 이른바, 이직의 계절이 돌아왔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청소년 활동에 관한 사업인데, 안타깝게도 한시적인 시범사업이라서 2016년 2월이 되면 업무가 종결된다. 이 사업을 위해 뭉쳤던 팀은 해체되고 계약직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나는 당장 갈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팀원들 모두가 이 부분을 인지하고 있기에 우리의 연말은 내년의 계획을 고민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확정된 미래는 생각만으로도 막연하고 막막했다. 직장이 내 비전과 어울리는 장소인지, 내 성향과 잘 맞는 곳인지, 현실적인 여건은 괜찮은 곳인지, 이런 여러 가지 조건을 떠나서 시한부 인생처럼 사라지게 될 사무실의 내 자리를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불안하기 짝이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내년에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날 것인지, 선택은 향후 내 삶의 방향과 연결되어 있기에 매우 중요하고 심각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소설을 끼적이거나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고 대학교 때는 복수전공으로 문예창작학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조언과 비전을 두고 고민한 끝에 청소년 활동 쪽으로 직업을 선택했다.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 제일 즐겁고 글 쓰는 것이 너무 좋았던 나는 지금, 군대보다 조직적이라는 공기관의 컴퓨터 앞에 앉아 이야기와는 관련이 없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과연 이 일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일까? 이 직장은 하나님 안에서 내가 꿈꾸는 비전을 이루어가기에 적합한 장소일까? 내 성향과는 맞는 일일까? 불합리한 조직체계와 빡빡한 업무에 지칠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을 앞섰다. 여전히 나는 해마다 이직을 고민하고 해마다 내 직업이 나의 적성에 맞는지 고민하고 있다. 

  

직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어떤 기준을 두고 어떤 우선순위를 세워 선택할 것인가도 어렵고, 내가 선택한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지 여부도 불확실하며, 막상 직장에 취직했다고 하더라도 해마다 같은 고민은 되돌아오기 마련이었다. 매일 야근을 하는 친구를 보면 내가 머무는 직장이 행복한 것 같다가도, 직장생활을 통해 자신의 꿈을 영위하는 친구를 보면 내가 직장을 잘못 다니고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하나님 안에서 비전을 꿈꾼다는 것은 때로 막연하게 느껴졌고 내 성향과 맞는 직장이라는 것이 때로 이상적인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고민에 휩싸여 있는 나에게 어느 날, 내년이면 고3이 되는 남학생 한 명이 찾아왔다. 회의를 마치고 조용히 사무실로 들어온 그 학생은 굉장히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선생님, 대학가는 것 때문에 고민 중인데요, 진로를 결정할 때 적성을 보고 선택해야 해요, 아니면 직업을 보고 선택해야 해요?”

  




질문을 들은 나는 뜨끔했다. 뭐라고 답을 해주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청소년들의 진로를 상담할 때 직업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자신의 꿈과 성향을 고민해보라고 지도하고 있지만, 사실 어떤 직업과 직장을 선택할 것인지에 관한 실제적인 부분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한 채 여러 가지 대화를 했다. 아마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였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가며 학생이 남긴 말 한 마디가 제법 의미심장했다. 


“사실 어떤 대학을 가느냐보단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 학생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겠지만 나는 이것이 내가 고민하던 부분의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대학을 가고,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직장을 갈지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충분한 고민과 기도를 통해 이뤄져야 하는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이 모든 문제를 아우르는 핵심적인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비전이란, 나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꿈’을 ‘내 꿈’으로 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어떻게 동참하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직업과 직장을 선택하는 데 가장 핵심인 것 같다.




  

서두에서 소개했던 내 친구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직장을 구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직장생활을 그만두기 전,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끝없이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고민했던 것들을 기반으로 2년의 백수시절을 보내며 차근차근 준비했고, 얼마 전 웹툰 작가로 당당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그 친구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인생의 비전을 향한 걸음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이라며 웃는 친구의 얼굴은 내게 도전이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부터인가 고민거리를 던져 주고 활기찬 역동을 일으켜주는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내 일터는 때로 비합리적이지만 때로는 즐겁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 실력을 발휘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글 쓰는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지만, 이 안에서 나는 고민이 깊어지는 사람으로 다듬어져가고, 한 명의 학생과 마음을 맞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가고 있다. 이것은 언젠가 내가 글을 쓸 때도, 그리고 하나님의 비전을 함께 꿈꾸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밑바탕이 될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다사다난했던 직장생활도, 그리고 내 삶도 가는 해와 함께 저물어간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과 맞닿아 있다. 돌아오는 월요일이 지겨우면서도 늘 새로운 것처럼, 한 해의 사무실은 지겨웠지만 또 새로운 모양으로 나를 기다릴 것이다. 그 기다림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여정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지고 있음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직장인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꿈꾸는 비전을 향해 파이팅!  




김작가J대06

하나님나라를 청소년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은 청소년 활동가. (필자와의 합의에 따라 필명을 사용합니다.)
















no.217=2014.12+201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