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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오늘, 내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다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직장에서 겪는 하루하루의 분투


오늘, 내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다






근무시간, 잠깐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낯익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팀장님의 목소리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팀장님이 서럽게 우시는 통에, 나는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갈 수가 없었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나는 한참동안 그 좁은 곳에 앉아 팀장님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마침내 사무실로 돌아가니 어쩐지 팀 내 분위기가 침통했다. 팀장님도 그렇고 전체 팀 분위기도 그렇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싶어 살짝 물어보았더니 팀원들의 입에서 과장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과장님은 우리 기관 내에서 기관장님 다음가는 위치의 관리자로, 8개의 팀을 지휘하고 있는 이른바 ‘높은 분’이다. 그런데 8개의 팀을 아우르는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평소에도 논란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작년에는 과장님과의 마찰로 세 명의 직원이 직장을 떠났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몇몇은 과장님의 이름이 나오기만 하면 치를 떨었다. 

  

우리 팀에서는 최근, 지난 사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 외부 인사들을 초청하여 전문 평가단을 구성하고 있었다. 평가단의 구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에 섭외할 인물들에 대한 명단을 두고 수차례 검토가 있었고, 오랜 협의 끝에 팀장님과 과장님의 승인을 받아 결재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과장님으로부터 평가단 위원으로 선정된 어떤 교사를 평가단에서 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 교사가 이 사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므로 전문성도 없고 다른 선생님들도 반대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미 결재까지 마친 상황에서 팀장님과 팀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 의견이 있었다면 진작 얘기해주시는 게 맞지 않았을까? 게다가 결재 당시에 승인도장을 찍은 관리자들 중에는 분명 과장님도 있었다! 




  

결국 팀장님과 임 선생님이 과장님을 찾아가 우리 팀의 의견을 전달해보기로 했다. 과장님이 지명한 교사는 사업 초기부터 함께 했으므로 누구보다 사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과장님의 반대가 완강할 경우 평가단에서는 제하되 조언을 얻는 차원에서 협력을 구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다. 이야기를 들은 과장님은 많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팀장님을 향해 폭언을 퍼부었다. 팀장의 역량이 부족해서 팀이 엉망이라지 않나, 능력이 없으면 말이라도 잘 들으라는 식으로 두서없이 쏟아진 폭언은 팀장님에게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했다. 옆에 계셨던 임 선생님은 결재 판을 집어던지고 회사를 나가고 싶었다고 할 정도로 마음이 상했고, 결국 팀장님은 화장실로 찾아와 혼자 눈물을 삼켰던 것이다. 직원들이 올린 기안을 처음부터 꼼꼼히 보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팀에서 낸 의견을 과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받아들인 것이나 자신의 분을 다스리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누군가에게 인격적인 상처를 남기는 행동이 과연 많은 팀을 이끌어가는 관리자로서 합당한 역량인지 나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회 초년병 시절, 나는 내가 만나는 수많은 관리자들 역시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위를 지닌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 중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이고 내게 허락하신 권위이므로 언제나 참고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그런 생각들이 매우 단편적인 판단이 아니었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작년에 30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을 데리고 1박2일로 캠프를 간 적이 있었다. 당연히 총책임자로서 과장님도 함께 동행했는데 그 때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과장님은 자신만을 위한 별도의 방을 요구하는 것도 모자라, 가방을 가득히 채울 만큼 많은 책을 들고 와 피서를 즐기기 시작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자신만의 특실에 누워 교양 있게 독서를 하다가 때로는 주변 풍경을 즐기며 산책을 하고 식사시간이 되면 그제야 아이들에게 얼굴을 비췄다. 팀장님과 주무관님들은 과장님을 수행하느라 캠프에는 일절 신경을 쓸 수 없었고, 당연히 캠프에는 진행인력이 부족하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어디에 나타나든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8명이라는 소수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300여명의 청소년들을 통솔하고 이끌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를 아이들과 함께 뛰어다녔고, 혹여나 이탈하는 청소년이 없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캠프장 곳곳을 누비며 신경을 썼으며, 비어버린 팀장님과 주무관님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두 배 세 배 발로 뛰며 갖은 고생을 했다. 캠프에 다녀와서 탈진해버린 나는 난생 처음으로 링거주사를 맞아야 했고 주일에 예배에도 가지 못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야속했고 과장님에게는 퍽 여유로웠던 이 캠프의 불합리함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 태어나서 이런 즐거운 활동은 처음 해봤다는 한 중학생의 고백이나 소중한 추억과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고생을 함께 했던 8명의 자원봉사자들과는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 내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나의 자리에서 내 역할을 다했기에 받을 수 있었던 이 선물들은, 분명 과장님이 그날 캠프에서 독서를 하며 쌓았을 지식과는 바꿀 수 없는 것이리라. 

  

하나님은 분명 세상에 여러 가지 질서를 세우셨지만 그 세상은 또한 죄로 얼룩져 있다. 자신의 위치와 권력을 지키고 싶은 마음, 아랫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권위자의 마음, 내 분노로 상처 입을 사람들보다 분노한 자신이 더 중요한 마음, 그리고 사실은 그 권위자에 대항하며 자존심을 지키고 싶고 역량 없는 지도자를 무시하고 싶은 내 마음도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 참담한 세상 속에서도 복음이 심겨진 우리들은 자신의 자리와는 상관없이 변화하는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아닐까.

  




이렇게 관리자의 역량 운운하며 과장님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나 역시, 과장이라는 자리에 가면 과연 내 말에 반대 의견을 내는 직원들을 포용력 있게 받아줄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고 인격적인 말과 행동으로 대우하는 관리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복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분명 지금의 과장님에게서 보았던 행동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사람으로 자라가고 싶다. 내가 반드시 저 과장님과는 다른 인격적인 관리자가 될 수 있다는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일개 담당자의 역할에서부터 내 마음과 인격이 자라가기 위해 분투한다면 관리자의 위치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의 사람답게 자라가기 위해 분투하는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해도 과장님을 모시고 청소년들과 함께 가는 캠프가 기획되어 있다. 작년의 악몽이 떠오르지만 나는 이 캠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람이 발휘해야 하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오늘, 내 자리에서 고군분투한다. 

    



김작가J대06

하나님나라를 청소년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은 청소년 활동가. (필자와의 합의에 따라 필명을 사용합니다.)















no.215=2014.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