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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월도(월급도둑)'인가, 예배자인가_김작가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직장에서 겪는 하루하루의 분투


'월도(월급도둑)'인가, 예배자인가







“선생님, 다음 주에 한 번 더 회의하려고 하는데 회의실 좀 잡아주세요.”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생이 회의록을 가지고 들어오며 말했다. 아이와 상의해서 적합한 날짜를 정하고 회의실을 예약했다. 그러나 아이가 사무실에서 나가자마자 내 입에선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어휴, 다음 주에도 회의를 하는구나. 또 야근이로구나.’ 학생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야간 근무가 늘어날 걸 생각하니 짜증이 솟구쳤다. 단순히 내 시간을 빼앗겨서가 아니라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나태함이 내 속에서 점점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중고생들과 함께 가을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이 직접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해서 당일에는 스스로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청소년 자치문화를 활성화하고, 청소년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내 업무의 목표였다. 실제로 축제 기획단으로 참가했던 학생들 중에는 그 시간을 통해서 자신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학생의 인생에 유익한 경험을 남기고, 한 명이라도 자신의 진정한 꿈을 발견하고, 그 목표를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전이면서 내게 맡겨진 중요한 업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정작 내 초점이 맞춰진 곳은 아이들이 회의할 때마다 야근을 해야 하는 내 현실이었다. 내 근무 시간에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기 때문에 당연히 방과 후에 아이들을 만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나 역시 퇴근시간 이후로 근무가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 매일 9시, 10시까지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을 한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주일에 두세 번 퇴근시간 이후에 근무하는 내 현실은 안락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나태함으로 가득해져 버린 내게는 일주일에 한 번 야근하는 것도 버겁게 다가왔다. 일의 양이 벅차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냥 싫증이 난 것 같다. 

  

올해로 직장생활 4년차, 주변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거라며 순응해버린 사람도 있고, 일부는 자신과 안 맞는 직장인 것 같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친구들 중에는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백수가 되어 시간이 많아진 그들이 여행을 다니고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사는 모습은 부러움을 가중시켰고, 그것은 다시 업무에 대한 불만과 싫증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은, 어린 시절 수없이 적어 냈던 ‘장래의 꿈’을 이루어가는 자리도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비전’을 발현하는 자리도 아니고 단순히 월급을 받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직장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나를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기보다는, 그저 내 한 몸 편하고 내 마음 즐겁게 살고 싶은 죄성이 꿈틀거리며 피어나고 있다. 

  

이 직장에 합격하여 입사했을 때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일을 시켜도 최선의 최선을 다했고 작은 일에도 보람을 느꼈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도 기뻤고 초과수당을 주지 않아도 자진해서 야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어떤가. 연차가 늘고 일이 손에 익자, 처음의 마음 대부분을 첫 장소에 떼어놓고 온 것만 같다. 경력이 늘어나고 경험이 쌓였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작은 실수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고, 대충 시간을 때우려는 요령만 늘었다. 내 퇴근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회의를 하겠다는 아이들이 야속하고, 관리자들의 말 한마디에도 불만이 생기고, 출장비가 지급되는지 혹은 월차를 쓸 수 있는지 같은 문제에 예민해졌다. 한가한 시간에는 인터넷 쇼핑을 하고 카드게임을 하거나 관심 있는 분야를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는 월급도둑, 나는 이른바 ‘월도’가 되어버렸다. 

  




몇몇 SNS에서 나와 같은 ‘월도’를 위해 엑셀형 버전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지나가는 사람이 보기에는 분명 엑셀 화면이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SNS를 재구성해놓은 것이다. 컴퓨터 화면에 당당하게 SNS를 띄워놓고 근무를 하는 척하면서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 모르게 사사로운 대화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다. 근무를 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과 이 시대 직장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오가는 대화의 대부분은 “아, 일하기 싫어….”이다. 다른 직원들에게 비친 내 모습은 청소년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축제를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지만, 사실 나는 잔뜩 나태해진 채로 ‘퇴근바라기’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일을 쉽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할 뿐이다. 하루의 삶, 한 순간이 전부 하나님 앞에 예배가 되어야 하건만, 늘 똑같아 보이는 내 하루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빛이 너무나 좋아서 그들에게 전해주고자 이 직업을 선택했다. 나태함과 싫증으로 첫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좋아했던 일도 직업이 되면 싫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 이야기는 직장생활로 하루하루 지쳐가는 우리 시대의 삶을 현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연함 때문에 나는 월급도둑을 넘어서서, 나를 통해 아이들에게로 이어져야 할 하나님의 마음마저 가로막고 있었다. ‘선생님 덕분에 장래의 꿈이 바뀌었어요.’ 라고 말하는 아이들 때문에 나는 이 한 명의 아이들을 향해 품은 하나님의 비전을 얼마나 소홀히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물론 야근 여부로 일에 대한 열심을 평가할 수도 없다. 삶에는 휴식도, 건전한 여가생활도 필요하다. 머리가 아플 때 하는 게임 한 판이 근무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야근을 하든 게임을 하든, 하나님이 내게 허락해 주신 삶에서 예배자로 살아가고 있는지 ‘월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직장에서 나는 정말 그리스도인일까?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거라 자위하는 게 당연한 걸까? 옆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비그리스도인의 모습과 내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여 씁쓸했다. 




  

해가 가고 달이 가면서 생활에 익숙해지고 또 어느 정도 나태해지는 면도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원래 다 그렇게 사는 삶’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예배자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넋을 놓고 살아가고 싶은 나를 일깨우고, 잊어버린 비전을 새롭게 상기하는 것은 야근을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버겁고 피곤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귀찮은 존재로 변해 버린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눈빛에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 사랑스러움을 담고 싶다. 볼멘소리를 하기보다는 한 아이의 목소리, 하나님이 계획하신 한 사람의 인생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대충 빨리 끝내고 집에 갈 기회만 엿보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맡은 아이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저 그렇게 사는 ‘월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비전을 꿈꾸는 예배자로 살아가고 싶다. 

  

오늘도 아이들은 회의록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서며 내게 야근 통보를 한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 ‘월도’가 아닌 ‘예배자’로서의 미소가 배어나오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김작가J대06

하나님나라를 청소년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은 청소년 활동가. (필자와의 합의에 따라 필명을 사용합니다.)
















no.216=201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