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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다다익책]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다다익책]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 목록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옐로브릭’은 IVF 학사이자 IVP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베테랑 편집자가 갓 세운 출판사다. 노란 벽돌이라는 뜻의 출판사 이름을 들으면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노란 벽돌길이나 단아하고 예쁜 벽돌집이 떠오른다. 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직 두 권인 출간작들만 보더라도 앞으로 분명히 단단하고 예쁜 책, 뭔가 희망찬 것을 지어 올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 출판사가 처음 출간한 책은 《폭력국가: 무능한 국가와 그 희생자들이고, 두 번째 책은 《이너프: 이 정도면 충분해이다. 여러 서평에서 주목받은 첫 번째 책 소개는 인터넷 검색에 양보하고, 신간 《이너프》를 이야기해 봐야겠다. 


자기계발, 대안적 삶, 신앙의 삶. 《폭력국가》와 마찬가지로 《이너프》도 주요 독자 대상이 소위 비그리스도인들인 일반 대중이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 보면, 둘 다 신앙을 토대로 하여 쓰였고, 신앙에 근거한 삶을 소개하고 권유한다. 또 《이너프》는 자기계발서로 분류할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한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역시나 ‘자기계발> 기획/정보/시간관리’ 또는 ‘자기계발> 처세술/삶의 자세’ 항목에 들어가 있다. 신앙을 토대로 한 ‘자기계발서’를 이 책에서 기대하면 될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자기 삶을 가꾸고 처세할 것인지 자세히 이야기하지만, 그 아래 깔려 있는 특별한(신앙적?) 전제가 두드러진다. 하나는 “가진 것으로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일은 인생을 훨씬 더 살 만하게 만든다”(30쪽)는 점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존재하고, 그것을 실행할 때 우리 삶이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된다는 생각의 토대 위에서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계발을 추구하도록 돕는다.


자연스럽게 이 책은 대안적인 삶, 그리고 신앙에 근거한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안내한다.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묻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성찰하도록 돕고, 재미있고 도전적인 구체적 실험들을 해 보라고 안내한다. 자아상뿐 아니라 먹는 음식, 입는 옷, 주고받는 선물, 타고 다니는 이동수단을 비롯해, 시간과 기회와 적자·흑자의 경험까지 삶의 곳곳을 다루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것인가(다른 사람을 도울 것인가!)를 알려 준다.


충분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무엇보다도 이 책은 우리 삶이 이미 충분하지 않은지, 충분히 풍족하지 않은지 잘 살펴보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정도면 충분한가?”라는 질문이 책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 올라 급습한다. 어느 때보다도 풍족한 시대 속에서 상당히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더 가져야 한다”는 커다란 압박감에 쫓기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 갖도록 돕는 방법들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며 이런 저런 영역에다 여기까지면 충분하다고 스스로 선을 그은 다음, 자신의 그 기준을 가지고서 “난 충분하다”고 선언하도록 돕는 지혜일 것이다. 


냉장고와 옷장을 열어서 쌓아둔 음식물과 옷들을 파악해 보라고 하는 이 책 곳곳의 문장들이 공정한 심판의 옐로카드처럼 다가온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도달하지 못할 곳을 향해서 빙빙 바퀴를 돌리면서 진력을 소모할 이들에게 이 책이 꼭 필요해 보였다. “선을 긋겠다고 마음을 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욕구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38쪽). 그렇게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고, 이 책의 전제에 따르면 분명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덜 소유하는 삶은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19쪽). 





이웃과 만나다. 이너프》도 우리가 실제로 ‘이웃’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노숙자 클래런스처럼 불쑥 이웃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이웃을 만나겠다는 마음을 먹고 눈을 여는 게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잘 알듯이 매일 이웃 곁을 지나치면서도 실은 그냥 지나치고 말 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진 것과 남들에게 필요한 것의 상관관계를 못 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거리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직접 보지 못하도록 안전한 곳에 우리를 떨어뜨려 놓았[기]”(30쪽)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와 이웃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게 전략적으로 조장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고, 그렇게 거리가 멀어질수록 ‘행복’하다는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 간다.


많은 사람의 인생 전환점 역할을 하기로 유명한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우리 주변의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 따르면, 사회 속에서 자신에게 몰두하는 데 익숙해져 가는 우리에게 구원의 기회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 우리가 한 일을 증언해 줄 지극히 작은 이들이 당신에게는 얼마나 있는가? 예수님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온갖 핑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작은 이들의 관계를 뼛속까지 잘 알고 계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것과 남들에게 필요한 것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이 책이야말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가장 실제적인 안내서겠다 싶다. 





실험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 제프 시나바거가 《이너프》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실험’이다. 그냥 관성대로 살지 말고, 이런저런 일을 시도해 보라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런 실험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주체적으로 각자가 그런 실험들을 시도해 보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이미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 단체들을 소개하면서 거기에 한번 참여해 보라고 권한다. 이 책의 부록에도 “한국 독자를 위한 단체 목록”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내가 여태 전혀 들어본 적 없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웃을 돕고 있는 단체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곳들을 하나하나 방문해 보는 것으로도 큰 도전을 받을 것이다. 각자가 이렇게 희망을 쏘아 올리는 작은 일에 헌신한다면, 이것이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된다면 우리의 미래가 그렇게 결정될 거다.


비슷한 시기에 IVF 운동을 했던 친구가 이 어려운 시기에 출판사를 세우고 《폭력국가》와 《이너프》 같은 책을 냈다. 덕분에 나는 이제 아득하니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인생의 끝을 슬슬 가늠해 보면서 내게 남은 소중한 시간 동안 어떤 실험을 하면서 이웃과 만나 함께할지, 어떻게 우리 주님이 주신 은혜의 구원을 완성해 나갈지 즐겁게 상상해 본다. 이런 도전적인 책을 내주다니 정말 고맙다. 이런 출판사를 실험해 주어 참 고맙다.





정모세연세대92
네 아이의 이름을 오는 평화, 이 땅의 평화, 풍성한 평화, 평화의 노래라고 각각 지음으로써(來·地·多·謠+安) 하나님의 샬롬을 대망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픈 사람. 그러나 오늘도 자기 욕심과 아이들 하나하나와 씨름하느라 허덕이고 있다. 《회심》과 《복음주의 신앙선언》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