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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다다익책] 삶과 신앙의 문해력 형성을 위한 C.S.루이스의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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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의 문해력 형성을 위한 C.S.루이스의 소설들




이 꼭지에 글을 쓰는 마지막 기회인지라,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을 했다. 글감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막상 쓰려고 하면 그래도 이걸 쓸까 저걸 쓸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소리] 편집인과 식사를 하면서 만화를 소제로 이야기를 나눈 김에 처음에는 만화에 대해서 글을 써 볼까 하는 생각도 한동안 했다. 그러나 결국 (다카하시 신의 《최종병기 그녀》, 하라 히데노리의 《겨울이야기》,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 같은) 만화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 글의 주요 독자들이 그 만화들을 접할 가능성이 무척 낮기 때문에 포기했다. 만화라는 것도 유행이 있어서, 쉽사리 찾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왕 이쪽(?)으로 빠졌으니 기독교 소설 이야기나 해 보려고 하다가, 결국 그도 범위가 너무 넓어서 대표적 기독교 소설가 중 한 명인 C. S. 루이스가 쓴 소설들을 이야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마음먹었다.


C. S. 루이스는 30여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그중의 절반가량이 소설이다.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나니아 연대기》《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있고, 아마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는 소설 중에서는 가장 나중에 쓰인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가 있다. 별 계획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책을 읽는 편인데도 이럭저럭하다 루이스의 소설들은 《순례자의 귀향》을 빼고서는 다 읽었으니, 이 기회에 한번 간추려 볼 만하겠다 싶었다.


그런데/그래서 먼저 나는 좀 더 실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드디어 읽을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오래전에 사두었던 릴런드 라이큰《상상의 승리》(성광, 1982년)를 서가에서 빼 들고 말았다. 그리고 실은 그 책을 읽느라 결국 마감 기한이 한참 지난 다음에 원고를 넘겨 편집인을 심각하게 괴롭히고 있는 상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물론 여러 가지 이유를 달고서, 매번 그렇기는 했다). 기독교 문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해 온 대표적인 학자라고 할 라이큰은 《상상의 승리》에서 기독교인에게 문학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즉 창작자나 독자나 비평가 각각이 문학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잘 개괄해 준다. 오래전에 나온 책이고 구하기도 어렵겠지만, 문학 분야를 좀더 깊이 있게 탐구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통찰력 넘치는 책이다. 입문서로 제격인 이 책을 읽다 보면, C. S. 루이스의 《문학 비평에서의 실험》이나 노스럽 프라이의 《문학 구조와 상상력》 같은 책들을 마음에 담아 두고 읽을 기회를 노리게 만드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루이스는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때에, 처음으로 《순례자의 귀향》(1933)을 쓴다. 이 책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의 후속편 격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읽은 책이 아니므로 이렇게 간단 언급만 해 두자). 그러고 나서 어른을 위한 판타지, 소위 '우주 3부작'의 첫 번째 책인 《침묵의 행성 밖에서》를 쓴다(1938). 이 책에서는 말라칸드라(화성)에서의 모험 이야기를 다루고, 각각 별도의 책으로 읽어도 큰 문제는 없는 《페렐란드라》(1943)에서는 금성에서의 모험을, 그리고 《그 가공할 힘》(1946)에서는 지구에서의 모험을 다룬다. 루이스의 이 우주 3부작을 읽으면, 기독교 신학적 상상력이 어떻게 허구의 세계로 뻗어 나가는지를 생생하게 맛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외계인도 만드셨을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가끔 해 보기도 하는데, 이 책을 보면 루이스는 진지하게 하나님이 외계인을 만들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를 우리에게 물으면서, 그렇다면 성경 속의 구원 계시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겠는지까지도 진지하고 흥미롭게 나름 설득력 있게 짚어 본다. 이 3부작은 판타지 소설들의 큰 특징인 다른 세계에 대한 낯설고 신비한 경험을 제공하면서, 실은 어느 세계나 마찬가지인 진실, 곧 빛과 암흑의 세계의 투쟁을 그린다. 제2차 세계대전을 그 저작 배경으로 해서 읽어 보는 것도 재미를 증가시킬 것이다.







1942년에는 그의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책이라 할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출간된다. 사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문학적 상상력이 가장 적게 반영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인의 신앙 여정에서 흔하게 겪는 온갖 신앙 체험에 관해 유머와 위트를 담아 재미있게 잘 표현하고 있다. 노회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인 젊은 악마 웜우드에게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들을 신앙의 각 단계마다 효과적으로 유혹할 것인가 전략을 가르쳐 주는 31통의 편지를 보내는데, 그로써 자연스럽게 우리가 어떻게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가르쳐 준다. 1945년에 출간된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 대해서는 특히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지만, 어쨌든 루이스가 쓴 소설의 신학적 상상력이라는 지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책도 꽤나 좋아한다. 지옥에서 천국에 이르는 기이한 한 여행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루이스는 나름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은 아마도 어떤 것일지를 그의 문학적 표현력을 잘 발휘해 실감나게 그려 준다. 어쩌면 우리의 단편적인 천국/지옥관에 좋은 해독제가 될 것이다.


사실 기독교인들을 제외한다면, 일반 독자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루이스의 책은 《나니아 연대기》일 것이다. 루이스는 1950년부터 1956년에 이르기까지 한 해에 한 권씩 이 시리즈에 속하는 책을 총 7권 출간한다. 어린이를 위한 판타지라고 할 이 책들에서 루이스는 나니아 왕국이라는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아이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통해, 신앙의 여러 가지 경험을 잘 전달한다. 루이스의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감탄하게 되는 그 특유한 표현력, 즉 우리가 지닌 신앙의 비밀스러운 순간들에 대한 탁월한 문학적 묘사, 예를 들면 주로 사자 아슬란에게서 드러나는 그 오싹 짜릿 친근한 그 체험에 대한 서술은 이 소설들에서도 빛을 발한다. 





루이스는 (《개인 기도》를 뺀다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1956)를 우리에게 선물하는데, 루이스의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어떤 문학적 깊이에 대한 아쉬움을 한방에 날려주었던 책으로 내게는 남아 있다. 그만큼, 그가 남은 생애 동안 이런 책을 두세 권만 더 써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크다. 큐피드와 프시케의 신화를 토대로 삼아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시킨 작품으로,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면서 참된 자아를 찾아 가는 여정을 그린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루이스가 어떻게 고대 신화를 탈이교화하고 그 본연의 가치를 잘 찾아내는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 


소설이 무슨 유익이 있느냐 하는 질문은 고래로부터 계속 제기되었다. 하지만 특히 오늘날 불통의 시대에, 말이 말 같지 않게 돼 버린 시대에, 우리는 빛나는 이러한 소설을 통해서 말이 가능함을, 즉 어떤 진실에 대한 전달이 가능함을 확인하고 다시 희망을 갖는다. 이번에 소개하는 루이스의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의 문해력(literacy)이, 책뿐 아니라 삶과 신앙에 대한 문해력이 정말 높아지면 좋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실은 언제나 그게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한 문해력, 너에 대한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소설 한 권을 다시 들어보자. 



"나는 예술이 사회 문제의 해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통념을 반박하고 싶다.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일어나는 정확한 원인은 우리의 사회가 시간과 정력을 진정으로 예술적인 일에 쏟지 못하고, 미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소박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일부 도시의 내면적 문제들이 오직 심미적 기반 위에서만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의 사회가 미를 깨뜨려서는 안 될 가치로 존중한다면 우리들의 도시는 콘크리트 건물의 밀림이 되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시냇물이 오염되지도 않을 것이다." 

- 릴런드 라이큰 《상상의 승리》에서




정모세◆연세대92

넷째가 태어난 것으로 일단락된 격동의 2014년을 보냈다. 올해가 향후 20년의 방향이 뚜렷해지는 출발선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래안,지안,다안,요안 네 명의 아이를 잘 키우는 게 20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한가지라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10여 년 전에 일했던 IVP에 작년에 편집장으로 복귀했고, 혁명기도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분당두레교회 협동목사이기도 하다. 《회심》,《복음주의 신앙선언》 등의 책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