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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대화의 기술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직장에서 겪는 하루하루의 분투


대화의 기술






식사를 하는 한 시간, 공식적으로 허락된 쉬는 시간이니만큼 기다려지는 순간이면서 동시에 내게는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일생에 제일 많이 하는 고민이 ‘점심에 뭘 먹지?’이고 두 번째로 많이 하는 고민이 ‘저녁에 뭘 먹지?’라는 농담처럼, 매일 점심 메뉴를 결정하는 건 정말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이 시간이 다가오면 긴장하게 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 팀은 주로 식사를 배달시켜 먹는다. 음식이 도착하면 사무실 가운데 있는 테이블에 밥과 반찬을 늘어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저를 든다. 그러면 어김없이 사람들의 입이 열리는데, 이유는 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을 하기 위해서다. 점심시간은 업무적인 이야기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는 대화의 장이다. 주말에 있었던 재미있는 사건을 소개하는가 하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풀어놓기도 하고, 오늘 입은 옷에 관해 감상을 말하거나 아이들 키우는 일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등,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일까지 온갖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제 본 뉴스 기사나 개인적인 생활까지 모든 것이 대화의 반찬이 되는 이곳은 또 하나의 작은 사회이다. 일반적으로 이 시간은 서로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매일 이 시간을 남모르는 긴장감으로 보내고 있다. 수많은 대화가 탁구공처럼 오가는 이 시간 동안, 어느 순간에 어떤 말을 해야 할 것인가가 바로 내가 가진 최대의 고민거리다.


“너는 말이 별로 없네.”


내가 사무실에서 종종 듣는 말이다. 좋게 말하면 말을 신중하게 하는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이것은 내가 가진 성향이면서 동시에 내 한계점이기도 했다. 교회나 선교단체처럼 내 모습을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 주는 공동체와 함께 있을 때는 사실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대화가 어렵다거나 내가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실력과 능력 혹은 인성으로 평가되고 때로는 팀원들 사이에 줄을 세우기도 하는 ‘사회’라는 곳에 나오자 내 입술은 긴장하고 혀는 마비되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일상적인 대화뿐 아니라 업무적인 대화를 하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팀원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는 있으나 정작 대화에는 잘 참여하지 못하는 내 모습은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소극적인 모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말이 별로 없는 것은 내가 이 작은 사회 안으로 들어가는 데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사실 대화라는 것은 정말 쉽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다가 그것에 관한 내 생각을 조금 덧붙이기만 해도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 소개팅 자리에서 가장 할 말 없게 만드는 화제가 날씨라고 하지만, 사실 날씨 이야기만 꺼내도 대화는 쉽게 풀어진다. 좋은 날씨에는 가고 싶은 여행지로, 나쁜 날씨에는 먹고 싶은 음식으로 대화를 연결할 수 있고, 날씨에 따라 변화되는 기분을 공감할 수도 있다. 식사하는 시간은 짧아 보이지만, 적어도 서너 개의 화제들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사라지기 때문에 그 중 내가 말을 얹을 수 있는 무수한 순간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나 간단하게 생각하면 간단한 이 ‘대화’라는 것이 복잡하다 생각하면 또 한없이 복잡해진다.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가 그 사람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말 속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그 사람의 인품과 지식수준 등, 많은 것이 담겨있기에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것은 사실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내 말을 듣게 될 다른 사람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내게서 흘러나올 말들까지도 의식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 경우, 이런 이유로 대화에 긴장감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생각까지 둔해져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사실 작년까지 우리 사무실의 식사시간은 거의 침묵에 가까웠다. 이 주사님은 나보다 더 말이 없는 사람이라 밥을 먹는 동안 말 한마디 주고받지 못한 날이 많았고, 김 주사님이나 임 선생님도 특별히 누가 말을 꺼내지 않는 한 대화의 장을 열기 위해 애쓰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박 선생님과 함께 근무를 하게 되면서 갑자기 점심시간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박 선생님은 체육 전공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인데,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식사 시간을 침묵 속에 내버려두는 성격도 아니었다.


박 선생님이 먼저 나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거나 묻기 시작하자 당연하게도 점심시간이 달라졌다. 밥만 먹는 시간이 아니라, 말과 웃음소리로 가득한 화기애애한 시간이 된 것이다. 금요일 식사 때는 주말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주로 물었고, 돌아오는 월요일 식사 때는 주말에 계획했던 일이 즐겁게 진행되었는지를 이야기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서로의 관심사나 집안 사정, 자주 만나는 친구들의 관계까지 알게 됐다. 사실 박 선생님과의 대화는 굉장히 유쾌하다. 혼자서 대화를 모두 차지하지도 않고 뒤로 빠져서 관찰하듯 보고 있지도 않다. 누군가가 말을 꺼내면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크게 웃어주고, 억울했던 일은 절절하게 토로하고, 한 번 들은 말은 잘 기억했다가 다시 묻기도 한다. 박 선생님을 보고 있자면 사람들을 대할 때 밀려드는 긴장감을 훌훌 털어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침묵 속에 밥을 먹던 시절이나 요즘처럼 화기애애하게 밥을 먹을 때나 내 고민은 한결같다. 유달리 말이 없는 내가 다른 팀원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혹여 이 대화에서 낙오되지 않을까 하는 긴장은, 대화를 자연스럽게 주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박 선생님을 보면서, 배려는 필요하지만 눈치는 불필요한 것이라는 단순한 대화의 기술을 배우고 있다.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마음을 다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속한 대화는 충분히 유쾌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나는 내 안의 긴장감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식사시간의 대화를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오늘도 우리 사무실에는 대화의 기술이 넘쳐나는 점심시간이 또 한 번 지나가고 있다. 긴장이 풀어진 나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김작가J대06

하나님나라를 청소년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은 청소년 활동가. (필자와의 협의에 따라 필명을 사용합니다.)







no.214=2014. 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