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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큰일이야, 팀장님 눈 밖에 났어!!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직장에서 겪는 하루하루의 분투를 담은 에세이


큰일이야, 팀장님 눈 밖에 났어!!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비가 내렸다. 현관에 선 사람들은 30분 째 추위에 떨며 자꾸 시계만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수행원이 운전하는 검은 차량 한 대가 행사장 안으로 들어서니, 기다리던 사람들은 빗물에 젖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우산을 들고 뛰어나갔다. 그들은 그 차량 뒷좌석에서 내리는 누군가에게 우산을 씌워주려 서로 안달이었다. 내게 보인 것은 머리가 희끗하고 양복을 잘 갖춰 입은 아저씨 한 분 뿐, 그러나 우산을 들고 뛰어간 사람들에게는 빗줄기를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 사람이 차에서 내려 행사장 현관으로 들어서기까지는 고작해야 열 걸음도 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서있던 임 선생님이 우습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하셨다. 





“저렇게 우산 들고 뛰어갈 만큼 부지런해야 승진을 할 수 있을 텐데, 난 너무 게을러…….”


그 말이 반쯤은 농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한 이 상황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라는 것에 나는 씁쓸함을 느꼈다. 


내가 3년째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청소년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는 공기관이다. 그렇다 보니 여타의 회사들보다 조직화가 잘 되어 있어서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러나 얼핏 보면 체계적인 이 시스템은 많은 사람이 경험으로 알고 있듯 조직의 서열화를 불러왔다. 여기에 승진체계가 맞물리기 시작하면 상황은 악화된다. 우리 회사에서 사원들은 분기별로 각 팀의 팀장들에게 근무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그 팀장들은 과장들에게, 과장들은 대표님에게 근무평가를 받도록 되어 있다. 아랫사람의 입장에서는 승진을 하고자하면 반드시 윗사람에게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나와 함께 근무하고 있는 박 선생님은 ‘내가 군대도 다녀왔지만 여기는 군대보다 심하다’라며 진저리를 치곤 한다. 


우리 사무실에는 나를 포함한 6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한다. 이 작은 사무실에서도 서열의 체계는 명확하다. 팀장님 밑으로 두 명의 주사님(이 주사님, 김 주사님)이 있고 그 밑으로 두 명의 선생님(임 선생님, 박 선생님)이 있다. 나는 이 사무실에서 가장 막내 자리에서 일하는 계약직 직원으로, 청소년 활동지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손님이 오시면 커피를 타고, 행사 때마다 펜과 접시를 준비하고, 사무실을 청소하고, 서류를 복사하는 것도 내 역할이다. 주사님들과 선생님들 사이에는 근무를 시작한 연도에 따라 서열이 매겨진다. 특히 이 주사님은 ‘차석(次席)’으로 불리며 팀장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우리 팀은 3년 째 손발을 맞춰오고 있지만 여전히 삐걱거리는 것이 많아 불안정하게 길을 걷는 중이다. 





이곳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존재는 말할 것도 없이 팀장님이다. 내가 근무를 막 시작했을 무렵의 팀장님은 내게 무척 호의적인 분이었다. 그러나 내가 딱 한 번 내 사업과 관련해서 반대 의견을 표명하자 그 뒤부터 태도가 달라졌다. 몇몇 청소년들이 무대에 나와 공연을 하고 다양한 아이템을 가지고 나와 부스를 차리는 청소년 마을축제를 준비하면서, 나와 두 선생님들은 청소년 부스가 판매전의 형태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료비 지원금이 없었기에 학생들은 자신의 사비를 털어 각종 체험과 전시를 준비했는데, 참관객들이 그들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여 재료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팀장님은 공기관에서 금전 거래를 허용했을 때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며 이에 반대하셨고 나와 박 선생님은 팀장님을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공기관에서 금전 거래가 허용되었던 사례들을 찾아 보여드렸다. 그러나 팀장님은 그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고 치워버리셨다. 아마 그때 팀장님은 나에 대한 호의도 함께 치워버리셨나 보다.


여태까지는 존댓말이었던 말투가 점차 반말로 변하고, ~씨를 떼어버리고 이름을 막 부르기도 하더니, 급기야는 호칭이 ‘가시나야’로 바뀌었다. 내가 올린 기획안을 보며 코웃음 치고 비웃는 것은 다반사였다. 메신저로 주고받으면 됐던 파일들도 꼭 출력한 뒤 본인의 자리로 가져와 검토를 맡게 했다. 어떤 날은 ‘~야 이리 와 봐. 다시 와 봐.’하고 계속 불러대는 통에 자리에 엉덩이 붙일 틈도 없었다. 그후 나는 결재를 올리기 전에 한번 파일을 출력해서 검토를 받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팀장님이 내가 내는 기획안을 단번에 오케이 해주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낸 A라는 기획안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셔서 팀장님이 지시한 대로 열심히 수정한 뒤 B라는 기획안을 들고 갔는데, 시간이 좀 흐른 뒤에 가져갔더니 B라는 아이디어는 누가 낸 것이냐며 A로 바꿔오라고 하신 적도 있었다. 나는 내 업무에 관련된 팀장님의 반대가 순전히 반대를 위한 반대임을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팀장님은 이 사무실 내에서의 권력구도가 자신에게 집중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와 박 선생님이 반대 의견을 냈던 일이 팀장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만 것이다. 나는 한 마디로 말해서 팀장님의 눈 밖에 났다. 그 일이 있은 후 재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시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는 아직 근무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팀장님은 계약해지 후 재공고 과정을 거쳐 재계약하기를 강력히 주장하셨다. 그렇게 했을 경우 나는 이력서를 다시 제출하고 면접을 다시 봐야 했고, 주사님들은 내가 곤란해진다는 점과 구태여 그런 방법이 아니어도 재계약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팀장님을 설득하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혹시 저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잖아!”


팀장님이 이 주사님에게 화를 내며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면전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고 실의에 빠져 한동안은 아무런 의욕도 들지 않았다. 만약 내가 없는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내게는 따로 재공고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면 그렇게까지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오기로 이력서를 넣었다. 결과적으로 나 외에는 지원자가 없었기 때문에 팀장님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를 채용해야만 했다.


그 뒤로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성질내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일하고 있다. 사실 나 외의 다른 팀원들도 팀장님의 태도에 곤욕을 겪고 있지만 딱 한 사람, 임 선생님만큼은 팀장님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두 분이 비슷한 연배라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승진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 임 선생님에게는 팀장님의 근무평가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팀원들의 이야기에 잘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임 선생님이 우리 사무실에서 힘의 한 축이 되는 것을 팀장님은 잔뜩 경계하고 있지만, 정작 임 선생님의 관심이 쏠려있는 곳은 학생들과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일이라는 것이 재미있는 사실이다. 물론 이에 대한 팀장님의 향할 곳 없는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정말이지 바람 잘 날이 없는 팀이다. 나는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위태로운 격돌이 일어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파란의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작가J대06

하나님나라를 청소년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은 청소년 활동가. (필자와의 협의에 따라 필명을 사용합니다.)













vol.212│2014.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