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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유치한 싸움을 ‘잘’ 싸우는 법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직장에서 겪는 하루하루의 분투를 담은 에세이


유치한 싸움을 ‘잘’ 싸우는 법







매주 월요일은 청소를 하는 날이다. 팀장님이 간부회의에 들어가고 나면, 남은 다섯 명의 팀원들은 역할을 분담하여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모아놓은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류하고 주차장 뒤편의 쓰레기장까지 가져다놓는 것은 주로 힘이 센 주사님들의 역할이다. 선생님들은 대걸레질을 하고 창틀의 먼지를 닦고 싱크대를 정리한다. 가장 먼저 일어나 사무실 바닥과 복도를 쓰는 것은 팀의 막내인 내가 할 일이다. 그러나 정신없이 바쁜 월요일 아침에는 사실상 청소의 분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죄송해요, 저 이것만 마무리하고 도울게요!” 

  

다른 팀원들이 쓰레기봉투와 걸레를 들고 사무실을 다니는 동안 임 선생님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급한 업무를 처리했다. 마침 김 주사님과 박 선생님이 출장을 간 터라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이 주사님은 쓰레기 분리수거를 마친 후에 대걸레질까지 해야 했고 나도 걸레를 들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무실의 먼지를 훔쳤다. 임 선생님은 내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평소보다 빠른 시간 내에 업무를 마쳤지만 그때는 이미 청소도 끝나갈 무렵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뭘 도우면 될까요?”

“됐어요. 다 끝났어요.”





뒤늦게 일어난 임 선생님을 향해 이 주사님이 퉁명스럽게 대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주사님은 이 팀의 차석(次席)으로, 경력이 많고 급수도 높지만 말수가 적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툰 편이다. 반면 임 선생님은 규칙이나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아무와도 스스럼없이 지내고 싶어 하는 외향적인 성격이다. 때문에 언제나 맞물리지 않아 소소한 불꽃을 일으켰던 두 사람의 성향은 청소라는 작은 사건으로 인해 큰 불로 번지게 되었다. 


“무슨 말씀을 그런 식으로 하세요?”

“제가 뭘요.”

“지금 굉장히 불만이라는 투로 말씀하셨잖아요!”

“청소를 하나도 안하셨잖아요!”

“오늘은 급한 업무가 있다고 죄송하다고 먼저 말씀드렸잖아요!”

“평소에도 잘 안하시잖아요.”

“제가 언제요! 주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옆 사무실까지 두 사람의 싸우는 목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점점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들고 있던 걸레로 닦았던 곳만 괜스레 다시 닦았다. 팀장님이 돌아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각자의 업무에만 집중했고 오전 내내 사무실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점심을 먹으러 갈 시간이 되자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사과가 대충 오갔지만, 서로의 상한 마음이나 분노로 어그러진 감정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팀은 주사님들과 선생님들 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주사님들은 행정처리 업무에 탁월하지만 교육현장에 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선생님들은 청소년들에게 좋은 것을 판단하여 업무를 처리할 수 있지만 행정 전반에 관한 까다로운 규칙이나 조항들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업무에 대한 입장차이가 다르다보니 회의를 한번 하더라도 의견이 맞지 않아 삐걱대기 일쑤였다.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상하고 언성을 높여 싸우는 것은 비단 이번만의 일이 아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라, 싸움을 하면 사과하고 화해하라, 라고 배우며 자랐다. 교회 유초등부에서 아이들이 싸움을 하면 잘못한 것을 말하게 하고 사과하도록 가르치기도 한다. 싸움에 대한 해답은 언제나 간단하다. 배운 대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화가 나는 상황에 처하면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반면 내가 가진 불만을 말하는 것은 쉽다. 불만을 가진 상대가 자리를 비우면 그것은 더욱 간단해진다. 욕을 먹지 않으려면 어떤 모임이든 빠지지 말라는 말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사무실은 점심식사를 할 때 매일 돌아가면서 한 사람이 돈을 내는데, 이에 대해서 김 주사님은 언제나 할 말이 많았다. 박 선생님이 출장이 잦은 탓에 언제나 밥을 적게 사고, 밥을 사는 날에도 비교적 싼 가격의 식당에만 간다는 것이다. 출장이 잦은 것이 박 선생님의 탓도 아니고, 어느 식당에 갈지 함께 협의해서 결정하는데도 팀원들은 김 주사님의 불만에 공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선생님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보자는 말은 역효과만 낳을 뿐인지라, 나는 김 주사님이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느라 괜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박 선생님이 그동안 밥을 살 기회가 적었던 것 같다고 미안해하면서 팀원들을 샐러드바로 데려가 크게 한턱을 쏜 것이다. 식사 때마다 가장 먼저 나서서 박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김 주사님은 그 점심 한번으로 마음이 풀어지더니 출장이 많은 게 어디 박 선생님 탓이냐며 옹호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상하고 풀어지는 이 어른들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싸움과 화해의 시작은 모두 사소한 것이었다. 


나는 문득, 관계에 있어서 싸움은 어릴 때 배운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상하게 하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싸움을 한다면 사무실은 좀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이제 사과하고 화해하는 법 이전에 ‘어떻게 잘’ 싸워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사무실을 험악하게 만들었던 청소 사건 이후로 이 주사님은 청소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바쁜 업무를 이해하게 되었고, 임 선생님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다른 팀원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무조건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라고 하면 아무리 어른이라도 화가 나는 법이다. 대신에 내가 어떤 사소한 것에서 마음이 상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상대방에게 잘 표현하고, 상대방이 어떤 사소한 것에서 마음이 상했는지를 잘 들어본다면 그 ‘이해’라는 것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잘 싸우는 것은 서로를 잘 이해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싸우는 것도 화해하는 것도 유치하게만 보이지만, 사실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위대한 과정의 일부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오늘도 나는 싸움이 그치지 않는 파란만장한 사무실에 앉아 유치한 어른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작가J대06

하나님나라를 청소년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은 청소년 활동가. (필자와의 협의에 따라 필명을 사용합니다.) 















vol.213=2014.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