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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_<리멤버0416> MBC팀 좌담회 (2)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유가족의 육성을 담은 《금요일에 돌아오렴》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슬픔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집 밖을 나갈 수도, 집 안에만 있을 수도 없는 시간, 아이의 물건을 태울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시간, 밥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시간...” 


많은 분들이 지난 1년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사회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을 확인해야 했고, 상처 난 마음에 대못을 박는 세상 사람들의 비정함을 지켜보고야 말았습니다. 


압니다. 삶이 불행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그 아픔을 적게 겪게끔 옆자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여기, 전전긍긍하면서도 유가족의 마음으로 믿음의 자리를 지킨 학사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우리가 함께여서 참 다행입니다.


“혼자였다면 어딘가쯤에서 이 시간을 닫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시간으로 바꾸며 사람의 시간을 여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어야 한다.”  -《금요일에 돌아오렴》 풀어쓰는 사건기록 중에서.


《세월호, 1년의 기록》  4․16 이후 파괴된 일상을 살아가는 법_김병년  세월호, 고통을 배우고 애통하는 자들과 연대하다_고성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_<리멤버0416> MBC팀 좌담회




>>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_<리멤버0416> MBC팀 좌담회 (1)'에서 계속


참석자강영희, 권경욱, 기숙영, 박종숙

진행 및 정리김경아





김경아(이하 김) 피케팅에 희망이 있나요? 각자 어떤 기대감으로 이 활동을 지속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권경욱(이하 권) 솔직히 말해서 저 거대한 언론이 내 작은 몸짓에 신경이나 쓰겠냐는 생각은 들어요. 피켓 하나 들고 있다고 저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겠냐는, 시시때때로 그런 마음이 찾아들죠. 


박종숙(이하 박) 하지만 바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은 거겠죠.


권  네, 맞아요. 한줄기 희망 같은 기대감이 있어요. 예전에도 누군가가 이렇게 움직였고 그분들의 수고가 나중에 열매로 드러나는 것을 역사를 통해 경험했으니까요. 이런 생각으로 몸부림치는 겁니다. 


강영희(이하 강) 얻은 것이 있냐고 하셨는데, 유가족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아이들이 떠나면서 좋은 사람들을 선물로 주고 갔다고요. 사실 우리는 만나면 안 되는 사람들인데 만났어요. 서로 그러면서도 만나면 정말 좋아요. 너무나 슬픈 만남인데 따뜻한 만남이에요. 



기숙영(이하 기) 작년 한해가 제게는 고민스러운 시간이었어요.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겠다, 앞으로 뭐하고 살지 고민이었어요. 2, 30대는 선교단체와 교회사역, 육아로 열심히 살았어요. 이제 40대로 접어들고 앞으로 3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뭘 하며 먹고 살 수 있을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뭘 준비해서 앞으로 뭘 할까 등,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 것 같아 좌절하기도 했고 감정적으로도 들쑥날쑥 했죠. 그러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제 모든 관심이 거기로 향했어요. 작년 말에 한해를 돌아보니 또 그냥 한 해를 아무것도 안 하고 보냈다는 마음이 살짝 들었어요. 그런데 찬양 한 구절이 떠올랐어요. “하나님 눈길 머무신 곳, 그곳에 내 눈 머물고” 작년에 하나님의 눈길이 계속 머문 곳이 어디였을까요? 저는 단연 세월호가 아닐까 싶어요. 아, 그곳에 내가 있었구나,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어요. 개인적으로 얻은 것이라면 얻은 것이겠다 싶습니다. 사실 유일하게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이 목요일인데 그날 하루를 일인시위에 쓰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집안이며 제 내면이며 정리가 잘 안 돼서 괜히 애들한테 원망도 하고 그래요. 하지만 일인시위는 계속 해야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사실 그런 마음도 있지만 저는 책임감에서 계속 하고 있어요. 누군가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말이죠.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게 이런 책임감이 아닐까요? 누군가 자기 자리에서 조금만 더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주었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져주었다면 이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그리고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지난 역사를 말하면서 엄마가, 할머니가 이런 거 했다고, 아이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이런 걸 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박  무엇을 잃고 얻었냐는 질문을 들으며, 가장 먼저 사람을 얻었고 사람을 잃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아실 거예요. 개인적으로 제 인생을 돌아보니 저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더군요. 야학이나 장애인 문제에 직접 참여해 보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집안에 있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사라졌죠. 그러다가 세월호로 인해 세상으로 다시 나왔어요. 하나님이 제게 다시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제 안에 숨어있던 사회를 향한 열정을 사용할 곳으로 부르신 것 같아요. 제 방식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세월호를 통해 제가 얻은 건, 세상을 보는 눈을 다시 뜨게 된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제 인생의 굉장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대학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복음과 상황>에 글도 쓰고 모임에도 참여했지만, 생각이 많았던 거에 비해 활동은 많이 못했죠. 특히 6년 정도 해외에 거주하는 동안 한국에서 촛불시위가 있었어요. 그리고 ‘용산 참사’의 중심에 있던 교회에서 저희 부부가 사역했었어요. TV와 인터넷으로 그 교회에서 함께했던 분들을 봐야했죠.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그때 아무 것도 못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을 이렇게나마 해소하는 것 같아요.  


 저는 세월호로 인해 그야말로 세상을 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면서도 꾸준히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이 알게 되었어요. 내가 그간 이런 아픔들을 외면했구나 싶어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저는 뭘 기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서 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 저를 불러주셨으므로 피켓을 드는 것으로 순종하는 겁니다. 효과가 있든 없든 광장에 서서 저의 고백을 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는 일이 완전히 헛된 일은 아니라고 믿어요. 제가 MBC 일인시위를 처음 시작했는데요, 다른 어느 곳보다 견고한 진인 MBC 앞에서 기도하기로 결심한 거죠. 지금 이 팀은 비밀 기도 결사대라 할 정도로 영적인 결속력이 생겼어요. 하나님이 우리의 활동을 의미 있게 보시리라 생각합니다. MBC도 변화될 날이 오지 않겠어요? 적어도 막말보도를 하려고 할 때 우리 생각이 나지 않을까요? 실제로 2월말에 팽목항에 다시 갔을 때, MBC 기자가 계속 울면서 기사를 적더라고요. 그들이 우리의 피켓을 차마 못 쳐다보겠다는 이야기도 들리고요. 



상암MBC 신사옥 앞에서 제100차 일인시위를 맞아 단체 피케팅과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우리나라 정서상 이쯤이면 사그라지는 게 보통인데 <리멤버0416>의 피케팅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던데요?


 <리멤버0416>은 엄마들이 시작한 셈인데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은 있으나 뭘 해야 할지 몰랐던 엄마들에게 피케팅은 좋은 방법이었죠. 그래서 점점 확장되는 것 같습니다. 늦게 발동이 걸리는 아줌마들도 많거든요.(웃음) 


 이쯤에서 저는 제가 평범한 사람이란 걸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그만둘 생각도 여러 번 했고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약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이 그 아픔을 공감하면서 이런 시위, 피케팅이 시작된 거라고 봐요. 저 역시 강하지 않고 아픔이 많았기에 그 아픔 때문에 시작해서. 그만두려다가도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마음 때문에 지속하고 있거든요. 

 

 피켓을 들고 서있다 보면 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제대로 못 살면서 피켓을 드는 게 부끄럽기도 해요.


 실제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어요. 일인시위 후 우리가 계속 후기를 올리는데 일반인으로서는 사실 엄청난 노출이죠.


 끝으로, [소리]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세요.


 세월호 참사에 참여하는 일은 고통과 억울함에 대한 공감입니다. 저에겐 억울했던 경험이 있어요. 자식 잃은 부모의 억울함도 그럴 것이라는 맘으로 나섰을 뿐입니다. 타종교 사람들도 세월호는 우리가 꼭 져야 하는 시대적인 십자가라고 이야기해요.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어요. 진상규명조차 시작되지 않았고 특별위원회가 방해를 받으며 가동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에요.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특히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훈련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의 부르심을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한국을 떠났다가 돌아와 보니,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이전보다 물질만능주의는 심화되었고요. 그중 가장 심한 게 우리 개신교인들입니다. 세월호 사건이 그런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어요. 우리가 피케팅을 하면서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같이 공감하자는 것입니다. 약한 자들은 약해서 소리 지를 힘도 없다고 해요. 결국은 곁에 있는 사람이 소리를 질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식 잃은 부모는 왜 내 자식이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뿐이에요.


 예수님 마음을 닮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사는 건 너무 큰 죄인 것 같습니다.



왼쪽부터 권경욱, 기숙영, 강영희, 김경아, 박종숙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게 아니라, 공감을 못하는 건 죄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박  세상이 금세 변할 거라고 기대는 안합니다. 그런데 피켓을 들고 있다 보면 정말 관심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힘이 됩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조금씩 일어나는 이런 행동들이 작지만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리]에서 이 글을 읽으시거든 이런 작은 목소리를 함께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길을 가다가 노란 리본을 단 가방을 보면 괜히 반갑더라고요. 리본을 다는 이런 작은 행동도 힘이 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데 유가족에게는 어떻겠어요! 국민을 얕잡아 보는 정부도 그렇게 국민의 힘을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저는 제 꼬락서니가 어떤지 스스로 너무 잘 알아요.(웃음) 매형이 IVF 학사라 [소리]에서 제 이야기를 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약한 저도 합니다. 아줌마들 틈에 껴서 저도 하고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도 할 수 있고, 뭐라도 하고 싶은 젊은 학사들에게 이런 활동을 추천하고 싶어요. 사실 요즘 청년들의 상황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요. 당장 월세가 걱정되고 결혼은커녕 진로 걱정도 해야 하죠. 수없이 많은 역할과 책임 속에서 불안하게 살고 있어요. 이 나이에 아직도 부모님께 도움 받으며 살아가는 주제에 페이스북에 글 하나 올리기도 눈치가 보이죠. 그나마 제가 지속적으로 일인시위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직장생활 중 시간을 낼 수 있기 때문이고요. 생존만으로도 벅찬 학사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함부로 말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아픈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고 작은 실천부터 함께하다 보면 우리의 아픔 또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으리라고 생각해요. 


강  저는 엄마의 마음으로 20대를 대신해서 활동하겠다는 마음도 먹었어요. 20대가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직접 나설 순 없으나 기도는 할 수 있어요. 그게 중요하죠. 저는 바쁜 20대에게 깨어있으라고 말하지 말고 저처럼 4,50대가 나서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김  이 팀의 기도제목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강  우리끼리 지금까지 성령님의 이끄심대로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이끄심을 잘 바라보며 따라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팀뿐만 아니라 각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MBC 일인시위 100차 행사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좋겠어요. 우리는 이게 완악함에 대한 영적인 외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 받는 사람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방송은 정말 악합니다. 믿는 자들이 많이 참석해서 악을 향한 강력한 선포가 되기를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헛수고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하나님이 주는 사인을 잘 따라가도록 기도해 주세요.


김  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하신 후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vol.219◆2015.04+05

세월호, 1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