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4․16 이후 파괴된 일상을 살아가는 법_김병년

4․16 이후 파괴된 일상을 살아가는 법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유가족의 육성을 담은 《금요일에 돌아오렴》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슬픔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집 밖을 나갈 수도, 집 안에만 있을 수도 없는 시간, 아이의 물건을 태울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시간, 밥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시간...” 


많은 분들이 지난 1년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사회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을 확인해야 했고, 상처 난 마음에 대못을 박는 세상 사람들의 비정함을 지켜보고야 말았습니다. 


압니다. 삶이 불행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그 아픔을 적게 겪게끔 옆자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여기, 전전긍긍하면서도 유가족의 마음으로 믿음의 자리를 지킨 학사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우리가 함께여서 참 다행입니다.


“혼자였다면 어딘가쯤에서 이 시간을 닫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시간으로 바꾸며 사람의 시간을 여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어야 한다.”  -《금요일에 돌아오렴》 풀어쓰는 사건기록 중에서.


《세월호, 1년의 기록》  4․16 이후 파괴된 일상을 살아가는 법_김병년  세월호, 고통을 배우고 애통하는 자들과 연대하다_고성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_<리멤버0416> MBC팀 좌담회



기다릴 수 있는 자에게 모든 것은 돌아온다. - 프랑수아 리블레 (사진ⓒ이재웅)




거짓된 평온을 폭로한 핵폭탄, 4·16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날은 공휴일이다. 국가나 사회가 정하여 다 같이 쉬는 날이다. 대부분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 기념비적인 날이거나 역사적인 전기가 되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난 날인 경우가 많다. 전쟁의 아픔과 전쟁 중에 희생하며 이 민족을 지켜낸 선열들을 기리거나, 민주화를 외치며 희생한 이들을 기념하는 날 등이다. 


나는 올해 내 달력에 새롭게 빨간 공휴일을 하나 추가했다. 물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기념일은 아니다. 나 홀로, 아니 이 날의 아픔을 기억하며 함께 아파하는 이들이 스스로 정한 날이다. 4월 16일. 


이 날을 기념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수학여행 길에 해상 사고를 당한 학생들을 정부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무능을 보여준 참사가 일어난 비극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념하는 슬픈 날, 생떼 같은 자식들을 구조하지 않고 바다에 수장시킨 대한민국의 무능과 집권자들의 악함에 치를 떨던 날로 기억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의 핵심은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이다. 사고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는 자기 영해에서 사고를 당한 배가 침몰하기 전까지 구조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왜 그렇게 하지 못한 걸까? 해경은 선장과 선원들만 구조하고 침몰한 배에 갇혀 있던 시민들과 학생들의 구조를 포기하였다. ‘무슨 이유로 전쟁 상황도 아닌 평시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을 구조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바로 4·16 참사의 핵심이다. 


세월호 참사는 시민운동이나 민주화 투쟁으로 인한 희생이 아니었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아니 학교수업의 연장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 304명이 한꺼번에 꽃다운 목숨을 잃은 사고였다. 이날 우리는 언론의 거짓 생중계를 통해 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을 생생한 영상으로 지켜보았다. 잔인한 날이었다. 우리의 일상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평온한 줄 알았던 우리의 삶이 보호받지 못하는 위험들로 포위당해 있음을 절감하였다. 우리의 일상이 거짓 평안 위에 세워진 것임을 깨달았다. 


그로써 우리는 내 나라가 나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였다. 나라가 있으되 그 나라가 재난의 위기로부터 국민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을 파괴할 괴물이 되어 있음을 알아챘다. 지난 1997년의 IMF 금융위기 때처럼, 정권을 잡은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되고 무능한 국가 운영을 감추고 국민들을 속였다. 정부의 무능한 위기 대응 능력은 국민의 일상을 송두리째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국가적 차원의 재난 대처 시스템과 안전망이 허물어진 나라는 그 자체로 언제라도 국민의 평온한 일상을 파괴할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폭발물처럼 다가왔다.  



JTBC 뉴스9 방송 캡쳐




삶의 위험보다 더 무서운 건 ‘거짓’


참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언론들과 언론 플레이를 일삼는 정부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을 외면해왔다. 그날 이후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들려오는 모든 소식을 의심해야 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귀에 들려오는 것이 사실일까?


일상에 묻혀 살아가던 내 삶에 진실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4월 16일 오전, 컴퓨터를 켜는 순간 진도 앞바다에 헬기가 날아다니고 구조원들이 내려가서 구조하는 장면들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휴, 그러면 그렇지 잘 구조하고 있구나…’ 하고 안심하는 순간 갑자기 SNS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목사님, 도와주세요!”


세월호에 승선한 학생들 중에 조카가 있는 삼촌이었다. 그는 이미 팽목항에 내려가 있었다. 


“목사님, 저거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헬기도 없고요, 구조대원들도 몇 명 안 돼요. 방송은 다 거짓말이에요. SNS에 이 소식을 올려주세요!”


정말 다급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어리둥절했다. 그가 전해오는 말들은 방송 중계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처음엔 당혹감이 들었다. 그에 따르면, 정부는 사고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언론은 마치 구조가 잘 이뤄지는 것처럼 거짓된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미 밝혀진 것이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재난 앞에 진실해야 할 국가가 처음부터 이미 진실을 버리고 있었다. 이후부터 언론은 철저하게 정부를 대변하고 진실을 외면하였다. 언론은 사고의 원인과 구조 실패에 대해 제대로 취재하려고 하지 않았고, 1년이 넘는 유가족들의 광화문 천막 시위로부터 카메라를 돌려버렸다.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사건 발생 후 진도에 내려온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유가족들에게 진상을 반드시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그 공허한 약속이 전부였다. 그 후로는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 있을 때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대통령이 앞장서서 외쳐댔다. 자식 잃은 부모들의 피맺힌 하소연을 대통령은 외면했다. 희생자들과 남은 가족들은 뉴스에서 사라졌고 위정자들은 양심에 눈을 감았다.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유족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특혜를 요구했다는 말을 흘렸다. 거짓이었다. 앞에서는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약속해놓고도, 뒤로는 정작 거짓으로 비용을 추론하여 또 부풀렸다. 


거짓, 거짓, 거짓…. 진실이 없는 지도자를 보는 것처럼 역겨운 일도 없다. 국가의 권위는 무너졌다.    






도처에 편만한 거짓 메시지


“행복한 아침입니다.” 참사 하루 뒤인 4월 17일, 어느 기독교방송 진행자의 첫 멘트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터져 나왔다. 


“야 이 ×××야! 오늘 같은 날은 슬프고 우울한 날이라고 한 마디 하면 안 되는 거냐? 그래, 364일 다 행복한 날이라고 해도 좋아.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아이들이 죽어 가는데 행복한 아침이라고? 그게 인간으로서 할 소리야?”


그 무관심과 무정함에 몸서리를 쳤다. 그 짧은 한 마디에서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지 못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지 못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았다. 울음조차도 막아버리려는 폭력성은 우리의 무의식에 내재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기독교방송사와 진행자만의 일은 아니었다.  


세월호 사건은 국민을 회개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망발과 가난한 학생들이 왜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느냐는 비아냥거림, 유가족들과 유가족을 돕는 이들을 좌경빨갱이로 몰아가는 반공몰이까지, 무정함과 폭력성은 몇몇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집단적인 광기로 나타났다. 자식을 잃은 아픔을 당한 부모들의 가슴에 “이제 그만 하고 잊으라”거나 심지어 “지겹다”는 말로 대못을 박았다. 슬픔을 당한 자들이 울음을 그칠 때 상처에 새살이 돋는 법인데, 함께 슬퍼하지는 못할망정 상처를 더 깊이 후벼 파는 폭력을 행했다.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구제만으로는 절대 할 수 없다. 정의를 먼저 추구해야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구제의 영역이라면, 국가와 사회를 바르게 세우는 푯대가 정의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 ‘미래’의 희망을 기대한다면, ‘이익’에 민감한 아이들이 아니라 ‘옳고 그름’에 민감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 그러니 한국교회 또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세월호와 같은 사고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그때도 지금처럼 참사가 되지 않으려면 국가는 사건을 은폐하지 말고 진실을 밝혀야 하고, 교회는 우는 사람들을 품어야 한다. 위선과 거짓, 그리고 슬픔을 덮어버리려는 폭력이 사라지는 사회가 되어야 일상의 참 평안이 가능해진다. 울 수 있고 웃을 수 있어야 일상이 평온하다. 거짓으로써 억울한 이들의 눈물을 억누르지 말라. 응어리진 분노는 시한폭탄과 같다. 우는 이들과 함께 눈물 흘리는 하나님의 성품이 없는 삶에는 하나님의 마음도 없다. 지옥이 여기 있다. 






잊어버리지도, 가만히 있지도 않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인터넷 검색을 한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세월호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매일 한두 가지를 SNS에 공유한다. 이것은 마치 부르심의 영역과 같은 일이다. 기사를 읽을 때마다 실종자와 희생자 가족의 이야기에 울고, 그들의 아픔을 훼손하는 기사에는 분노를 터뜨린다. 신문을 보다가 울면 옆에 있던 막내가 말한다. 


“아빠, 또 세월호야?”


맞다. 1년이 지나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거대한 분노의 눈물이 아직도 멎을 줄 모른다. 어제는 MBC 방송국으로 갔다. 노란 뺏지를 달고, 노란 피켓에 노란 종이배를 들고 외쳤다. “진실을 규명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시위는 언제나 긴장된다. 시위대를 막아선 경찰들보다 외면하는 시민들의 시선이 더 힘들다. 용기가 없어 다가오지 못하는 이들이 적잖지만, 그럼에도 다가와서 서명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이들도 많다. 나보다 더 씩씩한 젊은 엄마들의 참여는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시위 현장에서 내가 가르친 IVF 후배들뿐 아니라 선배들도 많이 만난다. 그들이 반갑다. 생명을 위한 삶의 수고를 다한다. 그것이 반갑다. 

 

정기적으로 시위 현장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광화문으로 달려간다. 그곳에 머문다.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그곳에서 커피를 내리며 봉사를 한다. 그분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커피 구입에 드는 비용을 보태곤 한다. 목사로서 성도에게 보내는 지지인 셈이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유가족들을 사귀고 그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볼수록 감사하다. 추운 그곳에서 따뜻한 커피를 내려서 찾아오는 이들을 대접하는 일은 세월호 유가족을 지지하든지 반대하든지 관계없이 그들의 마음을 녹인다. 

  

우리집 아이들과는 벌써 네 번 안산을 다녀왔다. 합동분향소와 단원고 옆 분식집에 들른다. 그곳에 가면 또 다른 사연을 듣는다. 교회 집사님이 운영하는 단원고 앞 ‘놀러와’ 분식집. 내가 앉은 자리가 작가 지망생이었던 수연이가 낙서한 곳이란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집사님은 아이들의 이름만 대면 누군지 대충 아신다. 그 아이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우신다. 정기적으로 분식집을 방문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단다. 위로가 된다. 아픔의 현장을 찾아가는 천사들이 여전히 있다. 

 

세월호 이후로 나는 행동하는 시민으로 변하는 중이다. 목회의 영역도 넓어졌다. 우리 교회를 넘어 우리 사회가 목회의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는 한 나의 목회가 안정감을 누릴 수는 없다. 이웃을 외면한 목회, 거짓 진리에 항거하지 못하는 벙어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이다. 나의 옷깃에는 항상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려 있다. 어디를 가서 설교를 하든지 나는 이 배지를 빼지 않는다. 이 배지는 나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잊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는 작은 노력이기도 하다. 사회적인 약속을 지키려는 내 양심과 부르심의 소리를 듣는다. 약자들 편에 서 계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물론 여전히 내적인 긴장이 없지 않다. 목사로서 너무 정치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늘 스스로 묻고 또 묻는다.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 위기에 처한 국민을 외면함으로써 앞장서 폭력을 행한 국가와, 진실을 내팽개쳐버린 언론을 상대로 싸우려면 진실한 삶을 사는 길밖에 없다. 한 번의 행동으로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진실을 향하여 꾸준히 진리를 품은 걸음을 내디딜 따름이다. 가슴 깊이 ‘주여, 언제까지입니까’라는 물음을 품은 채 함께 걷는다.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회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




김병년한국외대84, 다드림교회 담임목사

아내를 지키는 간병인, 세 아이의 엄마이자 아빠, 작은 교회의 목사, 공 잘 차는 아저씨. 이 모든 역할을 감당하며 고통 가운데서도 즐겁게 사는 법을 체득한 그는 "예수 잘 믿는 목사"라는 평생의 꿈을 가지고 공릉동에 있는 다드림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난 당신이 좋아》, 《바람 불어도 좋아》, 《아빠, 우린 왜 이렇게 행복하지?》가 있다.




vol.219│2015.04*05

세월호, 1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