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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세월호, 고통을 배우고 애통하는 자들과 연대하다_고성지

세월호, 고통을 배우고 애통하는 자들과 연대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유가족의 육성을 담은 《금요일에 돌아오렴》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슬픔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집 밖을 나갈 수도, 집 안에만 있을 수도 없는 시간, 아이의 물건을 태울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시간, 밥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시간...” 


많은 분들이 지난 1년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사회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을 확인해야 했고, 상처 난 마음에 대못을 박는 세상 사람들의 비정함을 지켜보고야 말았습니다. 


압니다. 삶이 불행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그 아픔을 적게 겪게끔 옆자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여기, 전전긍긍하면서도 유가족의 마음으로 믿음의 자리를 지킨 학사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우리가 함께여서 참 다행입니다.


“혼자였다면 어딘가쯤에서 이 시간을 닫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시간으로 바꾸며 사람의 시간을 여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어야 한다.”  -《금요일에 돌아오렴》 풀어쓰는 사건기록 중에서.


《세월호, 1년의 기록》  4․16 이후 파괴된 일상을 살아가는 법_김병년  세월호, 고통을 배우고 애통하는 자들과 연대하다_고성지 ◆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_<리멤버0416> MBC팀 좌담회





2014년 4월 20일. 그날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기뻐하는 부활주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살지 않은 제 인생에서 가장 당혹스럽고 혼란스럽고 무거웠던 부활절이었습니다. 


사고가 있은 후 나흘 째 되던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눈을 뜨자마자 간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혹여 구조 소식이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것은 청와대로 가려고 하는 실종자와 유가족의 걸음을 막아선 경찰들, 그리고 그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는 가족들의 비통한 얼굴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지금이 2014년이 맞는가,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너무너무 화가 났고, 당장이라도 내려가 싸워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이 때, 이 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님을, 순탄히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님을 직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리도 분노하고 슬퍼하고 절망했나 봅니다.


사고가 난 그 다음 주는 간사회 리트릿 주간이었습니다. 간사들 모두 분노와 당혹감으로 주일을 보내고, 과연 이런 시기에 리트릿을 가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국가적 슬픔 앞에서 리트릿을 가는 것 자체가 죄스러웠고, 괴리가 느껴졌고, 무엇보다 각자 무거운 마음을 지닌 채 함께 있는 것도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역을 위해선 리트릿이 필요한 시기였고 고통 속에 홀로 있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해 리트릿을 진행했습니다. 강원도 일정을 취소하고 근처에 있는 한적한 수양관으로 장소를 옮겼죠. 


점심식사를 하고 모인 모든 간사들은,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난감하면 난감한 채로, 아프고 힘들면 아프고 힘든 채로,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러운 채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 울고 기도하면서 그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일정을 마친 후에 숙소로 돌아와서는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무거운 정적이 흐르기도 했지만요.





사고 후 한 달이 지나고, 혼자 진도 체육관으로 봉사활동을 갔습니다. 봉사자들이 많다고, 가도 딱히 할 일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오랜 시간 고통을 겪는 분들께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고 그저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갔습니다. 운전하며 내려가는 내내 손발이 떨렸습니다. 사실 저는 낯선 곳을, 더군다나 혼자 다니는 걸 상당히 무서워하거든요. 처음 가는 곳이라 긴장도 되었지만, 내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괜히 민폐가 되면 어쩌나, 거기 계신 분들이 동정처럼 느껴 불쾌하지는 않으실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속에 있던 본심… 사실은 고통과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힘들고 싶지 않다는 속마음이 저를 떨리게 했습니다. 


체육관으로 진입하니 아니나 다를까, 셀 수 없이 많은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엔 경찰들이 무서워 위축됐고, 특별히 배정 받은 일이 없었던 터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허둥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미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 틈에 껴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배식을 도왔죠. 잠깐 짬이 나면 함께 일한 분들과 대화도 하고 쉬기도 하고 팽목항에 가 있기도 했습니다.


체육관에서의 첫날 밤, 자다가 새벽에 깼습니다. 어디서든 잘 자는 편이라 금방 다시 잠들 줄 알았는데 잠이 오지 않아 일어나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의료진 등 몇몇 분들만 깨어 있었고 모두 잠들어 고요했습니다. 실시간 구조 현장 소리도 체육관에 계시는 분들이 쉴 수 있도록 새벽에는 음소거 모드로 해 놓았습니다. 주무시는 유가족 혹은 실종자 가족들을 바라보다가 번뜩, 고통이 일상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통이라는 것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특별한 순간에 찾아오는 희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통의 종류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자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곳임을, 고통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임을, 고통이 있다고 해서 일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고통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곳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니 이상하게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겪는 것을 힘들게만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통의 현장을 맞닥뜨리는 것이 고통을 극대화할 것 같아 두려웠는데, 고통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니 오히려 고통이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고통을 받아들이니 그곳에서 지내는 게 한결 편해졌습니다. 진도에서 보낸 2박3일의 시간은 저에게 고통을 대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세월호는 웬만한 일에 요동하지 않는 저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고민하게 했고, 움직이게 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가, 내가, 우리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있는지 어떤 가치를 좇고 있는지 보게 했습니다. 고통을 피하거나 외면하고 싶어 하는 저를,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한가운데로, 애통한 마음을 지닌 자들의 삶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나만 홀로 있는 것이 아님을, 전국 각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이 고통에 연대하고 있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럼으로써 겸손히, 그러나 최선을 다해 바른 것을 추구하며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사고가 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세월호 이야기를 해야 하냐고, 언제까지 마음 아파야 하고 슬프고 힘들어 해야 하냐고, 이제 그만하자고, 좀 벗어나고 싶다고 말이죠. 제 주변에 기독인들이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기독인들이라는 사실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저는 이야기합니다. 정서적인 반응‘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슬픔을 위로하는 것을 넘어 이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지금도 깊숙한 것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건 아니지만 최소한 눈으로 보이는 것들이라도)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요. 이를 딛고 더 단단하고 더 성숙하고 더 깊은 차원의 사람이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죠.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는 절대 세월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요.


1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 메인 기사나 뉴스에서 세월호 소식을 자연스럽게 접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관련된 내용을 접하게 되는 빈도수도 확실히 줄어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세월호 가족대책위 홈페이지(416family.org)나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현재 계속 진행 중인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콘서트와 유가족 간담회 등에 참여하도록 주변 사람들을 독려합니다. 그리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노란 리본을 달아 놓고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이 있음을 기억하고 기도하려 발버둥 칩니다. 때로 이런 내 삶과 나의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혹은 이미 끝난 일처럼 돌아가는 사회의 모습에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 정의와 공의를 실현해가고 계심을,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갑니다.







고성지공주대05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으나 질서를 좋아한다.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고 드라마 보는 것이 취미. 겉은 강인하나 속정 깊고 눈물이 많다.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은 29살. 대전중부지방회에서 공주대와 고려대 세종캠퍼스를 담당하고 있다.

















vol.219◆2015.04+05

세월호, 1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