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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다_전재중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다



새해는 새로운 마음으로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잡기 좋은 때입니다.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좀처럼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은 것 중 하나가 경건훈련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일매일 치열한 삶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바쁜 일상을 핑계로 뒷전이 되기 십상이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학사들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이들의 고백을 통해 영성생활을 유지하는 비결을 얻어 가시고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는(딤전4:7) 기쁨을 맛보면 좋겠습니다. 


《신앙의 근육을 키우자, 얍!》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다_전재중 ◆ 공동체를 이루는 힘, PBS에 있다!_안한영 ◆ 회복의 동력, QT!_한병선 ◆ 영혼과 삶의 양식인 성경읽기_황신혜






나는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청계산 기도원에 간다. 이 일이 2년이 넘어가면서 이제는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한창 활발하게 일할 중견법률가가 토요일 이른 시간에 산자락의 기도원으로 가는 모습은 누가 봐도 현실 도피적이다. 기도원에 갈 때 뚜렷한 기도제목이나 어떤 것을 응답 받겠다는 적극적인 목적은 없다. 그냥 세상일들을 내려놓고 잠잠히 내가 있어야 할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런 시간이다. 지난 연말에는 갑자기 이제 이런 연말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을까, 진짜 마지막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싶어 잠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매주말 기도원에서의 묵상과 기도시간이 내게 평온을 다시 가져다  준다.


로스쿨이 없고 사법연수원만 있었던 시절, 처음 CLF(기독법률가회) 사역을 시작하면서 신우회 첫 예배에 말씀을 전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무엇을 전할까 고민하고 기도하다가 헨리 나우엔의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IVP) 소책자를 A4 세장으로 빽빽이 요약하여 그대로 읽어 주었다. 그 나눔이 모인 이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일으켜 후배들과의 모임을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책의 요지는 상향성의 종교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라는 내용이었다. 예수님의 광야 시험을 예로 들면서 세 가지 시험에서 벗어나라는 충고였다. 첫째는 생산성, 상황 적합성의 시험이고, 둘째는 이목집중의 시험, 세 번째는 영향력 확보의 시험이었다. 상향성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와있는 법률가들에게 꼭 들어맞는 아픈 내용이었다. 그후로 우리가 추구할 영성(Spirituality)은 하향성이라는 걸, CLF 리더들 사이에선 모두가 공감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매주 토요일 기도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변호사로서 생산성은 물론 상황 적합성도 없고,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으며, 아무런 영향력 확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내가 기도원에 가는 행위는 우리가 추구하는 영성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청계산 기도원에 처음 가본 건 1993년 여름이었다. 선배 부부를 따라 갔는데, 그곳이 목회자들이 많이 와서 기도하는 곳으로 유명하고 기도가 잘 된다 하더라는 소개를 받았다. 기도원 본당이나 산속 곳곳에서 기도하는 분들을 보면서,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었다. 그후 간헐적으로 산보 삼아 다니다가 본격적으로 이 기도원에 다니게 된 계기가 있었다. 


1995년 12월, 성탄절을 앞둔 토요일로 쉬는 날이었다. 당시 진행하고 있던 한 소송 사건에 대해 직감적으로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사무실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직원의 실수로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기일을 놓친 것을 발견했다. 당시 개인사무실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소송에 걸린 돈도 상당히 컸을 뿐 아니라, 만일 이 일이 잘못될 경우 배상문제는 물론이고 그 회사와의 관계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현실적으로 해결책이 없어 보였다. 그 다음 날, 그 상태로는 도저히 주일예배에 갈 수가 없었다. 주일 아침, 아내에게 말하고 두꺼운 옷을 걸치고 청계산 기도원으로 갔다. 기도할 말문도 열리지도 않은 채, 눈앞에 닥친 다급한 문제에 대하여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겨우겨우 힘겹게 이어가고 있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면서 들고 간 기도제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갑자기 내 속 깊은 곳에서 탄식과 회개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큐티나 기도생활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로펌생활, 유학, 개업 등으로 늘 쫓겨 살아오면서 깊은 기도에 들어가 본 일이 거의 없었다.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 음성을 듣는 기도가 내게 절실하다는 것을 그 일을 통해 깨달았다. 눈앞의 문제는 잊어버린 채 십자가를 붙들고 부르심과 순종에 대하여 생각지도 않았던 깊은 기도를 하게 되었고 아주 기쁜 마음으로 기도원에서 내려왔다. (문제의 그 사건은 여러 어려움을 겪은 끝에 잘 해결되었다.) 그후 청계산에서 가졌던 그 기도 시간에 대한 갈망이 생기면서 자주 청계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2009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그해 8월초 제1회 CLF 전국대회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벽에 부딪치고 대회에 대한 심적 압박감 등이 몰려왔다. 그리하여 대회 두 달 전부터 핵심멤버 서너 명이 매주 토요일 청계산에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전문인그룹의 지성적 분위기가 아니라 온힘을 다해 매달리며 외치는 기도회를 통하여 우리는 힘을 얻었다. 기도회 참석자가 점점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40여명이나 되었다. 성공적인 경험이었다. 그후 매년 전국대회를 앞두고 기도회가 정례화 되면서, 청계산 기도회는 CLF의 중요한 영적 자산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매해 열리는 전국대회도 은혜로웠지만, 리더들이 준비과정에서부터 기도회를 통해 받는 은혜가 더 큰 체험이 되었다. 이러한 기도에 대한 갈망으로 어느 시점부터는 전국대회 이후에도 매월 1회 토요일 아침 청계산 기도회가 CLF 정규 활동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전문인단체 중에서 CLF가 기도운동에 더 매달리게 된 것은 다행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사역이 점차 확장되면서 사역 자체가 중심이 되고 기도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로스쿨 사역에 따라 중보기도 부탁을 많이 받으면서 개인적으로 좀 더 기도의 짐을 져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이에 2012년 여름 전국대회 후에는 정례 기도회가 없는 날에도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혼자서 때로는 한두 명의 동역자들과 같이 청계산 기도를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청계산 기도의 시작은 CLF 선배변호사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이 기도가 사역과 관계없이 내 개인 신앙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시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제 나는 토요일 오전에는 아주 특별한 일 아니면 다른 약속을 잡지 않는다. 가족들도 그 시간에는 내가 청계산에 가는 줄 안다. 혹 몸이 불편하여 가지 않으면 왜 안 가냐고 따져 물어올 상황이 되어 그 말이 듣기 싫어서라도 갈 때가 있다. 나를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여야 할 사람으로 봐주는 이런 환경 자체가 감사하다. 억지로 가더라도 한번도 그냥 빈손으로 내려온 일은 없다.





단체 기도회는 7시반경에 독립된 공간에서 하지만 개인적으로 갈 때는 9시경에 가서 본당에서 두어 시간 기도하고 온다. 대부분 중보기도에 할애하지만, 기도가 깊어지면 주님이 부어주시는 기도제목에 집중한다. 다리가 저릴 때는 산으로 조금 올라가 한적한 곳에서 찬양하고 기도하기도 한다. 기도를 마치고 때로는 생수 한 병을 들고 기도원 뒷산을 통하여 청계산 정상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어느 단풍철에 몇몇 형제들과 함께 올라갔을 때 매봉 부근의 전망 좋은 곳에서 같이 기도한 적이 있었는데, 마치 그곳이 CLF 아지트 같아서 지금도 정상까지 갈 때는 그 지점에 들러 잠시라도 기도하고 내려온다. 


청계산 기도의 유익함을 들자면, 우선 비교적 긴 시간을 내어서 기도하니 눈앞의 필요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좀 더 깊은 기도, 성령님이 부어주시는 기도제목을 붙들 수 있어서 좋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한 시간 정도 기도의 씨름을 한 후부터 깊은 기도를 하게 되는데 그 시간이 정말로 달콤하다. 큐티를 한다거나 일상생활 중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깊은 기도에 다다르기가 쉽지 않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더 기도의 부족을 느끼고 매달리며, 깊은 기도의 경험은 계속하여 기도 장소를 찾게 만드는 것 같다.          


기도원에 거주하시는 매우 연로하신 권사님의 기도소리를 본당에서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다른 할머니와 대화를 하시는 줄 알고 왜 본당에서 잡담을 하는지 짜증이 났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권사님은 기도하는 중이었다. 꼭 옆집 할머니와 잡담하듯이 하나님과 주고받는 대화가 매우 신선했다. “아, 그때 제가 ~~라고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10분쯤 있다가 ~~라고 말씀하셨잖아요.” 하면서 하나님의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셨다. 때로는 “아, 그 있잖아요, 그 장로님 둘짼가 셋짼가 며느리, 목사 사모하고 있잖아요. 아, 글쎄, 그 며느리가 말이에요~”하시며 하나님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한다. 가끔 쉬는 시간에 본당 뒤편에서 그 권사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내가 아무런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없는 때가 된다면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에 대하여 그 권사님을 통해 대단한 힌트를 얻고 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결코 복잡한 게 아니었다.  





청계산 기도회에서 붙드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하나님은 이미 실행하기로 작정하신 일들을 그 자녀들의 입술에 기도제목으로 주셔서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이 실행하신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실행하시기로 한 일들만 기도한다면 100% 응답받는 기도를 하게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우리의 기도가 주의 뜻에서 벗어날 때가 많지만, 갈수록 전부 응답받는 기도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기도 중에 우발적으로 부어주시는 기도제목에 따라 기도한 몇 가지 내용들이 예상치 않았던 경과를 거쳐서 진행되는 경험을 했다. 2012년 1월 이후 시작된 중국기독법률가운동에 대한 기도제목들이 현장에서 실행되고 발전되는 경험도 하고 있다. 이처럼 어떤 기도제목으로 기도할 때마다 심령의 뜨거움을 체험하면서, 개인적으로든 공동체적으로든 가급적 건조한 회의를 통하여 결정하기보다는 깊은 기도 중에 인도받은 내용을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기도를 통하여서도 역사의 주인은 주님이시며 선교의 주체도 주님이심을 분명히 경험할 수 있다. 


생산성도, 이목집중도, 영향력 확보도 상관없이 그냥 두꺼운 옷 한벌과 생수 한병이면 족하다. 풍성한 시간이 확보되는 토요일 청계산기도원, 요즘 내 일상의 한 축이다. 기도원에는 총무님이 키우는 바둑이와 사랑이라는 강아지가 있다. 곰같이 생긴 사랑이라는 녀석은 기도원 입구에 버티고 앉아 있으면서 단골손님인 내가 먼저 살갑게 인사해도 절대로 반겨주는 법이 없이 무심한 눈길로 바라볼 뿐이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반겨주지 않아도 기쁘게 기도하라는 훈련을 시키시는가 싶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청계산 기도원 가는 토요일을, 나는 언제나 즐겁게 기다린다.   




전재중서울대78

CLF(기독법률가회)가 마지막 때 견고한 하나님나라 운동 공동체로 쓰이도록 기도하고 후배들을 지원하는 일, 법무법인 소명을 선교적 기업으로 세우는 일을 일생의 소명으로 삼는다. 2-3년 전부터 중국을 통한 북한 관련 사업들에 시간과 자원, 열정을 좀 더 집중하고 있다. IVF 동기로 만난 아내 민지홍(연세대78)과 중국에서 공부하고 취업한 아들 우주, 서울대IVF 2년차인 딸 우영이 있다.       

        


















VOL.2182015.02*03

신앙의 근육을 키우자, 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