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자 - 김성우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자


 지난 4월 16일 끔직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까운 생명의 허망한 죽음을 우리는 속절없이 지켜보았습니다.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건만 상황이 수습되기는커녕 갈수록 탄식과 절망을 안깁니다. 분명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한국사회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어려운 상황과 심경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질문에 필자들이 성심껏 답변해주었습니다.

 (소리정음의 내용은 IVF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침몰 이후 남겨진 삶> 

(1)  “야만과 거짓을 중단하세요!” 희생자의 피가 바다에서 울부짖는 소리_박득훈

(2)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자_김성우 

(3) 함께 성장하는 계기로 만들어가길_한영주 

(4) 새로운 이야기, 그 소망의 시작인 우리_방현주






세월호 참사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이유


살면서 여러 번의 대형 참사를 겪어왔다. 비행기가 추락되는 것을 여러 번 보았고, 다리가 끊어졌으며, 배가 가라앉고, 건물이 붕괴되고, 지하철에 화재가 났다. 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것을 목도했다. 그때마다 참 많이 아팠다. 눈물도 흘렸다. 그리고 분노했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지금까지의 여러 참사보다도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여파가 큰 것 같다. 그 이유는 이 참사가 우리 사회의 탐욕스러운 가치관을 낱낱이 보여주는 총체적 결과이기 때문이리라.



돈이 지배하는 돈 세상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휘어잡은 이후, 전 세계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안전과 관련된 각종 규제를 풀고 민영화해왔다. 세월호참사만 하더라도, 선박연령의 제한을 30년으로 늦추면서 일본에서는 폐선 처지에 놓인 노후 선박을 수입하여 증개축까지 허락한 데서 그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최대 규모 6천 톤급 여객선을 운항하며 수백 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선장이 계약직이라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IMF 이후 정규직이 줄고 비정규직 일자리가 양산된 결과는 아닐까.





구조과정을 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UDT, SSD 등, 해군 최고의 구조요원들이 해경의 통제 하에 언딘이라는 민간구조 회사에 구조의 주도권을 내어준 점, 구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인 이틀을 허비해 버렸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민영화와 규제완화 정책들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도 민영화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왜 국가가 필요할까?


세월호 사건 이후 전 세계에서 최근 연달아 발생하고 있는 대형 참사들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돈과 탐욕이 그 원인이었고, 규모는 갈수록 대형화 되었다. 쓰나미라는 자연재해는 막을 수 없을지 몰라도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것은 인재였다고 일본국회 사고조사위원회가 밝혔다. 도쿄전력과 정치권의 오랜 유착 비리도 드러나게 되었다. 무허가 건물을 4층에서 8층으로 또 9층으로 증축하다가 붕괴하여, 천백 명이 죽고 이천오백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부상을 당한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 역시 글로벌 의류회사에 납품기일을 맞추느라 공장주들은 건물 붕괴 직전까지도 노동자들이 피신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떠올리게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터키에서도 탄광사고로 300여 명 이상이 숨졌다. 지금도 전 세계의 소비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개발도상국에서는 인건비가 싼 어린이, 여성, 가난한 노동자들이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위험에 방치된 채 노동을 하고 있다. 지금도 재벌과 투기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기간산업을 민영화하려고 발버둥치고 안전 규제를 풀어 가는 중이다. 당장 싼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노후 되고 연령을 넘긴 핵발전소를 멈추지 못하고 재가동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는 실정이다. 수백만, 수천만 명의 생명을 담보로 말이다. 돈이 모든 걸 지배하고 생명을 앗아가고 있지만, 내가 직접 당하기 전에는 내 수중의 돈마저 빼앗길까봐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있다. 참말로 돈 세상이다.



한국 기독교의 책임은 무엇인가


손봉호 교수님은 한 방송 대담에서, 세월호 참사에 한국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가 큰 책임이 있다고 언급하셨다. 한 사회의 가치를 만들어가고 지켜가는 것이 종교의 역할일진대, 기독교를 비롯한 한국의 종교가 돈을 능가하는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백프로 공감하는 말씀이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 물질주의가 인명을 경시하는 사회,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 아래에서 사회 안전망이 무너져버린 한국 사회, ‘송파구의 세 모녀’처럼 돈 없으면 죽으면서도 미안해해야 하는 무서운 사회가 될 때까지 한국의 기독교는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


대형교회가 성공한 교회이고, 부자가 되어야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이고, 수백 명의 생명을 빼앗고 부당하게 권력을 강탈한 군사정권을 향해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복해야 한다는 성경구절을 들이대던 한국 교회, 철저히 힘 있고 돈 있는 자의 편에 섰던 한국 기독교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로마의 식민지 유대 땅 말구유에 무력한 아기로 성육신하신 예수, 십자가에서 세상의 죄를 대신지사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 예수의 제자가 우리여야 하는데, 오늘날 주님은 물으실 것이다. 누가 나의 제자이냐고.    



소금은 소금창고가 아닌 세상 속에 뿌려져야


세상에 예수의 십자가보다 더 높고 숭고한 가치는 없다. 내가 희생하여 남을 살리는 가치보다 더 뛰어난 가치가 무엇이란 말인가? 기독인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십자가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다. 그곳에 구원이 있음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런 십자가의 가치를 믿는 기독인이 한국사회에는 수백만 명이 있다고 한다. IVF가 배출한 학사만도 1-2만 명이 된다. 한국 기독교인의 숫자를 떠나서 우리 IVF 학사들만 해도 한국사회를 새롭게 하는 데 충분한 숫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점점 타락해가는 것은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어야 할 우리가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고, 소금을 소금창고 속에 두다가 그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 속에 예수 십자가의 가치를 가지고 녹아들어가야 할 소금이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아예 세상과 관계없이 살거나, 세상에서는 세상의 가치, 돈의 가치를 따르면서 교회에서만 소금인 척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이웃 속에 더불어 살아야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가 있는 바로 그 지역으로 보냄을 받았다. 그곳에서 땅에 발을 붙이고 이웃들과 더불어 아이를 키우며, 그 지역 속에서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문제들을 그냥 넘기지 말고 남들보다 더 수고하고 애써서 바로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십자가의 가치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직장과 한국이라는 사회 속으로 보냄 받았다. 생명을 경시하고 돈만 추구하는 돌아버린 세상 속에 십자가의 가치를 몸소 짊어지고 대속제물로 그곳에 우리를 드려야 한다.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말이다. 영혼을 허공에 던져놓고, 땅에서는 좀비같이 아무 의미 없이 살지 말자.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신 세상,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세상, 그 세상 속에서, 이웃 속에서, 나를 포기하고 십자가의 가치가 새겨지도록 소금으로 녹아들자. 세상이 썩지 않도록, 또한 우리가 맛을 잃은 소금으로 밖에 버려져 짓밟히지 않도록 말이다.  



잊으려 애쓰지 말자


나를 비롯한 많은 기독인들이 내면의 죄와 아픔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도를 통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평안을 맛보고 감격했다. 대학생 때는 그 평안이 사라질까 두려워, 가급적이면 세상과 거리를 두고 기독교 공동체 안에만 있으려 한 적도 있었다. 수련회와 선교여행 등, 방학이면 각종 기독교 훈련으로 공동체 지체들과 시간을 보냈다. 내면의 평안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참 특별한 선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는 나의 내면의 평안이 깨질까봐 학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포기했다. 공동체의 사랑과 배려의 문화에 익숙해져서 믿지 않는 세상 속의 이웃과는 점점 단절되어갔다. 조금이라도 내면이 건조해지거나 냉랭해지면 큰 문제라도 생긴 것처럼 조급해하면서도, 친구와 이웃과 사회 안에서의 관계가 건조해지고 피상적이 되어가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닌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성경을 깊이 알아가면서,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내면의 평안이 우상이 되어 그 평안을 주신 분이 가신 십자가의 길, 희생의 길을 가기보다는 나에게 편한 길, 익숙한 길, 안전한 길만 가려는 내 모습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주변의 기독인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그만 슬퍼하고 세월호의 우울함과 어두움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영적인 평안, 잃어버린 내면의 평안을 되찾자고 말이다. 그래, 나도 간절히 내면의 평안을 되찾고 싶다. 그런데 내면의 평안을 부르짖기 전에, 우리는 먼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강도만난 이웃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우리의 힘을 다해 돕고, 이런 강도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깨어진 사회 안전망을 복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진정한 내면의 평안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내가 함께 매달릴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서둘러 세월호 참사를 잊고자 한다면, 다음번에 강도 만날 사람이 바로 나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김성우┃서울시립대90, 동서울지방회 대표간사

서울시립대 개척멤버로 IVF를 시작하여, 96년부터 동서울지방회의 시립대, 광운대, 서울과기대, 한양대, 가천대에서 사역하고 대표간사로 섬겼다. 2004년 미국 켄터키주 남침례신학교에서 M.div를 공부하고, 2007-2009년 동안 학원원사역부 총무로 사역했다. 2010년 동서울에 복귀하여 현재까지 대표간사로 사역 중이다. 구로구 천왕동에 아내와 딸 셋과 함께 살면서 천왕동 마을공동체의 운영위원장으로 지내고 있다.




소리
no.214=2014. 06+07 

침몰 이후 남겨진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