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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교회, 지금 이곳의 하나님나라 - 성민모

교회, 지금 이곳의 하나님나라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 이어 학사들의 교회생활을 들여다봅니다. 만만치 않은 마음고생을 하고도 “교회는 나의 자랑이요 면류관”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고백이 아름답습니다. 더불어, 작년에 ‘말씀산책’을 연재해 주신 권영석 목사는 교회가 붙들어야 할 핵심가치를 세 가지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몸 된 한국교회가, 사람을 아끼며 복음으로 세상을 섬기는 참다운 교회다움을 되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소리정음의 내용은 IVF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교회다움> 

(1) 사람이 교회다_박찬주 

(2) 교회, 지금 이곳의 하나님나라_성민모 

(3) 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_양우석 

(4) 세상 안에 있는 교회_권영석




주일 오전 11시,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교회 협력센터 2층 새문안 홀. '그안에 교회' 주보에 쓰여 있는 예배 시간과 장소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장소를 잘못 알았나 싶어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는데, 양복 입은 아저씨 한 분이 짐을 한 아름 안고 들어서면서 인사를 한다. 담임목사님이라고 한다. 뒤이어 도착한 고등학생 또래의 아이들은 자리를 잡고 바이올린의 줄을 맞춘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선다.





예배 시간인 11시가 훌쩍 넘었건만 서두르는 사람은 없다. 잠시 후 돌이 조금 지난 아기가 들어서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리로 향한다. 한 주간 아이가 건강했는지 확인하고 덕담도 나누며, 돌아가면서 한 명씩 아이를 안아본다. 이후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먼저 이 아기에게 다가간다. 30분이 훌쩍 지나서 목사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신다. 지금 ○○네 가정이 차가 막혀서 늦으니 조금 기다렸다가 예배를 시작하겠다는 거다. 그 한 가정을 기다리기 위해 예배가 지체되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기다리면서 도리어 교제를 나누며 즐거워한다. 드디어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네가 도착하고 예배를 시작한다.



예배 시간에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돌이 지난 아이는 엄마 품을 벗어나 힘찬 기합 소리를 내며 목사님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목사님도 성도들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이제 아이가 혼자 걸음을 뗄 만큼 성장했다고 대견해할 뿐이다. 찬양 시간에는 뒤에서 삑삑거리는 소리가 난다. 언니들의 관현악 연주를 따라 하고픈 어린아이가 멜로디언을 아무렇게나 불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어수선함의 하이라이트는 유치원에 갓 입학한 어느 남자아이다. 목사님이 한창 설교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서 뜬금없이 왜 명왕성이 행성에서 퇴출되었는지를 목사님에게 설명한다. 하지만 목사님이나 성도들은 역시 당황하지 않는다. 그저 아직 어린아이가 행성에 그렇게 관심이 깊은 것을 신기해하며 함께 즐거워한다. 물론 아이는 엄마에게 끌려갔지만, 잠시 후 찬양 시간에 다시 앞으로 나와서 제법 박자에 맞게 지휘를 한다. 봉헌 시간에는 헌금 바구니를 들고 앞으로 나가겠다고 멜로디언을 부는 여자아이와 다툼을 한다. 결국 주위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둘이 사이좋게 들고 나갔다.



설교는 아이들을 위해서 또 어른들을 위해서 2번 연속으로 했다. 먼저 전도사님이 유치부 아이들 5명 앞에서 포도나무 그림을 세워 놓고 설교를 하신다. 언제나처럼 아이들의 엉뚱하고 창의적인 대답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어린이를 위한 설교지만 의외로 어른들도 꽤 집중해서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 설교를 마치고 아이들과 청소년은 별도의 시간을 위해 나가고, 그제야 어른들을 위한 설교가 시작된다. 목사님의 설교는 약간 졸리고 난해하기도 하지만, 기존에는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이야기이다. 특히 풍부한 히브리어 지식을 바탕으로 구약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새롭고 참신하다. 조금 지루해질 쯤, 어디선가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와 함께 설교는 끝을 맺었다. 식사 시간이 되었으니 예배를 마치는 것이다.



점심식사는 뷔페식이다. 각 가정에서 정성스레 준비해온 반찬이 상에 펼쳐지고 사람들은 마음대로 가져다 먹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음식이다. 오늘은 특별히 담임목사님이 직접 개발했다는 버섯전 야채무침이 눈길을 끌었다. 본인도 꽤 뿌듯한지 여기저기 다니면서 반응을 묻는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긴장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음식이 하도 맛있어서 한 접시를 더 먹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이 배부른 식사였다. 식사를 마친 후, 원래는 성경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나눔이 산으로 가면서 대화는 좀처럼 끝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왠지 이제는 성경공부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성경공부는 건너뛰고 삶을 나누는 것으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나의 모교회는 전형적인 한국 교회였다. 십여 명으로 개척을 시작해 지연과 혈연을 중심으로 교회를 확장하여 수천 명으로 부흥을 시켰다. 교회 건물도 꽤 크게 지었고 그 과정에서 전형적인 건축헌금 모금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도 당신들의 집을 담보로 잡히면서까지 건축 자금을 대셨다. 목사님은 사람은 좋은 분이었지만 헌금에 민감했다. 설교의 대부분은 십일조와 그로 인한 물질적 축복에 관한 것이었고, 돈이 들어가는 일이 있을 때에는 직분별로 헌금이 할당되어 주보에 실렸다. 그리고 그 목사님이 은퇴를 하고 난 후, 교회 돈으로 미국에서 10여 년을 유학한 큰아들이 교회를 물려받았다.



IVF 출신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나도 교회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을 즈음하여 결국 모교회를 떠나기로 했고, 이 교회 저 교회를 돌아다녔다. 개척 교회부터 대형 교회, 보수적 교회에서 진보적 교회까지... 하지만 정말 '이 교회가 내 교회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교회에 대한 내 기대가 너무 높은 것일까? 내가 교회에 적응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우연히 만난 교회가 '그안에 교회'였다. 그리고 이제는 이 교회를 '나의 교회'로 여기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왜 지금 이 교회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첫 번째 대답은 밥이 맛있어서이다. 실제로도 밥이 맛있지만, 이 ‘맛있는 밥'에는 혀로 느끼는 맛 이상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로 우리의 점심 밥상은 '이동식'이다. 아무 것도 없는 강의실에 밥상이 차려지기 위해서 주일마다 교인들은 자기 몫의 짐을 잔뜩 가지고 온다.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우리에게 재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많은 자유를 준다. 둘째로 우리의 밥상에는 '어머니의 마음'이 들어있다. 이 점심은 몰려오는 수십 명의 입을 때우기 위해 준비하는 식사가 아니다. 어머니가 자식의 점심 도시락을 싸는 준비와 정성, 그리고 수고로 만들어진다. 경험하지 않고 글로만 설명해 내기에는 힘든 ’마음’이 들어있는 식사다. 이건 그냥 먹어보면 알 수 있다. 셋째로 여기에는 '나눔'이 있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가 아니라, 서로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누고 싶어서 차리는 밥상이다. 내가 먹는 음식을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즐거이 내어 놓는 음식, 그것이 우리 교회의 주일 점심 밥상이다.



내가 우리 교회를 자랑하는 또 다른 모습은 '하나를 위한 다수의 배려'이다. 이 세상은 다수를 위해 하나가 희생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나라의 법칙은 한 명을 위해서 다수가 기다리고 배려하는 것이다. 아마 많은 기독교인이 이것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을 실현하는 교회는 별로 없다. 심지어 꽤 '진보적'이라고 하는 교회에서도 그 진보적 가치를 위해서 개별 교인의 희생과 공동체에 대한 종속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군가는 예배 시간에 늦는 1명을 기다리는 것이 다수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1명을 기다리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예배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다림도 함께 한다면 그것 역시 우리 예배의 연장이다.





또 다른 교회의 자랑거리는 '통합적 삶과 예배'이다. 나는 삶과 예배는 분리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왜 우리 교회가 굳이 어른 설교와 아이 설교를 같은 예배시간에 하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고 대답하고 싶다. 아이의 삶과 부모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면, 설교도 분리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부모가 아이의 공부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함께함을 통해 아이의 성장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향한 설교를 통해 그 아이들의 신앙의 성장에 동참하고 또한 자신의 성장을 다시 바라본다. 이러한 통합의 원칙은 설교의 방법뿐만 아니라 한 교인의 삶의 현장에 전체 교인이 관심을 갖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우리가 예배를 함께 드린다면 삶도 함께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물리적 삶을 모두 함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각각의 삶의 현장이 어떠한지는 이해해야 하며 그 현장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고민과 기쁨이 함께 나눠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외형적으로만 본다면 우리 교회는 별 볼 일 없는 작은 교회다. 교회 건물을 유지할 재정적 능력도 없고, 인원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냥 열 가정도 안 되는 30여 명의 교인이 그럭저럭 모여서 간신히 유지해가는 교회로 보일 수도 있다. 워낙 인원이 적다 보니 모든 성도가 한도껏 헌금을 내더라도 목사님 생계비를 유지하기도 빠듯하다. 그래서 목사님이 신대원 강사도 뛰시고, 다른 가욋일을 하셔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우리 교회가 좋다. 뭐가 좋은지 글로 써 달라고 해서 주저리주저리 정리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건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어쩌면 나와 함께 이 교회를 좋아하는 아내는 내가 소설을 썼다고 구박할지도 모른다.



교회를 만나는 것은 아내를 만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나에게 수많은 여자 중에서 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할까? 나는 아마 또 나름대로 몇 쪽에 걸쳐서 이유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게 그렇게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내 생각과 아내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내가 지금의 '그안에 교회'를 만난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왜 그 교회를 좋아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교회 전체의 생각도 아니고 정확한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나라를 느끼고 산다는 점이다. 이것은 경험이지 논리가 아니다.



이 시간에도 자신의 교회를 찾아 헤매는 많은 IVF 학사들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중에는 모든 기대를 접고 그냥 자기가 교회의 현실에 적응하기로 결정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우리의 삶이 정말 소중하다. 좋은 배우자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나에게 좋은 교회를 만나기 위해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찾아보는 수고도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에게 맞는 좋은 교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나의 경험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성민모┃연세대93

전기공학을 전공한 후 통신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엔지니어. 커피전문점을 하는 아내와 언젠가는 한국 땅을 떠나서 가난한 나라에서 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no.213=2014.04+05

교회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