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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 - 양우석

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 이어 학사들의 교회생활을 들여다봅니다. 만만치 않은 마음고생을 하고도 “교회는 나의 자랑이요 면류관”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고백이 아름답습니다. 더불어, 작년에 ‘말씀산책’을 연재해 주신 권영석 목사는 교회가 붙들어야 할 핵심가치를 세 가지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몸 된 한국교회가, 사람을 아끼며 복음으로 세상을 섬기는 참다운 교회다움을 되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소리정음의 내용은 IVF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교회다움> 

(1) 사람이 교회다_박찬주 

(2) 교회, 지금 이곳의 하나님나라_성민모 

(3) 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_양우석 

(4) 세상 안에 있는 교회_권영석




부담


원고 요청이 들어왔다. 현재 '만족스러운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학사'로서 교회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한다. 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마치 '행복한 가정생활의 비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만 같다.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나, 그래도 나는 나름 다양한 스펙트럼에 있는 교회들을 겪으며 고민을 해왔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 다니는 교회를 만나 만족하며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거창한 글이 아니라도 청탁 의도에 부합한 글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동안 교회를 옮겨 다니면서 했던 수많은 고민들과, 현재 교회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솔직히 적어보면 어떨까 싶어 교회와 관련한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만나다


돌아보면 나의 첫 교회는 이래저래 무난하고 평범한 교회였던 것 같다. 옆 동네에도 비슷한 분위기와 문화를 가진 교회가 있을 법한, 동네의 작은 교회였다. 각 부서가 적당히 운영되고, 때때로 행사를 하고, 무난한 설교와 평범한 예배를 드린 교회로 기억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알게 된 이야기지만, 담임목사님과 장로님과의 갈등, 탈진해 있던 소수의 헌신된 청년들, 교회 재정 사용으로 인한 갈등과 같은 평범한(?) 문제들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아, 또 기억난다. 어느 날부터는 당시 유행하던 전도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는데, 기도회 중에 담임목사님이 안수하면 성도들이 뒤로 넘어지는 다소 특별한(?) 역사들도 일어났다. 왜 기도하는 사람들을 자꾸 넘어뜨리는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찌 되었건 나는 그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고 그곳에서 예수를 믿노라고 고백하였으니, 나에게는 고향과 같은 곳이다.



떠나다


회심의 감격에 들떠 있었던 나는 청년부에 올라오자마자 기존의 탈진한 청년들을 대신하여 교회의 이러저러한 일들을 맡게 되었다. 다른 평범한 헌신된 청년들처럼 찬양팀과 성가대, 교사와 셀리더 등을 맡았다. 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해서 보통 일주일에 세 번에서 다섯 번 교회에 갔다. 당시에는 교회가 내 삶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신앙의 그릇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들을 했던 탓일까. 청년부 내에서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발생하였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으며, 무엇보다 내가 많은 상처를 입은 채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도저히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나도 교회도 청년부도, 모두가 다 미성숙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교회가 내 삶에 차지하고 있던 비중이 너무 컸기 때문에 당분간 친척 집에서 학교를 다니겠노라며 삶의 터전을 아예 옮겨버렸다. 그렇게 해서 나는 두 번째 교회를 만나게 되었다.





만나다


두 번째 교회는 열정적이고 뜨거운, 다소 특별한 교회로 기억한다. 내가 그 교회를 찾아갔을 당시는 분립개척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도, 등록교인이 수천 명이나 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예배 때마다 두 손을 들고 “아멘!”으로 목사님의 말씀에 화답하고, 기도는 무조건 주여 삼창으로 시작하는 통성기도였고, 찬양집회라도 할 때면 청년들은 목이 터져라 찬양하고 뛰어다니는 교회였다. 열정적인 청년들이 평일에도 매일 밤 교회에 나와 전도와 기도를 쉬지 않기에, 매주 새로 교회에 나온 사람이 수십 명씩 되었다. 그 당시에는 교회의 열정과 뜨거움이, 목 놓아 부를 수 있는 찬양과 기도가, 또 IVF를 통해 배우는 말씀과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상처투성이인 내 영혼에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차츰 IVF에서 배우는 것과 교회에서의 가르침 사이에 큰 괴리를 느꼈다. 교회에 대해서 점점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기복적 신앙이 마음에 걸렸다. 교회에서는 매주 예배 때마다 오른손을 들고, "나는 잘 될 수 있다! 나는 축복의 사람이다! 나는 십일조 왕이 될 것이다!" 따위의 구호를 외쳐야 했다. 또한 매주 똑같은 설교를 듣는 것도 부담이었다. 설교는 주로 담임목사님이 고난 받은 이야기였는데, 목사가 되고 싶었으나 신학교에 열 번 떨어진 이야기,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이야기, 돈이 없어서 고생하신 이야기, 하지만 믿음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더니 이렇게 교회가 성장했다는 이야기, 따라서 우리도 믿음의 말을 많이 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교회가 받은 축복을 함께 받아 세계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매주 다른 본문으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똑같은 이야기로도 매번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목사님의 능력이 놀라우면서도 점차 지쳐가기 시작했다. 때론 교회가 아니라 다단계 업체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때 다단계 업체에 몸담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다단계 업체의 논리에 '하나님, 예수님, 구원' 등의 단어만 몇 개 바꾸어 집어넣으면, 소름끼칠 정도로 그 교회의 논리와 비슷했다. 교회를 또 옮겨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도 그 안에서 배워야 할 점들도 있고, 또 사람들도 진실했고, 교회를 쉽게 떠나면 안 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 딱히 갈 만한 교회가 없었기에 매주 예배에 참석한 것이 2년을 넘겼다.



떠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나는 미련 없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어느 ‘전도총력주일’이었다. 여느 평범한 주일보다 많은 새신자들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예배마다 새신자들은 등록카드를 제출해서 내고(이때 한번 출석한 후 다시는 오지 않아도 등록교인이 된다), 목사님이 새신자의 이름과 인도자 이름을 함께 호명하여 환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 예배에 어떤 한 헌신된 청년이 30명에 가까운 새신자를 전도한 것이다. 얼마나 열심히 전도를 했으면 한 예배에 30명이나 새신자를 데려올 수 있을까. 담임목사님도 놀라셨는지, 오후 청년부 예배 때 그 청년을 앞으로 불러서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전도를 하였는지 나누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 청년의 간증은 이랬다. 그래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취지에서 인터넷에서 알바를 모집했단다. 단순업무라고 모집 공고를 올린 후, 교회에 가서 한 시간 예배를 드리면 약속한 일당을 주기로 하고 데려온 사람이 30명이라는 것이다. 예배 참석 알바라니! 이런 식으로 교회에 등록시켜 놓고 교회가 부흥한다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꼴이라니! 이에 대해 담임목사님은 별 말씀을 안 하셨다. 그냥 "다들 열심히 전도합시다."하고 마무리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참고 보아도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에, 곧 다른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조금 특별하게 만나다


한동안은 물어물어 몇몇 교회를 떠돌았지만 딱히 정착할 곳을 찾지 못했다. IVFer들이 많은 교회는 왠지 편한 곳에서 편하게 안주하려는 것 같아서 꺼려졌고, 다른 몇몇 교회에서는 도무지 만족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LGM에 오셔서 인상 깊은 설교를 하셨던 어떤 목사님이 떠올랐다. 그분이 목회하시는 교회를 수소문해서 찾아가 인덕원 역 부근에 위치한 지금의 교회, ‘산오름 교회’를 만나게 되었다. 목사님의 설교를 두 번 들었던 것 외에는 연고도, 아는 사람도 없는 교회였다. 일부 나처럼 떠돌다 정착한 IVFer들이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평범한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지역교회였다. 대충 보기에는 건물 한 층을 임대해서 쓰는 작고 평범한 교회처럼 보였지만, 조금 겪어보니 특별한 부분이 많았다. 우선 설교시간이 길었다. 이전 교회에서는 설교시간이 15분~20분 정도였는데, 이 목사님의 설교는 50~60분 정도인 것 같다. 또 독특한 것은, 성경을 정해놓고 매주 순서대로 강해설교를 하신다는 점이다. 내가 처음 찾아갔을 때 요한복음 설교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 설교들이 매우 인상 깊어 아직까지 많은 부분을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로 요한복음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성경이 되었다. '감추어져 쉽게 찾을 수 없는 비밀(골1:26)을 이곳에서 발견하였구나!'하고 감탄했다. 그만큼 지금의 교회에서는 '설교'를 강조한다. 어쩌면 요즘과 같은 '탈권위의 시대'에 교회의 권위를 강조하고, 설교의 권위를 강조하고, 목사의 권위를 강조하는 우리 교회는 인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설교를 강조하기 때문에 이외의 것은 다소 메말라 보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성가대도 없고 찬양팀도 없다. 예배 때는 다함께 찬송가를 부른다. 큰 집회나 행사 등도 거의 없다. 목사님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심방도 잘 안하신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다소 교회가 건조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여러 역할들에 치여서 다들 소진되어 있는 나의 모교회와 같은 문제들은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배우다


이 교회에서 배운 여러 가지 중 가장 큰 것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엡1:22)'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전에도 알고 있었던 말씀이지만, 그 말이 얼마나 무게가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들에게 임하였고, 신약 시대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요1:14) 예수님이 오셨으며, 지금은 그분의 몸인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넴 여인이 '엘리사의 발을 안고(왕하4:27)' 간구하였던 것처럼,  '예수께 나아와(마8:2)' 간구하였던 문둥병자처럼,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교회 앞에 '나아와' 간구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말씀을 믿을 수 있을까? 도시의 변두리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조그마한 이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이 교회에 나아와 기도하는 것이 엘리사의 발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과 예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것과도 동일하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여전히 부족하지만 청년부 모임에서도 우리의 모임이 단순한 만남이 아닌 교회에서 함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모였음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며 기도하고 있다.





고난 받다


지금의 교회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고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애쓰는 교회에 큰 축복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아픔을 많이 겪었다. 목사님은 이 조그마한 교회에 세상의 모든 고통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큰 슬픔이 있었을 때, 목사님이 '욥기'의 말씀으로 하셨던 설교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욥1:16~19)' 계속해서 전해지는 고난의 이야기들. 사람들은 욥기가 소설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는 욥의 아내의 말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치명적인 유혹인지 우리는 함께 경험하였다. 울면서 설교하고 울면서 함께 기도했던 기억이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이니까(시13:1)'라고 부르짖던 시편 기자의 탄식을 배워가고 있다.



살아가다

거할 곳을 찾아 방황하는 시절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교회라는 집에 하나의 벽돌로서 안정되어 가고 있다. 때로 지치고 여전히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 받고 채움 받고 쉼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결국 교회라는 나무에 붙어 그곳에서 말씀을 공급 받아야 풍성한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는 것은 아닐까.




양우석┃연세대07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였고, 지금은 동대학원에서 같은 전공을 공부중이다. 무언가 원대한 가치를 따르며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저 평범한 공대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교회에 잘 붙어 신앙을 배워가며, 인생의 숙성기를 잘 보내고 있다.











no.213=2014.04+05

교회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