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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야만과 거짓을 중단하세요!” 희생자의 피가 바다에서 울부짖는 소리 - 박득훈

“야만과 거짓을 중단하세요!”

희생자의 피가 바다에서 울부짖는 소리


 지난 4월 16일 끔직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까운 생명의 허망한 죽음을 우리는 속절없이 지켜보았습니다.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건만 상황이 수습되기는커녕 갈수록 탄식과 절망을 안깁니다. 분명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한국사회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어려운 상황과 심경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질문에 필자들이 성심껏 답변해주었습니다.

 (소리정음의 내용은 IVF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침몰 이후 남겨진 삶> 

(1)  “야만과 거짓을 중단하세요!” 희생자의 피가 바다에서 울부짖는 소리_박득훈 

(2)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자_김성우 

(3) 함께 성장하는 계기로 만들어가길_한영주 

(4) 새로운 이야기, 그 소망의 시작인 우리_방현주







누군가 그랬습니다. ‘세월호참사’는 한국전쟁만큼이나 깊은 트라우마를 우리 국민들에게 남길 거라고. 희생자 숫자야 훨씬 적을지 모르나 온 국민이 아이들을 비롯한 승객들이 수장되는 과정을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들이 배에서 마지막으로 보내오는 메시지와 동영상을 고통스럽게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우리는 깊은 슬픔과 함께 참으로 감당키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슬픈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유족들은 어떻게 치유 받고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답을 기어이 찾아내야만 합니다.




애도를 사회의 대변혁을 가져오는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각종 물 타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월호참사는 해상재난이기에 아무리 준비된 국가일지라도 어차피 막기 어려웠던 사고라고, 희생자들은 단지 불운한 사람일 뿐이라고, 그동안의 슬픔으로 충분하니 이제는 털고 일어나자고 말이죠. 심지어 대통령을 비롯해 몇몇 핵심 당국자들은 경제위축을 우려하면서 국민들에게 이젠 미래로 나아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국민적 애도를 망각의 과정으로 유도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런 분위기에 넘어가면 세월호참사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엔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고귀한 생명을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수장시키고도 아무런 변화를 일구어내지 못한다면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그러므로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희생자들을 결코 잊지 않음으로써 국민적 애도를 사회의 대변혁을 가져오는 강력한 에너지로 승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예식을 통해 주기적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합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 즉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 중 하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5:31-46). 참사로 소중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우리 사회의 약자그룹에 속한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성찬에 참여하면서 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거짓된 것입니다. 저는 희생자의 명단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들의 이름을 마음에 담아 하나하나 불러 보려고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희생자들을 늘 생생하게 기억함으로 애도를 사회대변혁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과정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바다에서 울부짖는 피의 소리를 들어야


세월호참사는 단순한 천재지변이 아닙니다. 바다가 죽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다에 수장시킨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이 생각납니다(창 4:1-10). 하나님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가인에게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가인처럼 우리 손으로 그들을 죽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쉽게 “우리가 세월호 승객을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희생자들의 피가 바다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한국사회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짧은 세월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라고 말이죠. IMF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 규모가 2만4300달러로 세계 33위라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는 2008년 41위에서 8계단 상승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호참사는 우리 사회의 진실을 보여줍니다.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가 말한 것처럼, 한 사회가 얼마나 살기 좋은 사회인지, 정의로운 사회인지를 가장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사회는 매우 짧은 시간에 소수의 부를 축적하는 데는 온 세상이 놀랄 만큼 귀신같은 재주를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는 참으로 무능해졌습니다.


참사의 희생자들은 죽음으로 울부짖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들을 울부짖게 만든 우리 사회의 특징을 철학자 김진영 선생은 ‘교양화된 야만’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중세사회에는 영주가 농노를 노골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했습니다. 군부독재시대에는 저항하는 이들을 감옥에 처넣고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는 그렇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억압과 착취가 없어 보입니다. 각 개인들은 시장에서 만나 자유롭게 계약을 맺습니다. 돈과 상품의 교환이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집니다. 물론 상품 중엔 인간의 노동력도 포함됩니다. 모든 것이 교양 있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듯한 교양의 껍질을 벗겨내면 거기에 야만이라는 속살이 드러납니다. 최근의 여러 사건을 통해 표면화 되었듯이, 거의 모든 계약에는 약자인 을에 대한 강자인 갑의 횡포가 담겨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갑의 위치로 올라가려고 몸부림을 치며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갑이 될 수 있는 길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입니다. 부의 축적에 모든 것을 던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보다 돈을 더 소중히 여기는 습성을 익히게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으나,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 앞에서 기가 죽고 맙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살지 않으면 생존자체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런 흐름을 주도한 당사자들은 자본과 그의 탄탄한 동맹세력입니다. 여기엔 냉혹한 자본주의를 무분별하게 옹호하는 정부, 언론, 학계, 법조계, 문화예술계, 종교계 등이 포함됩니다. 이들은 각종 규제를 사회의 암이요 원수라며 공격합니다. 비정규직을 양산시키는 제도를 강화시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처럼 우리에게 말해왔습니다. ‘빈부격차, 걱정할 것 전혀 없습니다. 각자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십시오. 그러면 마침내 모두 잘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지 않은 사람들은 법과 공권력으로 누르고 툭하면 종북좌파 딱지를 붙여 사회에서 소외시킵니다. 이런 야만과 거짓의 세상에 대해 희생자들의 피가 바다에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부디 우리 모두,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이 피의 소리를 가슴으로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세월호참사에 대한 국민 각자의 자책이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의 면죄부로 작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도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켜 이런 참사의 반복을 초래할 것입니다. 이번 참사의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첫째는 이번 참사가 천재가 아니라 인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헌법이 국민을 재해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을 행정수반인 대통령에게 부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는 책임을 타자와 과거의 적폐 등에 돌리다가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국무회의 석상에서 사과의 뜻을 표했습니다. 그러다 참사 34일 만에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다시 사과하면서 재발방지대책안, 진상규명대책안 등을 제시하였습니다. 낭독말미엔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담화문에서조차 박대통령은 여전히 세월호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을 치명적 잘못을 저지른 타자들과 산만한 재난대응체계에 돌렸습니다. 자기에겐 그저 ‘최종 책임’ 말하자면 도의적 책임이 있을 뿐이라면서 비껴갔습니다. 세월호참사 과정에서 자신과 청와대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능했는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전혀 없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버리고  사람보다 대기업의 이익을 앞세우는 국정기조를 강화해온 자신의 정치적 행보가 세월호참사에서 드러난 타자들의 치명적 잘못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점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는 희생자와 그 유족들 그리고 국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다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죽은 의인들을 호명하다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들에게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며 담화문을 마무리합니다. 이는 세월호참사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대통령이 보여야 할 눈물도, 할 말도 아닙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희망은 자신이 세월호참사에 대하여 가장 큰 책임을 철저히 짊어짐으로써 다시는 그런 희생이 요구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져 가는데 있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박 대통령의 정서적 결함이나 리더십 스타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권력을 수호하려는 정치적 계산의 문제입니다. 민주주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정치적 사안입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권력만 강화되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책임만 커지는 국가는 권위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인류역사상 기독교적 가치에 가장 가까운 정치체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큰 책임을 묻는 저항의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이는 결코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악용하려는 정치적 선동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명한대로 ‘양심을 따라’ 국가권력에 대응해야합니다(롬 13:1-7, 특히 5절). 정부가 하나님이 위임한 공권력을 정의롭게 사용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예언자들 그리고 예수님과 사도들(행 4:19; 5:29)처럼 양심의 요구에 따라 “아니요!” 라고 정정당당하게 외쳐야 합니다. 그에 따른 핍박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혹자는 그리스도인들은 신사참배의 경우처럼 정부가 우상숭배를 요구할 때만 저항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상숭배의 본질은 탐욕이라고 말합니다(골 3:5). 사람의 생명보다 자기 권력을 앞세우면 그건 무서운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곧 우상숭배입니다.








유족들의 치유를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언론인이나 지도층 인사들이 유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서슴없이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는 확인사살이나 다름없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흐름에 강력히 항의해야 합니다. 온 국민이 유족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그들의 치유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도록 애써야 합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롬 12:15). 제발 하나님이 침몰해가는 대한민국호를 불쌍히 여기사 구원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박득훈┃새맘교회 전임목사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얼마 후, 영국 킹스크로스 한인교회 담임전도사로 부름 받아 런던 바이블 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해 국제장로교회(IPC)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영국 더럼대학교에서 경제정의라는 주제로 기독교사회윤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해가는 길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귀국하여서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신학위원회에 발을 디뎌 ‘사회정의 운동’과 ‘건강교회 운동’에 참여했고, 점차 교회개혁 운동에 깊이 몸담게 되었다. 현재는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과 평화누리 상임대표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 《돈에서 해방된 교회》(포이에마)가 있다.







소리
no.214=2014. 06+07 

침몰 이후 남겨진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