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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삶에 가까운 공부하기_아볼로클럽 독서모임

[소리] 2018 첫번째 소리 - 020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1) - 삶에 가까운 공부하기(아볼로클럽 창원팀 독서모임)_박소영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2) - 말랑한 떡볶이와 책이 만나는 시간(주부학사 독서모임 "말랑, 책볶이")_한선미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3) - 영혼을 위한 한 끼 집밥(북클럽 "나를 위한 저녁")_이혜원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4) - 함께 책을 읽는 유익(광주지역 "책읽기 모임")_박시현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5) - 상상과 실험의 공간을 만들다(진주지역 학사 독서모임)_류재한









삶에 가까운 공부하기 

- 아볼로클럽 창원팀 독서모임 -

 







박소영 ◆ 진주교대10


졸업하면 ‘교실 속의 하나님나라 운동’을 당차게 해나갈 줄 알았지만 실상은 매일 사리를 만들며 살아가는 3년차 교사. 

벼락치기로 책을 읽고 수다스럽게 떠들며 고통스럽게 글을 쓰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참 즐겁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참 잘하게 생겼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순수하게 칭찬인 줄 알았는데, 머리가 크고 나서 되새겨보니 딱히 다른 말을 찾지 못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대학시절 공동체훈련이나 수련회에서 책 소개도 많이 했었다. 겉으로 풍기는 이미지는 독서가 취미일 것 같았으나 현실은 저자와 제목, 책 표지에 대해서만 바삭하여 둘러대기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임용 고시를 준비했고 운 좋게 합격하여 창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지금 사는 동네에는 꽤 큰 도서관이 있고 근무하는 학교의 도서실도 다양한 도서가 구비되어 있어 여러모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 그러나 도서관 대출카드는 전입신고하고 2년이 지나서야 큰맘 먹고 겨우 만들었다. ‘기독 지성인’이라는 말은 스스로 꺼내기 부끄러운 단어였고 학사가 되고 나서는 크게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 하루 큰 사고 없이 버텨내는 것, 남들만큼만 하기에도 벅찬 사회초년생에게 ‘책 읽기’란 굉장히 고상한 취미로 여겨졌다.


 그러던 중 2016년 가을, ‘IVF 60주년 기념 큰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복음주의운동 연구소’ 이강일 소장님이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와 전망”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다. 세상의 문제에 답을 줄 수 있는, 세상과 호흡하는 ‘참여적 복음주의’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강의를 마치면서 복음주의운동 연구소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2014년부터 복음주의운동 연구소는 공부하는 기독지성인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전국 독서모임, 아볼로 대학원, 심화스터디 등을 진행해왔다고 한다. 세상을 공부할 때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날의 큰모임은 끝났다. IVF운동의 60년을 기념하며 복음주의 운동의 큰 흐름을 살폈던 하루였지만 나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물론 감사했고 감동을 받았지만 그날의 감동은 다음날 우리 반 아이들과 씨름을 하면서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날씨가 좀 더 쌀쌀해졌던 어느 날, 의외의 인물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재 창원 아볼로 모임의 팀장 언니였다. 그때만 해도 같은 지역에 있는 학사로 알고 있었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던 사이였는데, 갑작스러운 연락이었다. 내용은 창원 아볼로 독서모임을 시작하려 하는데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였다. 언니는 60주년 기념 큰모임 후 강사님과 학사들이 함께했던 티타임에서도 아볼로 모임에 관심을 보였는데 그 모임을 실제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실행력에 박수를 보내며 나는 ‘고민해 보겠다’는 답을 보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딱히 새로운 모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졸업 후 1년 정도 지내보니 도저히 혼자는 제대로 못살겠다 싶어 교사선교단체인 TCF모임에 참여하고 있었고, 교대 IVF 학사모임도 나름 꾸준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해 본다는 말은 인사치레 정도였다. 


 그러나 역시 실행력 최고인 팀장 언니는 구체적인 모임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고 확답을 할 때가 되어서야 이 모임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앞서 말한 바대로 나는 독서가 취미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대학 시절 리더들과 함께했던 책 나눔의 유익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볼로 모임은 하나님나라를 위한 기독지성 운동이었지만 나의 경우는 시대를 읽음으로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나,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지성 운동, 시대정신 함양보다는 ‘기분전환’이었다. 혼자서는 평생 안 읽어볼 것 같은 책을 같이 읽을 수 있는 모임, 다양한 전공, 직장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며 자신의 삶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모임, 직장에서도 교회서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아볼로 클럽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볼로클럽은 현재 창원지역에 거주하는 IVF학사들과 함께하고 있다. 각자가 모임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다양하다. 나처럼 큰 부담 없이 시작한 사람도 있고, 학사로서의 삶이 녹록치 않아 고민하던 중 참여한 학사도 있다. 좋은 모임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하게 된 사람도 있고 개인의 더 나은 앎과 기독지성 운동의 실천을 위해 함께하게 된 이도 있다. 서로 다른 마음과 이유로 모였지만 같은 책을 읽고 나눈다. 그리고 다시 다른 생각을 나누며 서로를 통해 배운다. 책은 ‘신인사자’, 즉 신앙,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분야를 고루 읽으며 세상에 대한 균형적인 이해와 앎을 이루려 한다. 


 모임은 격주에 한번 정도 하고 있다. 먼저 분량을 적당히 나누어 자신이 맡은 부분을 발제해 온다. 그리고 카페나 동방, 누군가의 집에 함께 모여 발제한 내용을 나누고 토론을 한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독서모임과 다를 것이 없지만 책을 모두 읽고 난 뒤 마지막 시간에는 서평을 쓴다. 그동안 팀원들과 토론을 하며 내 생각이 이래저래 쌓이면, 글을 쓰는 동안 그것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한 편의 글을 써내는 것은 (비록 해본 적은 없으나 비유하자면) 마치 출산을 하듯, 있는 힘을 모두 짜내어야 한다. 그래서 서평을 완료하기로 한 날에 다다르면 우리 팀원들은 창작의 고통으로 울부짖는다. 글을 모두 쓰면 신뢰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빨간 줄을 직직 그으며 합평을 한다. 합평의 과정을 통해 책 읽기를 넘어 더 깊이 있는 ‘생각’이 만들어진다.


 2016년 겨울에 시작한 창원 아볼로클럽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부지런히 읽고 나누었지만 바쁜 마음으로 책을 읽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일 년 동안 여섯 권의 책을 읽고 각자 자신의 주장이 담긴 서평을 써내었다. 첫 책은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라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고비를 잘 넘겼기에 지금까지 아볼로클럽을 하고 있는 거겠다’ 싶을 정도로 혼자서는 안 읽었을 책이다(우리는 이런 책을 스스로 서 있는 책이라고 부른다). 깊이 있는 설명과 명확한 서술 방식이 좋았지만 독자가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설명하다 보니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조금 읽다 토론하고 또 한참을 서로 가르치며 읽어낸 첫 책이었다.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기 전에 읽었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비통한 현실과 이를 해결해 나갈 공론의 ‘장’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실질적인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 외에도 「마음 뇌 영혼 신」, 「단속사회」,「하나님나라를 욕망하라」,「사피엔스」를 읽고 토론하며 글을 썼다.






 아볼로클럽은 복음주의운동 연구소(줄여서 복연)의 전국 모임이다 보니 네이버 카페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 다른 지역의 아볼로팀과 소식 및 자료를 공유할 수 있다. 가령 모임의 발제 자료를 카페에 공유하고 서평을 공개하기도 한다. 또 정성껏 쓴 서평은 모임 안에서 합평을 과정을 거치지만 복연 간사님께 직접 첨삭을 받을 수도 있다. 함께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공부가 된다. 더불어 간사님께 좋은 책을 추천받아 도서를 선정하기도 하고 그에 대한 보충자료를 받을 수도 있다. 아볼로클럽은 지역의 특색에 따라 개성을 가지고 융통성 있게 진행되지만 큰 틀에서 기본적인 형식을 같이한다.


 또 복연과 함께 좋은 강의를 개설하기도 한다. 지역에 좋은 강의를 열어 아볼로클럽의 팀원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웃에게 기회를 열어둠으로써 기독지성 운동을 ‘함께’하고자 한다. 실제로 두 번째 책을 읽고 서평을 쓸 때 즈음하여 창원 지역에서 글쓰기 강의를 열었다. 근대에서 ‘개인’이 가지는 의미와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강의였다. 모임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서평을 독후감상문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요약한 뒤 이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것, 때로는 저자의 주요 주장에 당당하게 반박할 수도 있는 ‘자신의 생각’을 써내는 것이 서평임을 강의를 통해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팀원들의 두 번째 서평은 그날의 좋은 교재가 되어 공개적으로 평가 되었지만, 그때 생긴 내성 때문인지 이후 합평을 할 때 쓴 소리가 오고가도 기분 좋게 받는 태도가 생긴 듯하다. 글을 쓰는 이달 말에도 ‘나만의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주제로 강의가 예정되어 있다. 정치학과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주의, 근대성, 글쓰기 등 아볼로클럽은 우리끼리도 좋은 모임이지만 우리 지역과 이웃에게도 유익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강의를 개설하고자 한다.


 더불어 다양한 사람에게 열려 있는 모임이다. IVF학사뿐 아니라 공부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에게 열려 있다. 아볼로클럽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책을 공부한다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다.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전공과 하는 일이 다른 학사들은 서로 다르게 이해하며 각자 그 이해의 깊이도 다르다. 팀원들의 배경지식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다양하게 배울 수 있다. 또 각자 개성은 얼마나 다른지, 발제하는 스타일에서부터 그 사람이 느껴진다. 성향에 따라 한 사건을 비판적이고 가치중립적으로 해석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따뜻하고 정의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며 이해하는 이도 있다. 책을 읽지만 동시에 사람을 읽어내는 과정이며, 각자의 필요로 모였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공부뿐 아니라 노는 것에도 참 열심이다(그래서 일 년 동안 여섯 권을 읽었는가 보다). 합평을 하는 날은 책거리를 하듯 꼭 맛있는 것을 먹었고 팀원들 중에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일을 앞 둔 이가 있으면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일 년간 취업이나 결혼,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다른 지역으로 간 팀원들도 있지만 그들이 창원으로 왔을 때 갑작스럽게 모임을 열 수 있을 정도의 끈끈함이 생겼다. 우리는 출신 학교도, 교회도, 대학 시절을 보낸 지역도 달랐기에 만날 리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아볼로클럽을 통해 함께 공부하는 좋은 친구요 서로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가볍게 커피를 마시고 즐겁게 음식을 나누며 정치와 사회를 논하고 교회의 모습을 고민한다. 진화론자가 쓴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야기한다. 


  나는 이제껏 공부를 열심히 해왔다. 대입을 위해 공부했고 졸업반에는 직장을 위해 공부했다. 교사가 되어서는 더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나름의 의미가 있었지만 삶과 떨어져 있는 공부는 허무함을 주었다.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시작한 아볼로클럽에서의 공부는 그 어느 공부보다 삶에 가깝다. 주어진 환경에 안도하며 안정감에 취해 살고자 하는 내게 세상을 바로 보게 하고 하나님나라에 대하여 깨닫게 한다. 잊고 있던 운동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학사들에게도 (정말 오랜만에 듣는 잔소리겠지만)공부할 것을 제안한다. 공부의 방법은 쉽다. 같이 읽고, 같이 말하고, 같이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