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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영혼을 위한 한 끼 집밥_북클럽 "나를 위한 저녁"

[소리] 2018 첫번째 소리 - 020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1) - 삶에 가까운 공부하기(아볼로클럽 창원팀 독서모임)_박소영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2) - 말랑한 떡볶이와 책이 만나는 시간(주부학사 독서모임 "말랑, 책볶이")_한선미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3) - 영혼을 위한 한 끼 집밥(북클럽 "나를 위한 저녁")_이혜원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4) - 함께 책을 읽는 유익(광주지역 "책읽기 모임")_박시현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5) - 상상과 실험의 공간을 만들다(진주지역 학사 독서모임)_류재한






영혼을 위한 한 끼 집밥

- 북클럽 "나를 위한 저녁" -





◆ 이혜원(성신여대11)

1년 6개월, 경쟁이 치열한 은행에서 살아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회초년생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몇 십 년 동안 한결같이 직장을 다닌 우리 부모님 세대를 가장 존경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는 소위 ‘뺑뺑이’가 아닌 경기도의 어느 지역에서 더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를 했다. 막상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다들 중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모였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들과 경쟁해야 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왔더니 바로 냉혹한 ‘취업’이라는 문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야말로 경쟁사회다. 


 여러 관문을 통과하여 현재 나는 금융기관에 취업해 일하고 있다. 은행 창구에 앉아 앞에서는 다양한 고객들을 만난다. 뒤에서는 책임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옆 창구에 앉아 있는 다른 직원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기독직장인으로서 나는 ‘구별됨’이 먼저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교회를 다닌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신입직원이었다. 회식자리에서나 실적 압박에서도 나는 경쟁에 초연한 듯 행동하며 직장에 어울리지 못하는 핑계거리를 찾아 헤맸다. 입사 후 1년, 회사에서 내 몫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것이 참으로 가치가 있지만 그만큼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배웠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내는 것은 고사하고 직장생활이 정신적으로 너무 버거울 때였다. IVF 리더 동기 언니가 매년 3월에 열리는 ‘기독직장인대회’를 다녀온 후 직장인모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교회에 다니는 직장동료가 한 명도 없었고 교회 셀의 구성원도 대부분 대학생이거나 취업준비생이었기 때문에 내 또래 기독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고팠다. 언니는 내 상황을 듣더니 회사 근처에 ‘강남지역 직장인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이 모임을 이끌고 계신 한병선 이사님을 연결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위한 저녁’이라는 주제의 북클럽을 알게 되었고, ‘쉼이 필요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문구에 이끌려 후다닥 신청을 해버렸다.



 나를 위한 저녁이라니!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QT는커녕 당장 내 앞에 앉아 있는 어떤 사람이 내릴까 눈치싸움을 하는 나에게, 함께 책을 읽고 책 속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근사하게 다가왔다. 드디어 당일, 북클럽에서는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라는 유진 피터슨의 책을 함께 읽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기보다는 부분 챕터만을 함께 읽고 자유롭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좋았던 부분은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오디오를 통해 귀로 같이 듣는다는 점이다. 


 북클럽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학생에서부터 나이가 지긋한 분까지 연령층도 다양했고, 직업도 작가에서부터 주부신학생까지 폭이 넓었다. 사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책에 대해 토론을 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출근하여 하루의 에너지를 다 쓰고 온 나에게는 애써서 열심을 내야 하는 고단한 일이었다. 이름이나 나이, 자신에 대한 소개 없이 온전히 책을 읽고 나누는 상황이 처음에는 어색했다. 하지만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디선가 자신의 일상을 충실히 살다가 온 사람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는 신기하게 나에게도 적용이 되고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았다.


 그날 나온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울과 다윗의 비교였다. 사울은 인간적으로 칭송받던 왕이지만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왕이었고, 다윗은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간음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이 택한 왕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시각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 우리의 일터에도 적용이 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직장상사의 태도와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미워하는 행동에 정당성을 만들어가는 나의 모습을 과연 하나님은 어떻게 보고 계신 걸까.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 첫 번째 한 일은 나쁜 왕을 섬기는 것이었다. 사울왕의 궁전으로 들어가 종이 되었다. 그는 종인 동시에 왕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사는 삶의 열쇠는 어떤 직업이나 일을 맡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 있든지 우리가 그 일을 왕업으로 행하느냐이다(59~60p).


 사울이 일을 잘하고 좋은 왕이 되는 방편으로 하나님을 하나의 수단으로 끌어들인 것처럼 나 또한 냉정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때로 망각한다. 하나님보다 회사조직과 이 세상이 더 거대하게 느껴진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일터에 감사하기보다는 하루하루 일터에서 살아남는 것으로도 벅차게 느껴진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하시는 분이시듯 내 삶과 일터는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다.


 그후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직장인 모임과 북클럽에 참여하고 있다. 직장인 모임과 북클럽 모두 책과 함께하는 모임이다. 그러나 북클럽만의 특별함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쉼이다. 북클럽에는 간단한 식사와 공연이 있다. 먹고 공연을 보고 찬양을 듣고 부르는데 거기다가 함께 책도 읽는다. 덤으로 IVP에서 주관하는 만큼 그날 읽는 책을 선물로 받는다.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같은 행사다.



 북클럽에서도 옆자리 사람들과 책 속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개인적인 삶 나눔이 주가 되지는 않는다. 각자가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충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오늘 처음 만났고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다시 보더라도 기억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오히려 담대해지고 진솔해지며 책 속에 집중할 수 있다. 어쩌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당연하게 쓰고 있을 가면을 벗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가 가능하다. 재정 상태나 직업에 구애받지 않고 선착순으로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누구나 쉼을 얻으러 올 수 있다. 북클럽에서 챙겨주는 다양한 양식들로 쉼도 얻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배불리 채워져서 집에 돌아갈 때는 몸과 마음이 풍성하고 따뜻해진다.


 창피하게도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때문에 이 책모임이 너무 감사하다. 나는 대학에 들어온 뒤로 아침식사를 거르게 됐다. 회사원이 된 지금까지 집에서 밥을 먹은 횟수는 거의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어렸을 때는 튀기거나 기름진 음식을 좋아 해서 외식이 너무 즐거웠다. 그런데 요즘 온갖 조미료로 범벅된 바깥 음식으로 인해 내 몸이 상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그냥 누룽지 밥을 먹어도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이 참 좋다. 삼시세끼 밥 챙겨먹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삼시세끼 중에서 한 끼는 집밥으로 먹어야 몸도 균형이 잡힌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기억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북클럽은 영을 채우는 집밥과도 같다. 하나님이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시기에 공동체로 함께할 수 있는 걸 찾아보는 것은 유익하다. 그중에 책을 ‘함께’ 읽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요즘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뭔가 전우애가 느껴진다. 전쟁터에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서로가 잘 버티고 살아있음에 위안을 얻고 다시 전쟁을 나갈 동기부여를 하는 군인처럼 말이다. 사회는 IVF 공동체와는 전혀 달랐다. 자신을 내어주고 서로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IVF 안에 있다가 회사로 나오니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아무 무기도 없이 전쟁터에 나온 사람들은 부상을 입고 퇴사라는 최후의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세상을 잘 살아내고 있는지 서로에게 적당한 간섭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일터 안에서 세상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을 하나님으로 채우는 한 끼 집밥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을 직장인 학사님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