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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상상과 실험의 공간을 만들다_진주지역 학사 독서모임

[소리] 2018 첫번째 소리 - 020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1) - 삶에 가까운 공부하기(아볼로클럽 창원팀 독서모임)_박소영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2) - 말랑한 떡볶이와 책이 만나는 시간(주부학사 독서모임 "말랑, 책볶이")_한선미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3) - 영혼을 위한 한 끼 집밥(북클럽 "나를 위한 저녁")_이혜원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4) - 함께 책을 읽는 유익(광주지역 "책읽기 모임")_박시현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5) - 상상과 실험의 공간을 만들다(진주지역 학사 독서모임)_류재한







상상과 실험의 공간을 만들다

- 진주지역 학사 독서모임 -






◆ 류재한(경상대98) 

“노당연”을 마음에 품고 그냥 존재하는, 경상대 IVF 학사.




그냥 문득 모임


 며칠 전,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는 최승자 시인의 시 “삼십 세”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홀연 연필에 달린 지우개가 ‘서른’을 지우고, 그 연필이 새로운 글자 ‘마흔’을 사각사각 적었습니다. 지워진 서른과 새롭게 새겨진 마흔 사이에는 ‘느슨한’, ‘약간 수다스러운’, ‘상상하는’, ‘실험하는’, ‘관심 갖는’ 형용사들이 보입니다. 이 형용사들은 지난 십 년 동안 진주지역 학사모임을 통해서 들어서 깨달은(聞得) 것입니다. 진주지역 학사모임은 언제나 ‘독서’와 함께합니다. 


진주지역 학사모임 


 진주지역 학사모임 단체톡방(참여자 위치 정보 : 진주, 통영, 사천, 창원, 부산, 울산, 남극)은 “연말연시맞이 학사모임 한번 어떨까요~?”라는 이야기가 나와 2017년 마지막 목요일에 송년모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민(無+mean)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2005년 가을부터 진주지역 학사모임이 시작된 이래 ‘회장’ 또는 ‘리더’라는 고정된 자리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간사들도 학사모임에 참여하지만 간사가 아니라 똑같은 학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끌어가고 지도하는 고정된 자리가 없이, 서로간의 교류와 역동만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서로 간의 열림과 관심, ‘마음 씀’으로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진주지역 학사모임은 고정된 형태 또한 없습니다. 최소한의 모임 시간만 정해져 있습니다. 주일 오후 7시~9시. 그러나 꼭 7시에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매주 모임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없습니다. 모임에 대한 최소한의 공지만 있을 뿐, 오고 가는 것에 대해서도 학생 때처럼 챙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각자가 보냄 받은 일상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하는 데 4개월 이상 걸린 사례도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문제, 즉 일상생활 속에서 어떠한 질문을 물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새로 학사모임에 참여하는 무민들은 당황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드라이아이스가 기화하는 장면과 같아서, IVF의 장점인 명쾌하고 정확한 구조와 방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자리와 구조가 없는 진주지역 학사모임은 상상과 실험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상상(想像)은 마음에 있는 나무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거나 전체를 조망하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과 돈이라는 이미지로 촘촘하게 짜인 현실세계 내에서 틈과 숨결을 낼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는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지성근 소장의 표현에 따르면,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하는 네 남매들이 옷장을 통해서 나니아에 들어가 위대한 사자 아슬란을 만나는 시간, 즉 하나님나라 이미지를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상상은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세계의 한계를 조망하고 그것을 넘어서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미지로 인해서 우리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한 실험을 땀 내음 나는 삶과 일터에서 시도하는 것입니다.


 진주지역 학사모임 이야기를 좀 길게 하는 이유는 연결성과 확장성 때문입니다. 진주학사모임은 내화된 미션얼(missional) 정신으로, 다채롭고 미션얼한 실험 이야기들을 스스로 만들고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 전체 모습은 다음 사진과 같습니다. 




이미 시작된, 다양한 독서모임


 진행 중인 모임을 소개합니다. 먼저 “보통독자모임”입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평범한 세 사람이 커피숍에 앉아서 그냥 수다를 떨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경험하는 불편함으로 주제가 옮겨 갔습니다. 어떻게 그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저는 「교회의 본질」, 「일상교회」, 「새로운 교회가 온다」를 소개했습니다. 그 계기로 책모임이 시작되었고, 이후에는 일반서적 위주로 책을 읽었습니다. 최근 읽은 책은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입니다. 책은 같은 장소에서 90분 동안 정해진 분량을 읽습니다. 그런 후 각자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 또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을 이야기합니다. 작년에는 ‘여성인권영화제 찾아가는 이동상영회’에 선정되어서, 인권영화제도 커피숍을 빌려서 진행했습니다. 


 “식객”은 지식과 음식을 나누는 벗들의 모임이며, 그날 그 자리에서 책을 함께 소리 내어서 읽는 모임입니다. 식객 진주는 총 7회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 중 가장 인상적인 분은 한 무민의 어머니였습니다. 50대 후반이신 나이에도 아침 9시 30분에서 오후 6시까지 지치 않으시고 함께 책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프로젝트 10”의 ‘10’은 부산-창원-진주-순천을 연결하는 10번 남해고속도로를 의미합니다. 네 도시를 연결하는 느슨한 학습공동체입니다. 정기적인 모임이기보다는 그때그때 이슈와 필요에 따라서 기획되는 모임입니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전공 분야도 다양한데, 역사, 철학, 법학, 교육학 등입니다. 그래서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듣고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혐오”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함께 「혐오에서 인류애로」를 공부했습니다. 


 “작은 책모임”은 지역교회 청년들과 함께 시작한 모임입니다. 아래에 이 모임을 만든 황금성 학사의 나눔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통영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경상대 06학번 황금성입니다. 직장은 통영이지만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진주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요, 작년 11월부터 교회 청년들과 일주일에 한번 책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모임은 주일에 커피를 마시다가 시작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의 고단함이나 일상을 무의미하게 보낸다는 고민을 나누면서, 뭔가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교회 청년들과 만들어 보고 싶었던 책모임을 제안했고 모두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즉흥적으로 모임이 시작되었고 저희는 읽을 책을 정한 뒤 그 주 금요일 저녁 7시에 모였습니다.


 이 모임에서는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카페 스터디룸에서 음료도 마시며 읽을 만큼의 분량을 정해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책을 읽습니다. 미리 책을 읽어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 후 책의 내용 중 각자에게 인상적이거나 와 닿은 부분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물론 딱딱하게 책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중에 일터에서 있었던 사건이라거나 자신이 가진 고민도 같이 나누고 있습니다. 책은 지금까지 신앙도서와 일반도서를 번갈아가며 총 세 권을 같이 읽었습니다.


 개월 수로는 3개월, 햇수로는 2년째 맞은 저희의 책모임을 돌아보면, 무엇보다 우리 안에 소통하고 교제하는 공간이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이 모임을 통해 삶을 풀어내고 다시 일터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책을 통해 우리가 가진 고민을 풀어가고 성장해 갈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새해에도 이 모임을 통해 청년들이 함께 소통하고 일상을 승리하며 잘 살아내길 기도합니다. 





아직 그러나 곧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곧 시작하려고 준비 중인 모임들이 있습니다. 바로 “완물완궁”과 “여성주의 책읽기 모임”입니다. “완물완궁”은 ‘완전 물어보고 싶고 완전 궁금’한 모임입니다. 성경을 읽고, 질문하고, 그 질문으로 함께 탐구하려 합니다. 이 모임은 한 무민이, 비종교인 직장동료가 지니고 있는 성경에 대한 궁금증을 보고 제안했습니다. “여성주의 책읽기 모임”은 여성 독서모임입니다. 이 모임을 준비하는 자매의 마음을 아래에 함께 나눕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학사로 지내며 피부로 느끼는 것은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꼬리표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자아이로 자라면서 겪은 차별은 그저 우리 집안의 문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 그것이 제 개인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사로서 연차가 쌓일수록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차별이 느껴지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를 난감한(?) 상황에 마주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당혹감을 넘어 때로는 상처를 주는 여러 경험 속에서, 혼자 끙끙거릴 수만은 없다는 필요가 커져 갔습니다. 그러던 중「82년생 김지영」소설을 추천받아 읽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살아온 삶 속의 이야기와 사건들이, 내가 경험한 사건들과 연결되면서 씁쓸했습니다. 소설 속의 김지영과 나,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하며 주변의 여성 지인들에게 틈틈이 권했습니다.


 작년 여름, 선배 학사님과 차를 마시며 여성 모임에 관한 제안을 들었습니다.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경험 속에서 혼자 씨름할 대한민국의 크리스천 자매들과 함께 이 고민을 나누고,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주변의 IVF 자매학사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어떻게 무엇을 매체로 우리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처음의 열정과는 다르게 각자의 바쁜 일정에 밀려 아직 시작하지 못했지만, 2018년에는 꼭 자매들만의 수다와 공감, 위로의 장을 가지고 싶습니다. 책으로, 영화로,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달콤한 디저트로 함께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을 축복하는 모임을 만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