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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체험, 삶의 현장 Ⅳ] 우리 가족의 제주행(行)_차희철

[소리] 2017년 여섯 번째 소리- 1201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체험, 삶의 현장Ⅳ]

▷ 체험, 삶의 현장Ⅳ (1) - 나는 월급쟁이가 아닌 선생님입니다!_유홍렬

▶ 체험, 삶의 현장Ⅳ (2) - 우리 가족의 제주행(行)_차희철

▷ 체험, 삶의 현장Ⅳ (3) - IVFer를 넘어 TCFer로!_현승호

▷ 체험, 삶의 현장Ⅳ (4) - 간사와 장사, 그리고 학사_좌성훈





우리 가족의 제주행(行)

 

차희철 ◆ 울산과대 92

92학번으로 울산과학대와 울산대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2003년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내를 만났고, 현재는 2남 1녀를 둔 아빠입니다. 





 

 저희 가족은 현재 제주에 살고 있습니다. 2014년 9월에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제주로 보냈고, 2015년에 저도 입도를 했습니다. 제주로 이주를 하게 된 것은 누군가의 상상처럼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찾는다거나, 제주의 아름다움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간혹 제주에서의 삶을 꿈꾸긴 했으나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언젠가 우리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상상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살던 장인어른의 음주로 인한 문제들과 그해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둘째아이의 심리 상담 결과가 겹치면서, 저희 가족은 제주로의 이주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둘째아이는 질문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한번 읽은 책은 거의 완전히 외울 수 있으며, 특히 영화의 대사까지 모두 외울 수 있는 아이였습니다. 너무 어리기에 무엇인가 익히고 배우는 것은 전부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둘째가 주로 읽던 책은 인체와 물리 과학 관련 책들입니다. 둘째는 머리로 세상을 먼저 알아갔지만 마음으로는 익히는 시간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몸으로 노는 것보다도 이야기하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이였기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같은 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 읽었던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거나 친구들의 틀린 부분을 설명할 때면 아이들이 놀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은 또래 아이들의 장난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후에 아들은 쉬는 시간이면 밖에 나와서 조용히 혼자 책을 읽었고, 그러면서 다른 친구들과 더 멀어져갔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학교에서 아이들의 심리관련 조사를 하는데 둘째의 결과가 상담이 필요한 상태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먼저 교육청이 지정한 곳에서 좀 더 심도 있는 심리검사를 받았습니다. 몇 달 후 저는 아이와 함께 결과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스트레스가 왔을 때 그것을 견디는 힘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알고 있는 세상과 현재 친구들과 지내는 세상의 괴리를 아들의 이해력으로 감당하는 게 힘들다는 것입니다. 상담선생님은 아들을 위해서 자연과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고 권했습니다. 


 상담 결과를 듣고 아이와 집으로 오면서 걷는 동안에, 계속 아이를 품에 안았습니다. 유독 아들에게 엄하게 대했던 것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지만, 아들의 아픔이 느껴져서 마음이 너무 아팠기 때문입니다. 겨우 겨우 눈물을 참았기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이유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혼자 화장실에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내와 저는 거주지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때 아내가 제주로의 이주를 먼저 제안했습니다. 아내는 집을 알아보고 학교와 그 지역의 상황을 알아보는 등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제주로 이주했습니다. 


 저를 제외한 가족들이 먼저 1년 동안 제주에서 생활하기로 했습니다. 1년이 지난 이후에도 괜찮다면 저도 제주로 내려가기로 계획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정말로 제주에서의 생활을 즐거워했습니다. 평소 낯선 곳에서 적응을 힘들어했던 아내도 더 적극적이 되었습니다. 저와 연애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아내는, 제주에서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다가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되돌아보면 그 시기에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아내와 아이들이 아니라 저였던 것 같습니다. 주말에 제주로 내려갔다가 주일이면 다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올라와야 하니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계속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에만 가족들을 만나는 주말부부 생활을 할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제주에서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를 말이죠. 계속 직장생활을 한다면 금전적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지만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과 아이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같이 하지 못하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뻔한 결과를 가지고 고민한 이유는 어쩌면 알량한 금전적인 안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내적 갈등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로 간다고 했을 때, 직장 동료들과 친가 어르신들은 저를 말렸습니다. 직장 동료들은 “나가라고 해도 붙들고 있어야 하는 직장을 왜 자기 발로 나가느냐”고 붙잡았습니다. 어떤 이는 지금 배가 불러서 그렇다고도 했고, 그 나이가 먹도록 철이 들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친가 어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나 봅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라니, 거기서 뭘 해먹고 살 수 있단 말이냐!


 



저는 선박 설계와 개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제주도에서는 그와 관련한 직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땐 몸이 건강하니 몸 쓰는 일을 하면 생계에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금전적으로 조금 힘들게 되더라도 가족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처음엔 농사를 지어 볼 계획이었습니다. 어려서 시골에 살았고 부모님과 같이 농사를 지어봤기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시키는 을을 하는 것과 내가 직접 짓는 것은 너무나 달랐고, 결국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간 사실을 아시고, 이전 직장에서 상사로 모셨던 분이 다시 들어오라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잠깐의 고민은 있었지만 정중히 사양의 뜻을 알렸더니 그분이 작은 회사를 소개해주셨습니다. 그 회사는 새로운 선박의 개발과 영업을 확대하고자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 업무를 담당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업무를 집에서 할 수 있다는 조건도 있었습니다.


처음 제주도로 와서 둘째와 다툼이 있으면 화난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혼자 힘들어 하지 말고 어떻게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것인지, 무엇보다 비록 우리가 지금 다퉜지만 엄마아빠는 너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는 데 2시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조용히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도 둘째는 예민하긴 합니다. 하지만 저와 아내를 찾아와 뽀뽀도 하고 안기기도 하며 무엇보다 사랑의 감정에 대해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아이들 모두가 와서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서로 안아줍니다. 


 요즘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고민은 큰딸의 중학교 입학에 따른 고민과 아내의 학교생활입니다. 내년에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는데 새로운 환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많아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큰딸이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각종 대회와 행사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너무나 예쁩니다. 요즘 아내와 저는 만약 학교생활이 힘들다면 홈스쿨링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아이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내는 이번 학기부터 ‘Word of Life Bible Institute’라는 곳의 제주 캠퍼스에서 1년 과정의 학업을 시작했습니다. 뉴욕에 있는 신학교 개념의 학교로 1학년을 제주에서 하고 2학년부터는 뉴욕으로 가는 구조인데, 아내는 일단 이곳에서 1년 동안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전적으로 아내가 원한 결정이었습니다. 그곳에 다니면서부터 아내와 저는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에 성경의 내용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IVF 공동체에서 받은 훈련이 얼마나 유용한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제게 살짝 고백했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웠고,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결혼을 앞두고,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신앙적으로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께 청첩장을 가지고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제 아내가 이전에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교수님은 짐짓 놀라셨습니다. 그럼에도 제게 “무엇보다 아내의 신앙을 자라게 하는 데 힘써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 10년 동안은 네가 하는 교회 일들을 모두 내려놓더라도 기다리고 내려놓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없었다면 아마 결혼생활 동안 신앙 때문에 아내와 많이 싸웠을지도 모릅니다. 가끔 아내와 저는 앞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상황을 보여주실지, 또 어떤 일들을 맡기실지 궁금하다는 대화를 나눕니다. 아내는 이전에는 알 수 없는 미래로 인해 불안해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길을 보여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얼마 전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에서 선박의 복원성과 관련해 자문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아 이번 달부터 자문위원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있는 지식이나 우리의 작은 힘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되길 소망합니다. 때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 앞에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때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저희에게도 그러실 것임을 믿기에 두려움보다 기대를 품고 생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