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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덕질’예찬] 보드게임 예찬론_이용훈

[소리] 2017년 세 번째 소리-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용훈 || 고신대85

나음누리, 사랑을 나누는 의원 원장


보드게임 예찬론


 

흔한 풍경 (1)

 

여보, 빨리 와! 이제 게임 시작했어. 꼴등이 라면 끓이고 3등이 설거지하기!”

 

흔한 풍경 (2)

 

안녕하세요, 해밀입니다.” “전 청바지라고 합니다. 제 아들은 반바지라죠.” “전 먹깨비.” “난 키레라고 합니다.” 어느 평범한 저녁, 모임에서 만난 우리는 돌아가 자기소개를 한다. 한두 번 본 사람도 있고 처음 본 사람도 있다. 20대에서부터 50대까지 남여 불문하고 이름도 묻지 않고 닉네임으로 통한다. 일명 보드게임 덕후들의 모임이다. 닉네임 소개 후 바로 게임을 시작. 주로 처음 온 사람이 나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이 하고 싶은 게임을 고르고, 룰을 아는 사람이 설명을 해주며 함께 게임을 진행한다. 전혀 모르는 게임이 라도 상관없다. 그 중에 아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친절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게임에 열중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어느덧 12시가 넘었다. 출출하다. 컵라면 하나씩 먹고 한 게임 더 하고 나면 2시쯤 된다. 내일을 위해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방향이 같으면 함께 가기도 한다. 다음에 또 언제 만날지는 모른다. 그냥 시간되는 날 카페에 가보면 만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함께 모여 또 게임을 한다. 정기모임(정모)에 꾸준히 참석을 하면 더 친해지고 연락도 주고받는다. 게임이 끝난 뒤에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같이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한잔하기도 한다.

 

흔한 풍경 (3)

 

, 우리 게임해요.” 주일 오후나 수련회 마지막 날 밤이면 우리 샘은 인기가 좋다. 마피아나 이중 모션이 대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분위기안 좋아하는 녀석들은 늘 샘을 찾는다. “이번엔 어떤 게임 가져오셨어요?” 소그룹모임(구역모임)에 서도 오늘 모임은 보드게임 할까요?”라는 제안에 모두들 환호성이다. 소그룹 소풍에서 밤새도록 게임을 하게 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며칠 전 아이들의 시험이 끝났다. 한동안 게임을 못해 하고 싶은 종류가 많았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게임을 꺼냈다. 폴리티컬 월드. 현재의 정치상황을 패러디하여 모노폴리 (블루마블)의 형식을 빌려와 만든 게임이다. 각자는 국회의원 신분으로 시작해 대통령이 되는 것이 목적이다. 말의 색깔은 파랑, 빨강, 노랑, 녹색. (지금의 상황을 반영한 듯, 대부분의 게임이 그 정도의 색을 사용한다) 나는 늘 하던 파랑, 아들은 늘 하던 빨강을 선택했다. 자기 차례가 되면 주사위를 굴려 그 수만큼 전진하는데, 도착한 지역마다 경북 빨강색, 전남 녹색 이런 식으로 색이 정해져 있다. 자기와 같은 색깔, 즉 자기의 지지기반인 지역에 멈추면 보너스가 있다. 지역에 도착하면 이벤트카드를 펼쳐 지지율을 획득하거나 잃는 이벤트가 일어나는데, 이날 게임 중에는 정말 절묘하게 자기당과 같은 입장의 카드가 펼쳐졌다. 한 장한 장 펼칠 때마다 폭소가 터져 나온다. 지금의 대선 상황에 대해 자연스레 얘기도 하고. 12개월이 지난 후 (한 바퀴를 돌면 1개월) 지지율이 가장 높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데, 그때부터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특권이 주어진다. 물론 탄핵을 받을 수도 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 이하일 때 누군가 3장의 탄핵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다. 대선 관련 뉴스를 보며 가족들과 선거에 빠져든 유쾌한 시간이었다. 간간히 이벤트카드에 대한 상황도 설명하면서.

 

2002년 처음으로 루미큐브라는 게임을 해보게 되었다. 몇 명이 모여서 편하게 놀기에 좋았고 무척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나름 교육적이기도 했다. 세계적인 대회도 있다고 했다. 그 뒤로 보드게임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PC방처럼 보드게임 방이라는 곳도 가서 그곳에 있는 게임들을 해보았다. 지역별로 정기적으로 모이는 동호회에도 참석 해본 나는 신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다. 이렇게 건전하고 즐겁게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문화가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 당시엔 보드게임 방이 많았고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게임 하나를 구입하는 것보다 거기에 가면 다양한 게임들을 할 수있었고, 모르는 게임은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어 부담스럽지 않았다.

 

언젠가 손자를 너무 좋아하시는 아버님이 집에 오신 날, 함께 보드게임 방에 간 적이 있다. 보통은 할아버지가 손자와 놀아주셨는데, 거기서는 손자와 게임을 하시면서 아버님도 같이 게임을 즐기시는 모습을 보았다. 연령에 상관없이 함께 몰입해서 놀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너무 좋았다. 우리나라 집에 하나쯤은 있는 화투나 바둑, 장기처럼 유럽에는 보드게임이 한두 개씩 있다고 한다. 외국 보드게임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노부부가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사진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유럽은 독일을 중심으로 보드게임 문화가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다. ‘보드게임긱이라는 사이트에는 전 세계의 새로운 게임들이 소개되고 순위가 알려진다. 게임 디자이너의 얘기와 게임에 대한 문의, 그리고 자료들이 늘 올라온다. 영문 텍스트가 많은 카드게임들 중에는 유저 개인이 카드를 스캔해서 한글로 번역한 내용을 포토샵으로 작업하여 올려주기도 한다. 룰북도 영문이나 독일어로 되어있는 것은 번역해 무료로 공개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처음부터 많은 보드게임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보통은 모임에 가서 게임을 해보고 정말 재미있는 것을 한 두 개 정도 구입하는 식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수익성 문제 등으로 보드게임 방들이 하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문 닫은 보드게임 방에서 가지고 있던 게임이 싼 가격에 매물로 나오면서 유저들이 구입해 보유하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게임이 싼 가격에 나오다 보니 보드게임 방에서 보기만 했던 좋은 게임들을 많이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던 게임들이 많아져 이제는 집에 오시는 손님들이 보시고 신기해 할 정도가 되었다. 이 나이에 게임이라니. 모양은 좀 안날 수 있지만 매년 10월에 독일 에센이라는 소도시에서 열리는 보드게임 박람회에 한번 참석해보는 것이 로망인 보드게임 덕후들에게는, 보드게임이란 그저 삶의 활력을 주는 다른 여타의 취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실제로 모임에서 만나 결혼해 10월 에센을 거쳐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간 부부를 보고 모두들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부부가 함께 같은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관계를 행복하게 하는 귀한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드게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혼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1인용 룰이나 게임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러 명이 함께 해야 한다. 그렇기에 혼자 놀 수 없고 서로 배려해가며 함께 게임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다음에 또 함께 게임을 하려면 평소에 잘해줘야 하고 어떨 때는 같이 게임해 달라고 딜을 하거나 사정을 해야 할 때도 있다. 함께 모여 얼굴을 맞대고 때로는 팀으로, 때로는 각자가 이기기 위해 고민하고 수를 생각하다보면 다양한 테마와 방법들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한가지의 필승전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운에 의한 것도 있지만, 게임에 따라서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게임도 있어 다양하고 깊은 사고를 하게 된다. 처음에 아이들과 게임을 하다보면 게임에서 진 아이들이 삐지고 울기도 한다. 물론 보드게임은 게임에 따라서 블러핑(속임수)을 허용하거나 대놓고 블러핑을 통해 플레이하게끔 하는 게임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게임에서는 속임수를 써도 상대방이 알 수 없는 게임이 있다. 때문에 게임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꼭 이야기 해주는 것이 있다. 게임은 우리가 함께 즐기는 것이다. 이기면 물론 좋겠지만 게임에서 졌다고 맘 상해 심통 부리는 건 같이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게임을 할 때는 스스로 정직하게 해야 한다고.

 


 

요즘은 보드게임이 많이 알려졌다. 로보77, 할리갈리, 보난자, 카탄의 개척자들, 카르카손 등은 보드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도 한두 번 정도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보드게임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어린이용 게임부터 매니아틱한 덕후들용 게임까지, 테마도 교육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탐험, 전쟁, 문명, 추리, 건축, 레이싱, 요리, 판타지, 공상과학, 종교 등으로 다양하다. 특히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게임들이 나와 흥미로운데 종교개혁 시기의 역사적 사건들을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하여 구교와 신교로 개종시켜 일정지역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솔라 피데라는 게임이나 루터라는 게임도 발매되었다. 얼마 전에는 사도들이 미션을 수행하는 것을 테마로 한 게임이나 이스라엘에서 왕들에 따라 퍼져가는 악을 참가자들이 협력하며 막아내는 이스라엘의 왕들이라는 게임도 호평을 받았다. 언젠가는 아이들과 함께 꼭 해보고 싶은 게임이 있다. ‘Here I stand’ 라는 게임인데, 종교개혁 이후 유럽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6명이 모여 6시간 동안 해야 하는 게임이라 만만치 않고 룰도 복잡하지만, 이 게임과 그에 이어지는 시기를 다룬 처녀여왕이라는 게임 까지 진행한다면 역사를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들과 함께 하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800개 정도의 다양한 보드게임을 가지게 되었는데, 필요한 상황에서 적당한 게임들을 추천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학습상담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적절한 게임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소모임 때 적절한 게임을 활용해 깊은 나눔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는 좋은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함께 하다보면 서로의 특성과 성향도 드러나 서로에 대해 이해가 깊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꼭 게임이 있어야 하고, 많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보드게임 방들이 다시 생겨나고 있다. 간혹 보드게임 방이라고 해서 들어가 보면 도박 같은 것을 주로 하고 있는 이상한 곳도 있지만 한 번의 유행이 지난 후라 정리되고 정돈된 좋은 곳들도 많이 있다. 주위의 보드게임 방이나 모임을 통해 먼저 접해보면 좋을 것 같다. 가족뿐 아니라 연인이나 친구들과도 충분히 즐길만한 좋은 취미라고 감히 권하고 싶다.

 

보드게임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몇몇 사이트를 소개한다. 보드게임에 대한 소개와 자료들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구매 가능한 곳들도 알 수 있다.

 

· 보드라이프 http://www.boardlife.co.kr

· 행복한 바오밥 http://www.happybaobab.com

· 다이브다이스 http://vwww.divedice.com

· 보드엠 http://www.boardm.co.kr

· 보드게임긱 http://www.boardgamegeek.com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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