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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정치색(色)] 인간의 기본권과 상식적인 가치에 대한 교양을 키워야 할 때_이종혁

[소리] 2013년 여섯 번째 소리 -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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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본권과 상식적인 가치에 대한 교양을 키워야 할 때


시끄러운 세상 속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 | 이재웅(상명98)




이종혁(가톨릭대05)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입시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의 활동가이며, 녹색당 당원이다. 고등학교 동기들보다 3년 늦은 05학번으로, 아동학과 사회복지학을 복수전공 하였지만 주로 IVF 위주의 대학생활을 했다.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심 많은, 사람과 현장을 좋아하는 그런 활동가로 살고자 한다. 이 글은 기획 주제에 관한 의견을 셀프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보았다.


 




* 아동학을 전공하셨다는데, 솔직히 믿기지 않는데요?

  나도 잘 믿기지 않는다. 이따금 그 시절이 떠오르면 혼자 깜짝깜짝 놀란다. 이과생이었던 내가 갑자기 사회복지 쪽으로 진로를 바꾸려 하다 생긴 사고(?)였다. 어려서부터 남성 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자라온 나에게 아동학과는 졸업 후 장교로 복무한 해병대보다 더 힘든 광야 같은 곳이었다. 그나마 IVF에 아동학과 동기 두 명이 있었기에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다.



* 그랬군요.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글을 왜 셀프인터뷰 형식으로 작성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IVF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지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의 경험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하자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졌다. 또 글을 쓰다 보니 이야기가 자꾸 삼천포로 빠져서 그냥 엎어버렸다. 그래서 주제에만 집중하고자 선택한 형식이다. 사실 누가 찾아와서 인터뷰할 만한 사람은 아닌데 혼자 이러고 있으니 참 민망하다.

 


* 다른 학사들이 어떻게 볼지 모르겠네요. (웃음)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공동체 내에서 정치적 지향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이 있나요?

  그런 경험은 계속 있었다. 군복무 때 그리고 이전 교회 교우들과 어릴 적 친구들 사이에서도 많았다. 정치적 지향이 다른 그들과의 대화나 소통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정치적 지향이라는 것은 어쩌면 세계관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논리나 상황 인식의 준거 틀이 전혀 다른데 어떻게 대화가 통할 수가 있겠나. 실제로 반기독인들과 한국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정치적 지향이 다른 이들과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어려웠다.

  군 생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군대는 기본적으로 우(右)편향적인 정서가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군과 관의 정책에 반하는 의견이 있어도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함부로 그랬다가는 ‘종북세력’으로 오인 받을 위험이 있다. 그래도 나는 굳이 MB정부와 새누리당 욕을 열 번 하기 위해 민주당 욕을 먼저 백 번 했다. 우리나라 제1야당이 욕먹을 짓을 많이 해놓아서 크게 어려울 건 없었다.

  또 계속해서 연락하고 지내는 어릴 적 친구들 중에는 뉴라이트 출신인 현 국사편찬위원장과 역사관이 비슷한 친구도 있다. 그 친구와는 되도록 정치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려고 서로가 조심한다. 많은 시간 대화를 해봤지만 서로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정치얘기를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볍게 서로 비꼬듯 얘기하는 정도에 그친다.

 


* 그런 친구들을 지금도 만나고 있고 학과보다 군 생활이 편했다고도 했는데, 대화가 되지 않는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갈 수 있었나요?

  한편으로는 그런 갈등을 회피한 측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나의 정치적 입장보다는 몸담고 있는 조직 안에서의 관계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있겠나? 나와 맞는 사람들과만 지내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나의 정치적 지향을 위해서라도 나와 지향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관계에서는 정치와 관련된 것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차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려 했고,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상대방에게 집중하며 만나왔다. 그리고 초면이 아닌 이미 형성된 관계 안에서는 마음먹기에 따라 서로를 배려하는 선에서 큰 어려움 없이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또 그런 관계일수록 내가 더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려 했다. 그래서인지 군대를 비롯한 여러 관계에서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나름의 캐릭터로 잘 지내온 것 같다.

  물론 다른 지향을 갖고 있고 서로의 입장에 적대적이기까지 한 사람을 초면에 만난다면 굉장히 부담스럽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입장이 우선인지 관계가 우선인지를 생각한다면, 쉽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차이와 한계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선택하고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그러면 IVF나 현재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그런 갈등이 없었나요?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없었다. IVF 안에서는 오히려 나의 강한 행동주의적 성향에 인지주의적 성향이 강한 이들이나 아니면 아예 정치사회 문제에 무관심해 보이는 이들이 불편했고 그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

 


* 행동주의와 인지주의라,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행동주의와 인지주의, 이런 말은 심리학이나 교육학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구성주의로의 패러다임 전환으로도 나아가면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설명하는 다양한 접근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이런 이론적인 이야기는 잘 모르겠고, 사람의 성향을 그렇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 어떤 사건이나 교훈을 접할 때, 내 머릿속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지배했다. 신앙생활도 그랬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들었고, 또 믿는다고는 했지만 뭐라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나를 너무 불안하게 했다. 고등학교 진학 즈음에 교회 수련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이전처럼 살 수는 없고 영접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잘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학생회, 교회 봉사, 찬양집회 따라다니기 등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참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는 뭔가 이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 25:40)라는 말씀을 붙잡고 그 당시 내가 아는 선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워 보였던 장애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IVF를 통해 기도와 말씀에 대해 배우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세계관 등을 알아갔지만, 의지가 넘쳤던 나는 대다수가 장애인이고 사회경제적으로 극빈곤에 처해있는 노숙인 봉사에 또다시 마음을 쏟으며 노숙인 교회에 1년 가까이 출석하면서 열을 올렸다. 그리고 후에는 공동체라는 화두에 사로잡혀 공동체가 대안이라는 생각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또 나에게 평안을 줄 다른 활동을 찾아간 것 같다. 감사하게도 좋은 공동체를 경험했고 지금도 잘 만나고 있지만, 어떤 활동이나 행위로 만족과 평안을 얻고자 했던 욕구가 숨겨져 있는 건 부인할 수가 없다. 이런 나의 성향을 행동주의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 정치적 지향이 아닌 개인의 성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공동체 내에서 이것으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그렇다. IVF를 통해 많이 깨지고 바뀌었지만 3학년 때까지도 사람들이 나와 똑같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것 같다.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알았는데도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 답답했다. 문제에 공감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도 맞고 공동체의 내실을 다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행동이었다. 아예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이들에겐 화가 나기도 했었다. 공동체의 방향과 활동에 대한 논의를 할 때 그로 인한 갈등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가 4학년 올라갈 즈음, IVF에서 서로 갈등하며 힘들었던 관계들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모나고 흠 많은 나를 견뎌주고 함께해준 것만으로 참 고마웠다. 그 이후로는 공동체 안에서 나의 주장을 앞세우기보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려 했다. 공동체에 대한 나의 태도가 변하니 신기하게도 공동체가 나의 이야기를 더 잘 들어주는 경험을 했다. 이때부터 어떤 일이나 주장보다는 조직 안의 관계를 더 소중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일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이 정립된 계기였다.



* 예전과 달라진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지금은 어떤지 더 이야기해주세요.

  일단,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행동에만 치중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현상을 분석하고 이론을 발전 시켜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문화, 예술 등 다른 영역에서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영역과 지금 관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헌신해야 할 일임을 알았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용산, 강정, 밀양 그리고 부당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 등 고통 받는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관심 갖고 관계 맺는 만큼 그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사회문제도 인격적인 관계로 접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초에는 제주 강정마을에 홀로 다녀온 적이 있다.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4·3사건 등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울컥 눈물이 나서 펑펑 울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영역의 감수성은 부족한 반면 사회문제에 대한 감수성은 발달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나의 행동은 사회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가만히 있기 어려워하는 나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위한 활동은 나와 입장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라 생각하며, 당위와 주장이 아닌 내가 느끼고 원하는 바를 나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동참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나의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더욱 정치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현장과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려 한다. 그리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기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 간절히 구한다.



* 어떻게든 이야기를 훈훈하게 정리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웃음) 마지막으로, 더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요즘 보면 오히려 정치권과 언론이 진보와 보수로 사람들을 나누며 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몇몇 지식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제대로 된 보수와 진보로 볼 수 있는 정치세력이 없다. 솔직히 아직 이 나라는 상식과 몰상식의 단계조차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전통과 국격을 지키며 점진적 발전을 이야기하는 보수, 그리고 실사구시와 고통 받는 이들의 입장에서 사회적 변혁을 이루기 위한 진보의 제대로 된 경쟁을 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인간의 기본권과 상식적인 가치에 대한 교양을 키워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치 문제 그리고 사회의 모든 피조물들과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주어진 일을 능동적으로 감당하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나의 길을 선택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대화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위와 같은 진영의 논리와 세력 다툼 그리고 국가를 무비판적으로 따르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순종하고자 하는 하나님나라의 법칙을 내면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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