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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워킹+맘= 죄인인가 신(神)인가?] 참으로 해방된 워킹맘_박소현

[소리] 2017년 두 번째 소리-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참으로 해방된 워킹맘

 

박소현 | 서울여대99

IVP 간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예창작과 국문학을 전공한 후 출판편집자로 일하다가 아이를 낳은 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간간이 글도 쓴다.

 


 

  출산을 앞두고 회사 선배가 점심을 사준다기에 함께 식당에 갔다. 선배는 출산 후 자신의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복직을 한 케이스였는데, 밥을 먹는 도중 나에게 복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한 번도 복직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는 그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때까지는 아이를 낳은 이후의 상황과 복직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었다. 당시 나는 입덧이 극심했고 임신 중 수술까지 한 터라 만삭이 되도록 잘 먹지도 못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당시로선 하루 빨리 휴직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종자 씨앗은 먹지 않고 남겨 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 먼저 휴직을 했다. 몸도 안 좋은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키운 이후의 상황은 당시 나에게 너무 먼 이야기였다. 대부분 선배들이 출산 후 복직하는 분위기였으므로 나도 당연히 복직을 하겠거니 막연히 생각하는 정도였다.

 

  아기가 태어나고 육아가 시작되었다. 정신없이 아기를 키우며 계절이 몇 번 바뀌자 어느새 복직 날짜가 다가왔다. 나는 1년간 자리를 비우기로 했었는데 한 달 먼저 휴직을 했기 때문에 11개월 아기를 두고 회사를 가야 했다. 생각해보니 아기를 맡아 줄 사람이 없었다. 양쪽 어머니 모두 상황이 여의치 않으셨고 거리가 가깝지도 않았다. 남은 건 베이비시터에게 아기를 맡기는 방법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비좁고 답답해서 매일 미역국을 먹으며 아기와 좁은 집에 갇혀 지내던 나는, 지인들에게 <올드보이 2>를 찍는 기분이라는 농담을 하곤 했었다. 나조차 힘든 환경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그 집에서 아기와 함께 지내라고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아주는 사람도 환경이 쾌적해야 몸도 마음도 편할 것이 아닌가.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긴다든지 돈이 많이 든다든지 하는 문제만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며 쾌적한 환경이 조성된 집이 갖추어져야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제야 남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여겨지면서 밤잠을 못 이루며 고민에 빠졌다.

 

  복직한 여자 선배들은 처음 1년은 힘들지만 포기하지 말고 복직을 하라고 권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나 남자 지인들의 경우 존 볼비의 애착 이론 등을 언급하며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불리한 상황과 내가 불리한 상황 중 하나를 골라야 했으므로 복직을 하지 않기로 어렵사리 결정을 내렸다. 사실 그것은 결정이 아니었다. 사회는 아이 엄마가 회사로 돌아가기 어렵도록 판이 짜여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2년 정도 지나자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출판 편집자로 일했었기 때문에 원고 교정 일을 받아 집에서 일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가 하나이고, 남편이 육아와 살림의 상당 부분을 맡고 있으므로 일을 하는 데 엄청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남편과 아이가 없는 자투리 시간에 일을 해야 한다. 수입이 없는 것보다야 낫고 경력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 정도가 있을 뿐 소득이 많지도 않다. 만일 이 일을 풀타임으로 한다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장사인 셈이다. 이 일은 보수가 크진 않으나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최적화된 일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를 챙겨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전 살림을 하면 12시가 되어서야 책상앞에 앉을 수 있다. 대체로 카페에 가는 편이다. 일을 하다가 집중이 될 만하면 어느새 오후3~4시가 되는데 아이를 데려와야 할 시간이 가까웠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평일엔 집중해서 온종일 일을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면 능률이 오른다. 평일엔 5시쯤 되어 아이를 데리고 와 아이 짐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히고 씻기고 먹인다. 남편은 일이 밀려 종종 늦는다. 아이를 재우고 다시 책상에 앉아보지만 못 다한 집안일이 눈에 띈다. 그런 무미건조한 일상이 몇 년째 계속되었다. 제대로 일하고 싶은 마음에 사업자 등록도 해보았다. 대표라는 이름을 달자 한동안은 심리적으로 의욕적인 마음이 일었지만 이내 시들해졌다.

 

  다행히 일은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자영업자와 같은 처지라 언제 일이 끊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제 손님이 많았다고 해서 오늘도 많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감정의 널뛰기가 계속되었다. 일이 들어오면 안도하다가도, 외주 작업자로서 회사의 상황에 맞춰 보조적으로 일하다보면 서글픈 마음도 들고 나도 직원이었던 때가 떠올랐다. 마감을 하면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다시 일이 들어올까 조급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 얼마 후 새로운 일이 들어오면 다시 안도하는 것이다. 프리랜서를 택한 건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다. 또 출퇴근의 개념이 없으니 평일 밤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지내느니 다시 취직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책을 만들어 낼 능력이 있으니 마음만 있으면 조그마한 출판사 정도는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나는 아이 엄마이고, 아이를 두고서 회사를 다니는 일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회사가 최소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인 나라에서 조그만 아이를 그 이상의 시간 동안 보육 기관에 맡겨둔다는 게 안쓰러웠다. 그 뿐 아니라 피로한 몸으로 퇴근을 한 후 아이를 돌보고 살림까지 해야 하는 삶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싱글 때도 나는 퇴근을 하고 나면 완전히 지쳤었다. 몇 년이 흘렀지만 역시나 가족 중 누군가의 도움이 없는 이상 풀타임으로 복직하는 일은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아이가 자라는 동안 부모 중 누군가는 이 아이를 맡아 책임지고 키워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풀타임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일의 양을 조절할 수 있고 언제든 쉴 수 있다. 물론 쉬는 동안에는 돈을 벌지 못하는 무급 휴가다. 프리랜서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러닝머신 위에서 일을 하며 육아를 감당하는 풀타임 노동자로서의 워킹맘과는 다른 성격의 고충을 갖는다. 따라서 일의 과중함이나 육아와 일을 동시에 병행하는 어려움보다는 내 정체성의 문제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워킹맘인 것은 분명하다. 하루에 세 시간씩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 엄마가 있다고 하자. 그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갖는 고충이란 무엇일까. 적은 소득과 지위, 장기적인 진로, 사회적 박탈감, 외로움 혹은 이러 저러한 진상 손님들로 인한 피로감 등이 고민일 것이다. 그 역시 워킹맘이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일하는 엄마는 맞벌이 부부이며 일과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느라 허덕이는 이미지다. 그러나 워킹맘의 범주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파트타임, 단기 계약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가 적은 일을 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 그리고 외로움 등과 씨름하는 사람들 역시 포함된다.

  

  한국 사회는 남성 중심의 야근 문화라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부부의 경우 여성은 제대로 된 정규직 풀타임 직장인으로 재진입하기가 어렵다. 남성은 초과 근무를 하며 회사에 올인하고, 여성은 아이와 살림을 맡으며 부차적으로 파트타임 등을 통해 약간의 돈을 벌수 있는 정도다. 부부가 둘 다 야근도 종종 수반되는 풀타임 직장을 다니는 경우, 그리고 아이를 챙겨줄 친족이 가까이 없는 경우, 아이는 보육 기관에서 온종일 지내거나 베이비시터가 돌보아야 한다. 여성의 번듯한 사회활동은 그것을 감수하느냐 감수하지 못하느냐의 문제이며, 감수한 경우 아이를 희생시킨 엄마가 되고 감수하지 못한 경우 꿈을 펼치지 못한 한 맺힌 엄마가 된다. 어느 쪽도 행복하지 않다.

 



  이상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제도가 마련되고 실제로 작동한다면 직장으로 돌아가 일을 할 것이다. 아이를 키워보니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은 총 2년까지 가능해야 안정적인 복직이 가능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1년은 여성이 휴직을 하고, 이후 1년은 남성이 휴직을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2세 정도부터는 대부분의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다. 2~3세 시기는 아직 아기 티가 나고 말도 못하는 아이들이라 내 경험으론 종일반은 버겁다. 따라서 복직 이후 2년 정도는 하루 6시간 혹은 가능하다면 그 이하로 근무할 수 있도록 탄력 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 탄력 근무 역시 1년은 여성이, 1년은 남성이 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4년이 지나면 이제 아이는 한국 나이로 5세가 되고 유치원에 입학한다. 이 시기는 대부분의 아이가 9~18시까지 기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결국 아이를 1명 이상 키우면서 집안일까지 소화하고 부부 모두가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려면, 여성 남성 모두의 절대적인 근무 시간이 줄어야 한다. 여남 모두 9시 출근 6시 퇴근이 지켜져야 하며, 남성도 자유롭게 육아 휴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출산율을 높이려면 어린 아이를 키우는 동안 여성의 근무 시간이 줄어야만 한다. 또한 보육 교사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처우 개선 등을 통해 직업 만족도를 높임으로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기관이 더 많아져야 한다. 빠른 시일 내에 필부필부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정부가 출범하고 그러한 정책이 마련되어 누구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키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차선책으로 지금의 방식을 택한 것이지, 아이 때문에 프리랜서로밖에 일할 수 없는 현실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나에게는 사회적으로 부차적인 역할이 주어졌으며 나는 제한적인 일만을 할 수 있다. 나는 나를 둘러싼 현실이 나를 제한하거나 억누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나라는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회복된 제각기 다른 모자이크 조각들의 총합이다. 한국의 모든 엄마들이 아이와 자아실현과 노동 사이에서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극복하고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나라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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