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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사람] 소리이음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이 도우시리

[일상에서의 만남] 각자의 소명을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학사들의 삶 이야기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이 도우시리



김선영 학사 부부



기독교사 수련회에 다녀왔다. 하나님이 주시는 담담한 응답을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두 딸의 엄마요 10년차 직장여성, 평범한 가정의 아내로 순조로운 삶을 사는 듯 보이지만 항상 이런저런 고민을 짊어지고 산다.  


몇 년 전부터 교사를 계속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지금 나에게 이 자리가 많이 버겁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자리가 다시없을 좋은 기회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고민을 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둘째 딸 때문이다. 직장에 가있는 동안은 육아의 짐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들긴 하지만 우리 딸에게는 미안하기 그지없다. 시어머님이 돌봐주시는 딸을 매일 한두 시간만 보고 돌아설 때는 맘을 헤집는 것 같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생명을 내 품에서 키우는 것이 직장생활하는 이유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집안일의 어려움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당직을 서야 한다. 하루 이틀은 늦은 시간까지 방과후수업을 해야 한다. 9시, 10시나 되어 퇴근을 하면 청소, 빨래, 먹을거리 준비 등 집안일이 쌓여 있다. 청소는 남편이 한다고 해도 집안일을 잘 소화하지 못하니 조급함이 생긴다. 특히 먹을거리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아내로서 좋은 먹을거리를 챙겨 주지 못하고 엄마로서 아이들의 식습관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다는 고민도 만만치 않다.  



세 번째 이유는 학교에서의 생활이다. 직장이 대안학교이다 보니 안팎으로 교사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높다. 학생들을 더 챙겨줘야 하고, 더욱 사랑으로 보살펴줘야 하고, 더 함께해야 하고... 나는 나름대로 ‘I don’t care’ 하면서 지내지만 다른 교사와 비교하며 생기는 패배감은 어쩔 수 없다. 주부이고 엄마이기에 학생들에게만 나를 다 내어줄 수 없는 것이다. 학생들과 서먹한 나를 보면서,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닌개벼...’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다. 학생들에게 뭔가를 주고 싶은데, 학생들이 나에게서 뭘 받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지 못하고 그냥 학기가 지나가버릴 때, 내가 준비한 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과연 내가 여기 계속 버티고 있어도 되는지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나보다 더 값진 열매를 맺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든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내가 정말로 학생들을 사랑하는가 의문이 생겨서이다. 사실 우리 딸들을 사랑하기에도 버겁다. 어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사랑스러운 마음이 흘러나오지만 어떤 학생들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정보 외에는 마음을 주고받는 말을 하기가 어색한 친구들도 있다. 때로 교사에게 무례한 아이를 보면 마음이 상하기도 하기에 나에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런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형제자매와 리더들과 멤버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나 싶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은 내가 학교를 그만두지 못하게 하셨다. 수련회 기간 동안 하나님은 나의 이런 고민에 대해 응답하시지 않았다. (물론 내가 못 들은 것일지도 모르지..) 그냥 이 고민을 내려놓게 하시고는 그저 나의 할 일은 내 신앙을 잘 지켜 우리 딸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임을 알게 하셨다.


결혼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게 쉬워보였다. ivf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살 소망을 품게 되고, 인생을 다시 보게 되고, 무엇보다 좋은 공동체를 만났다. 졸업 후에도 나는 내게 익숙한 교회 공동체를 선택하고 보호받고 즐기고 안정감을 누리며 살았다. 직장이나 내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기도하지만 결국은 내가 선택하며 결정을 내렸다. 뭔가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그만두었다. 나의 선택을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크게 걱정하거나 강하게 반대하지도 않았다. 내 인생에서 내가 무엇을 못했다면 그것은 아마 내 자신이 걸림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자유로운 선택은 결혼까지였다. 그때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였다. 




남편을 따라 서울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충청남도의 작은 읍에 내려와 학교 관사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남편도 이곳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3월에 남편은 대안학교를 개척한 멤버가 되었고 우리는 그해 6월에 결혼을 했다. 나 역시 남편과 함께 교사를 하고 있다.  


결혼하고 나니 하나님의 인도는 나에게는 너무나 단순해졌다. 그래서 나는 너무 복잡해졌다. 내 신앙수준으로는 너무나 벅찬 요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공동체의 교제나 말씀 안에서의 양육은 더 이상 당연한 게 아니었다.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나의 생각도 무너뜨려야 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삶이 버거워도 그냥 계속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라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다. 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으므로 하나님의 인도는 단순해졌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은 그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 계속 묻고 기다린다. 이 기간은 그저 견디는 기간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부족해서 이 시기를 즐기지 못하고 견딘다는 표현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하나님의 손길이 잘 안 잡히는 듯하지만, 인생을 길게 보면 이 답답했던 시기에 날 다듬으신 하나님의 손길에 눈물겹도록 감사할 날이 찾아올 것이다.  


2014년에도 나는 다시 학교와 계약을 맺었고, 연구부의 일을 맡게 되었다. 어떻게 아줌마인 나에게 교육과정계획서를 맡길 수 있나 잠시 비통해할 여유도 없이, 입학식인 오늘 아침에야 내가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통한 교무업무) 담당인 것을 알게 되어 뒤로 자빠질 지경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니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다. 오늘도 그 믿음을 붙들고 교정에 들어선다.





김선영│전북대95 

남편과의 슬하에 초등3학년, 20개월 된 두 딸을 두었고,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에 대한 중압감을 쉽게 받고 조급한 터라 주님께 맡기는 연습,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머감각과 느긋함을 배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