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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사람] 소리이음

가치에 공감하는 공간을 꿈꾸며_신응종

학사운동의 역사를 만나다 #5

가치에 공감하는 공간을 꿈꾸며



이시종 총무가 전하는 '학사운동의 역사를 만나다' 그 다섯 번째 시간에는 신응종 간사(경북대85, 대구지방회 Beyond Campus 대표간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난 학사회 실행위원 모임에서 각 지방회별 학사운동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대구학사회의 나눔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오랜 기간 대구지역에서 사역하며 학사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고자 분투하셨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만남을 통해 대구학사회의 사역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진행 이시종 편집장 / 정리 편집부)



왼쪽부터 이시종 간사, 신응종 간사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IVF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그리고 가족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저는 1985년에 경북대에 입학했어요. 행정학을 선택했지만, 고등학교 선생님이 신학교 입학을 추천해줄 정도로 제 성향은 독특(?)했고, 신앙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했어요. 다른 선교단체에 방문했다가 나오는 길에 만난 어떤 선배가 IVF는 복음과 삶의 통합을 추구하는 공동체라는 말을 해주더군요. 그 선배의 이야기를 따라 IVF에 갔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후 1992년부터 간사생활을 시작했죠. 당시 동기들과 비전을 나누며 행정고시를 치르기 보다는 사람을 바꾸는 일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내는 대신대 87학번으로 개척멤버였어요. 아내가 입학한 후에 제가 입대를 해서 학생시절에는 서로를 몰랐죠. 제가 캠퍼스 사역을 시작했을 당시 아내는 OMF의 간사였는데, IVF 출신의 학사들이 사역하는 단체들을 격려차 방문하던 중에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선교대구’라는 대구지역 선교단체 모임에서 만남을 지속했고요. 결정적으로 93년 전국학사수련회에 아내는 당시 몸담은 단체의 홍보를 위해 왔고 저는 선교단체 부스 담당자여서 그렇게 친해졌습니다. 교제를 시작한 지 139일 만에 결혼하여 딸 셋을 두었습니다.



* 대구지역 학사회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초창기 학사회를 이끄셨던 분들과 활동 내용이 궁금합니다.


학사회는 1991년 쯤, 84, 85학번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는데, 초기 학사모임의 주축은 한국기독교사회(이하 TCF) 모임과 주부모임이었어요. 경북대 사범대 84학번의 세 자매가 졸업 이후 교사 발령을 미루고 6개월 동안 캠퍼스를 섬기며 학사모임에 꿈을 가지고 기도했죠. 그러다 이용세 목사님(강원대78)이 교사 발령을 받아 강원도에서 대구로 오셨고, TCF가 만들어졌습니다. 한편 박영덕 목사님(경희대75)이 83년에 정식 간사로 세워지기 이전부터 대구지방회를 섬긴 조화영 목사님(경희대77)은 주부모임을 만들어 결혼한 84학번 자매들과 같이 모였고요. 당시 학사회 전임간사였던 한철호 간사님(강원대75)이 한 번씩 방문하고, 신호기 목사님(건국대74)이 카투사로 대구에 오시며 10여 명이 모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1993년에 신호기 간사님이 학사회 간사로 부임한 후 6년 정도, 학사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 대구지방회 대표간사로 사역하시다가 한때 대구지역 학사회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때의 학사사역의 성과와 한계는 어떻게 정리하셨는지요.


2000년 즈음 대구지방회 멤버십 수가 1,200명 정도여서, 동대구, 남대구, 대구북서의 세 개 지방회로 나누었습니다. 제가 신학연수를 마치고 대구북서지방회의 대표간사로 복귀했지만 실제적으로는 학사사역을 했죠. 그러다가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사건 후 세 개 지방회의 대표간사들이 모여 논의하다 보니 각 지방회마다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지방회로 재정비를 하고 2003년에 독립적으로 학사회를 만들었죠. 


대략 13개의 학사 그룹이 있었는데, 신앙과 생활이 통합된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TCF, 대구교대IEF모임, 아허모, 학원교사모임, 대기업사원모임, 주부모임, 사회복지팀모임, 가정관련 모임 등, 다양했습니다. 간사가 열심히 하는 것과 학사가 주도하는 것은 의미가 다른데, 지금 와서 평가하면 캠퍼스와 학사사역의 구분이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모임의 구성원이 미혼들이다보니 삶의 변화가 많아, 삶의 주기적 흐름의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웠죠. 대구지역에 IVF 출신 목회자가 사역하는 교회가 생겨나며 학사들이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기도 했고요. 그러던 중 캠퍼스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지방회가 다시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 2008년 12월, 통합된 지방회의 대표간사가 되었어요.



* 진로지도학교와 커플학교와 같이 학생과 학사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우는 사역을 해오셨습니다. 대구뿐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강의와 워크숍을 진행하셨고요. 그동안의 사역 이야기와 현재까지 이게 어떻게 이어져오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학사사역을 위해서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인 필요 때문에 학사들이 모일 수 있겠다고 봤죠. 욕망은 잘라줘야 하지만 욕구는 채워줘야 하니까요. 가령 비전캠프를 96년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지금과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었어요. 학생들이 제 품을 떠나 결혼이든 취업이든 진로를 찾는 과정 속에서, 그들의 적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제가 돕다보니 노하우가 쌓여 프로그램이 된 것이죠. 그렇게 시작된 비전캠프는 전국에서 약 60회 정도 진행됐습니다. 전국을 돌며 사역했던 건 학사회 간사였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대표간사가 된 후에는 캠퍼스와 간사를 돌보기 위해 외부활동을 줄였습니다. 


제가 신학연수 때 가정사역을 공부했습니다. 제 인생의 키워드는 청년 그리고 훈련이기 때문에, 배운 내용을 청년에 접목하여 커플학교를 만들었죠. 현재까지 18회를 열어 162쌍을 배출했습니다. 자녀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이유도 학사들의 고민이 자녀교육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inG school’이라는 휴학생 훈련학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전과 달리 지금은 70~80%의 학생들이 휴학을 하는 추세입니다. 대부분 꿈을 찾아 휴학하지만, 결국 찾지 못하니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를 위해 저뿐 아니라 박희광 교수와 정희돈 간사 그리고 박성훈 학사가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는 사역의 공간을 열고 큰 방향을 설정하는 데 주력하려고 합니다. 평신도는 자신의 사역을 하고 싶어 합니다. 저는 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헌신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커플학교를 처음 시작했을 때 회비를 적게 받았는데 이에 따른 적자는 저를 비롯한 강사들이 충당했어요. 이후 졸업생이 자발적인 후원자가 되도록 독려했죠. 시간이 지날수록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교육사업이 아닌 교육사역을 해야 한다는 저의 철학을 반영한 것입니다. ing school의 박희광 교수도 1기와 함께 지내며 사람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교육사역의 개념을 이해하더군요. 인생을 걸고 하고 싶다며 고액 연봉을 제안을 거절하고 이곳에 남았습니다. 이런 사역자를 모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학사들의 삶의 여정을 함께하며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는 사역이 기본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계획하고 있는 세대별 사역에 대해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리의 죄성 때문에 삶이 힘듭니다. 자기중심성에다가 자라오면서 가지게 된 습관과 기질이 있습니다. 죄와 기질의 문제는 캠퍼스에서 많이 다룹니다. 졸업한 학사들의 삶에는 주기적 흐름이 있어요. 졸업, 데이트, 결혼, 육아, 승진, 퇴직 같은, 이런 주기적 흐름을 다뤄줄 수 있는 프로그램, 멘토 그리고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어떤 건 프로그램으로, 어떤 건 멘토가 이런 학사들의 인생 주기를 도와주면 좋겠죠. 30~40대 모임, 자녀를 위한 모임, 아내를 위한 모임, 남편들의 모임 등과 같이요. 


제가 30~40대 사역을 중요시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이들이 10년 후엔 50대가 됩니다. 그땐 자녀가 다 커서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생깁니다. 자신의 분야에 영향력도 생기고요. 그때를 준비하기 위한 사역을 하는 것이죠. 지금 제 또래가 슬슬 명예퇴직을 하고 있어요. 이들이 30대를 도우면 좋겠죠. 지금의 30대는 IVF 전체의 부흥기를 보냈습니다. 대부분 자녀가 초등학생일 텐데, 조금만 더 있으면 교육에 있어서 심각한 갈등을 겪을 것입니다. 이들을 위해 자녀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다면 사역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현재 평신도 지도자 모임(이하 평지모임)을 하고 계시고, 그들을 앞으로의 대구지역 학사운동의 중심축으로 삼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취지와 내용을 설명해주시죠.

  

50대가 되어야 비로소 영향력을 갖출 수 있지만 졸업은 25세~30세 즈음에 하죠. 그러면 20년 후에야 다시 IVF에 회귀합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30~40대가 중요한 건 곧 50대가 되기 때문이에요. 이때 결혼하고 아이 낳고 직장에서 승진을 하죠. 교회나 바깥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때를 잘 도우면 이후에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생활이 바쁘다보니 당연히 모임은 잘 안 됩니다. 그러나 이들에겐 멘토가 필요하죠. 그래서 전 직장에 찾아가 한 두 시간 길게 대화하며 멘토링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10년이 지나면 됩니다. 자녀가 어느 정도 자라 아이 걱정을 하지 않으면 에너지가 생기고 마음껏 사역할 수 있겠죠. 


그래서 지지그룹으로서 ‘평지모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13가정이 모이고 있어요. 우리의 사역을 특정한 공간이나 일정한 예배로 한정하면 모일 수 없지만, 지역이 멀어도 스카이프로 한 달에 한두 번 얘기하는 것으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학사들이 서울에 있더라도 멘토링은 가능한 거죠. 지금 모임은 모두에게 개방하고 있진 않습니다. 지속성을 위해서인데요, 세 가지 조건을 우선 내걸고 있습니다. 먼저 결혼을 해야 하고, 평신도 지도자로 자랄 마음 즉 직장생활과 사역을 함께하겠다는 태도와 아내의 허락입니다. 



* 간사님의 휴대전화에는 천명이 넘는 번호가 입력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며 네트워크의 중심에 계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를 지속하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네트워크와 학사운동을 어떻게 연계하실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지난번에 정리해 보니 약 1,560여 명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더군요. 저는 단순한 인맥이 아니라 ‘인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연락처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어요. 하나는 목회자 인맵입니다. 대구지역 담임목사의 세대교체가 이뤄져서 대부분 제 위아래로 세 살 차이가 납니다. 특히 40~50개 정도의 교회의 경우, 목회자와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90학번들은 부목사로 20여개 교회로 가있고요. 제 친구들은 하나둘 장로가 되고 있습니다. 교계 네트워크가 꽤 크게 형성되어 있죠. 또 하나는 전문성을 가진 평신도 인맵인데요, 이것을 잘 활용하면 학생들의 꿈을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 줄 수 있습니다. 제가 모든 사람을 알지 못해도 목회자를 통해 소개할 수도 있고요. 


학사운동을 하려면 사역자가 한 곳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사들이 지방에 남아야 지방교회를 살릴 수 있어요. 그런데 지방에 남으려면 직업이 있어야겠죠. 서울에 가는 학사들도 사실 막연하게 불안정한 상태로 가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인맵을 잘 형성해 인격적 관계를 맺고 훈련된 학생들을 매칭하고 싶습니다. 고민도 많습니다. 가치 싸움을 계속해야 하겠는데, 어찌하면 되겠다 싶다가도 이걸 어쩌나 싶기도 해요. 그래도 연락처를 정리하면서 학사들만 모아도 외롭지 않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 인생의 후반전을 살고 계신데 간사님이 가장 집중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바라본 하나님나라의 첫 번째는 가치이고, 두 번째는 가치에 헌신할 함께하는 무리였어요. 세 번째는 시스템이고, 네 번째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방향은 이제 정해진 것 같습니다. 가치를 어떻게 실제로 만들 건지에 관심이 많아요. 복음과 삶을 통합시키는 실제적인 프로그램과 그런 사람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게 평신도 지도자겠죠. 현재 저와 이 사역을 함께할 사람이 네 명인데, 서른 명 정도로 커지면 좋겠습니다. 평지모임에 100가정 정도가 들어와 이들이 10가정씩 맡고, 또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이 50개 정도 생기고요. 숫자는 상징적이지만 이렇게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인맵을 통해서 공감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내려 합니다. 여기에는 재정이 필요한데요, 지속 가능한 후원모델을 계속 구상하고 있습니다. 10년을 내다보며 사역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가치는 물려주는 것이지 제가 계속 가져가는 건 아니더라고요. 말씀과 삶이 통합되는 사람을 지방에서 많이 세우면 좋겠습니다. 지방이라서 가능한 사역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 학사운동에 대한 간사님의 철학과 현재 펼치고 있는 활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구지역의 학사운동이 이끌어갈 다양한 사역 모델을 기대하며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