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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사람] 소리이음

자발적으로 즐겁게!_류재한

학사운동의 역사를 만나다_#6

자발적으로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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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F는 ‘자발성’을 가장 중요한 공동체의 문화적 가치로 여겨왔습니다. 여건과 상관없이 자발성이 꽃 피는 때에 학생운동과 학사운동 모두 생명을 잉태하고 향기를 뿜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앞으로 ‘학사운동의 역사를 만나다’ 지면을 통해, 자발적으로 학사운동을 일으키는 분을 찾아다니고자 합니다. 


경남학사회는 학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중 진주지역의 류재한 학사(경상대98)는 졸업 이후 10여 년간, 지치지 않고 즐겁게 학사모임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와 나눈 유쾌하고도 감사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진행 이시종 /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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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종 간사와 류재한 학사(경상대98)




* [소리]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몇 번의 인터뷰를 통해 학사운동의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학사가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학사운동의 사례를 발굴하고 이야기를 들으려 합니다. 우선 독자들에게 학사님 소개를 해주세요. 지금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주제의 강의인가요?


저는 경상대 철학과 98학번입니다. 지금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사고력에 관련된 ‘논리학개론’과 ‘비판적 사고’ 같은 강의를 주로 합니다. 이와 더불어 2학기에는 “GNU인성” 강의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이 과목은 본교 기초교육원에서 의도적으로 개설하는 과목인데, 6명의 교수가 6개의 주제로 2주씩 돌아가며 강의를 합니다. 그런데 감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웃음) ‘인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잡기도 어렵지만 한정된 시간에 학생들의 인성이 양육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잘 준비해야겠죠. ‘비판적 사고’의 경우 광의적인 측면에서 ‘논리적 사고’의 일부분이고 ‘논리학개론’은 5년 정도의 강의 경험으로 내용적인 면에서 익숙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강의 과정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틀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 세부 전공을 논리학 쪽으로 하셨나요?


전공은 생명(의료)윤리학입니다. 이는 생명과 의료에 관련된 철학적 반성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학위 논문은 생명윤리학의 방법론에 관련된 주제로 쓰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지부에서 2학기마다 했던 이슈파이팅의 일환인 ‘낙태반대캠페인’입니다. 낙태반대연합모임에서 제공하는 영상물과 유인물을 통해서 ‘낙태는 살인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우리 안에 이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대안이 정립되어 있는가라는 반성과 외부적으로는 캠페인이 학생들에게 인식의 변화 내지 실천적인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생명의료윤리’라는 과목이 신설되었고 참 재미있게 수강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낙태를 주제로 학부 졸업 논문을 썼습니다. 



류재한 학사(경상대98)

* IVF와는 어떻게 연결되었나요?


저는 요즘말로 하면 ‘새벗’ 출신입니다. (웃음) 그때는 EBS였는데 요즘은 새벗이라 하더라고요. IVF와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로 기억합니다. 인제대 IVFer였던 친누나의 초대로 인제대 형들의 공동체하우스에서 2박3일 동안 함께 먹고 놀았습니다. 그리고 1년 뒤 학교가 경상대로 결정되자 누나가 당시 경상대를 담당했던 정성우 간사님과 학생대표였던 명옥 누나에게 연락을 다 해놓았더라고요. 그래서 진주라는 낯선 땅에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전도성경공부와 큰모임에 참석했고요. 그 과정에서 복음을 접하며 제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계속 충돌이 생겨서 힘들였습니다. 그런 혼동과 혼란의 시기를 공동체 지체들이 따뜻하게 수용하고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러다 1학년 1학기 중에 영접을 했습니다. 



* IVF에서 신앙적으로 태어나신 거군요. 진주라는 도시 자체도 각별하겠습니다. 학사회로는 언제부터 모이셨나요?


경남학사회는 공간적으로 120km 흩어져 있습니다. 학사 큰모임을 한다면 어디서 모여야 하는지부터 고민이 시작됩니다. 학사님들이 고속도로로 한 시간 이상 이동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민은 학사 대표자 모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대표간사님이 허브역할을 하며 학사 대표자들 간의 소통의 장을 디자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경남학사회 전체적으로 1년에 딱 한번, 학사수련회를 통해 흩어진 학사들이 모입니다. 


진주지역 학사모임은 경상대 개척멤버인 96학번 누나들이 졸업 이후 소그룹 형태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그 모임이 소멸해 제가 학사 2년차가 될 때까지 모임이 없었습니다. 2005년 가을에 코스모스 졸업한 한 후배가 PBS를 하자는 제안으로 모임이 다시 시작했습니다. 본문은 다니엘서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2006년 다른 두 후배가 졸업하면서 모임의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세 명을 두고 삼위일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정기적인 모임 시간 외에도 일주일에 네 번 이상 모였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동생들도 사회초년생이어서 여러 가지 문제를 풀어낼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원동력으로 그해 가을에는 지성근 간사님(일상생활사역연구소)을 모시고 진주지역 예비학사들을 초청해서 함께 강의를 들었습니다. 또한 겨울에는 신동열 소장님(소명교육개발원)을 모시고 소명캠프도 했습니다. 이 캠프에는 학사뿐만 아니라 지역교회 청년들도 참석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죠.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음을 잘 모을 수 있었던 것과, 일명 ‘삼위일체’ 세 명이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직업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주변 학사님들을 보면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0시, 11시에 퇴근하는데 우리는 그래도 마음에 따라 시간을 사용할 수 있었던 구조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시간이 여유로운 사람이 학사모임을 섬겨주면 유익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섬긴다’는 단어를 학사(회)운동에 사용하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자발성을 강조하는 운동에는 적절하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순간 섬기지 않는 사람과 구분되며, 섬기는 사람은 뭔가 특별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학사들이 함께 하나님나라에 대한 관심과 상상, 실험을 하는 운동이라면, ‘섬김다’와 같은 여러 의미가 함축된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이 우리의 운동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학사들이 각자 보냄 받은 자리에서 하나님나라 가치에 따라 살아내고, 필요에 따라서 함께 마음을 쓰며 학사회를 이루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 학사님의 문제제기에 공감합니다. 이후에 모임은 어떻게 정착되었나요?


그후 경남지방회 차원에서 지역마다 YGM 모임을 만든 걸로 기억합니다. 진주지역은 이미 학사모임이 있어서 진주YGM 담당 간사님이 모임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생적으로 움직이고 있던 진주지역 학사모임에 미묘한 긴장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다른 말로 간사님은 저의 눈치, 저는 간사님의 눈치를 보게 된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협업할 것인지 자연스럽게 균형을 맞추어 갔습니다. 모임의 방향성과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간사와 학사라는 구분보다는 같은 학사로서 함께 이야기하고 만들어가며 균형점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실험을 거쳐서 최근 5년 사이에 모임이 안착했습니다. 현재는 매주 주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모입니다. 시간만 정해놓고 학사들의 필요에 따라 모임에서 담아내는 내용과 성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학사들이 놀이가 필요하다고 해서 거의 3달 동안 매주 다르게 놀았습니다. 스터디가 필요하다면 북스터디도 합니다. 북스터디는 일상생활사역연구소가 방학마다 실행하는 <식객>의 형태로 하고요. 또한 우리 모임에는 '대표' 또는 '리더'라는 고정된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진주지역에 계시는 간사님들도 간사로서가 아니라 학사로 참여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학사들 사이에 간사도 학사로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풀어낼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공감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이렇듯 진주지역 모임은 이끌어가고 지도하는 고정된 자리 없이 끝임 없는 서로간의 교류와 역동으로만 존재합니다. 


경상대IVF 학사모임



* 자발적인 학사모임의 모습이 캠퍼스 때부터 이어져온 것 같습니다. 


경상대 IVF의 특징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강한 자발성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캠퍼스에 있을 때 개척 상황이라서 ,1학년 때부터 리더와 멤버들이 함께 뛰어야 했습니다. 개척을 담당하셨던 정성우 간사님의 사임이후 1학기 정도 간사가 없었습니다. 그때 학생 자발성이라는 문화가 더욱 강화된 것 같습니다. 경상대에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2박 3일 동안 챕터를 통해서 다음 학기 POGS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한 리더가 ‘이 방향성이 맞는 건가?’라고 질문하자 모두 뒤엎고 P부터 다시 짰다고 합니다. 학생들 간에 자발적으로 소통하고 의사결정하며 행동하는 문화가 학사가 되어서도 계속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 경남지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음화 비율이 낮은 지역입니다. 선교지 같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죠. 이에 대해 학사회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학사들이 어떤 구체적인 시도를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제 안에 이런 질문들이 솟아납니다. 학사운동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학사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경남지방회가 학사운동의 차원까지 와 있는가? 혹은 학사운동까지 가야만 하는가? 경남지방회가 설립된 지 내년에 10년이 됩니다. 저를 비롯하여 많은 학사들이 자기 몸뚱이 하나 간수하기도 어렵습니다. (웃음) 이런 상황 가운데 학사회 차원에서 어떤 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교회 또는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학사수련회가 경남지방회 학사회 전체의 방향성과 정신을 담아내는 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틀을 기반으로 다양한 형태의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모임들이 세팅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미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학사모임을 네트워크할 수 있는 적절할 틀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러한 고민이 있습니다. 




* 학사모임에 어느 정도 시간과 비중을 두고 있나요? 학사회에 너무 열심이라 아직 결혼 안하고 남아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학사운동 함께 할 자매를 찾는 것인가요? 전국적으로 자기 홍보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런 자매 만나고 싶다, 공개구혼 한번 해보시지요.


IVF 후배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형이 IVF에서 빠져야 결혼할 것 같다고 합니다. (웃음) 그 이야기를 듣고 제 삶을 되돌아보니, 일단 모임이 많습니다. 진주지역 학사모임, 생활공동체를 준비하는 공동체 모임, 그리고 스터디 모임 두 개를 매주 하고 있고요. 이주에 한번씩 TGIM 진주점 모임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본적으로 사람 만날 기회가 부족했더라고요. 


IVF 자매를 만나면 좋겠습니다. 많은 걸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안에 공유하고 있는 정신과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자매면 좋겠습니다. 한 선배한테 이렇게 말하니 그런 사람은 없다고 충고해 주셨습니다. (웃음) 기본적으로 상황과 사람에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태도를 지닌 자매가 정서적으로 안정된 자매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수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앞으로의 꿈과 계획이라면?


제가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면서 30대를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을 할 때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하나는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을 변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또 하나는 연구자로서 삶입니다. 생명윤리학 분야에 다양한 논쟁이나 대안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즐겁게 하고 있는 학사운동에 대한 태도나 문화가 보기 좋았습니다. 자발적인 모습도 도전이 되었고요. 앞으로도 계속 자발적이고도 즐겁게 학사운동의 내실을 다져갈 경남학사회를 응원합니다.